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매년 너의 생일이 되면, 난 예전처럼 널 위한 선물을 준비하곤 해. "알파"라고 불리지 않았을 때도, 난 계속 준비하고 있었어.
내가 아무리 많은 선물을 준비하더라도 난 이게 부질없고,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잘 알아. 현실은 내가 바꾼다고 바뀌지 않아. 루나... 이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네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그날, 난 맹세했어. 앞으로 너의 모든 생일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너의 곁에 있을 거라고 말이야.
올해도 널 위해 선물을 준비했지만, 네 생일에 줄 수가 없어.
루나야, 이 메시지를 듣게 된다면, 너 자신만의 미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야. 네가 어딜 가든, 난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거야.
그리고.
루나, 생일 축하해.
구조체 실험실은 중력파의 충격으로 인해 계속 무너져 내렸고, 우주의 부압에 노출되면서 발생한 강력한 폭풍이 실험실의 모든 것을 우주 밖으로 날려버렸다.
무의식 속에 흐르는 눈물이 끊임없이 새하얀 소녀의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눈물은 폭풍 속에서 조각으로 분해되어, 우주 속으로 사라졌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루나는 더 이상 고통을 느낄 수 없었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 눈물은 몸의 아픔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내 멸망은 당연한 결과야. 하지만...
왜 아직도 멸망할 운명에 저항하는지, 왜 아직도 저열한 인간처럼, 기억 속에 있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남으려 추하게 발버둥 치는지 알 수 없었다.
언니.
한때는 인간보다 높은 승격자라고 자만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을 이겨낸 것은 인간의 감정이었다.
폭풍의 기류가 점점 더 강해지면서, 루나의 앞에 있던 콘솔 위 잡동사니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수많은 설계도와 부품들은 연구자들이 매일 밤낮을 이곳에서 보냈다는 것을 상징했다.
그러다 갑자기, 콘솔 위에 있던 작은 녹색 물품이 기류 때문에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 물품은 이 따분한 실험실에서 결코 나타날 수 없는 작은 녹색 물체였다.
바보 개구리!
기류에 날리는 것은 바보 개구리 장식이었고, 콘솔에 꽂혀있는 기억 장치에 매달려 있었다.
루나는 이 작은 장식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알파가 그녀에게 준 선물임을 알 수 있었다.
기억 장치에 묶여있던 장식의 끈이 점점 느슨해지면서, 광활한 우주 속으로 빨려가,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안 돼.
루나는 손을 내밀어 잡고 싶었지만, 두 손이 모두 구속돼 있어서 잡을 수 없었다. 그저 장식의 끈이 천천히 풀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바보 개구리 장식의 끈은 루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가느다란 끈과 같았고, 끈이 완전히 끊어지게 되면, 더 이상 세상의 모든 것과 루나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되는 것 같았다.
루나는 필사적으로 구속에서 벗어나, 운명의 가느다란 끈을 잡으려 했다. 그러자,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전자자물쇠의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퍼니싱의 힘이 존재하지 않게 된 루나는 온몸의 힘을 가녀린 오른손에 집중시킨 다음, 움직여 보려고 했다.
전자 구속 장치가 루나의 팔을 태우고, 순환액이 터져, 인공 근육에 깊숙이 흔적을 남기고 나서야, 루나는 자신을 가두고 있던 구속 장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루나는 바보 개구리 장식의 가느다란 끈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작은 장식을 손에 꼭 쥔 루나는 온도를 느낄 수 없음에도, 장식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행이다.
상처투성이 오른손에서 오랜만에 심한 통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 루나는 아무리 아프고 다쳤더라도, 중요한 물건을 잡으려는 손을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밤, 백발의 언니와 처음 만난 그날, 그녀는 수많은 고난을 겪은 손을 내밀고, 통곡하며 그녀의 여동생을 꼭 껴안았다.
파멸의 빛 속에서, 부서진 두 손으로 태도를 잡은 검은 머리의 언니는 지켜야 할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은 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한 평범한 지휘관은 인간과 소중한 동료를 지키기 위해, 가장 강력한 적에게 상처로 가득한 손을 내밀기로 선택했다.
승격자, 구조체 그리고 인간은 어쩌면 서로 다르지 않을 수도 있어.
바로 그때, 구조체 실험실에서 달 표면 기지의 내부 안내방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 카레니나! 들리냐?
우린 "데이터 기록하는 김에", 가장 촌스럽고 낙후된, 하지만 당장은 가장 효과적인 임시 전파 송수신기를 설치했어. 그랬더니 공중 정원의 통신 센터와 마침내 연결됐고, 센터에서 메시지 하나를 바로 보내왔어.
봤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혹시 시력이 나빠서 놓쳤을 수도 있으니까, 다시 한번 알려줄게.
"카레니나, 세계 정부 회의는 정비 부대의 현장 판단에 따라, 영점 에너지 엔진을 파괴하는 것에 동의한다!"
잡음이 가득한 안내방송에서 테디베어의 목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함께 뒤섞여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은 루나는 인간도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을 뻔한 자신을 발견했다.
인간은 카레니나와 일행을 포기하지 않았어. 이번에 믿기로 선택한 거야.
카레니나라는 고집 센 소녀는 인간이 과학을 통해, 파괴의 힘을 새로운 희망으로 바꿀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나도 나만의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희망의 형태가 하나가 아니듯, 미래의 답안도 하나가 아닐 수 있다. 루나가 중립을 지켜, 인간과 공존하는 미래를 개척한다면, 그녀의 숙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언니와 같이 살 낙원을 만드는 것.
하지만 승격 네트워크가 과연 허락해 줄 것인가? 어쩌면 승격 네트워크는 변화가 나타나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루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바보 개구리 장식을 가슴에 꼭 껴안고 눈을 감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멀리 있는 희망을 잡아야 한다. 마치 인간처럼, 그 지휘관처럼, 모든 것을 걸고 승리의 가능성을 탐색해야 할 것이다.
이 목소리가 정말로 전달됐다면, 마지막 소원을 들어줘.
미래를 향한 길, 상상, 인간, 희망.
승격 네트워크, 승화, 구조, 소원.
연결 승인, 허가, 루나, 대행자.
강렬한 붉은빛이 루나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왔고, 달 표면 기지를 가득 채운 퍼니싱이 조금씩 루나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중합은 백색의 갑옷으로 변해, 루나의 몸을 덮었다.
대량의 퍼니싱을 감지한 Ω 장치가 자동으로 영점 에너지의 입력 효율을 증가시켰다. 하지만, 퍼니싱이 소멸하는 속도가 모여드는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루나가 천천히 두 눈을 떴을 땐, 이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후였다.
승격 네트워크가 다시 날 승인했어.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승인했어.
이는 루나가 원래 자신이 갖고 있어야 할 권능과 힘을 되찾았음을 의미했다. 그렇게 승격 네트워크는 루나를 상상하지 못했던 길을 개척하는 개척자로 재승인했다.
힘을 되찾은 루나는 그대로 떠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위의 퍼니싱을 더 모아서, Ω 무기의 영점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모하게 했다.
인간들이여. 너희들이 개척할 미래를 한번 보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