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1 각명 나선 / Story
나선의 탑의 붉은빛은 하늘을 찌르고, 에덴의 인공 천막 전체가 붕괴되는 신기루처럼 이상 속에서 붉은빛을 보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한때 질서를 대표했던 낙원이 지금은 혼란의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 한 청년이 공포에 질린 군중을 파헤치며 혼란 속에서 익숙한 그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리와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레이는 임무의 이상을 감지했다.
케르베로스 소대의 임무는 니콜라가 직접 하달했다. 하지만 이번엔 지휘 시스템을 통해 불명의 출격 명령이 내려졌고, 암호 채널을 통해 총사령관님에게 연락해도 연락되지 않았다.
제어 불가로 인한 혼란이 도처에 널려 있었고, 경고 안내방송은 수차례 반복된 후 무의미한 전류 소리로 바뀌었다. 눈앞의 광경만 봐도 공중 정원이 어떤 위기를 겪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머레이는 손에 쥔 단말기로 동일한 통신 요청을 수없이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불안을 억누르고 있는 머레이가 고개를 들자, 멀지 않은 곳에 부상당한 주민을 일으키는 두 그림자가 보였다.
그중 한 여성의 우아한 뒷모습은 혼란 속에서도 한없이 평온해 보였다. 그녀가 있는 곳에선 제어 불가가 일어나지 않는 듯 환경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감사원의 사람? 그녀들이 왜 이곳에 있지...)
라스티, 생명의 별은 이제 만원이니 그녀는 나한테 맡겨.
이곳에서 치료할 건가요?
이스마엘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라스티라고 불린 감사원 멤버는 부상당한 사람을 이스마엘에게 맡겼지만, 눈은 완전히 안심할 수 없다는 듯 이스마엘을 계속 응시했다.
뭐 걱정되는 거라도 있나요?
네? 전...
아니. 뒤에 있는 신사분에게 여쭤본 거야.
…………
이런 혼란 속에서도 뒤에 있는 시선을 알아차리시다니 대단한 통찰력이네요.
머레이는 평소와 다름없는 인사로 넘어가려 했지만, 눈앞에 있는 구조체는 완전히 자신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머레이는 순식간에 비즈니스 웃음을 거둬들였다.
당신의 초조함이 느껴져서요.
뭐 걱정되는 거라도 있나요?
이스마엘은 방금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민망하군요. 실은 형과 연락되지 않아서 찾고 있어요. 혹시 이 자료 속에 있는 이를 보신 적이 있나요?
머레이는 단말기에 리의 자료를 표시했다. 옆에서 이곳을 주시하던 라스티가 다가와 단말기에 있는 리의 자료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리가 형이라고요? 이스마엘 선배, 이스마엘 선배, 방금 비행기 계류장을 습격한 이가 리죠?
비행기 계류장을 습격했다고요? 어떻게 된 거죠? 자세히 알려주세요!
음, 저희는 비행기 계류장에서 전투가 발생했고, 누군가가 많은 구조체를 때려눕힌 뒤, 지구로 가는 수송기 한 대를 훔쳤다는 경보를 받았어요.
감사원 부대의 일이 아니긴 하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라스티가 머리를 손가락에 빙글빙글 감으면서 또다시 투덜거리기 시작하는 걸 보며, 이스마엘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이었다.
내가 설명할까?
네네~
라스티는 장난스럽게 대답하고는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물러섰지만, 옆에 있는 선배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저희도 처음에 명령받았을 땐, 지휘 시스템에 또다시 혼란이 발생해서 내린 명령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희가 현장에 도착한 뒤, 습격당한 구조체한테서 이 영상을 추출할 수 있었어요.
이스마엘은 단말기에 영상 하나를 투영했고, 머레이는 영상에서 구조체 병사와 충돌이 있는 리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형... 설마...
혹시 형도 정신에 이상이 생긴 지휘관의 영향을 받은 걸까? 머레이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형의 눈을 본 순간, 그 생각을 부인했다. 전장에 나가는 결의에 찬 형의 그 눈빛은 머레이에게는 익숙한 눈빛이었다. 그 뜻은...
또 말도 없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려고...
무력감과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그 뒤를 공황과 슬픔이 뒤따랐다.
머레이가 아무리 많은 카드를 손에 쥐고, 노력해서 만일을 대비한다 해도 형이 홀로 위험한 곳에 가는 뒷모습을 잡을 수 없었다.
머레이의 마음속에선 지금 바로 공중 정원을 떠나 지표면으로 가, 형을 말리거나 그와 함께 위험한 탑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머레이는 더 이상 형이 떠나는 뒷모습만 바라보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고마워요. 그럼, 전 볼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할게요.
말을 마친 머레이는 비행기 계류장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때론...
머레이가 떠나는 걸 말없이 배웅할 생각이었던 이스마엘이 무언가에 이끌린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은 어려움이나 비애를 가족과 나누지 않고 홀로 버티는 경향이 있어요. 당신도 그런가요?
전...
피로 이어진 사람은 씨앗과 흙처럼 서로 의존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하지만 싹튼 식물은 끊임없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요.
지금의 리는 이미 하늘을 찌르는 나무로 성장해서 땅바닥의 흙과는 많이 떨어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가 흙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
미안해요. 제가 시간을 많이 빼앗았죠?
이스마엘이 죄송한 듯 물었다. 하지만 하얀 눈동자에는 머레이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 허무의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아무쪼록 후회 없는 선택하길 바라요. 당신 자신한테도 혹은 가까운 가족에게도.
아니요. 충고 감사해요.
…………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 혹시 형과... 리와 연락되시나요?
예상치 못한 인물로부터 온 통신이었다. 교란으로 인해 선명하지 않은 화면에 머레이의 모습이 보였다.
기억 속 머레이는 항상 냉정하고 상냥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지만, 지금의 머레이 얼굴에는 불안과 초조함이 역력했다.
지휘관님의 명령인가요? 아니면 형의 선택인가요?
머레이의 말은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머레이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역시... 끝까지 저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막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군요.
통신 너머의 머레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쓴웃음을 지었다.
리가 결정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머레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형이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행동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위험해요.
같이 싸운다는 말인가요...
형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에요. 대부분 상황에서 형은 냉정하게 최선의 해결 방법을 찾아내죠.
하지만... 형이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면 형은 냉정하게 그 선택을 하겠죠.
머레이의 목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그 어떤 말보다도 진지하게 간청해 왔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부디... 형을 말려주세요.
이게 제 부탁이에요.
그럼... 나도 내 일을 해야겠어.
머레이는 스크린이 아닌 창밖의 지구를 응시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형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께 맡길게요.
말을 마치자, 통신이 끊겼다.
머레이의 마지막 눈빛에 왠지 불안함이 느껴졌다.
다시 한번 리에게 통신 요청을 보냈지만, 이번엔 머레이와 같은 결과를 얻을 뿐이었다.
지휘관님!
다른 소대의 지휘관 상당수가 정신 이상 증상에 빠져서, 엘리트 소대도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건 지휘관님의 의식의 바다에 주는 부담이 너무 커요. 한계를 넘게 된다면 그때 시몬 지휘관님처럼...
하지만...!
알겠어요. 하지만 한계에 다다르게 되면 꼭 멈추셔야 해요.
네. 제게 맡겨주세요.
네!
임무 완료. 대장, 그쪽은 어때?
방금 [player name] 님의 연락을 받았는데, 서쪽으로 가서 지원해야겠어. 그곳에서 발광하는 구조체를 제압한 뒤, [player name] 님의 곁으로 데려갈 거야.
혼자서 그렇게 많은 구조체와 연결한다는 거야?
내가 지휘관님과 협력해서 부담을 줄여 줄 생각이야.
재정비하는 데 아직 시간이 필요하니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아직도 루시아와 리브만 있는 건가? 리는?
아직은 소식이 없어. 방금 통신했을 때, [player name] 님이 리는 새 기체로 변경하여 탑으로 향했다고 했어.
혼자서? 그 녀석은 왜 항상 그래!
지금에 와선 지휘관님과 리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어.
우린 먼저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지원하러 갈 테니까 그쪽 임무 끝났으면 너도 돌아와.
알았어.
조심해. 지름길이 침식체들로 가득해.
알았어!
같은 시각.
선배~! 여긴 해결됐으니 다음 장소로 가요.
알았어. 마지막 처리는 내가 할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이스마엘이 뒤돌아서 혼란 속에 있는 공중 정원을 바라봤다.
그럼 선배님께 부탁할게요! 전 잠깐 옆에서 휴식... 이 아니라 정리하러 갈게요!
통로 한가운데 게슈탈트가 투영하는 실시간 지구 영상엔 눈에 거슬리는 적색 빛이 비치고 있었다.
…………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 파멸의 빛은 그것의 부산물일 뿐이었다.
인간은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빠르네.
모든 것이 가속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 귓가에 게슈탈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연산 결과에 의하면 인간이 계단에 오를 수 있든 없든 간에 안내...
나나미, 아직도 여기 있어?
이스마엘은 웃으며 이름 하나를 꺼냈다.
그녀는 파멸을 바꿀 수 없습니다.
"지금"의 그녀라면 확실히 바꿀 수 없겠지.
참고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하십시오.
그럴 필요 없어.
그녀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 이미 출발했어. 지금까지의 "균형"이 깨지고 인간은 퍼니싱과 맞설 가능성을 얻게 됐지.
다만 "계단"이 너무 빨리 강림했어. 대부분 사람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야.
다음으로...
실시간 영상 속 지구를 살며시 돌리던 이스마엘은 옆에서 몰래 이스마엘을 살피던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선배님... 이스마엘...
아무래도 나선의 탑이 나타난 것 같군.
네. 선생님.
외날개의 소녀가 앞에 있는 남성에게 몸을 굽혀 인사했다.
그 여성분... 자비로운 자도 그것 때문에 움직이시겠죠. 그녀는 인간을 도울까요?
간섭할 필요 없어. 그녀가 인간한테 손을 내미는 건 나로선 즐거워. 그리고 인간이 어떤 카드를 내보일지도 기대되는군.
나선의 탑 출현이 예상보다 빨라. 이로 인해서 인간이 여기서 퇴장해 버린다면 앞으로의 여정은 더욱 지루해지겠지.
인간의 생사와 관계없이 나선의 탑은 승격 네트워크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될 거야.
그러므로 승격 네트워크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우리도 연루되겠지. 이건 인간뿐만 아니라 승격자에게도 시험이야.
선별 자체가 계속 진화하고 있어. 항상 같은 표준은 아닐 거야.
우리도 이를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해. "신입" 불러와. 그녀가 확인해 줄 게 있어.
드디어 또 만났네.
저 탑은 도대체 뭐야?
그분 곁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소식 못 들었어?
난 단지 배신자일 뿐이야. 이런 일을 나한테 알려 줄 리가 없잖아.
하... 배신자 아가씨, 내 앞에서까지 이런 모습을 유지할 필요는 없잖아.
알았어.
이러면 됐지?
역시 그 모습이 더 익숙해. 어서 와. 실종된 지 오래된 라미아 아가씨.
쳇... 그 말은 저번에도 했어.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그동안 너와 나 사이에서 많은 일이 있었잖아.
그, 그것보다 정말 저 탑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그분이 말한 건 별로 없어. 난 아직 그의 동료가 아니니 그렇겠지.
다만 그분이 진작에 이날을 예측했고 이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알아.
뭐, 그의 "성동격서"가 배신자를 선동해서 적조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일을 숨기려는 건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적조를 바다에 흘려보낸 것도 그의 다음 계획과 관련됐거나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였겠지.
그분이 정말 그런 것까지 계산한 거야?
글쎄? 하지만 모든 것이 그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배신자 중에서도 선별을 통과한 승격자가 한 명 나오다니, 참 운이 좋아.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연극에 어쩌면 다른 변화가 있을 지도 몰라.
그럼... 그분이 내가 배신자 속에 숨었다는 걸 눈치챈 건 아니겠지?
몰라.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거나. 오랫동안 실종됐던 네게 정보 수집을 부탁했지만, 그가 신경 쓸 일을 알아내지 못한 거겠지?
하지만 배신자로 위장하는 건 네 아이디어였잖아.
그럼 넌? 나와 헤어진 후 어떻게 지냈는데?
그분은 나한테 루나 아가씨의 정보를 주는 동시에 선택권도 함께 줬어. 그리고 난 그 선택권을 루나 아가씨에게 드렸지.
지금쯤 달을 떠났겠지?
내가 루나 아가씨를 찾아간 동안 넌 혹사랑 그의 스페셜 게스트와 함께 놀고 있었잖아?
대부분 시간은 그를 도와 배신자를 유인하는 거였어. 하지만 나중엔 혹사도 "게스트"를 어떻게 할 수 없었어.
얻은 게 아무것도 없네.
그건 또 아니야.
어? 뭐 좀 알아냈어? 루나 아가씨를 찾아가는 길에 얘기해 줘.
어, 대부분은 그 혹사에 관한 거야. 혹사의 의식이 여러 개로 복사된 것 같아.
그 대행자는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었어. 지금의 혹사가 죽으면 복사한 의식에서 다시 혹사를...
광풍이 사람들의 비명을 감싸고 황량한 대지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견딜 수 없는 고농도 퍼니싱 속에서 가냘픈 그림자 하나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
탑을 올려다보던 혹사는 시선을 거두고 옆에 있던 이합 생물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은 아직 살아있었구나...
이전에 난 분명 너희들을 지키기 위해 죽었겠지.
자신을 격려하는 것에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인 혹사가 옆에 있던 다른 그림자에 다가갔다.
혹사.
뒤에 있던 소녀가 혹사를 부르자, 혹사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하이디 옆에 마술 모자를 쓴 한 여성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안녕, 혹사. 나 기억나?
릴리스... 무사해서 다행이야.
모든 게 혹사 덕분이야. 고마워. 아니. 지난번 혹사에게 고맙다고 해야겠지. 직접 말하지 못해서 아쉬워.
그 이후로는 처음 보는 거지? 잘 부탁해. 이제부턴 내가 혹사의 동료이자 새로운 승격자야.
승격자... 이게 본·네거트 님의 결정인가? 난 관련 기억이 없어.
전의 너도 같은 질문을 했었어. 모든 게 내가 원해서 그런 거야. 그러니 결과도 내가 책임질게.
그래도 괜찮아?
당연하지. 난 위험이 가져다주는 재미를 좋아하거든. 앞으로 일어나는 일을 특등석에서 보기 위해 본·네거트 님한테 오랫동안 부탁했어.
그리고 요즘 너희들 많이 바쁘지?
…………
본·네거트 님이 예견한 미래가 곧 다가올 거라, 확실히 유능한 조력자가 더 필요해.
그럼... 잘 부탁해. 릴리스.
고마워. 그럼, 난 본·네거트 님이 불러서 먼저 가볼게.
응.
혹사. 선생님께서 이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어.
"여기서 멈추지 마."
"넌 승격이나 수격 이외의 가능성을 찾았고 임무도 완료했어. 그러니 더 이상 실험품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다라...
혹사는 멀지 않은 곳에 잠자코 서 있는 그림자에 눈길을 돌렸다.
그를 처리해야 해?
선생님께서는 "혹사가 마음에 든다면 그를 남겨도 좋아. 하지만 지금은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라고 하셨어.
알겠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본 뒤 봉인할게.
고개를 끄덕인 하이디가 릴리스와 함께 떠났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남겨진 건 혹사와 부서진 그림자밖에 없었다.
들었지?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이 탑으로 본·네거트 님의 모든 예측이 증명됐어.
이런 재앙이 온다면, 인간이든 구조체든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네 기억 속에서 겪었던 것처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손에 힘을 가진 사람뿐이야.
네가 기차에서 버림받은 후, 줄곧 내가 널 돌봐줬잖아.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어. 괴물 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