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해양 박물관은 희생자들의 체구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사람을 먼저 구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나?
결단력이 좀 더 있었다면, 그녀는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그녀와 함께 바닷속에 묻힌 동료나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
그녀는 답을 알 수 없었다. 고요한 바닷속에는 혼란스러운 물소리뿐이었다.
멀리서 솟아오르는 적조 속에는 수많은 침식체가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곧 수면을 뚫고 학살의 사형수가 될 것이다.
머지않아 비앙카도 적조에 융해되고, 수많은 침식체, 숙체, 적조의 허상 속 일부분이 될 것이다.
그전에 무기로 자신의 몸을 찢어야 할까?
조금만 더 버티면 곧 구조가 올 겁니다.
그들은 이미 구조 불가한 정도에 이르렀어. 구조 인력이 와도 날 도와서 이런 더러운 일만 하겠지.
이것은 침식이 일으킨 의식의 혼란일까 아니면 죽기 전의 주마등일까?
퍼니싱이 침식함에 따라, 어지러운 잡음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이건 정화 부대의 사명이야.
옛 동료에게 무기를 겨누는 걸 말하는 건가요?
아직 살아 있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거야.
아니요. 그건 바닥까지 간 감정을 지키는 것이었죠. 절친을 죽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집행 부대의 모두는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에 익숙하니까요. 그래서 유대감이 깊어요.
시시한 감정에 발목 잡힌 것이 뭐가 좋다고 그래?
감정을 버릴 수 있는 걸 부러워해야 할까요?
감정은 쓸모없는 거야. 침식체조차 처리하지 못하다니, 참 연약하군.
그들은 침식체가 아니라 동료입니다.
그럼 대원들의 태도를 좀 봐. 그들을 동료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
아니죠. 정화 부대는 누군가를 붙잡아 둘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누가 유대를 돈독히 하고 싶대? 내일이면 침식체가 돼버릴지 누가 알아?
그들이 침식체로 변해서 처치해야 할 때, 울면서 의식의 바다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타인에게 폐 끼치는 걸 너무 많이 봤어.
우린 항상 죽음을 각오해야 했어. 그러니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하지...
바닷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과거의 추억인가?
맞아. 다들 그런 생각이야. 그래서 너한테도 그런 태도를 보였던 거겠지.
마녀라는 말, 반거충이라는 말...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 아, 아니다. 마음에 담아두고 우릴 미워해 줘.
센은 끝없는 설원을 바라보며 자신의 미래를 응시했다.
왜냐하면 난 죽는 순간에 대장이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거든.
나중에 내가 침식체로 변한다면, 큰소리로 날 비웃어줘.
센...
정화 부대의 대장이 될 사람은 네가 아니라 센이어야 했어. 그녀는 과단성이 있어서 질질 끌지는 않으니까.
…………
신임 대장에 센이 적임자라는 이의가 있었지. 하지만 내가 기각했어.
정화 부대에는 대원들더러 칼을 거두하고,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해. 거기에 네가 가장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남들 눈에 네 인간성과 밸런스가...
반거충이!
파르마를 정화 부대에서 내보내기로 했어요.
이대로 내버려 두면 파르마는 선을 넘게 될 거 같아서요.
네 판단을 존중한다.
파르마의 전투력이 우리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왜 그녀를 다른 곳으로 발령한 거야?
파르마는 칼날을 아직 살아 숨 쉬는 자에게 향했어요!
살아 있다고? 그들은 곧 철저하게 침식될 게 뻔하잖아!
정말 그때가 되면,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아직 살아 있는" 침식체에게 공격당하겠어?
차라리 그들이 아직 살아있고 자제력이 있는 틈을 타서 죽이는 게 좋거든!
저런 반거충이...
반거충이? 쳇, 가식적이고 입만 열면 버릇처럼 도덕을 늘어놓는 수녀네. 네 예배당에 돌아가서 벌만 주는 신에게 기도나 해.
당신이 "마녀"라고 불린다 해서, 판단도 행동도 신속할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우습기만 해.
센이었다면, 너처럼 하지 않았을 거야.
남겨진 의식 속, 비앙카는 근원 추적 장치가 깊은 바닷물 속에서 빛나고 있는 걸 봤다.
마치 타인의 수많은 추억과 정보가 비앙카 의식의 바다로 파고들어 가려고 시도하는 것 같았다.
왜 아직도 괴로워하고 있어?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모이면서, 하나의 공허한 메아리로 바뀌었다.
우리에게로 와... 너의 연약함과 결점, 고통과 방황을 버려.
누구세요?
센. 과거 센이라고 불렸던 개체라고 할 수도 있지.
아니요. 당신은 센이 아니에요. 적조가 만들어 낸 환상이겠죠.
센은 이미...
이미 죽었다고? 아니. 그녀는 살아있어. 바로 네 곁에 있어.
센이 널 지켜줘서 네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제가 아직 살아있다고요...
센이 지금 바닷속의 퍼니싱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잖아.
이 바다는 원래 센의 영양액이라 할 수 있거든.
비앙카는 추적 장치의 희미한 빛을 빌어 바닷속에서 "센"의 모습을 찾았다. 그녀는 급격히 팽창하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걸 파괴하는 "거인"이 될 것만 같았다.
그 안에 담긴 의식이 그레이스나 크틸라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지금보다 더 순조롭게 진행됐을 거야.
한 소녀의 탄식이 그 흐릿한 목소리를 대체했다.
그래도 괜찮아. 그분께서 말씀하셨지. 이건 그냥 실험에 불과하다고. 그분께서는 인간이 비축해 놓은 걸 소모시키고, 더 많은 가능성을 보고 싶어 하시거든.
대체 왜 이런 일을...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괴물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지?
그렇지 뭐. 집행 부대 대원들이 날 그렇게 부르더라고.
정화 부대에 있으면, 언젠가는 걸맞은 괴물이 될 테니까.
그게 뭐 어때서.
괴물과 마녀, 잘 어울리지 않나?
난 과연 마녀가 맞을까?
왜? 그들이 널 반거충이라고 불러서 그래?
넌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 말하고 싶지만... 나도 알지, 아무리 강한 자여도 사람들이 누누이 손가락질하면 흔들릴 수도 있다는걸.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 같은 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린 거겠지. 그들도 더 이상 원래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거야.
중요한 건, 네 생각이야.
네가 품은 인자함은 무엇을 위한 거지?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을 지키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야.
왜 신부(神父)를 죽였어?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을 지키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야.
네 냉정함은 무엇을 위한 거지?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야.
그럼, 문제가 해결됐어?
아마도...
해결됐어?
해결됐어.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부분도 있어.
이렇게 동료를 죽이는 행위를... 좋아해?
그러지 않아요...
그럼 이곳에서 도망쳐.
그럴 수 없어요.
제가 도망친다면, 그들은 직접 동료를 죽여야 해요. 그날 제가 신부님을 죽인 것처럼, 고통을 홀로 감수해야 돼요.
정보 접수 거절>>>
재시도 중>>>>>
근원 추적 장치가... 역으로 침입하고 있어요.
지금의 전 근원 추적 장치를 제어할 수 없어요.
이상한 광경이 근원 추적 장치를 통해 눈앞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 포착된 일부 정보는 적조 속의 의식과 기억 조각이었다.
근원 추적 장치는 끊임없이 데이터를 분석해 영상을 비앙카의 눈앞으로 전달했다.
이어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침식에 따라 뭉쳐졌다. 그건 마치...
이건 리브의 백야 기체가 기록한 내용이야.
설마... 승격 네트워크가 계산한 미래인가요?
뒤죽박죽된 화면들이 모여서, 신에게 기도하는 소리와 저주하는 소리로 변했다.
그녀가 이런 내용을 식별할 수 있었던 건, 수녀 시절에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네 소원이 뭐야?
난 자유를 얻고 싶어.
하지만 내 다리는 걸을 수 없어.
난 새장 속의 작은 새가 날 대신해 자유를 얻었으면 좋겠어.
두려워하지 마. 너희는 다 함께할 테니까.
적조 속에 있는 한, 그의 날개는 너와 함께 묶여 있을 거야.
네 소원이 뭐야?
그녀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한 번의 단독 행동으로, 우린 다시 만날 수 없게 됐어.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난 이미 적조의 일부분이 됐어.
내가 그녀를 붙잡아서... 그녀를 죽인 거야.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거야.
네 소원이 뭐야?
너희들의 소원이 뭐야?
살고 싶어. 버림받고 싶지 않아.
몸의 일부가 사라졌다... 이 세계는 왜 괴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괴물이 되겠어.
소원을...
내게 알려줘, 네가 뭘 원하는지.
모두를 구하고 싶어요.
…………
그건 언제 기억이었을까?
엄청 오래된 것 같은데.
난 왜 아직도 이곳에 있는 거지?
그들은 모두...
내게 알려줘, 네가 뭘 원하는지.
저를 죽이고, 제가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아 주세요. 선생님.
이게 몇 번째지? 벌써 기억이 안 나.
왜 꼭 이래야 할까?
내게 알려줘, 네가 뭘 원하는지.
지금이면 충분해요.
당신에게 아직 뭔가를 부탁할 수 있다면... 그럼, 최대한 새로운 승격자를 찾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려도 될까요?
승격 네트워크에 속박된 이들은 적을수록 좋아요. 다른 이들이 저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감사... 합니다...
거세찬 바람이 기승을 부리고 큰 눈이 내렸다.
넌 왜 이곳에 온 거야?
고개를 숙인 센은 비앙카가 가져온 젤로 손의 상처를 복원하고 있었다. 10분 전, 비앙카의 화살이 센의 손을 명중했고, 자살을 시도하려던 센의 비수를 떨어뜨렸다.
난 사람을 구하러 왔어.
우리 소대는 애초부터 살아서 돌아갈 수 없었어. 비앙카, 네가 길을 돌아 이곳에 온 건, 너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뿐이야.
하지만 센, 넌 살아남았잖아. 다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죽였어.
모두 침식체로 변했거든.
…………
네가 습관적으로 신변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홀로 설원을 가로질러서 구조하러 올 줄은 몰랐네.
이곳엔 침식체가 너무 많아. 여기로 오는 걸 택했다니, 현명하지 않은 행위로군.
물론 나도 알아. 다만, 난 이 설원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이곳은... 내 고향이었거든.
…………
눈보라 때문에 바로 움직일 수는 없으니, 이야기라도 좀 나눌까?
정화 부대에 들어온 지도 오래됐는데, 너에 대해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여서.
그래.
눈을 좋아해?
응.
너에게 고향이란, 따뜻한 추억이 담긴 곳인가?
모든 영광이 아버지와 아이들과 신성에 닿기를. 그 시작을 막론하고 오늘 그리고 영원히 이어지기를.
비앙카... 내 아이.
난 자애로운 신부님에게 입양됐어. 바로 저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예배당에서 말이야.
그 신부님은 어떻게 됐어?
…………
내가 죽였어.
그와 다시 만나고 싶은 거야?
뭐?
신부님을 다시 만나고 싶어?
신부님과...?
적조 속에 있는 한, 모두...
안 돼!
어서 깨어나! 비앙카!
근원 추적 장치와 넌 미래로 향하는 유일한 희망이야!
미래?
적조 속에 있는 미래.
진정한 미래.
왜 이런 광경을 봤을까?
그 아이도 죽었어.
이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명패야.
눈이 녹았어. 지휘관. 지상에 배꽃이 피었어.
이게 미래라고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파멸.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얻을 수 있는 건 거짓된 결과뿐이었다.
근원 추적 장치 내의 광경을 본 비앙카는 고통스러운 결론을 내렸다.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이 아닌, 그들을 적조에서 환생시킬 거야.
저는 결코 그런 길을 인정할 수 없어요.
잘라내고 연결해서 모아둔 의식으로 살아있는 사람을 해치는 건, 그들의 소원이 아니라, 승격자가 만든 재앙이에요.
네가 정말로 센을 죽일 수 있겠어?
그녀는... 살아 있어.
적조 속의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어. 네가 인정했던 그 사람들처럼... 적조가 묶은 세계에서 행복하고 살고 있어.
네 대원이 남긴 기억을 훑어보니, 넌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는 착한 사람인데.
그런데 지금... 아직 살아 있는 그들의 의식을 잔인하게 제거하겠다는 거야?
그들은... 아직 살아있다고 볼 수 없어요.
너희들은 항상 그러더라. 마음속으로 상대가 이미 죽었다고 여기고 한바탕 자아 위로를 하고 나서, 망설임 없이 죽이는 거 말이야.
널 찾고 있었어.
비앙카, 내가 널 찾고 있다고.
센?
살려줘.
죽여줘.
나의 친구여...
유일하게 날 이해해 줄...
유일하게 내 나약함을 알고 있는...
우리 함께...
구제 불능한 이 세계를 파멸시키자.
만신창이가 된 이 세계를 복원시키자.
적조 속어는 앞뒤가 모순되는 말과 산산조각 난 생각이 감돌았다.
어느 것이 진정한 센일까?
모두 그녀의 일부겠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 해도 연약한 면이 있으니까요. 가끔은 울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도움을 받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럼 넌? 수녀와 마녀 중 어떤 게 진정한 너야?
너의 고통, 너의 아쉬움.
너의 행복, 네가 지키고 싶은 것들.
밸런스 맞추는 적임자, 반거충이, 착한 마음, 연약함, 굳건한 모습, 결심, 마녀.
수많은 조각과 특징이 "나"로 연결됐다.
이 모든 게 저의 일부겠죠.
우린 동일한 무언가를 원하면서도 혐오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는 모순되고 탐욕스러우며 쉽게 질려요.
왜 그렇지?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완벽한 인간이나 사물은 존재하지 않고, 앞으로도 완벽해질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모이면, 완벽해질 수 있다.
근데 왜 꼭 완벽해야만 할까요?
이 조각들이 모두 저라면, 전 이걸 버리고 싶지 않아요. 적조에 의해 잘려 나가고 또다시 연결되기를 원치 않아요.
비앙카. 난 항상 널 동경해 왔어.
언젠가 이별할 날이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넌 타인에게 접근하는 용기가 있잖아.
그런 감정을 내려놓는 것도 용기가 필요해.
그 말은... 너도 날 부러워했다는 건가?
맞아.
집행 부대원들은 항상 내 냉정함을 공포스러운 단점으로 여겼어. 하지만 비앙카 넌 집행 부대원들의 존경을 받았지.
그와 반대로 정화 부대원들이 볼 때, 내 판단은 치명적인 단점이지. 그리고 센은 항상 그들의 존경을 받았어.
완벽한 건 없다는 얘기야.
빛은 그림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림자 또한 마찬가지야. 하지만 빛과 그림자는... 항상 함께 있잖아.
우리가 완벽해질 필요는 없어.
어둠 속을 걷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니까.
반거충이라도 나쁠 건 없지, 그건 너에게 수녀가 될 능력과 마녀가 될 능력을 모두 갖췄다는 거잖아.
장점, 단점, 수녀, 마녀 그리고 빛과 그림자, 모두가 상생하는 존재인걸요. 이런 게 완벽하지 않은 거라면, 차라리 완벽하지 않게 내버려 둡시다. 제 관점에서는 그게... 무엇보다도 아름답거든요.
그것이... 네 결정인가?
아직 살아 있는 이들과 함께 적조 속에 남는 걸 거절하겠다는 거야?
그래요.
너에게 구해달라고 청하는 이를 죽이게 되더라도?
네.
그럼, 나의 마녀 아가씨.
내가 자체 제어가 불가해서 당신과 타인을 해치기 전에...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