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중에 알 수 없는 사악한 기운과 죽음의 냄새가 풍겼다. 썩은 냄새는 바람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의 괴물밖에 없었지만, 해평면의 물결이 계속 출렁이면서 죽었던 괴물들이 다시 되살아났다. 그리고 괴물 수량이 점점 늘어남과 동시에, 광기가 심각한 상태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어 갔고,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고,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눈앞의 붉은 괴물들이 방어선을 뚫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이 육지에 발을 들이는 순간, 틀림없이 학살이 시작될 것이었다.
해안가는 부상자와 시체로 뒤덮여 있었고, 지휘관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무렵, 바다 위에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기타 집행 부대 대원들은 지휘관의 시선을 따라 해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승격자인가요?
미확인 구조체가 나타났어. 모두 경계해!
어떤 지휘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기타 구조체는 겁먹은 듯 미확인 구조체를 바라봤다. 모두가 기괴하고, 온몸에 어두운 느낌이 물씬하는 여성 구조체를 향해 화력을 조준했다. 마치 그녀의 손짓 하나에 모든 사람의 목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눈앞에 거대한 폭탄이 떨어지면서, 덮치려던 이합 생물 하나를 날려 버렸다. 먼지가 흩날리는 상황에 카레니나가 뒤에서 달려오며,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땅바닥에 박았다. 그리고 손으로 입가의 순환액을 닦으며, 앞에 있는 바다 위의 그림자를 노려봤다.
다들 멈춰! 저건... 비앙카야!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졌고, 그제야 그녀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신분 불명의 검정색 여성 기체는 손에 지팡이검을 들고 있었다. 그녀 주변의 주홍빛 바닷물이 한창 끓고 있었는데 마치 저승에서 올라온...
마녀 같았다.
실종 전의 비앙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만, 지팡이검과 허리춤의 랜턴 그리고 익숙한 모습은...
저 기체는...
해리조는 망설이지 않고, 지휘관의 말을 따랐고, 즉시 대원들에게 공격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지휘관님!
루시아는 공격해 오는 이합 생물들을 모두 사살한 후, 곁으로 다가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런 아우라와 자태... 틀림없이 그녀였다.
네. 정말 다행이에요. 비앙카.
쳇, 정말 오래 기다리게 하네요.
연달아 지휘관 곁으로 달려온 그레이 레이븐 대원들도 바다를 바라봤다.
대장, 대장이 돌아왔어!
비앙카...
정말 비앙카라고?
비앙카가 돌아왔어! 아직 살아 있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비앙카"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더욱 선명해졌다. 소모전을 겪고 기진맥진해졌을 무렵, 드디어 첫 번째 빛을 맞이하게 됐다.
정말 다행이야! 그럼... 희망이 있을 거야!
야야, 무슨 일이야! 버텨! 얼른, 그를 뒤로 데려가!
저... 안 되겠어요. 신입... 지휘관님을 잘 지켜.
이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 지휘관은 쓰러진 구조체 받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 지휘관 소대의 마지막 구조체가 앞으로 달려가, 목숨을 걸고 선배를 죽음의 문턱에서 데려왔다.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온통 처참한 광경이었다.
궁지에 빠진 모습,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 피와 순환액이 뒤섞여 있었다.
사상자가 너무 많았다. 파오스에서 배운 것에 따르면, 전투 손실이 이 정도까지 도달한다면, 지휘관이 할 수 있는 건 부대가 붕괴하기 직전에 철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최대한 많은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최전선 지휘관으로서, 전장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과감히 판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부대가 철수하거나,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관련 배치를 더욱 빠르게 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철수하고 재정비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이대로 철수해야 할까?
"철수란 검을 검집에 다시 넣는 것이다. 검이 부러지기 전에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린 정말 물러날 길이 있을까? 시간이 얼마 남았지?
"전장에서 탐욕과 망설임은 치명적인 독이다."
그렇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인간의 승리를 극도로 갈망하고 있다는 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인간의 승리...
결정하기 힘든 선택의 스트레스에 두 눈을 꼭 감았다.
지휘관님...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바로 그때 눈앞의 광경이 지휘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건 천둥소리와 번개가 번쩍이는 가운데, 높게 치켜든 장검이었다.
끔찍한 검의 위쪽 톱니는 살육을 위한 송곳니처럼 폭풍우를 향해 소리 없이 포효하는 것 같았다.
곧게 하늘을 향한 검의 날카로운 칼끝은 끓어오르는 어둠에 맞서, 서슴없이 날카로움을 드러내려는 확고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폭풍우 속에서 검을 들고 선 그녀는 굴복하지 않았고, 두려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비앙카가 고개를 돌렸을 때, 평소처럼 맑은 눈동자가 보였다.
그리고 지휘관과 옆에 있던 그레이 레이븐 대원들은 금세 비앙카의 뜻을 알아차렸다.
모든 사람이 인간의 승리를 너무나도 갈망하고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전투는...
당연한 명령이었지만, 우렁찬 함성이 터졌다.
모두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명령 들었지? 이번엔 나도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을 거다.
이런 [삐!] 난 너무 오래 참았어! 지금부터 시작이야!
비켜. 비켜. 폭탄 도착!
이봐! 혼자 폭탄 들고 돌진하지 마! 야, 서둘러. 지원해야지!
비앙카의 복귀와 동시에, 방어선의 숨겨진 검이 드디어 칼집에서 온전하게 정체를 드러냈다.
이 순간부터 더 이상의 보류는 없었다. 난민들은 마지막으로 탄약을 보충하고, 주머니에 온갖 폭발물을 채웠다.
구조체들도 에너지를 절약하던 기본 전술을 버리고, 최대한 화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괴물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면서, 테디베어 머리 위에 진흙이 쏟아졌다.
잠깐, 뭐야 저 출력은?!
아, 미안. 네 뒤에 녀석이 너무 가까이 있었어. 네가 눈치채지 못한 줄 알았지.
괴물의 시체가 찢어진 채로 멀지 않은 곳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시체 발목에 있는 금속 스티커가 폭발하면서, 근처에 있던 괴물들도 함께 산산이 조각났다.
테디베어는 손에 들고 있는 리모컨을 돌렸다. 폭발 결과에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소녀는 다음 폭발의 화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계속 방법을 생각했다.
창끝에 불꽃이 번쩍였다. 추진력을 최대로 가동한 로제타는 패배를 모르는 나이트로 변해, 돌진하면서 대량의 괴물을 날려버렸다.
난민들은 떼를 지어 다니는 괴물들은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독으로 행동하는 괴물이라면...
펑! 펑!
더 가까이 와봐!!! 괴물 주제에 부끄러워하냐!
어서, 저 사냥꾼이 또 한 마리 쓰러뜨렸어. 괴물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빨리 해치우는 거야! 가자!
[삐!], 총이 또 고장 났어! 쯧, 안 나오네!
그 난민은 고장 난 총기를 내던지고, 손을 허리에 뻗었다. 하지만 허리춤에는 칼집밖에 남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난민은 앞에 있는 동료를 힐끗 봤다.
대장! 도끼 좀 빌릴게!
네가 직접 가져가! 어! 야! 내 바지는 왜 벗겨!
미안. 손이 미끄러져서... 지금은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어서! 내가 이놈의 발을 잡을게.
총소리가 일제히 울리자, 또 한 마리의 괴물이 죽었다. 하지만 기뻐할 겨를도 없이, 다른 괴물이 무방비 상태의 난민들을 덮치려 했다.
펑! 펑!
날아온 총알이 괴물의 머리를 관통하면서 액체를 흩날렸다. 그러자 행동 능력을 잃은 괴물은 그대로 쓰러졌다.
17마리...
팔 옆에 떨어진 탄피 표면에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며, 병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이 비쳤다.
괴물이 저격수를 물어뜯으려고 하는 순간, 큰 낫 하나가 괴물의 송곳니를 산산조각 냈다.
휴~ 위험했어요!
망각자 저격수가 아이라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탄피가 떨어지자 말했다. "18마리..."
야야, 바빠죽겠는데 뭘 또 세고 그래? 안 바빠? 그럼, 기관총 총열 교체할 것 좀 나한테 건네줘. 바빠 죽겠네.
음... 이러면 돼?
반즈는 손에 들고 있는 장치의 출력을 조정했다. 방출된 냉기가 빨갛게 달아오른 기관총 총열을 순식간에 냉각시켰다.
루시아는 전선 앞에서 달려드는 이합 생물을 모두 물리쳤다. 루시아가 자세를 가다듬고 있을 때, 완전히 죽지 않은 이합 생물이 부서진 팔을 이용해 뛰어올랐다.
당!
눈 깜짝할 사이에, 기창이 괴물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그 괴물과 다른 한 마리를 함께 날려 보냈다.
리는 공중에서 행동 능력을 잃은 괴물을 조준한 뒤, 빠른 속도로 그들을 사살했다.
루시아와 리는 서로 마주 봤다. 결심을 보여주기보다는, 동료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상황에 말은 필요 없었다. 대원들이 할 수 있는 건, 끊임없이 전투하고, 승리를 거두는 것뿐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모든 힘이었다. 죽기 전의 발악으로 지금 상황을 바꾸기 위해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센, 넌 참 가엽구나. 네가 지키고 싶은 이들이... 지금은 뭉쳐서 너에게 무기를 겨누고 있어.
괜찮아. 내가 너와 널 키워준 바다를... 지켜줄게.
혹사는 처형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신속히 바닷속으로 자추를 감췄고 물속에서 인간 방어선의 가장 약한 부분으로 돌진했다.
이 악몽이 오래 지속되지 않길...
혹사가 해변가에 다다랐을 때, 검 한 자루가 번쩍이며, 수직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혹사의 행동 궤적은 갑자기 수상하게 변하면서, 기이한 각도로 공격을 피했다.
수면 위로 떠오른 혹사는 비앙카의 모습을 봤다. 곧게 든 비앙카의 검이 혹사를 향하고 있었다.
지휘관이 자신에게 한 말을 떠올린 비앙카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전술적 성공뿐만 아니라, 뒤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기쁨에서 비롯됐다.
비앙카는 이 순간, 모든 전사와 희생된 영혼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리라 맹세했다.
인간의 승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