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도록.
계산 결과. 87.1%의 사상을 전제로 할 경우, 임무 성공률은 28.4%입니다.
역시 월리스 참모장. 당신이 제시한 계획은 지금까지 성공률이 가장 높은 방안이었습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주먹이 탁자를 내리치자 둔탁한 소리가 들여왔다. 그 소리로 인해 시끄럽게 논의하던 사람들은 침묵에 잠겼고 모두 일어선 그 의원을 주목했다.
월리스 참모장님. 집행 부대 사상률이 가장 낮은 게 87.1%라니요. 그런 무모한 방안을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건 여러분이 Ω 무기 사용을 거절한다는 전제로 만든 방안입니다. 귀하께서 좋은 의견이 있다면 제시하셔도 무방합니다.
사상률은 적어도 20%까지 낮춰야 합니다. 공중 정원의 전투력을 그렇게 많이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모든 Ω 무기를 투입하면 됩니다. 귀하의 예상보다 사상률이 더 낮아질 겁니다.
으흠...
이 문제는 이미 결정됐습니다. 달 표면 기지의 우선 보전을 위해, 달 표면 기지의 침식 상황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필수로 절반 정도의 Ω 무기를 보유해야 합니다.
하지만 각 정찰 부대의 보고에 따르면, 달 표면 기지에 퍼니싱의 존재 징후가 없다고...
그건 현재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정찰 부대의 보고에 따르면, 지금까지 탐지한 구역은 전체의 50% 미만입니다.
만약 나머지 구역에 농도가 높은 퍼니싱이 존재하는데 우리에게 충분한 수량의 Ω 무기가 없다면, 인간은 달 표면 기지와 영원히 이별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하죠.
그건 추측일 뿐...
단 1%의 가능성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곳은 Ω 무기를 생산하는 달 표면 기지입니다. 월리스 참모장님은 모든 인간의 희망으로 도박을 하실 생각입니까?
그 말에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이 질문에 감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립을 고수하는 사람조차도 이런 순간에는 심사숙고를 거쳐 조심스럽게 발언해야 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참모장님.
의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뒷일을 부탁드립니다.
월리스 참모장은 하산에게 경례하고 회의장을 떠났다. 조금씩 멀어지는 월리스의 모습을 보며, 니콜라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어. 참모장이 합류했는데도 중립을 지키는 놈들을 흔들지 못했다니.
적어도 틈은 생겼잖아.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쿠로노에서 어떤 수를 쓰든 간에, 투표는 확실하게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그럼, 이어서 조력자들을 한 명씩 등장시키자.
최전선 부대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어.
바다는 붉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끊임없이 해안가의 바위를 치고 있었다. 과거에는 그렇게도 듣기 좋았던 소리였지만, 지금은 불길한 그림자처럼 쌓여가는 불안감을 건드리고 있었다.
수십 분 전,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은 의회에 보고를 올렸다. 적조가 바다에 방류된 세부 상황, 그리고 이 모든 게 대행자 측 계획의 첫걸음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까지 포함된 보고였다.
하지만 난민들이 철수할 무렵, 돌아온 답변은 적조의 방류를 막는 게 아니라 철수 지시였다.
다른 채널을 통해 하산 의장과 대화를 나눴지만, 그들이 협상한 결과는 철수 명령이 대기 명령으로 변경됐을 뿐이었다.
쿠로노 녀석들이 작전 세부 상황을 회의에서 직접 공개해 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군에서 단독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아직 논의 중입니다. 지금은 마치 토너먼트라고 할까요... 총사령관님께서 적절한 타이밍에 다시 결의를 신청할 겁니다.
앗, 저분께서 직접 오셨네요. 죄송해요. 제가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소식이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세리카는 부랴부랴 통신을 중단시켰다. 그쪽 상황이 많이 시급해진 것 같았다.
단말기를 내려놓고 다시 붉은 광경에 시선을 돌렸다.
적조는 지금 모든 걸 잠식하고 있다. 바다, 생명의 요람, 인간이 의지하던 삶의 터전을 갉아먹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전사들은 해안가에서 멍하니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세리카는 복도를 한창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세리카, 회의장으로 가는 길이야?
당연하죠. 지금은 잡담할 시간이... 이... 이건?
머레이는 세리카에게 접혀있는 종이쪽지 한 장을 건넸다. 그는 그녀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고 그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세리카는 재빨리 종이쪽지를 펼쳤다. 안에는 정보 저장 칩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머레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게 뭐가 됐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생각에 세리카는 개인 단말기에 정보 저장 칩을 꽂았다.
정보를 읽던 세리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산 의장님! 하산 의장님!
이 정보는 어디에서 입수한 거죠?
출처는 기밀이다.
전대미문의 생명체가 나타나 적조 속에서 계속 잠식하고 있다가, 결국 해결할 수 없는 존재로 성장하고 모든 걸 멸망시킬 트러블이 된다... 하지만 "모든 걸 멸망시킬 트러블"이란 걸 어떻게 정의한 거죠?
지금 그런 정의를 토론할 때인가? 적조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게 위험하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으면 충분할 텐데.
회의장에서 소곤거리던 소리가 점차 와글와글 커지기 시작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모든 Ω 무기를 즉시 투입시켜, 이 위협을 제거해야 합니다.
무기 투입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늘어나자, 하산과 니콜라는 만족스러운 듯 눈을 마주쳤다. 그때...
모두 진정하세요.
한 의원이 일어나 두 팔 벌려 발언을 시작했다.
아무리 위협적인 존재라도, 고작 퍼니싱의 창조물일 뿐입니다.
달 표면 기지의 안전만 확보할 수 있다면, Ω 무기를 무한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위협적인 존재가 지구를 멸망시키지 못할...
당신의 단말기에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방금 하산 의장님의 정보를 보면, 지금은 아주 시급한 상황입...
제 말은! 우린 이 위협을 초반에 몰살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그는 갑작스레 언성을 높여 자신을 반박하던 의원들의 말을 끊었고 식겁하게 만들었다.
다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아주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요.
달 표면 기지의 생산이 재개되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러니 그때까지 인간의 미래를 걸고 리스크를 무릅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의원은 말을 마친 후 다시 착석했고 회의 분위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렇게 회의장은 시끄러운 논쟁 소리로 가득했다.
해안가. 세리카와의 통신은 짧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내용이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 의원들은 전체 Ω 무기 투입을 원하지 않습니다.
……
솔직히 Ω 무기의 양산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이론상으론 처리할 수 있습니다만, 그전에 지상의 모든 것이 큰 타격을 입겠죠.
그럼 우린 과거의 모든 성과를 한 번에 잃게 될 거고, 지상의 인간들도 멸망에 가까운 재앙을 직면하게 될 겁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계속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적어도 전 이런 결과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녀와의 통신이 다시 끊겼다. 그와 동시에 인근 정화 부대 대원도 문제가 생겼는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 이 보급 상자를 열려면 지휘관님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 정화 부대 소속 구조체는 상자 안의 부품을 메고, 해안가를 향해 달려갔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은 구조체가 떠날 때 중얼거리는 말을 얼핏 들을 수 있었다.
동쪽에서 공격해 온다면 큰일인데, 얼른 화력을 강화해야겠어.
그런데 정화 부대 대원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정제수 한 병을 열어 전부 자기 머리 위에 쏟았다.
야야, 낭비하지 마. 방어선 설치할 때 사용해야 한단 말이야.
뭐 어때? 어차피 곧 철수할 건데.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냐고? 공중 정원에 있는 친구가 소식을 전해줬는데, 적조가 바다로 방류되는 걸 막는 안건이 의회에서 통과하지 못했대. 그럼, 철수 말고 뭐가 더 있겠어?
말을 마친 대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지휘관을 바라봤고, 마치 그의 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 설마 이대로 철수하는 겁니까?
동료가 이곳에서 희생됐고, 대행자의 계획도 곧 성공할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겁니까?
동료의 시체를 버리고, 비앙카 대장도 내버려 둘 겁니까? 그리고 퍼니싱이 바다에 방류되면 전 세계를 잠식하게 될 텐데, 우린 공중 정원에서 조용히 살아남자 그런 말씀이십니까?
진정해.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물론입니다!
그 구조체는 빈 병을 집어던지고, 굳건한 눈빛으로 지휘관을 바라봤다.
이 물로 머리를 식히지 않았다면, 일전에 단말기를 통해 욕설을 퍼부었을 겁니다.
멀리 있던 루시아가 이쪽의 소란을 눈치챘는지, 달려오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너희들의 힘을 빌려줘.
회의는 계속해서 진행됐다. 이때, 달 표면 기지의 정찰 부대에서 보고를 업로드했다.
달 표면 기지 조사 진행도는 51%입니다. 현재까지 퍼니싱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좋습니다! 이대로 계속하세요. 달 표면 기지의 청소가 완료되면, Ω 무기 생산을 회복할 수 있어요.
많은 의원들은 승리를 예견한 듯, 낮은 목소리로 환호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남은 건 기다림뿐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상 손실의 시뮬레이션 결과는?
세부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습니다. 해안선 및 그 근처 지상 인원의 사망률은 99%, 근해 구역은 98%입니다.
데이터가 공개되자 회의장은 죽음에 가까운 적막이 감돌았고, 순간적인 고요함이 모두를 덮쳤다.
보시다시피, Ω 무기의 생산에는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생산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되겠지. 다시 말해서 지상의 인간들은 전멸된다는 뜻이지.
지금 바로 Ω 무기를 투입해도 늦지 않았어. 수송, 착지, 배치, 개방, 참모부와 과학 이사회에서 내놓은 방안에는 이 과정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계속 미루기만 한다면, 그들을 구할 기회조차 없게 돼. 적조가 어느 정도 확산됐을 경우, 지금 보유한 Ω 무기로도 역부족이게 될 거야.
이건 마지막 시도였다... 그전에 조력자 의원들을 참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가져올 "저울"은 이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만약 사망 데이터도 의원들을 이쪽으로 끌어오지 못한다면...
하산 의장님, 이 계획의 성공률은 얼마나 됩니까?
90%에 가깝습니다. 집행 부대의 사상률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음... 그럼,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반대합니다.
고막을 찢는 듯한 함성은 사망자 데이터에 정신이 잠겨 있던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것은 인간의 미래인 달 표면 기지를 놓고 도박하는 겁니다! 하산 의장님!
그 의원은 분노하며, 일어서서 회의장 중앙에 있는 하산을 가리켰다.
Ω 무기는 인간의 미래를 대표하는 희망 그 자체입니다. 만약 달 표면 기지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퍼니싱을 대항하죠? 설마 또 두 시대의 대가를 치르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겁니까?
그렇다면 지상의 인간들은 어떻게 할 셈인가? 그들이 이합 생물에게 잠식되는 걸 지켜보자는 건가?
아무도 그런 걸 원하지 않습니다!
의원은 테이블을 치며, 니콜라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인간 미래의 희망을 위해, 그 방안을 거절한 겁니다.
주위를 둘러보는 의원의 시선이 모든 이의 얼굴을 보다가, 시선을 다시 하산에게로 고정했다.
이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모두의 의지입니다.
말이 떨어지자, 회의장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모든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책임, 미래, 그 모든 것에 의원들은 하나둘씩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의원은 다시 자기 자리에 앉았다.
이 순간부터, 침묵은 암묵적인 동의로 바뀌었다.
지직-지직-지직-
의회 중앙에 투영된 내용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지상 부대로부터 온 정보일 거야. 지금 지상 부대의 지휘권은 의회로 넘어왔고, 군은 이미 관련 사항을 회의로 돌렸거든.
지상 부대 말입니까? 니콜라 사령관님. 아직도 최전선 부대에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으셨던 겁니까?
지금까지의 결의안에는 철수 명령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쯧, 의미 없는 시간 끌기...
"여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입니다. 이 통신은 공중 정원으로 보내는 정시 통신입니다."
투영 화면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지휘관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고, 그 뒤로는 그의 뒤에 서 있는 수많은 구조체가 나타났다.
"적조가 바다로 방류되면서, 오염된 해양 생물들이 이합 생물로 전환되어, 이곳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곳에 방어선을 구축해 시간을 벌려고 합니다. 본부에서 지원해 주시기를 바라며, 이 기간에 해결 방안을 찾으시기를 요청합니다."
해결책은 없어! 전원 철수해. 그리고 Ω 무기가 다시 생산될 때까지 기다려.
저기... 의원님. 이건 영상이라 지금 말을 거셔도, 저쪽에서는 들을 수 없어요.
그럼 내가 한 말을 그쪽에 전달 좀...
"저흰 지상에 있는 무고한 생존자들을 버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이 철수하지 못했습니다."
일찌감치 상대방이 어떤 발언을 할지 예견이라도 한 듯, 영상은 계속 재생됐다.
"선조들이 개척한 길을 따라, 우린 희생을 치르고, 삶의 터전을 되찾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철수하라는 명령을 쉽게 내릴 수 없었습니다."
"적조가 바다에 방류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에 따른 파괴 결과는 Ω 무기가 있어도 복원할 수 없습니다."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걸 보면, 과학 이사회의 보고서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느껴지네요.
이때, 영상 속의 사람은 뜻밖의 행동을 취했다. 그는 오른손을 움켜쥐고, 심장이 있는 위치를 몇 번 두드렸다.
그렇다, 바다는 정화가 가능하다. 나중에 Ω 무기가 대량으로 양산되면, 그 푸른색의 깨끗한 바다는 언젠가 다시 인간의 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건물은 복원할 수 있다. 재난이 지나가면, 결국 건물도 다시 세울 수 있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폐허 위에 새로운 집을 연이어 지을 수 것이다.
하지만 한번 손상되면, 다시 복구 불가한 것들도 있다.
그것은 인간의 자존심이고, 지켜왔던 굳건한 신념이었다.
만약 그것들을 포기해서 거짓된 미래를 바꾼다면, 세월이 흐른 뒤, 새로운 건물의 보호와 눈부시게 빛나는 등불 아래에서 인간은 무엇을 추억해야 할까?
"본부에서 우리에게 탄약과 에너지만 제공해 준다면, 지원 부대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장비와 인원이라면, 5일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야, 거기! 작전 총지휘자에게 당장 물어봐. 우리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버리고 이곳에서 도망쳐야 하냐고. 이런 [삐-]"
"야, 진정해! 욕 안 하기로 했잖아."
"잠깐만,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화면에서 한 구조체가 다른 구조체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어렴풋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앞에 있는 이들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난공불락의 성벽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결코 공중 정원에 결정을 내리라고 협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의지를 전달하는 것뿐입니다. 선택이 어떻게 되든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이곳에서 희생하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지구를 탈환하고, 인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한 우리의 선택입니다."
"상술 내용은 현장에 있는 집행 부대 대원, 정화 부대 대원들이 공동 서명했습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player name]."
여기까지 읽고, 지휘관은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검붉은 외모의 구조체가 카메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대장, 루시아."
뒤이은 건 표정이 차가운 구조체였다.
"정화 부대, 아서."
온몸이 진흙투성이인 구조체...
"집행 부대 대원, 릭."
"정화 부대 대원..."
최전선에 있는 부대 대원들이 차례로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비추고 이름을 남겼다.
통계 완료했습니다. 임무에 파견된 인원의 90%가 서명했습니다.
나머지 10% 중, 실종된 정화 부대 대장 비앙카를 제외하고, 모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적막이 흘렀다. 조금 전과는 다른 적막이 회의실을 뒤덮었다.
이때, 또 다른 영상이 적막을 찢어버렸다.
지직-지직-지직-
달 표면 기지의 정찰 분대 긴급 통신입니다. 몇 퍼센트였지...
쯧, 통신기는 저한테 주시고, 당신은 계속 앞으로 가세요... 달 표면 기지 정찰 분대 긴급 통신입니다. 현재 달 표면 기지의 점검 진행도는 90.5%입니다. 나머지는 앞으로 몇 시간 내에 점검이 완료될 예정입니다.
그전까지의 진행 상황을 알고 있던 의원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의 진행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무리 노력해도 달성할 수 없는 속도였다.
그때, 회의장에 있는 한 의원이 이상을 눈치채고, 일어서서 큰소리로 물었다.
잠깐! 너희들 정비 로봇은 어디에 있어? 그리고 너, 넌 구조체도 아니잖아. 어서 안전 구역으로 돌아가!
스크린에 비친 정비 부대 대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 큼직한 놈으로 점검하려면, 전문적으로 길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러기엔 효율이 너무 낮아서 말이죠. 그래서 다른 대원과 의논해서 정비 로봇 없이 정찰해 효율을 높이기로 했습니다.
너희들 지금 미친 거야! 지금의 달 표면 기지는 혼란 상태라고. 퍼니싱이 없다고 해도, 가스 누출이나 중력 제어 불가 상태가 나타날 수도 있어. 정비 로봇이 없다면, 언제든 죽을 수 있단 말이야!
그건... 최전선 부대 대원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데, 저희만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면서 꾸물거릴 수는 없잖습니까?
말을 마친 대원은 그 의원에게 간섭할 틈을 주지 않고, 무중력 상태에서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으며 경례했다.
하지만 대원의 시선은 의원이 아니라, 뒤에 있는 월리스 참모장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우리의 의지이고, 우리의 결정입니다.
누구야! 누가 저들에게 정보를 흘린 거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찰 부대의 통신도 끊겼다.
그 의원은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넋을 잃고, 전방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투영이 사라진 쪽을 보면서, 월리스 참모장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은백색의 매가 새겨져 있는 각진 훈장을 손바닥이 찔릴 때까지 움켜쥐었다.
무기가 없으면 다시 만들고, 기지가 없어지거든 다시 지으면 돼.
과거의 과학 기술이 단절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기까지 왔어.
니콜라는 손을 들어, 투영 구역을 가리켰다.
그들의 굳건한 의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신념 그리고 인간의 자존심이 한 번이라도 깨진다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고!
총 사령관의 신분으로, 이전 결의에 대해 재투표를 신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