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1 각명 나선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21-1 그의 배후

>

공중 정원 시간, 8:00 AM

지휘관 사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순백색의 암막 커튼이 자동으로 올라갔고, 쿨톤의 햇빛이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왔다. 바깥쪽 인공 천막은 아침의 하늘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책상 중앙에 앉아 있던 소형 로봇이 문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인식하자, 동그란 전자 눈을 깜빡이며 시각 모듈을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고정시켰다.

바이탈 신호. 정상.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고 예전처럼 책상 앞에 멈춰 섰다. 청년은 반쯤 마신 설탕 추가 커피를 옆에 놓은 뒤, 단말기로 새로 배정된 임무가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전투 임무는 임무 전투 센터의 시스템을 통해 전달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휘 임무가 없는 "지휘관"으로서의 일상 작업은 각종 전투 브리핑과 각종 테스트 신청이 점령해 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는 더 많은 시간을 전술 연락원의 작업인 각종 자원 정보의 조정, 분배에 사용했다. 그는 다른 연락원들과 마찬가지로 공중 정원의 방대한 정보망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더 높은 열람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책상 위를 가볍게 터치하자, 휴면 상태의 전자 스크린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사항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꼬마 로봇이 일어나 한 바퀴 돌더니, 방해하지 않는 곳으로 달려가 얌전히 앉았다.

청년이 손을 뻗어 꼬마 로봇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자, 꼬마 로봇이 손바닥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청년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럼, 하나씩 처리해 볼까?

우선...

신형 원거리 연결 장치 테스트에 관한 마지막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꼬마 로봇이 책상 쪽으로 이동해, 적당한 힘으로 인간의 팔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 행동은 5분 가까이 지속됐다.

미안. 지정 시간보다 5분 늦었네.

뻐근한 손목을 주무른 금발의 청년이 흰 알약 두 알을 입안에 넣은 뒤 식은 커피를 한 모금으로 꿀꺽 삼켰다.

이때, 문 앞에서 힘찬 발소리가 들려왔고, 머레이는 구석에 있는 장식용 거울의 반사광을 통해 새빨간 그림자를 포착했다.

눈앞의 스크린을 닫은 머레이가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바람을 품은 그림자가 응접실을 지나 사무실로 오길 기다렸다.

그녀는 노크하지 않고 곧장 머레이의 사무용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탁! 살짝 낡아 보이는 파일 봉투와 봉투에 밀봉된 메모리가 책상 위로 던져졌다.

전에는 귀찮은 "프로세스" 때문에 지연됐어. 이젠 원래 주인에게 돌려줄게.

입가에 늘 짓궂은 미소를 짓는 베라지만, 그녀의 눈에선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봉투 안에 임무 일지와 네가 필요했던 물건이 들어 있어.

파일 봉투에 있는 로고를 본 머레이는 무엇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생했어.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자, 베라는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다 네 덕분 아니겠어? 역시 니콜라의 "대리인"은 달라.

자기 자신은 깨끗하게 빠지다니,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야.

쿠로노는 자신이 겉으로 조작할 수 있는 카드를 획득할 명분이 필요했고, 의회는 이 기회를 빌어 그들이 얻은 걸 합리화시켜야 했으니, 이런 "사소한 부탁" 정도는 그들이 도와줄 거야.

"억울한" 일을 겪었지만, 넌 원하는 걸 얻었잖아, 안 그래? 난 그저 케르베로스의 지휘관으로서, 살짝 밀어줬을 뿐이야.

하...

온순하고 착한 웃음을 보이는 이 사람이 겉면처럼 쉽지 않다는 건, 베라도 잘 알고 있다.

명의상 케르베로스 소대의 공식 지휘관인 머레이의 전술 계획은 일반 지휘관처럼 획일적이고 군부의 명령을 최우선시하는 게 아니었다.

머레이는 케르베로스의 장점을 극대화할 줄 알고, 대원들의 행동을 제한하지 않으며, 그들이 규칙을 위반했을 때,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했다.

심지어 동등한 입장에서 "협력"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몸이 성치 않아서 지상에 내려가지도 못하는 지휘관을 누가 신경 쓰겠어."라고 금발 청년이 첫 만남 때 말했었다.

사나운 짐승을 길들일 때, 사람마다 목줄과 입마개를 챙기는 건 기본이지만, 머레이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베라는 깨닫게 됐다. 이 사람의 미소 뒤엔 의회 늙은이들과 비슷하게 위험한 웅덩이가 있고, 케르베로스와는 전혀 다른 "광기"가 숨겨져 있다는걸.

하지만 베라는 늘 속박을 싫어했고,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송곳니 따윈 두려워하지 않았다.

넌 네 대원을 위해서, 난... 내 이익을 위해서.

시선을 내린 머레이가 손 옆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꼬마 로봇을 보자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베라는 아주 가끔 머레이가 어떤 면에선 이해하기 쉽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지금부터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어. 늘 그렇듯 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널 지원해 줄 거야.

니콜라도 허락했으니까, 난 사양하지 않을게.

물건을 전달했으니, 난 갈게.

말을 마친 베라가 손을 흔들며 돌아섰고 사무실을 떠났다.

"유쾌한 협력이 되길 기대할게."

베라의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머레이는 책상 위 파일 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용을 세계 정부 공용 파일철에 넣었다.

공중 정원 시간, 11:30 AM

중앙 광장.

파일철을 든 머레이가 의회 건물 밖에 있는 광장으로 걸어갔다.

에덴 시간으로 정오에 가까워지면서 인공 햇볕은 따스하고 아늑해졌다. 하지만 중앙 광장은 예전처럼 행인들로 가득 차 있지 않았고, 대신 차단 띠와 입구를 가로막는 자율 로봇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곳은 당분간 통행금지입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13-C 모듈을 연결하는 다리에 기술적인 고장이 발생해서 수리 중입니다. 이로 인해서 주민들의 통행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하지만 지금 일이 있어서 의회 로비에 가야 하는데...

필요하신 경우, 좌측에 임시 개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위층으로 우회해서 가실 수 있습니다.

알았어. 고마워.

엘리베이터 앞은 의회로 가고 싶어 하는 직원들로 가득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길 기다리는 동안, 머레이는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걸 들었다.

요즘 대체 왜 이러지? 여기저기서 수리를 하고 있잖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공중 정원을 거의 한 바퀴나 멀리 돌아서 갔었어.

그건 다 대외적인 핑계야.

한 직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실은 어떤 주민이 소란을 일으켜서, 공중 정원의 자율 경보 시스템이 작동된 거래. 그래서 근위병들을 파견해서 처리했다던데.

그 사람이 퍼니싱은 세계 정부가 모두를 지배하기 위해 꾸며낸 음모에 불과하고, 지구는 오래전에 멸망했다고 했어. 그리고 공중 정원은 오래전에 다른 항성계로 떠났다고 외쳤던 모양이야.

말도 안 돼. 그럼, 우리가 얼마 전에 구한 수많은 난민은 뭔데!

어쩔 수 없지 뭐. 위에서 정보를 워낙 공유하지 않는 편이라,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들을 수밖에.

현재 전쟁 상황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거 같아. 최근 지상에 재건 중인 곳들이 지진 때문에 큰 피해를 봤잖아. 어휴, 이런 데이터를 보면 마음이 다 아파.

그럼 그 소란 피웠다는 사람은 지금 어떻게 됐어?

소문으로는 전역한 고령 지휘관인데, 갑자기 의식 장애 증상이 나타났다고 해. 그래서 영상 자료를 보여줘도 믿지 않고,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며 근무병의 무기를 빼앗아서 격납고로 뛰었대.

며칠 전, 생명의 별에서 그 지휘관을 봤었는데, 그때도 상태가 별로 안 좋았어. 근데 이성까지 잃게 될 줄이야.

그러고 보니 요즘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그중 대부분이 전역한 늙은 병사더라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하아,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요즘엔 나도 머리가 아파. 이럴 땐 잠 안 자도 되는 너희들이 참 부러워.

뭐가 부러워? 우리도 휴면이 필요할 땐, 휴면해야 해.

……

엘리베이터를 떠난 머레이는 곧장 복도 제일 안쪽에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

복도 끝에 서 있는 낯선 그림자가 다가오는 발소리에 고갤 들어 이쪽을 바라봤다.

누가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조금 놀란 그녀의 얼굴에서 불안과 초조함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열정적인 미소로 바뀌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데 서투른 것 같았다.

안녕...

잠시 생각에 잠긴 머레이의 머릿속에서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시카. 올해 파오스의 수석 졸업생이다. 시카와 만난 적은 없지만 집행 부대의 구조체로부터 가끔 시카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석"들에 대한 각종 소문 속 이미지와는 달리, 시카는 각종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시카 지휘관.

머레이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시카를 향해 인사했다. 시카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황급히 대답했다.

머레이 선배님! 절 기억하실 줄은 몰랐어요. 아, 절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돼요.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시카는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의 난처함을 미소로 감췄다.

지나친 겸손함은 필요 없어. 넌 파오스의 수석 학생이잖아.

게다가... 날 선배라고 부를 필요도 없어. 어쨌든... 난 파오스를 졸업하지 않았으니까.

머레이는 조금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니콜라 총사령관님을 찾으러 온 건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어?

네. 지상 임무를 신청하러 왔는데, 무사히 허가를 받아서 지금 격납고로 준비하러 가려던 참이었어요.

하지만 시카의 표정을 보니, 방금 시카가 겪은 일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던 거 같았다.

머레이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격려의 손짓을 보냈다.

잘 되길 바랄게.

네. 힘낼게요.

시카는 뒤돌아 떠나며 자신을 격려하듯, 낮은 목소리로 "이게 마지막 기회야"라고 내뱉었다.

……

시카와 작별한 뒤, 머레이는 맨 끝 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문틈으로 회의실 창가에 위엄 있게 서 있는 뒷모습을 봤다.

가볍게 숨을 들이쉰 머레이는 회의실 문을 노크했다.

???

들어와.

오늘의 적합 실험이 시작되기 1시간 전, 리는 평소보다 일찍 과학 이사회의 폐쇄 시험 구역에 도착했다.

평소와 같이, 수많은 투영 스크린 속에 혼자 앉아 있는 아시모프가 끊임없이 뛰는 데이터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시모프의 뒤에는 방탄 유리벽으로 차단된 선실이 있었고, 구조체의 기체 여러 개가 보관실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대부분은 텅 비어 있었고, 기체가 휴면 상태로 잠들어 있는 선실은 하나밖에 없었다.

기체를 담은 캡슐은 경고용 적색 띠로 둘려져 있었는데, 마치 이 기체의 중요도와 위험성을 나타내듯 했다.

일찍 왔네.

시설은 아직 조정 상태야. 기체 초기화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조금만 기다려.

알아요. 다른 볼일이 있어 일찍 온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리가 손에 들고 있었던 메모리를 아시모프 면전의 책상에 내려놨다.

우연히 이 자료를 찾게 됐고... "이중합 조각"에 관해 새로운 가설을 추측해냈어요.

아시모프가 묵인하자, 리는 기억 장치를 시스템에 연결한 뒤, 암호화된 파일을 여러 개 열었다.

퍼니싱... 언어...

그 단어를 본 순간, 아시모프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건... 기록되지 않은 쿠로노 실험 기록뿐만 아니라, 회수한 쇼메 연구 자료 중에서 빠진 부분까지 있어. 이걸 어떻게 구한 거야!

20차 기체 적합 실험 때, 전투 시뮬레이션에서 적의 파라미터 오류로 데이터 이상이 발생했던 일을 기억하시죠?

그래. 그건 당시 담당자가 실수로 이중합 조각의 데이터를 추가했기 때문에... 잠깐만, 혹시 그 알 수 없는 코드가...?

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자 스크린에 일련의 데이터를 불러냈다.

이건 알 수 없는 코드가 아니었어요. 특별한 키가 있어야 해독할 수 있는 정보였고, 제가 일주일 전에 코드의 내용을 해독해 냈어요.

키는?

……

이에 대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의문점이 있어서 당분간은 공개할 수 없어요.

알았어. 일단 내용부터 말해 봐.

공중 정원 시간, 1:00 AM

의회 건물에서 나온 머레이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니콜라는 더 이상 머레이의 정보 출처에 대해 캐묻지 않았고, 그렇게 됨에 따라 그의 "작업"도 상당히 수월해졌다.

문제를 해결한 머레이의 발걸음도 평소보다 가벼워진 것 같았다.

전에 말했듯이 난 네 구체적인 정보의 출처에 관해서 물어보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것만 알아둬. 무슨 약점이라도 잡히게 된다면, 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로 돌아갈 거다.

총사령관님. 과찬이십니다.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눈앞에 미소 짓고 있는 청년과 책상 위에 반듯하게 놓인 검은 파일 봉투를 본 니콜라는 복잡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령관님께서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계시니,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죠.

원본은 이미 받았다. 나머지 "그 부분"은 전처럼 특별 채널을 통해 "임무 회수 자료"의 명목으로 정리한 뒤 보관해.

어떻게 사용할지는 그들이 알고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자료들은...

형의 기체 적합에 도움이 될 거야.

이 일 만큼은 확실하게 진행해야 했다. 머레이의 궁극적인 목적은 형을 돕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머레이는 그때에 관한 기억을 떠올렸다. 과거 그는 아주 오랫동안 형이 혼자 앞으로 나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형은 언제나 괜찮다고 모든 게 다 좋아질 거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그 말의 대부분은 거짓말이었다.

머레이는 고갤 들어 에덴의 맑은 정오 하늘을 바라봤다.

거짓의 천막으로 뒤덮인 에덴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은 늘 맑고 푸른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머레이가 형과의 과거 기억을 떠올릴 때면 늘 수년 전 그날 밤부터 시작됐다.

형은 대우가 좋은 엔지니어 일을 찾은 후, 유난히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가 시간도 점점 불규칙해졌다.

가끔 형이 일찍 올 때면 머레이에게 많은 로봇 공예를 가져다주었고, 어렵지만 재미있는 프로그램 원리를 설명해 줬다.

하지만 형은 머레이가 잠든 후 수상한 상자를 들고, 슬그머니 집을 나갈 때가 많았다. 그리고 동트기 전 머레이가 자고 있을 때 집으로 돌아왔다.

머레이도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사는 도시 구역에서 오랜만에 축제가 열렸다.

사실 그날은 축제하기에 좋은 날이 아니었다. 날이 우중충한 게 은근히 불안하기도 했지만, 비가 오지 않아서 예정대로 축제가 진행됐다.

축제는 늦은 밤까지 계속됐지만, 함께 축제에 가기로 한 형은 야근 때문에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 시각 약 먹고 잠들어야 할 머레이가 창밖에서 끊임없이 치솟는 불꽃과 시끄러운 환호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음... 형?

머레이는 형의 방에서 빛이 새는 걸 발견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형이 이렇게 방문을 닫는 건 드문 일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온 머레이는 문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머레이는 문틈 사이로 형이 책상 앞에 앉아서 평온하게 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뒷모습을 봤다.

머레이

……

책상 모서리에는 교체된 붕대와 지혈 약품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책상 위에 짙은 붉은색 자국은 작은 가시처럼 머레이의 가슴에 박혔다.

그렇게 큰 상처를 입으면 분명 많이 아팠을 것 같은데... 머레이가 발병했을 때보다 훨씬 아팠을 텐데도 형은 습관이 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창밖의 폭죽 소리 때문에 청년은 문이 살짝 열렸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형은 평소와 같이 머레이를 깨웠고, 함께 축제에 가지 못한 사과의 뜻으로 선물을 줬다.

머레이는 그런 형을 보며, 차마 어떤 질문도 내뱉을 수 없었다.

지금의 머레이는 형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걱정만 끼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공중 정원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구조체 파일을 처음으로 보게 됐을 때, 머레이는 형이 어떤 희생을 했는지 알게 됐다.

핏자국이 묻은 글자 하나하나가 머레이의 마음에 박혀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됐다.

그날 밤, 자신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좀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형이 자신의 충고를 듣고 그 위험한 일을 그만뒀을까?

하지만 이런 가정은 의미가 없었고 형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성인이 되면 형을 따라잡고 형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최대한 많은 자원과 카드를 손에 넣어야 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도 이미 여기까지 와버렸다. 그렇기에 머레이는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완벽히 해야 했다.

머레이는 과거 형의 희생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형의 미래 행복 정도는 꼭 보장해 주고 싶었다. 설령...

머레이는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움켜쥔 채, 몸을 돌려 과학 이사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