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긴...
연극은 막을 내렸지만, 아이라는 여전히 끝없는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만화경처럼 부서진 빛이 시야의 끝에서 날아오자, 아이라는 손을 뻗어 사방으로 흩어진 불빛을 만지려 했다.
수많은 조각들이 의식의 바다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건 기억으로 만들어진 라비린토스였고, 아이라라는 여자아이가 쌓은 바벨탑이었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의식한 아이라는 앞으로 한 발짝 내딛자, 밑도 끝도 없는 호수 속으로 빠져들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오래된 영화 영사기 필름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스탠드 조명만 있는 작업실에 누군가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아이라, 3일 동안 쉬지 않은 것 같은데?
앨런 회장님? 무슨 일이세요?
협회 사람들이 요즘 작업실에서 푸념 섞인 울음소리와 이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자주 난다고 무서우니 나한테 좀 봐달라고 해서 말이야.
아하하... 그래요?
지금... 만화를 그리고 있는 거니?
네. 요즘은 만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아이라의 책상엔 공중 정원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황금시대의 모든 만화 작품이 쌓여 있었고, 작업대 위엔 아직 색을 칠하지 않은 밑그림도 있었다. 그리고 발 옆에 있는 휴지통엔 구겨진 종이가 가득한 나머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취미를 넓히는 건 좋지만, 3개월 후에 있는 전시회 준비는 잘 돼가고 있지?
전, 전시회요?
잊은 거니? 3개월 후에 예술 협회가 공중 정원 살롱에서 1년에 두 번 하는 대형 전시회를 개최하잖아. 지난번 고고학 임무 전에 이미 참가 신청이 돼 있던데.
협회가 이제 막 데뷔한 신인들에게 주목받기 쉬워지라고 부스를 특별히 마련해 줬어. 네 예전 작품은 업계 내에서도 평가가 좋어서 높은 분들이 많이 기대하고 있어.
높은 분들이요?
알겠어요. 맡은 일이 끝나면 바로 준비할게요.
그전에...
그전에 아이라는 이루고 싶은 것이 있었다.
……
지상으로 내려가는 날이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왔다.
아이라? 이번 임무에도 지원했니?
안녕하세요. 오르페우스 대장님.
네 모습을 보니 예전 고민은 잘 해결됐나 보군.
자신은 지금 웃는 얼굴인가? 소녀는 자신의 기분을 잘 알지 못했다.
수송기가 착지하기까지의 시간이 더없이 길게 느껴졌다. 아이라는 고개를 숙이고 품에 숨겼던 물건을 살포시 끌어안았다.
이건 아이라가 몇 달 동안 공들인 것이기도 하고, 지금의 아이라가 내려고 하는 답이었다.
아이라는 이 답이 정답인지 아니면 오답인지 궁금했고, 그 소원을 위해 계속 노력할 가치가 있는지를 절실히 알고 싶었다.
사소한 격려라도 좋았다.
그래서 아이라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여자아이의 놀란 눈빛과 이 작품이 받게 될 평가에 대한 상상이었다.
아이라는 기대가 실망으로 될 수도 있고, 끝이 보이는 길을 걷는 것이 아닌 출구가 없는 미로가 될 수도 있다고 몇 번이나 자신에게 충고했다.
미로로 들어간 첫 번째 갈림길은 차갑고 막다른 골목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 거주지는 보름 전 침식체의 습격을 받아서 많은 시설이 파괴됐어요. 재건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괜찮아!?
때마침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공중 정원의 집행 부대가 있었어요. 그들이 구조를 위해 시간을 벌어줬지만, 침식체의 공세가 워낙 갑작스러웠던 탓에 모든 사람을 구할 순 없었어요.
……
알겠어. 근처에서 찾아볼게.
아이라는 폐허로 들어갔다. 남자아이들이 놀던 공터는 다 타서 없어진 땅이 돼 있었다.
그리고 여자아이가 살던 작은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이라는 지상에 있는 동안 주위에 위치한 모든 보육 구역을 돌아다녔지만, "미레이"라는 여자아이는 찾을 수 없었다.
여자아이가 무사히 구조됐을 수도 있었고, 다른 지점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습격이 오기 전에 여자아이를 데리고 새로운 집으로 갔을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 약속은 빨리 실현할 수 없을 것 같네.
지상 상황은 엄청난 속도로 변했기 때문에 아이라는 일찍이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그래서 실망할 필요가 없었다. 결말을 맞이하지 않는 한 아이라는 가슴 펴고 앞으로 계속 걸어가면 됐다.
아이라는 미레이를 찾아 약속했던 걸 전해주고 싶었다.
이건 아이라의 선택이고 아이라의 의지였다.
아이라의 여정은 방금 시작됐다.
하지만...
……
아이라, 며칠째 캔버스만 쳐다보고 있잖아. 안 그릴 거야?
전시회가 보름밖에 남지 않았어. 뭐라도 그려서 제출해야 할 거 아니야!
이번 전시회에 높은 분들이 많이 참석할 거란 말이야. 망치면 안 된다고!
알고 있어. 그래서...
평소 같으면 붓을 드는 순간에 영감이 샘솟았을 텐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아이라는 캔버스 앞에서 순수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고, 칠하려는 색깔엔 불순물들이 섞여 있었다.
아이디어나 구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리려고 하면 언제나 의문 하나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게 정말 좋은 작품이 될까?
자신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싶을수록 더욱 움츠리게 됐다.
이건 아이라가 그 한을 만회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였고, 더 이상의 실패는 용납할 수 없었다.
협회의 중시, 선배들의 기대, 동기들의 숭배, 관객의 심판, 자아의 요구.
아이라는 이 모든 걸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리고 이 세계가 자신과 절친만 있는 미니어처 가든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집념이 오히려 족쇄로 변해 아이라의 표현을 속박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런 그림을 보여줄 순 없어...
아이라는 거의 매일 작업실에 자신을 가뒀다. 하지만 창작은 시간을 들인다고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아이라! 이대론 시간을 맞출 수 없어. 네가 최선을 다하고 싶은 건 알겠지만, 매번 그렇게 잘 되는 건 아니잖아!
더 이상 시도할 시간이 없어. 요새 그려놓은 거라도 있어? 뭐? 하나도 없다고!?
그럼, 몇 달 전에 건?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거라면 뭐라도 좋아! 완성도는 상관없어. 안 되면 협회의 인력을 뽑아서 완성하면 되니까. 내놓을 수만 있으면 돼!
참, 너 만화 그렸다고 했지? 그거라도 돼. 어서 50부 복사해 와! 예술 협회 유망주가 새로운 예술 형식을 시도한다고 하면 돼. 홍보는 어떻게든 할 수 있어!
하지만 그 만화는 전시회를 위해 그린 게 아니라서, 전시회를 보러 온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고.
혹시라도 높은 분들이 새로운 예술 형식에 흥미를 느낄지도 모르잖아? 마지막 방법이지만 해보는 수밖에.
그 말들은 담당자의 위로일 뿐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담당자가 만화 샘플을 가져갈 때, 아이라는 이미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상했었다.
한마디로 망쳤다.
많은 사람이 아이라가 왜 이런 작품을 내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일부 평론가들조차 아이라의 작품을 보곤 천진난만한 이야기에 불과하고, 예술성은 하나도 없다며 비판했다.
원래는 창작자도 이번 살롱에 참가해서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고 관객들과 자기 작품과 창작 과정을 교류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라는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한 번도 전시회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회장님이 뭐라고 하시겠지? 설마 협회에서 잘리는 거 아니야?
기대를 한몸에 받은 유망주가 사람들을 실망하게 했으니, 예술 협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게 뻔했다.
아이라는 살롱 옆 장의자에 앉아 살롱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몰래 관찰하면서, 전시관으로 들어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 근데 그쪽은 누구...?
아이라가 고개를 돌렸더니 자신과 동갑인듯한 젊은이가 그녀의 수상한 행동을 보고, 호기심에 찬 눈길로 묻고 있었다.
지휘관 제복을 입은 젊은이는 집행 부대에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현역 군인이었다.
휴가 동안, 편지로 연락하던 친구를 찾기 위해 예술 협회에 왔지만, 담당자가 보이지 않아서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이번 전시회의 경과에 관해 얘기했을 때, 젊은 지휘관은 아이라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그 만화는 깊은 생각과 예술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평론가의 인정을 받을 수 없어.
이런 전시회에 그런 작품을 내놓는 건 일종의 실례라고 할 수 있지.
……
언니도 좋아하잖아요?
그려주시면 저... 엄청 기쁠 것 같아요!
당신 말이 맞아. 난 기한 내에 맡은 임무를 완성하지 못했고, 모두의 기대를 저버렸어.
하지만 작가가 자기 작품을 버려선 안 돼. 그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모두에게 실례되는 일이었어.
그 만화엔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이 있어.
그때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물러나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지.
고마워!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 당신도 찾고 있는 사람을 찾길 바랄게.
지휘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아이라는 살롱 입구로 달려갔다.
구조체로 개조됐지만, 가슴에서 쿵쾅대는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전시회 마지막 날, 살롱을 찾는 손님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숨을 헐떡이며 전시관에 들어오는 아이라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전시관으로 들어온 아이라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전시 구역을 바라봤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고, 진열대 위에 놓여 있는 50권의 만화책은 한 권도 줄지 않은 것 같았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아이라는 더 이상 그것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라가 그중 한 권을 집어 든 후, 전시관에 남아 있는 손님들에게 읽어 보라고 권하려던 찰나, 진열대 뒤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한 소녀가 아이라의 눈에 들어왔다.
낯선 숲에 들어온 어린 토끼처럼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녀는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라의 만화를 들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살롱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갈색 머리 소녀는 만화를 읽고 또 읽었다. 그 속에 지치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어떤 마력이 있는 것만 같았다.
저기...
아이라는 소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지만, 상대방은 반응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 걸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소녀가 미안하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미안! 내가 길을 막은 건가? 아니면 혹시 내가 규칙을 어겼다거나...
그제야 아이라는 소녀가 파오스 제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나이는 방금 만났던 지휘관에 비해 훨씬 어린 것 같았다.
아니. 이걸 되게 열심히 보고 있네... 그게 좀 궁금해서 말이야.
이거 말인가요? 음...
제 친구가 이런 전시회를 구경하면 기분이 전환된다고 티켓 한 장을 줬어요. 전 황금시대 무기 박람회인 줄 알았는데, 들어와 보니 온통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뿐이더라고요.
소녀는 부끄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봐도 이런 장소에 드나드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가버리면 친구의 마음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사람이 적은 곳에 있었어요. 근데...
전 처음으로 세상에 "만화"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어요. 뭐랄까... 남들이 말하던 예술과는 좀 많이 다른 거 같아요.
그렇군. 그럼, 다 읽고 난 후에 어떤 느낌이 들어?
그, 이거... 혹시 설문조사 같은 건가요? 음... 제 생각에는요.
아이라를 손님 만족도 조사를 하는 스태프로 착각한 소녀가 만화책을 이마에 대고 머리를 쥐어짜며 어떤 말을 할지 생각했다.
그냥 재밌게 본 것 같아요.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변신해서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이 4페이지에 걸쳐서 나오는데, 처음 봤을 때 놀라웠어요.
그리고 조금 부럽기도 했어요. 어떤 문제에 맞닥뜨리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꿈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들이... 매력 있고 사랑스러웠어요.
뭔가 제가 존경하는 어떤 사람과 비슷한 것 같았어요.
저도 그분 같은 사람이 되고... 아, 그, 이야기도 재밌었어요! 내용이 어렵지도, 너무 쉽지도 않게 느껴졌어요.
자신이 감상이 아닌 혼잣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소녀가 서둘러 만화로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소녀의 말투에선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졌다.
보고 있으면 "이게 진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라는 파오스 신입생이 어떤 일을 겪었고 또 어떤 현실에서 도피해 이곳으로 왔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라의 작품에 있는 유치하고 순진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아이라가 만화에 주입한 마음을 누군가가 공감한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들은 자신이 쫓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마음속 이곳의 뜨거운 피가 내일이면 식을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 창작자들은 이야기에 허구적인 부분을 많이 넣어.
하지만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거든.
아이라는 소녀에게 다가가 손을 들고 관내를 가리켰다.
그리고 소녀에게 전시관 안에 있는 많은 창작자를 보여줬다. 그들은 자기 작품 앞에서 관객들에게 자기 생각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전개는 작가에게 달려있어. 용사는 악룡을 물리치고, 공주와 결혼하며, 정의는 악을 꺾고 시인들은 영웅의 시를 읊겠지. 모두 허구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모두 진심이야.
어쩌면 현실 속의 용사는 악룡에게 졌을 수도 있고, 공주는 왕자를 맞이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린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어.
……
그 꿈이 자신에게서 일어날 리 없다 해도요?
응, 맞아.
이루기 힘들고 유치한 꿈이라도 괜찮아.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실패에 맞닥뜨리고, 자신을 위로할 성과조차 얻지 못하더라도요.
그래도 난 비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바보"들의 모습이...
엄청나게 눈부시다고 생각해.
읏챠!
전시회의 마지막 날이 막을 내리고 전시관을 정리할 때였다. 아이라는 진열대에 남은 49권의 만화를 안고 떠나려 했다.
구조체에게 있어서 49권의 만화책 무게는 별거 아니었지만, 만화책은 아이라의 품에서 높은 탑을 쌓았다. 그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움직이면 흔들리는 책 때문에 앞으로 걸어가기도 힘들었다.
앗, 당신~! 고마워.
옆에서 뻗어 나온 손이 짐 절반을 덜어줬다. 아이라는 그 사람이 얼마 전 자신과 이야기를 나눴던 그 지휘관임을 알아차렸다.
찾던 사람은 만났어?
아직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구나. 실망하지 마. 꼭 찾을 수 있을 거야.
응. 일단은 작업실로 옮기려고.
다음엔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할 거야.
그게 공중 정원이든 지상이든 상관없어.
그럼~ 사인해 줄까?
참 재미없으셔. 그쪽 펜팔에게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집행 부대 지휘관 맞지? 기억해둘게.
계속 지켜볼 거야. 지휘관에게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돼.
내 이름은... 음...
지금 당장은 비밀이야.
내가 예술 협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가 되면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때, 이 만화를 들고 날 찾아오면, 사인 정도는 해줄게!
상영기가 회전을 멈췄다.
이게 바로 당신이 보고 싶었던 내용이었어?
아이라는 눈앞의 어둠을 향해 물었다.
……
한 그림자가 백스테이지에서 나와 아이라 앞으로 다가갔다.
이카루스는 왜 태양을 향해 날아갔을까요?
이 장치로 내 의식의 바다 기억을 읽어서 나랑 신화 이야기를 토론하자는 건가?
로봇은 아이라의 비꼬는 어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그들은 라비린토스를 떠날 수 있는 날개를 만들었고, 중력을 극복해 인간의 궁극적인 꿈을 이뤄냈어요.
그는 자신이 불타 죽을 걸 알면서도, 왜 태양을 향해 날아갔을까요?
신화는 인간이 쓴 이야기잖아. 인간은 태양을 경외하면서도 태양을 정복하고 싶어 하지. 그래서 이카루스의 이야기가 만들어졌어.
그는 시칠리아로 안전하게 날아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럼, 이카루스는 정말로 태양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요?
글쎄. 그건 신화를 이야기했던 사람도 말하지 않은 거 아닌가?
하지만 작가의 마음속엔 답이 있었을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야기했던 사람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우린 알 길이 없어.
아니요. 당신들은 알고 있었을 거예요... 당신들은 알 수 있었을 거예요.
당신들이 걸어온 흔적과 우리가 걸어온 흔적이 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어요.
전 제가 도달한 한계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전... 당신이 그 답을 가르쳐 주길 기다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