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을 대표한 세계 정부 긴급회의는 카레니나의 현장 판단에 동의하며, 영점 에너지 엔진을 파괴할 수 있는 권한을 그녀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그들의 답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것은 달 표면 기지의 문제, 원자로의 문제, 지상 전선의 문제, 쿠로노의 문제와 같은 후속 문제가 당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달 표면 기지의 통신을 아직도 복구하지 못해서, 카레니나가 영점 에너지 엔진을 파괴하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카레니나와 일행들이 부상을 당했거나, 임무를 완료할 방법이 없다면...
니콜라 사령관님! 제가 달 표면 기지 및 카레니나를 지원할 수 있게, 출격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니콜라도 이 문제를 전혀 고려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낯선 환경에서 실종된 목표를 탐색하기에 정화 부대만큼이나 적합한 부대는 없었다. 물론 통상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목표 암살하기였다.
안돼.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이미 결정된 일이야.
니콜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비앙카의 신청서를 돌려줬다.
넌 정화 부대의 대장이자 군인이야. 명령을 따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소양임을 알 텐데.
이때, 방 안에 있던 다른 여성 구조체가 다가왔고, 니콜라에게 표준 군례를 올렸다.
니콜라 사령관님, 그 배신자들을 조사하는 임무는 제가 가진 구조체 전투력으로 충분하므로, 비앙카 대장은 이번 임무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니콜라에게 공손하지만,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이 여성 구조체는 센이라는 이름의 정화 부대 멤버다.
센.
비앙카는 센을 바라봤다.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임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지구를 떠났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다.
정비 부대가 연구한 신형 비행체 엔진이 탑재된 현재의 수송기는 공중 정원에서 지상까지 이동하는 임무의 안전성을 높였지만, 여전히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지상에 성공적으로 도착했지만, 전투 상황이 너무 열악해서, 지원 부대의 보급이 소모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센은 기체를 정비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래서 원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퇴색되어 색이 바랬지만, 복원하지도 못하고 그 상태로 있게 됐다.
조사 과정에서 승격자의 흔적이 발견돼, 임무 위험도가 높아졌고, 조사 지점도 2곳으로 늘어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는 게, 사령부의 판단이야.
또한, 임무 지점은 위험 레벨에 따라 재분배될 것이며, 센이 조사하기로 했던 006호 도시는 비앙카가 대신하고, 새롭게 추가된 조사 지점인 015호 도시는 센이 책임지게 될 거야.
하지만...
임무 설명에 따르면, 006호 도시의 잠재적 위험성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대장인 비앙카가 맡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센도 반박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지 못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잠시 멈춘 니콜라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비앙카를 바라봤다.
우리도 너만큼이나, 카레니나와 달 표면 기지의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어. 그래서 콘도르 소대를 배치해 우주 전투기 지원을 보냈고.
니콜라의 말이 끝나자, 비앙카와 센도 반박할 수가 없어서, 묵묵히 군례를 올렸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카레니나의 소식이 있으면, 저에게 첫 번째로 알려주십시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녀와 관련된 소식이 들어온다면, 분명 큰 뉴스가 될 테니까.
정화 부대의 두 구조체가 방에서 나간 후, 니콜라는 그 반역 인원 조사 임무 요청서를 다시 집어 들었다. 많은 부서에서 요청이 있었지만, 임무 지점 변경에 대한 정보는 감사원이 사령부에 제공한 것이었다.
감사원의 직권 범위는 상당히 넓은 걸로 아는데, 왜 이 임무를 주목하는 걸까?
중상을 입을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그동안 여러 차례 전투 재투입 신청을 했었지만, 우리와 생명의 별이 막았었지. 하지만 위험이 적은 015호 도시 조사 임무라면, 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겠어.
바로 그때, 통신 수신 요청 알림이 그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무슨 일이지?
니콜라 사령관님, 콘도르 소대의 대장이 보내온 통신입니다.
정비 부대의 인원을 찾은 건가? 좌표는?
세리카는 말하기가 어렵다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콘도르 소대가 적과 대치 중인 것 같습니다!
달에 가까운 우주에서 공대지 항행 비행선 한 척이 불꽃을 분출하고 있었고, 배경이 된 달이 아주 작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영점 에너지 엔진과 융합한 괴물은 도대체 어디에서 달로 온 거야?
몰라. 하지만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닌 거 같아.
카레니나는 영점 에너지 원자로의 노심에서 발견한 카세트 녹음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했다.
어? 이건 꽤 오래전에 사용했던 소리를 재생하는 기계잖아. 너한테 이런 품위 있는 취향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음악을 많이 들으면, 너의 그 야만인 같은 사고도, 조금은 바꿀 수 있을 거야.
카레니나는 테디베어의 놀림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창밖의 별하늘을 바라봤다.
이번 달 표면 기지에서 발생한 사고는 과거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필요한 희생"이 남긴 후과는 오늘날까지 모든 인간이 감당해야 했고, 어쩌면 미래에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오늘날의 인간은 그런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희들 어떻게 이 비행선을 찾은 거야? 그때 어떠한 비행체도 달 표면 기지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없는 걸로 아는데.
몰라. 비행선만 봐선 면역 시대 때부터 사용하던 구형 모델인 거 같은데, 쿠로노에서 사용하다가, 공중 정원으로 재편성된 거겠지.
우릴 데리러 오는 걸, 예측해서 비행선이 출발한 것 같은데? 역시 우리는 운이 좋은가 봐.
카레니나 님, 미안한데,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카레니나 님의 손이 제 머리와 부딪치고 있습니다.
아! 미안.
정말로 운이 좋은 거라면, 철수 몇 시간 전에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거 같은데.
다시 실례하겠습니다. 테디베어 아가씨, 방금 발로 제 배를 밟았습니다.
어쩐지 뭔가가 물렁물렁하더라니. 아합 아저씨, 운동 좀 해야 할 거 같은데?
아하하, 이제 그만 밟으십시오.
아아악! 왜 이 작은 구명 캡슐 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밀어 넣은 거야!
정비 부대와 쿠로노 과학자 그리고 누워있는 병사 수십 명이 무중력 환경에서 구명 캡슐에 구겨 넣어지면서, 만원 상태가 됐다.
목숨이라도 건졌으니, 이거면 됐잖아. 그보다도, 돌아가서 어떻게 하면 영점 에너지 엔진을 복구할 수 있을지, 그거나 생각해 보지 그래.
그건 걱정하지 마. 너희들이 가져온 자료들이 있으니까.
꼭 그래야 할 거야. 우리가 목숨 걸고 가져온걸, 네가 문제라도 일으킨다면, 정비 부대 멤버들이 널 가만두지 않을걸.
그래. 한번 봐 보라고. 너희들은 지금부터 새 엔진을 어떻게 부를 지나 생각해 봐.
하하, 그럼 "델로리안"(Del orean)은 어떤가요? 오래된 고전 영화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비행선 구명 캡슐의 내부 안내방송에서 비행선의 조종사로 보이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말이 조금은 예의 없어 보였지만, 모두를 구한 사람이기도 하고, 방금 비좁은 기내에 대해 불평을 그가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 카레니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 이름도 나쁘지 않네.
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롤모라고 불러주세요. 롤모 선장. 듣기에 괜찮지 않나요.
롤모 선장. 이 비행선으로 공중 정원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지?
글쎄요. 정확하진 않지만, 하루 24시간이 될 수도 있고, 8시간이 될 수도 있고, 10분이 될 수도 있어요.
롤모의 엉뚱한 항로 예측은 두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야, 테디베어, 난 왜 이 선장의 목소리가 낯설지 않지?
갑자기 격렬한 진동에 카레니나의 말이 끊겼는데, 미티어 라이트나 우주 쓰레기에 부딪힌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야!?
하하하, 괜찮아요. 공중 정원의 우주 전투기가 공격하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뭐??! 공중 정원이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야.
이 비행선이 탈취당한 게 들켰나 봐요.
하!? 탈취? [삐!] 너 누구야?!
카레니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과거에 이 불쾌한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멋대로 남의 비행선에 올랐으면서, 이제는 트집까지 잡는 건가요? 인간은 참 한심하네요.
자신을 롤모라고 소개한 조종사는 한숨을 내쉰 뒤, 유쾌한 말투로 바꿔서 안내방송을 했다.
승객 여러분, 이번 비행은 여기까지입니다. 남은 여행 안전하고, 행복하시길 바라며, 작별 인사를 올립니다. Ciao~
구명 캡슐의 안전장치가 해제되면서, 발생한 가벼운 진동과 카레니나의 고막이 터질 듯한 욕설 속에서 "롤모 선장"은 크게 웃으면서, 구명 캡슐을 강제로 우주 공간 밖으로 던진 후, 지구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