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정원, 참모부 회의실.
미안. 내가 늦었군.
손에 정리되지 않은 서류 뭉치를 들고 급하게 회의실로 들어온 니콜라는 꽤 많은 작전의 배치를 방금 끝내고 오는 길인 것 같았다.
월리스,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의 임무 진행도는 어떻게 되지?
그녀들은 예정대로 이틀 전 컨스텔레이션에 도착했어요. 지금쯤 도시의 코어 구역을 조사하고 있을 거예요.
보내온 보고나 영상 자료가 있나?
안타깝지만 도시 내 강한 신호 교란이 존재하고 있는 상태여서, 그녀들은 우리와 안정적인 원거리 통신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근접 레이더에서 검색한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은 강하고 안정적이에요. 그래서 그녀들의 임무 수행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요.
음... 방금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백로 소대로부터 예정 시간보다 빠르게 구역 조사 임무를 완료했다는 보고가 왔다. 아마 3일 후엔 다른 작전에 배치할 수 있을 거야.
필요하다면, 그들을 파견해 지원할 수도 있겠어.
니콜라 사령관님, 이 임무에 관심이 많으신 거 같네요.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가 편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건 맞지만, 네가 잘 아는 대원도 있어. 단순한 조사 임무라면 굳이 두 엘리트 소대를 지원 보낼 필요는 없다고 봐.
하하, 니콜라 사령관님도 저처럼 "컨스텔레이션"이라는 이름에 특별한 기억이 있는 것 같군요.
앨런 회장님, 그 말은 무슨 뜻이시죠?
앨런... 그래. 진부한 걸 굳이 숨길 필요는 없지. 앨런이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설명은 앨런에게 부탁하지.
아니에요. 저도 미켈레 선생님과는 젊었을 때, 몇 번 뵌 적이 있을 뿐이에요.
미켈레·바사리, 컨스텔레이션의 설계자이자, 황금시대의 예술 협회 일원이었지?
그래서 컨스텔레이션 조사 임무를 아이라가 있는 소대에 맡겨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한 건가?
네. 단순히 효율을 생각한다면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가 최적의 선택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예술 협회 사람들이 앞장서서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이것 또한 미켈레 선생님에 대한 제 경의예요.
앨런 회장님,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컨스텔레이션에 대해선 당신과 니콜라 총사령관님이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크흠, 그럼 짧게 말할게요.
지금 보면 먼 옛날 같지만, 수십 년 전 인간은 문명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는 건 다 알고 계실 거예요.
지표면 자원이 최대한도로 개발됐고,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발전하여 인간들은 육체노동에서 해방됐으며, 국가라는 정치 개념은 세계 연합 정부로 대체됐어요. 우리가 취득한 문명 성과는 고전 시대, 르네상스 시대, 산업혁명 및 과학 혁명을 뛰어넘었고, 우주의 탐색도 눈앞에 두고 있었죠.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처럼... 황금시대 사람들도 자신 시대의 위대함을 기념하고 드러낼 수 있는 기념비를 원했어요.
어떤 형식으로 표현할지에 대해선 다들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모든 것이 하나의 답으로 정리됐어요.
그것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큰 4대 경제체인 구룡, 아딜레, 북극 항로 연합, 대서양 경제 공동체가 공동으로 투자한 슈퍼 대도시, 컨스텔레이션이었죠.
다만 그땐 퍼니싱이 폭발하기 몇 년 전이고, 컨스텔레이션의 건설도 초기 비밀 단계에 있어서, 그 도시가 어디에 자리 잡았는지, 그 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완공될지는 아무도 몰랐어요.
그 시절 너무나 많은 물건이 매장되면서 우린 많은 걸 잃어버리게 됐으니까요. 이 점은 예술 협회에서 가장 잘 알고 있죠.
컨스텔레이션은 많은 사람에게 모호한 인상밖에 없을 거예요. <대화편>의 아틀란티스처럼 그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만 품었을 거예요.
일반적인 경로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예요.
확실히 공중 정원의 공식 데이터베이스에도 기록이 별로 없어요. 이번에 우리가 재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자료들의 진실성조차 보장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건 인위적으로 조작된 결과일 뿐이야.
그 도시는 겉으론 4대 경제체가 공동으로 투자한 거지만, 실제로 주도한 사람은 따로 있었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쿠로노, 그들이 암암리에 컨스텔레이션의 건설을 주도했었지.
기념비니 영광이니... 모두 대중을 속이기 위한 미사여구에 불과해.
……
컨스텔레이션이 존재하는 진정한 이유는 쿠로노가 지하 자본을 옮기고 흡수하기 위한 큰 "곡창"이었기 때문이야.
신흥 기술 도시로 포장한 뒤, 막대한 투자와 금융 활동을 유치해서...
더 많은 재벌 및 조직과 협력관계를 맺었지. 그래서 표면적인 거점을 만들고, 그 뒤에선 방대한 "겨울 계획"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지.
"겨울 계획"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거였군.
하지만 퍼니싱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 계획도 진작에 엎어진 게 아닌가요?
맞아. 그들은 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대부분의 자료를 없앴어.
"누군가"가 암암리에 컨스텔레이션의 건설을 인수한 뒤, 우리에게 그 존재를 공개해 주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러니까 쿠로노가 이 일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건가?
백 퍼센트 확신하는 건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쿠로노가 황금시대에서 남긴 난장판을 수습할 여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쿠로노의 일관된 스타일로 볼 때,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지는 않아.
앨런 회장님께서는 이런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에 이번 임무를 맡기신 건가요?
월리스 참모장님, 전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의 능력을 믿어요.
쿠로노에게 있어 컨스텔레이션은 단지 세계 점령을 위한 도구일지 모르지만, 그곳엔 "예술 협회"의 의지가 깃들어 있어요.
전 정신론자는 아니지만, 자물쇠마다 자신의 열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가 바로 이번의 열쇠예요.
월리스 참모장님, 이번은 우리에게도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나요?
혹시...
제가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를 편성하자고 제안한 건 우리에게 새로운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예요.
예술 협회는 "황금시대"라는 거대한 침몰선을 인양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 왔어요.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그것의 뼈대를 박물관에 두고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우린 그걸 인간을 싣고 미래로 항행하는 방주로 만들 거예요.
이 자리에 있는 4명 중 앨런이 경험과 나이가 가장 적은 데다, 군 관계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반박할 수 없는 침착함과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현재 사태가 불분명하니, 엘리트 소대를 컨스텔레이션으로 파견할지는 조금 더 논의해 봐야 할 것 같아.
아이리스 월블러의 지휘관이 좀 더 상세한 지상 정보를 공중 정원에 보내온다면...
하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의실에서 맑은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하산과 니콜라는 소리의 출처인 월리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냥 개인 단말기 메일 알림이에요. 무음으로 설정해 뒀어야 했는데요...
죄송하지만 내용 확인 좀 할게요.
누가 이 시간에 개인 메시지를 보낸 거지? 월리스는 잠시 망설이었다가 개인 단말기에서 가상 스크린을 열었다.
발신자와 발신 주소가 모두 불분명한 것이 개인 채널을 해킹해서 보낸 메일이 분명했다.
참모부 부장인 월리스가 사용하는 전자 장비는 하산, 니콜라와 마찬가지로 공중 정원의 삼엄한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군의 최고급 안전 프로토콜을 해킹했다는 건 발신자가 엄청난 해커라는 걸 설명하는 것이었고, 공중 정원의 내부인일 확률이 높았다.
월리스는 신속히 메일 내용을 훑어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월리스, 무슨 일이지?
……
하산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은 월리스가 눈을 감고 왼손으로 가슴 주머니의 어딘가를 만지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 뒤, 앨런을 회의실 밖으로 내보낼지 말지에 대해 망설이는 눈빛으로 앨런을 바라봤다.
하지만 월리스는 결국 하산과 니콜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예술 협회의 회장도 이 정보를 들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하산 의장님, 니콜라 총사령관님, 방금 제가 수신한 메일을 공유해 드릴게요. 정보의 진실성은 보장할 수 없지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의 행동에 대해서...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할 것 같아요.
얼마 전.
정비 부대 본거지와 가까운 복도에 슬리퍼를 신고 밝은색의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지저분한 남자가 산만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정비 부대 대원들이 보내는 이상해하는 눈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공장 내부를 기웃거렸다.
이때, 그를 향해 다가오는 구조체 한 명이 그의 모습을 알아보고 걸음을 멈췄다.
Aloha, 카레니나. 요즘 잘 지냈어?
남자는 친한 사이라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정비 부대 대장에게 이상한 인사를 건넸다.
당신... 노르만? 테디베어의...
어? 날 기억하고 있었네? 잘됐네. 여동생이 정비 부대에서 오빠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나?
어... "게으르고 빈둥거리기만 하고, 패션 센스도 이상한 밉살스러운 바보"가 당신을 가리키는 거라면... 얘기한 적이 있어.
하하, 크리스티나의 입은 여전히 독하네. 그렇다는 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녀의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거네.
노르만 광업 그룹의 장남이 정비 부대엔 무슨 일로?
하하, 노르만 광업 그룹은 정비 부대와 어느 정도 협력 관계가 있잖아. 어르신들 상황을 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켜서 말이야.
그래? 난 또 테디베어를 보러 온 줄 알았네.
됐어. 보고 싶으면 봐. 최근 정비 부대가 공중 정원의 시설을 복구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것도 거의 마무리돼 가고 있어.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지상에 갑자기 커다란 놈이 나타났었잖아. 상황에 따라선 정비 부대에서 인원을 배정해 주둔시킬 것 같아.
"컨스텔레이션"이라는 도시를 말하는 거지? 나도 소문은 들었어.
황금시대에서 남겨진 도시... 지상 재건을 추진하려면 꽤 괜찮은 거점이 되겠네.
정비 부대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했겠어?
흥...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일이야. 언제나 이전처럼 갑자기 큰 괴물이 튀어나올지 누가 알아.
하하, 그건 모를 일이지.
난 바빠서 먼저 간다.
더 이상 노르만과 이야기할 마음이 없는 카레니나는 떠나려고 발을 내디뎠다.
참, 테디베어는 지금 제3개발부 생산공장에 있어.
테디베어를 만나고 싶으면, 그곳으로 가봐.
말을 마친 카레니나는 곧장 공장으로 돌아갔다.
날 만나고 싶지 않을 텐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은 노르만이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노르만은 정비 부대에 인접한 회의실에 도착했다. 위에는 "사용 중"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휘파람을 불며 문을 밀고 들어간 노르만은 방 안에 있던 남녀에게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노르만?
허허, 노르만 아닌가? 마지막으로 본 게 달 표면 기지 때였던가?
이런, 쓰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네. 미안미안, 그냥 잠시 쉴 곳을 찾고 있었어.
허허, 군부에서 정비 부대에 주문을 하나 넣었는데, 나랑 레베카가 진행도를 확인하러 왔네. 어휴, 다 쓸데없는 잡일이라 좀 더 있다간 좀이 쑤실 것 같아.
노르만도 심심하면 여기서 차라도 한잔할 텐가? 얘기하면서 친목도 좀 다지고.
그렇게 말한다면, 당연히 한잔해야지.
……
눈앞의 두 남자가 하는 가식적인 대화를 보며, 레베카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연극은 여기까지만 하시죠. 그린스 님. 전에 말한 "손님"이 바로 노르만 아닌가요?
그렇게 싫은 표정 짓지 마. 레베카. 오겠다는 걸 막지 말라는 말도 있잖아. 노르만이 여기서 우리와 만난 것도 다 인연 아니겠나?
미리 말해두겠는데요. 감시 장치와 회의 기록을 조작하는 건 30분 정도밖에 못해요. 잡담하시다가 시간을 다 보내도 전 몰라요.
노르만. 아름다운 레베카가 이렇게 말하니,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 같군.
좋아. 나도 정비 부대가 퇴근하기 전에 내 여동생 보러 가야 해.
오? 혹시 크리스티나·노르만을 말하는 건가? 이렇게 걱정해 주는 오빠가 있다니 참 복받았군.
아쉽게도 크리스티나는 네 마음을 모르는 것 같던데. 그녀를 가족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네가 뒤에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도...
그린스, 여기서 크리스티나 얘기하지 마.
그린스가 자신과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하자, 가식적인 웃음을 가득 짓고 있던 노르만이 바로 정색했다.
네가 원하는 걸 가지고 왔어.
품에서 작은 전자 단말기를 꺼내 회의 탁자에 올려놓은 노르만은 그걸 그린스 앞으로 살짝 밀었다.
이게 뭐죠?
내가 담당하는 부분과는 상관없지만, 그전부터 관심이 있어서 말이야.
굳이 설명하자면 "겨울 계획"라는 무성한 나무에 달린 달콤한 나무 열매 중 하나라고 할까.
겨울 계획라면 승격자와 관련된 실험 아닌가요?
겨울 계획는 쿠로노의 핵심 계획이야. 나조차도 그 전부를 엿볼 수 없었지.
"의식의 바다 융합과 분리형 모듈화 기술", 실험 넘버 W-014, 추진 시간은 나도 모르지만, 적어도 5년 이상은 됐을 거야.
의식의 바다... 융합이요?
들어보면 광적인 과학자들이 행한 실험 같지 않나? 구체적인 내용은 나도 잘 몰라.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구조체와 특별 연결을 할 수 있는 "생물 무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들었어.
그 생물 무기는 상황에 따라 연결한 구조체의 퍼니싱 침식 내성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다고 해. 하지만 과학 이사회의 새 기체가 퍼니싱에 완전히 면역될 수 있으니, 이 프로젝트를 연구한 사람은 뒤에서 욕하고 있겠지?
기능적으론 조금 뒤처진 기술일지 몰라도 의식의 바다에 대한 연구는 대단하지.
의식의 바다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역원 장치 연구와 비슷해. 의식의 바다의 본질을 탐색하는 건 공중 정원이 줄곧 공략하고자 했던 기술의 장벽이야.
역원 장치, 의식의 바다... 쿠로노는 이런 것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 건지...
쿠로노 내부엔 무자비한 미치... 아니, 인간이 가진 인식 수준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상주의자들이 있어. 그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건, "생각"과 "행동력"이라 할 수 있지. 리스트의 터무니없는 계획도 투자 받을 수 있는 걸 보면, 조직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진 말 안 해도 상상이 가지 않나?
그 말은 달 표면 기지 외에도 노르만 광업 그룹과 쿠로노에 다른 연계가 있다는 거군요?
흥, 아주 조금이지. 넌 심심한 부자들이 누구랑 협력하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
노르만 광업 그룹은 쿠로노의 한 지상 실험 기지를 후원했었어. 내 권한으로 가져올 수 있는 자료가 많지는 않지만, 성의를 표시하기엔 충분하겠지?
노르만, 리스트와의 사이는 틀어졌나 보네요?
음...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선을 건드렸다고나 할까? 그리고 달 표면 기지가 엉망이 된 지금 리스트는 더 이상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그래서 "칩"을 가지고 협력할 다른 동료를 찾으러 왔지. 우리 능구렁이 같은 그린스 님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믿음직스럽다니까.
허허허, 노르만의 안목도 별로군.
솔직히 말하면 루나를 잃은 후, 내 손에 남아 있는 카드가 별로 없어. 그렇지 않다면, 과학 이사회에서 역원 장치 관련 실험을 가져가게 놔두지 않았겠지.
최악의 타이밍에 최악의 협력자를 골랐구먼.
그래서 내가 딱 그린스를 선택한 거야.
오?
가진 게 없는 미치광이야말로 아무 망설임 없이 사람을 물지. 가지고 있던 걸 잃어버렸기 때문에 모든 걸 되찾고 싶다는 갈망도 더 강력할 거야.
도박꾼으로서 깡통 차기 전에 큰 거 한방은 노려봐야 하지 않겠어?
하하하, 나쁘지 않군. 전에도 어렴풋이 낌새를 느꼈는데, 역시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어.
레오나르도·노르만, 역시 너와 난 본질적으로 같은 부류야.
쇠사슬로 배를 묶어놨고, 친히 불을 내 앞에 가져다줬으니 뭘 해야 할지는 뻔하네.
너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건가?
사실 노르만 그룹이 후원한 그 실험에 대해 몇 가지 들은 게 있거든.
이중합 탑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실험 기지에 승격자 한 명이 침입해서 기지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이 죽었지. 물론 연구원도 예외 없이 말이야.
승격자에게 살해당했다는 건... 실험이 실패했다는 건가요?
그 반대야. 실험은 성공했어! 하지만 실험체가 승격자의 습격 과정에서 기지 밖으로 도망쳤거든. 그래서 쿠로노가 그 실험체를 잡아 오려고 인원을 파견했지.
뭐, 그 덕분에 정보가 내 귀로 들어오긴 했지.
공교롭게도 그 실험체가 내 오랜 지인이었어. 그가 지금의 모습이 될 줄은 몰랐지만...
지인이요?
슬픈 옛날이야기는 일단 놔두지. 중요한 건 도망친 실험체가 쿠로노 부대의 추적을 받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공교롭게도 난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거든.
그들보다 먼저 실험체를 찾아올 생각인가요?
흥, 양복 입은 늙은 너구리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 리가 있겠어?
친애하는 노르만.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마음이 통하는 절친이 됐구먼.
그 실험체는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불꽃이야.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당연히 가장 주목받는 곳에서 가장 눈부신 방식으로 터지게 하는 거지.
이렇게 찬란한 아름다움을 우리만 독점하기엔 아깝잖아.
공중 정원의 모두가 즐길 수 있게 해야지. 안 그래?
실험체의 존재가 군에 누설되면, 쿠로노 내부가 의회의 비난을 받을 뿐만 아니라 노르만 광업 그룹도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맞아. 생체를 이용한 비인도적인 실험을 하는 건, 쿠로노에 가장 양심 없는 놈들뿐이야. 누설되면 의회에서 정의의 주먹을 내리치겠지.
그게 바로 우리의 목적이야.
원예의 정석이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내 줄기가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라잖아.
내가 리틀 닉이랑 하산을 몇 년 동안 상대해 봤잖아. 그래서 그 두 가위가 얼마나 날카로운진 내가 잘 알지.
그럼, 어떤 경로를 통해 정보를 전달할 생각인가?
걱정하지 마. 이 세상엔 작은 쪽지를 잘 전달해 주는 사람이 널리고 널렸어. 때마침 내가 한 명을 알고 있지.
모든 준비가 끝나면 불꽃이 터지기만을 기다리면 돼. 우리의 "사이좋은" 경쟁 상대가 어떤 수를 쓸지 기대해 보자고.
공중 정원, 정화 부대 훈련실.
드넓은 훈련실에 구조체 한 명만 있었다. 다른 대원들은 일상적인 훈련을 마치고 돌아갔지만, 그는 이곳에 남아 부지런히 칼을 휘두르며 연습하고 있었다.
이사루스, 아직 안 갔나요?
문을 밀고 들어온 비앙카가 아직 개인 숙소로 돌아가지 않은 이사루스를 보며,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강해져야 하니까요.
바다에 적조가 흘러 들어간 사건 이후로 이사루스는 힘에 대한 집념이 날로 강해지는 것 같군요.
뭐...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대장님, 무슨 일 있나요?
이사루스, 임무가 내려왔어요.
지휘 센터에서 정화 부대에 최우선 순위의 기밀 임무를 내렸는데, 이사루스를 수행자로 지명했어요.
어떤 임무죠?
자세한 내용은 몰라요. 전 단지 프로세스에 따라 전달을 책임질 뿐, 자세한 임무 내용에 대한 접근 권한은 저도 없어요.
알겠어요. 그런 임무군요.
정화 부대 대장도 접근할 권한이 없고 정화 부대의 모 대원을 지명해 임시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는 건, 군부의 일부 사람들이 정식 수단으로 비정상적인 일을 해야 할 때 취해지는 조치 중 하나였다.
비앙카는 이전부터 명시된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를 단속하려고 했지만, 군부의 세력 구성이 복잡하다 보니 이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이사루스, 거절해도 돼요.
……
아니요. 할게요.
잠시 침묵한 구조체 청년이 비앙카의 제안을 거절했다.
임무는 임무예요. 누구로부터 무엇 때문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절 찾았다는 건 숙청해야 할 대상이 까다롭다는 거겠죠.
이사루스는 침착한 표정으로 무기를 닦고는 칼집에 넣었다.
그렇다면 제가 피할 이유는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