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2 집필회몽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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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0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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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을 관통하는 듯한 거대한 나무가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홀로그램으로 복원한 거지만, 지나치게 리얼하네.

세세한 내용들을 보니 이걸 복원한 이가 실제로 현장에 가봤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사실적인 화면으로 투영된 시뮬레이션이지만, 눈앞의 모든 것엔 생체공학 코팅이 타는 냄새와 폭발로 인한 먼지가 느낄 정도로 현실감이 들었다.

밤하늘은 화염으로 붉게 물들었고, 발밑에는 모든 생명이 다 타서 없어진 땅이 펼쳐져 있었다. 불빛과 짙은 연기에 가려진 영웅들의 전투가 재생이 정지된 필름처럼 그 순간에 멈춰 있었다.

지금까지 본 복원된 전시관에서 이곳이 제일 처참했다.

그녀들 앞에는 차단막 같은 빛의 장막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내디딘다면, 멈춰있던 시간이 흐를 것만 같았다.

……

지난날의 기억과 눈앞의 광경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시카의 마음속에 괜찮은 척하던 마지막 위장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카가 아직 파오스 학생이었을 때, 지상 최전선에 일손이 부족해서 후방에 파견돼 지원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 거점에서 알 수 있는 최전방에 대한 정보는 단말기를 통해 전달된 전투 브리핑뿐이었고, 시카가 맡은 건 후방 지원 관련 업무였다. 그 때문에 출전 전에 달달 외웠던 군사 이론과 지휘 전술은 쓸모가 없게 됐다.

다음 물자 투하 지점은... 아니, 침식체의 전진 속도가 예정보다 느리니 좌표를 다시 계산해야 해.

이곳 침식체 반응이 예상보다 많이 적은데? B구역 최전선에 있는 소대는 어느 소대야?

그레이 레이븐 소대.

어쩐지... 이번 토벌도 무사히 끝낼 수 있을 것 같군.

승리하고 돌아올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방심은 금물이야.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다른 구역의 전황에 주의하고, 탄약을 모델과 맞게 보급품 점검하는 거 잊지 마.

모든 소대가 그레이 레이븐인 건 아니잖아. 그리고 전쟁터도 나가 본 적 없는 아이가 이런 걸 알 거라고 기대할 수도 없잖아.

(……)

(나도 할 수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 네! 죄송해요. 장관님. 잠시 딴생각하고 있었어요.

전 언제 최전선에 나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직 할 수 없는 일은 생각하지 말고, 눈앞의 임무 목표에나 집중해.

얼굴에서 불이 날 것만 같은 시카는 고개를 숙이고 손에 있던 배치 리스트를 꽉 쥐었다.

지금 네가 하는 일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해.

우리가 최전선에 공급하는 전투 물자나 장비는 모두 과거 전장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결정하는 거야.

조급해할 필요 없어. 이곳에서 배운 게 장차 최전선에 나갔을 때 도움이 될 거야.

알겠어요.

(하지만 나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은데...)

풀리아 삼림 공원 전투가 시작됐을 때, 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지상 전투를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시카는 자신의 교관과 선생님들이 수업을 중단하고 지휘부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단말기로 전장의 상황을 밤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전선에서 보내온 영상을 보며, 시카는 처음으로 전쟁의 잔혹함을 느꼈다. 하지만 시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난이 닥쳤을 때, 시카는 오히려 때와 맞지 않는 부러움을 느꼈다.

그레이 레이븐이나 차징 팔콘처럼 인간을 구하고 모두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영웅"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들의 영광은 굳은 신념과 빛나는 공적에 의한 것으로 시카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영웅의 딸이라는 타이틀만 가지고 있는 시카는 계속 비교 당하고 기대받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타인이 보내는 의심의 시선이 계속 시카를 따라다녔다.

시카는 "수석"이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그 칭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카는 모든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동경하는 사람의 방향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자신도 이상 속의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과 마주했을 때, 자신은 그저 눈 부신 빛에 비친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 전 이야기는 군부 참모장으로서가 아니라 과거의 선생님으로서 하는 조언이었다.

다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려고만 한다면, 너 자신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되지.

시카는 자신이 뭐가 되고 싶은지 잘 알지 못했다. 그냥 애매모호한 환상을 막연히 좇고 있을 뿐이었다.

알게 된 지 며칠 되지 않은 대원들조차 시카의 무모함과 미숙함을 알아차리고, 시카를 신뢰하려 하지 않았다.

다시 만난 아이라의 눈빛엔 몇 년 전 진열대 뒤에서 시카를 격려했을 때처럼 굳건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과거를 비추는 환영들 사이로 지나갈수록 마음속 모호한 생각이 더욱 또렷해졌다.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는 정말 까다로운 소대였다. 모두의 템포가 다르고 서로를 믿지 않았다. 게다가 지휘관은 경험이 없는 실망스러운 초보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카에게 적합할지도 모른다.

아이라

그래도 난 비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바보"들의 모습이...

엄청나게 눈부시다고 생각해.

시카는 자기 옆에 서 있는 아이라를 봤다. 손에 있는 건랜스를 꽉 쥐고 타오르는 거대한 나무를 고갤 들어 바라보는 아이라의 눈에는 불꽃이 비쳤다.

시카는 지금까지도 자신이 "영웅"에 대한 동경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한 소대를 이루고, 같이 전투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

영웅에 대한 동경은 앞길을 밝히는 등대였다. 하지만 진정한 목표를 찾게 해준 건...

(아이라의 말이 맞아. 우린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아니야.)

(난 이미 한번 틀렸어. 그러니 이번엔 다른 사람을 흉내 내려고 자신을 구속하지 않겠어.)

레나.

왜 그래요?

이런저런 일 때문에 절 못 미더워하는 거 알아요. 솔직히 지금의 전... 제가 봐도 그쪽의 신뢰를 받을 자격이 없어요.

하지만 전 아이리스 월블러의 지휘관이고 당신은 제 대원이죠.

레나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린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 지내게 될 거예요.

그리고 전 언젠가 레나, 트로이, 아이라의 인정을 받을 거예요.

전 반드시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에 어울리는 지휘관이 될 거예요.

……

레나는 시카를 보며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시카와 더 이상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게 큰소리를 쳤으니, 적어도 눈앞의 전투는 잘 끝낼 수 있게 지휘해 주세요.

레나는 손에 든 무기를 빙빙 휘두르며, 전방의 전장을 가리켰다.

시카

알겠어요.

다들 준비는 됐죠?

고개를 돌려 아직도 불타고 있는 거대한 나무를 바라본 시카는 손에 들고 있는 총을 움켜쥐었다.

트로이

이러면 열심히 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트로이도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두 개의 톤파가 증기를 뿜어내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트로이

힘든 전투가 될 거예요. 그러니 지휘관님의 지휘에 따라 전력을 다하죠!

아이라

그날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에 비하면, 이런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겠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시험을 이겨내야 해.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러한 슬픈 기억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갔어.

그러니 우리도 과거의 그림자에 얽매여서는 안 돼!

대열의 맨 앞에 선 아이라가 확고한 의지를 보이며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