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서슴없이 들어갔던 이전에 비해 많이 신중해졌다.
스읍...
트로이는 금속 벽에 덮여 있는 얇은 얼음을 무기로 한번 두드린 뒤, 바닥에 떨어진 파편을 주워 검사했다.
……
특별히 주목할 성분은 없고 온도가 떨어지면서 언 것뿐이에요.
이곳 테마는 얼음 낙원인가 보네요.
주위를 둘러보니 예상대로 온도 조절 장치가 있었다.
제어 패널은 보이지 않네요. 그럼, 강제로 닫아 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강제로 닫는다는 게 설마...
레나는 환풍구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멈춰주십시오! 멈춰주십시오!
갑자기 들려온 쉰 목소리에 레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즉시 활을 겨눴다.
이곳의 장치를 파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파괴하면 전시관 내 소장품이 손상될 겁니다.
사태가 대치 단계로 접어들자,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 전원은 갑자기 튀어나온 그 로봇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저에게 폭력을 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 단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절일 뿐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려는 건지 로봇은 제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몸에 있던 부품이 차례대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이제껏 본 적 없는 장치를 천천히 만들어 내자, 그 위에 램프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램프"의 빛이 천천히 인간의 윤곽 혹은 인간과 같은 형태의 홀로그램 투영으로 변했다.
처음 뵙네요. 공중 정원에서 오신 손님 여러분.
목소리는 그 장치가 아닌 전시관 내의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당신은 누구시죠?
전 이 도시의... 임시 관리자이자, 이 도시의 가동을 유지하는 로봇이에요.
그럼, 방금 전 그 조각상들은...
그건 전시관을 지키기 위해 설치된 안전 경비병으로, 조금 전 공격은 제 본의가 아니었어요.
무슨 뜻이죠?
관리자님, 전...
먼저 제 소개를 하죠. 제 이름은 세르반테스예요.
당신이 바로 아이라겠군요?
세르반테스의 투영은 곧장 아이라에게 다가갔고,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훑어봤다.
날... 알아?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당신이 이곳에 있는 이상 제 계획은 반쯤 성공한 셈이니까요.
계획... 반쯤 성공...
잠깐만요. 월리스 참모장님이 말씀하신 그 신호가 혹시...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전 단지 여러분을 이 도시로 초대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럼, 방금 전 건 "환영식"인가요? 참으로 열정적이네요.
세르반테스는 해명하지 않았다. 애당초 해명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 그가 아이라의 눈을 뚫어지게 보았다가, 다른 대원들한테 시선을 돌렸다.
그렇군요. 이건 참...
세르반테스가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 대원들을 훑어보는 사이, 시카가 조용히 레나 옆으로 다가갔다.
레나, 그의 본체가 어디 있는지 판단할 수 있겠어요?
제가 저 로봇을 건드릴 수만 있다면, 그가 어디서 명령을 내리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레나와 시카가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는 사이, 세르반테스가 갑자기 그녀들한테 말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전 당신들에게 아무런 악의도 없거든요. 물론 절 완전히 믿어 달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이 도시의 상황이 조금 복잡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제가 보고 싶은 상황이기도 해요.
세르반테스 씨...
정말 우리한테 어떤 악의도 없는 거라면, 내 질문에 솔직히 대답해 줬으면 해.
당신은 무슨 계획이 있는 거야?
모자챙 아래, 짙은 붉은색의 눈동자가 아이라를 바라봤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세르반테스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당신들이 이 예술관을 제대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특히 예술 협회에서 오신 아이라께서 잘 봐주셨으면 해요.
나?
뜻밖의 답에 아이라는 잠시 멈칫했고, 더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려고 했을 때, 세르반테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동업자"의 부탁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전 제가 보고, 경험하고, 잃어버린 모든 것을 이곳에 묻었어요.
그리고 이상 속에만 존재하는 미완성의 도시인 "컨스텔레이션"이 황금시대 마지막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죠.
예술 협회라면 이런 것에 관심이 많으시겠죠.
그리고 모든 것을 본 후에 저한테 답을 알려주시기 바라요.
그리고 저도 이 소대가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건 참고할 가치가 충분한 체험이 될 것 같군요.
그럼, 이 로봇을 따라 전시관 내부를 마음껏 둘러보시기 바라요.
말을 마치자, 세르반테스의 투영이 사라졌고, 텅 빈 전시관과 분해했던 걸 다시 원래의 모양으로 재조립하는 로봇만 남아있었다.
손님들께서는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당신을 따라오라고요? 무슨 헛소리죠.
잠깐만.
일단은 그가 말하는 대로 하자.
진심이에요?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가 편성된 목적 중 하나는 황금시대의 문명 자료를 잘 회수하는 거잖아.
세르반테스라는 로봇의 말이 진짜라면 그는 컨스텔레이션과 연관된 내막을 알고 있을 테고, 그렇다면 우린 세르반테스를 통해 이 정보를 확보할 필요가 있어.
……
음... 그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방금 전 같은 고강도 전투를 계속해야 할 수도 있어요.
애초에 우린 전투에 능한 소대가 아니니,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전시관도 재밌어 보이는 게, 조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알겠어요. 예술 협회는 원래 이렇다는 말이군요.
지휘관님과 대장 모두 그렇게 말한다면, 전 이의 없어요.
그래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우와! 황금시대 무르만스크 항구에 있던 제일 큰 모세급 쇄빙선의 모조품인가? 아니면...
레나의 당부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라는 두 눈을 반짝이며 전시관 내부의 전시품에 시선을 돌렸다.
잠… 잠깐만요, 아이라. 소대 진형을 잘 유지해야 해요...
탐색은 그녀들한테 맡기고 우린 주위 경계하시죠.
하아...
레나는 두통이 느껴지는 듯 미간을 주무르며 둘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