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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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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9 계속 돌아가는 시침

열로 뜨거워진 탄피가 총열에서 나와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또 다른 탄피와 부딪혔다. 그리고 피인지 물인지 모를 액체로 흥건한 땅 위에서 치이익 소리를 냈다.

몇 번이나 같은 동작을 반복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총기에서 탄창이 자동으로 튀어나오자, 구조체는 바로 뒤에서 새것을 꺼내 체크한 뒤 장전했다.

이 탄창을 쓰러져 있던 어느 동료에게 수집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진흙 묻은 것, 파손된 것, 핏자국이 있는 것... 굳어버린 혼돈 속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들이 몇 개 섞여 있었다.

하지만 슬퍼할 여유가 없는 이 구조체는 그저 탄창 안에 총알이 정상이길 기도할 뿐이었다.

자신이 찾을 수 있는 마지막 소총인 만큼 총알이 이물질에 걸려 폐기되는 일이 없기를 빌었다.

리브라는 구조체가 지휘관의 옆을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구조체는 자신이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격발 또 격발했다. 자신의 지휘관이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아무 생각 없이 조준한 다음 방아쇠를 당기면 됐다.

그리고 차징 팔콘 소대가 오른쪽으로 달려갔기 때문에 그곳은 보지 않아도 됐다. 지휘관님은 자신이 구조됐다는 것에 눈물이 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체면상 그런 모습을 대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거다.

빈 탄창이 발 위로 떨어지자, 그녀는 기계적으로 손을 허리에 뻗었다. 그때, 이합 생물 하나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손으로 허리 주변을 더듬었지만, 그곳엔 칼집과 홀스터뿐이었다.

칼은 미쳐버린 동료의 허벅지에 꽂혀 있는 것 같았고, 권총도 지원 오기 전에 중상을 입은 지휘관에게 넘겨줬다.

역시 머리가 안 돌아가...

그럼, 마지막으로 그쪽을 봐도 괜찮겠지...

……

이때, 한 줄기 빛에 감싸인 이합 생물이 그것의 날카로운 발톱, 송곳니와 함께 잿더미로 변했다.

하지만 각도 때문인지 그 구조체도 빛의 여파로 쓰러지게 되면서 일시적으로 행동 능력을 잃게 됐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상처투성이인 부유 캐논의 산열 장치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고, 새빨갛게 달아오른 약실 폐쇄기에선 초연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앞으로 몇 번 더 사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지휘관님.

……

리브가 두 손을 꽉 잡는 게 느껴졌지만, 이런 상황에서 리브를 설득할 여력은 없었다.

리브의 품에서 버둥대며 몸을 일으킨 뒤, 벽에 등을 기댔다.

몸을 움직이자, 입안에서 녹슨 쇠 맛이 스며들었다.

지휘관님!

주삿바늘을 다리에 힘껏 찔렀다.

약물 덕분에 정신을 차린 지휘관이 미소를 띠며 리브의 손등을 토닥였다.

……

리브가 이를 악물고 앞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뚱이를 다시 잡았다.

전투가 시작된 후, 혼란스럽던 지휘 시스템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지휘관의 연결에 문제가 생긴다면, 열심히 지켰던 방어선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전투는 파오스 학교가 가르친 모든 항목을 위반했다. 페이지 속에 기록된 반대 사례처럼 모두가 희망이 희박한 도박을 하고 있었다.

뒷받침할 수 있는 데이터도 없고 대비책도 없었다. 심지어 계속 싸울 이유조차 부족했다.

하지만 그 희미한 불꽃은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이 험난한 전장 너머로 지휘관은 리가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리가 계속 싸우고 있는 한, 지휘관은 리가 그레이 레이븐의 모든 이를 믿는 것처럼 믿을 거였다.

(뭘 꾸물거리는 거야. 차라리 탑에 들어가서 리를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 더는 못 버티겠어!)

(리가 돌아올 때까지 멈추면 안 돼!)

(아직 버틸 수 있어...!)

(여기서 물러서기엔 아직 일러!)

……

의식의 바다 연결을 통해 지휘관은 많은 이들의 생각을 접하게 된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그 감정들의 주인들이 흔들리는 촛불처럼 차례대로 꺼져갔다.

덕분에 지휘관의 의식 부담이 점차 낮아지고 있었다.

고통... 분노... 무력감...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산 정상에서 굴러떨어지는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났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산 중턱에서 막아 연결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리브조차 방어선을 유지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상태라, 대답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반 토막만 남은 이합 생물이 몰래 이곳으로 기어 왔을 때에도 지휘관을 도와주러 달려올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기는 지휘관의 요구대로 압수됐다.

땅바닥에 엎드린 이합 생물이 두 팔로 천천히 지휘관을 향해 기어 왔다.

부상 때문일까? 아니면 갑자기 습격하려고 그러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곧 죽을 사냥감을 조롱하기 위해 상대방의 생사 경계에서 일부러 서성거리고 있는 걸까?

순간 이합 생물이 뒤에 있는 높은 거탑과 합쳐진 것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나약한 인간을 향해 귀에 거슬리는 비웃음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이합 생물은 한 손으로 땅을 짚고 허리를 폈다. 그런 뒤, 다른 한 손을 곧게 들어 올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톱이 지휘관의 시야 밖에서 지휘관을 내려다보게 했다.

오른손에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그건 언제 지휘관 곁으로 날아왔는지 모르는 돌이었다.

돌은 매우 소박하고 거칠며 초라했다.

눈앞의 신비롭고 거대한 이중합 탑에 비하면 작은 벌레에 불과한 것이었고, 온 힘을 다해 신의 힘에 대항하는 것 같았다.

너무 작고 하찮은 돌이 자기 분수도 모르고 덤벼드는 행동은 신의 웃음거리조차 되지 못할 거였다.

하지만 수백 년 전, 인간의 선조들이 이런 돌을 쥐고 땅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처음으로 불을 피웠다.

그때부터 인간은 밤에 대항할 무기와 짙은 어둠 속에 꼿꼿이 서서 별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됐다.

손가락으로 돌을 움켜쥔 뒤, 이합 생물의 일그러진 얼굴과 등 뒤에 우뚝 솟은 거탑을 바라봤다.

숨을 깊게 들이키고 온몸의 힘을 다해...

약한 인간의 손에 든 돌이 가장 원시적인 무기가 되어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하늘 높이 있는 신에게 던져졌다.

그 순간 눈 부신 빛이 대지에 쏟아지며 미래로 향하는 문을 두드렸다.

공중 정원

아! 저리 가요! 오지 마요!

책상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작은 몸이 손에 들고 있는 트레이를 마구 휘두르자, 구조체의 딱딱한 머리에 부딪히며 "팅팅' 소리를 냈다.

로사는 갑자기 무언가를 결심한 듯,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앞에서 휘두르는 팔을 노려봤다.

그리고 줄곧 뒤에 숨기고 있던 망치를 꺼낸 로사가 자신을 밖으로 끌어내려는 미친 구조체를 향해 내리쳤다.

하지만 명중했을 때의 굉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미친 구조체는 로사의 공격이 명중하기도 전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황급히 망치를 내던진 로사가 다시 책상 밑 공간의 구석으로 숨었다.

잠시 후, 로사는 조심조심 손을 뻗어 찌그러진 트레이로 구조체의 머리를 쿡쿡 찔렀다.

참모부 대문.

총알이 떨어졌는데, 탄창이 남은 사람 있나?!

참모장님, 그게 마지막 거예요!

쳇...

월리스는 총알이 떨어진 권총을 버리고 홀스터의 끈을 풀어 손에 묶었다. 그리고 주먹 쥔 두 손을 맞부딪혔다.

시작을 외쳐 줄까?

그럴 필요 없어요.

말을 마친 월리스가 주먹을 치켜들고 통제 불가한 로봇의 머리를 치명적인 각도에서 때렸다.

시간을 벌기 위해 생각한 전술이었지만, 공격 한 번에 로봇이 쓰러진 채 일어나지도 못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

……

……

제가 한 게 아니에요.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참모부 대원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두 눈을 비비더니, 큰 소리로 외치며 개인 단말기를 들고 달려왔다.

참모장님! 지상에서 긴급 보고가 왔어요!

……

그건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빛이었다.

공포, 의심, 슬픔, 광기... 모든 것이 푸른빛으로 정화되어 떨어지는 모래처럼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날카로운 소리가 그치자, 마구 휘두르던 무기가 하나둘씩 땅바닥에 떨어졌다.

제어할 수 없었던 구조체들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더니 땅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격렬하게 움직이던 이합 생물의 몸부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생존자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행동을 이미 멈춘 상태였다.

파랗게 빛나는 탑을 본 카무이가 숨을 크게 내쉬더니 진흙 바닥에 주저앉았다.

리... 성공했네.

더 이상 눈부신 붉은색도 광란한 무질서도 아니었다.

탑을 기점으로 퍼니싱은 눈에 띄는 속도로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고 탑의 빛에 휘감긴 후 완전히 사라졌다.

반즈, 상황은 어때?

주변에 살아 있는 이합 생물은 없고, 침식된 구조체들도 행동을 멈췄어.

일단 위기 상황에서 벗어난 것 같네요.

조금 더 조사해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머지 집행 부대 대원들은 부상자부터 구조하세요. 그리고 쓰러진 지휘관과 구조체를 우선적으로 회수하되 경계를 늦추지 마세요.

전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님과 다음 행동 방안을 상의한 뒤, 다시 올게요.

크롬 대장.

왜?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과 연락이 안 돼.

!!!

그 순간 네 명의 구조체가 동시에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수많은 이합 생물의 시체를 넘었을 때, 익숙한 그림자가 폐허 벽 근처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

……

지...

휘...

지휘관님!

지금의 상황을 분간하기는 힘들었지만, 억지로 눈을 뜨고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휘관님!

지휘관님. 잠깐만요. 바로 의료 지원 요청을...

손을 들어 리브의 말을 끊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언제부터 땅에 쓰러져 있었던 거지? 이중합 탑의 상황과 전자기 방사선은 어떻게 됐을까?

지휘관님, 이중합 탑이...

이중합 탑이 퍼니싱을 흡수하고 있다고?!

……

깜짝 놀란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렇게 높은 농도와 수량의 퍼니싱이 한곳에 모인다고?

참모부 대원이 그들의 걱정을 알아차린 듯 서둘러 보충했다.

그런 뜻의 흡수가 아니라, 의미가 다른 흡수예요!

앗, 그게 그러니까... 제가 제대로 정리하고 말씀드릴게요.

정확히 말하면 정화되고 있어요. 이중합 탑이 거대한 Ω 무기와 역원 장치의 결합체가 된 것처럼 일정 범위 내의 퍼니싱을 계속 흡수하고 있어요.

공기 중의 퍼니싱 농도가 엄청난 속도로 내려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리브는 만일을 대비해 지휘관에게 혈청을 주사했다.

지휘관님, 몸 상태는 안정됐지만 불편한 곳이 있으면 바로 저희한테 말씀해 주세요.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리브와 루시아는 비로소 안심한 듯, 지휘관을 일으켜 세웠다.

멀리서 생존자를 수색하던 소대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어났다.

저건...

마인드 표식과 계속 연결되어 있던 작은 불꽃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건 밤하늘에 가장 빛나는 별이 먼 하늘을 가로질러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설마...!

제일 먼저 소리 낸 카무이가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휘관이 절뚝거리며 앞으로 가는 것을 보고 멈춰 섰다.

지휘관, 걷기 힘들지? 내가 업고 가줄까?!

알겠어.

지휘관님,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리브와 루시아의 부축 아래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익숙한 모습을 봤다.

……

리는 눈으로 지휘관의 상황을 확인한 뒤, 눈빛을 리브에게로 돌렸다. 리브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지휘관님은 항상 상태가 말이 아니네요.

처음으로 전투에 투입된 기체였지만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어딜 봐도 성한 곳이 없었다.

리의 모습만 봐도 어느 정도로 어렵고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끔찍한 흔적들은 리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전 괜찮아요. 다 찰과상이라 간단하게 정비하면 금방 회복할 수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이야말로... 어서 기체 정비하러 가는 게 좋겠어요.

대답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리가 말하는 동안에 다른 대원들이 리의 주위를 빙빙 돌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왜 그러세요?

카무이

등은 문제없어. 이건 이합 생물에게 몇 번 긁힌 상처 같아.

크롬

왼팔 부분에선 심각한 손상이 발견되지 않았어요.

반즈

좌측 다리 부분에 화살에 맞은 찰과상이 있지만 위험한 정도는 아니야.

루시아

오른팔, 음... 아머 표면에 찰과상만 있어요.

리브

팔다리 행동 궤적에 이상 없고, 온도 파동도 정상 구간이에요.

전 정말 괜찮아요.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리는 난처한 듯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지휘관을 바라봤다.

……

그 부분은... 돌아가서 자세히 보고드릴게요.

아무것도 숨기지 않을게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도 그렇고... 모두...

……

놀리는 듯한 말투에 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관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필요 없어"라는 대답을 들을 거라 예상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고 있을 무렵, 리는 정말로 손을 벌려 지휘관과 리브가 원하는 대로 상처를 검사하도록 내버려 뒀다.

리브

네. 이제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면 아시모프 님한테서 전면적인 기체 검사를 받도록 해요.

그것보다 지휘관님과 공중 정원에 보고할 게 있어요.

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를 떠올리려는 것 같았다.

탑 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요.

뭐가 더 있나요?

루시아

돌아온 걸 환영해요. 리.

리브

리, 돌아온 걸 환영해요.

그는 순간 놀라서 당황하다가 이내 마음이 놓였다...

리는 모두에게 둘러싸인 채로 어색하면서도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 혈전의 아픔과 이별의 근심이 살아남았다는 기쁨으로 전환됐다.

긴 밤의 끝에 그들은 다시 한번 새벽녘을 맞이했다.

막대한 대가를 치렀고 내일로 향하는 길도 여전히 가시밭길이었다.

하지만 이 길을 걷다 보면 왠지 마음이 든든하고 희망을 품게 될 것이다.

돌아갈 곳을 잃지도 않았고, 홀로 외롭게 남지도 않았다. 그는 지켜야 할 수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었다.

걸어온 길 위엔 발자국이 뒤를 잇고 있었다. 리도 종종 그것을 되돌아보기는 하겠지만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각오를 하고 용감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 된다.

우리는 어두운 밤을 비추고, 새로운 희망을 가져오며... 함께 내일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약속대로 리는 모두의 곁으로 돌아왔다.

여러분, 다녀왔어요.

한 달 후, 공중 정원.

에덴에 참모부가 설립된 이래 어느 시기가 제일 북적거렸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중합 탑 사건 발생 후의 한 달 동안이라고 말할 것이다.

공중 정원의 복원 작업이 전방위적이라는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해, 의회는 각 부서에서 대표를 선출해 임시 부문을 설립하기로 했다.

그리고 군의 대표는 참모부였다.

집행 부대 인원 동원, 손상된 비행체 보충 및 구조체 부품 제작... 심지어 일이 터졌을 때 사방에 던졌던 무기에 대한 회수까지도 참모부에서 담당해서 처리했다.

게다가 이 부서의 부팀장이 바로 월리스 참모장이었다.

각 부서는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짠돌이" 팀장보다는 월리스와 소통하는 걸 더 선호했다.

월리스 참모장, 나머지 β형 교체 부품은 언제 도착하나? 구조체들이 두 다리로 다시 걷고 싶어 해.

시카, 그린스 님의 요구는 네가 처리하도록.

네! 그린스 님, 이쪽으로 오세요.

시카·루블랑... 이전에 "아포디데"라는 소대를 지휘했었지?

집행 부대의 훌륭한 지휘관이 여기서 우릴 도와주는 걸 보니 전황이 괜찮은 것 같군.

……

시카가 뭔가를 대꾸하기 전에 그린스는 그녀에게 흥미를 잃은 듯 파일 하나를 꺼냈다.

넘버 E0M2-0022, 물품 보충, β형 교체 부품 총 90세트다.

β형 교체 부품 90세트 맞으신가요?

70세트다.

7……

이런, 늙으니 숫자를 잘 못 외웠군.

그린스 님, 모처럼 친히 참모부에 오셨으니, 옆에 있는 응접실에서 잠깐 쉬시는 게 어떠세요?

리틀 닉도 그곳에 있나?

당신들과 따로 이야기할 게 있어요.

시카의 책상에 파일을 던진 그린스가 이 두 가지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는 듯 방을 나갔다.

황급히 파일을 다시 확인하는 시카를 본 월리스가 안경을 밀어 올린 후, 수납장에서 파일 몇 개를 꺼낸 뒤 다른 방으로 걸어갔다.

누가 왔어?

그린스예요. 쿠로노 쪽은 서로 물고 뜯느라 바쁜 것 같아요.

니콜라는 월리스가 더 말하기를 기다렸지만, 상대방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참모부의 사명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아도 알 텐데.

참모부의 사명은 공중 정원에 닥칠 위기를 미리 대처하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이 건에 관해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생각은 없어요.

월리스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이번 이중합 탑 사건은 예전 방안을 선택했고, 현재는 E-14 단계에 들어갔어요.

E-14, 참모부 코드네임 "신세계"...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거 아닌가요? 인간의 상황이 악화하기는커녕 지상 재건 계획을 고민할 수 있는 단계로 진입했어요.

이중합 탑은 일정 구역 내의 퍼니싱 농도를 0으로 줄일 수 있어. 하지만 의회는 과학 이사회가 그 원리를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 군에서 이런 모험을 하게 놔둘 리가 없지.

대행자들이 죽었는지도 확인할 수 없고, 승격자 목격 보고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걸 잊지 마. 퍼니싱의 위협은 다른 방식으로 계속 번지고 있을 뿐이니까.

그래서 거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희망을 상징하는 도시. 그 도시는 우리가 승격자들의 침투에 대항하는 전초기지가 될 거예요.

우리가 관련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면 참모부도 보조를 맞추어 준다고 이해하면 될까?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그곳이 인간이 지상으로 복귀하는 첫 번째 도시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된다면 참모부는 수시로 조력할게요.

알았어.

월리스가 건네준 모든 파일을 잘 정리한 니콜라가 방을 나가려고 일어섰다.

참, 저번 일 말인데.

네?

정비 부대에선 자네가 회의 정보와 최전선 상황을 마음대로 달 표면 기지 분대에 전달한 것에 대해 상당히 불만스러워하고 있어.

하하, 니콜라 사령관님의 훌륭한 연설은 항상 제 방식에 동의할 거라는 착각이 들게 하는군요.

그곳은 의회다. 직설적인 언어를 내놓을 수 없는 곳이지. 그래도 결과로 본다면 네 선택에 동의하고 있어.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

그럼, 총사령관님께 부탁할게요.

니콜라가 떠난 방 안에 월리스 혼자 남게 됐다.

결과로 볼 때, 내 선택에 동의하고 있다라...

월리스가 주머니에서 꺼낸 은색 휘장에는 날개를 펴고 있는 매 한 마리가 있었다. 매의 날카로운 뿔이 과거 주인의 예리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참모장님.

무슨 일이야?

지난주 집행 부대에서 새로운 소대 편성 심사를 시작했어요. 멤버 명단을 여러 방면에서 평가하고 있는데, 혹시 참모장님께서 생각하신 적합한 지휘관 후보가 있는지 여쭙고 싶어요.

나보고 지휘관을 뽑으라는 건가?

그분께서 참모장님의 안목을 믿는다고 말씀하셔서요.

음...

월리스가 개인 단말기를 터치하자, 극비로 표시된 파일 하나가 스크린에 나타났다.

하... 그렇군. 그의 제안이 마침내 의회의 승인을 받게 된 건가?

이 상황에서라면... 이상할 것도 없네.

내 생각을 읽었다고 해야 하나?

특별 소대, 코드네임 "아이리스 월블러"... 그는 이것이 "신세계"의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

똑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시카가 월리스를 향해 인사했다.

월리스 참모장님.

무슨 일이야?

이상한 내용의 신청이 있어서요.

알겠어. 내 책상에 놔둬.

네!

월리스는 시카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단말기의 극비 파일을 닫은 월리스가 일어서서 방 안의 불을 끄고 그대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