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
카레니나는 불시에 날아오는 중력파를 피하면서, 자신을 덮친 침식체를 우주 끝으로 날려버렸다.
불과 수십 분 만에, 중력파의 규모는 조금씩 작아졌지만, 강도는 갈수록 강해졌다. 그 충격으로 달 표면 기지의 건물 일부가 부서지면서, 거대한 잔해로 떨어져 나갔다.
멀리서 전해지는 거대한 폭발과 함께, 눈부신 푸른빛이 자갈과 먼지 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저쪽이 영점 에너지 엔진이 있는 곳이야!
구형 형태의 영점 에너지 엔진 주위에 중력 폭풍이 휘몰아쳤고, 깨진 돌과 달 토양, 그리고 침식체의 신체가 반중력의 작용으로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중력파가 엔진으로 계속 집중되고 있어.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 없어.
카레니나는 헤비 해머로 달 표면을 강하게 내리친 다음, 지상의 저항을 빌려, 헤비 해머의 추진 엔진에 끊이지 않는 압력을 가했다.
중력 추산 및 운동 궤적 시뮬레이션 완료. 엔진 압축 수치 100%, 120%!
지상이 안된다면, 공중에서 접근해 주마!
엔진의 동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카레니나는 헤비 해머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헤비 해머 아래의 달의 암석이 부서지면서, 암석 때문에 막혔던 동력이 순식간에 방출됐다. 그 힘으로 헤비 해머를 든 카레니나는 목적지를 향해 고속 돌진했다.
카레니나는 공중에서 기체의 중력 제어 장치와 헤비 해머의 반작용력으로, 비행 자세를 끊임없이 조정해, 연이어 날아오는 중력파의 충격을 재빠르게 회피했다.
하지만 곧, 영점 에너지 엔진에 접근하려고 할 때마다, 중력파가 견제한다는 것을 발견한 카레니나는, 그제야 중력파가 자신을 향해 날아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상한데, 영점 에너지 엔진에 자아의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내가 가까이 가려고 하면 견제를 하네.
빽빽하게 날아오는 중력파를 한 번 더 피한 카레니나는 헤비 해머를 압축포 형태로 변형시킨 뒤, 영점 에너지 엔진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영점 에너지 엔진이 중력파를 수축시켜, 카레니나의 포격을 상쇄시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말도 안 돼! 영점 에너지 엔진이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겠다고 생각할 수가 있지. 그게 아니고서는...
카레니나는 영점 에너지 엔진을 감싸고 있는 중력 폭풍을 향해 끊임없이 포격을 가해, 엔진을 감싸고 있는 잡동사니를 날려 버렸다. 그러자 창백한 물질이 영점 에너지 엔진의 밑바닥에 붙어선 움직이지 않고, 지상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물질은 달 표면에 있는 달 토양도, 부서진 잔해도 아닌,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생물체였다.
생물체에 정신이 팔렸던 카레니나는 중력파에 명중돼, 공중에서 달 표면으로 떨어졌지만, 다행히 중력이 낮아서 큰 손상을 입지는 않았다.
콜록, [삐!] 저건 도대체 뭐야.
창백한 물질이 영점 에너지 엔진을 감싸자, 주위의 중력 폭풍이 조금씩 멈췄다. 모든 것이 정지된 것만 같았다. 카레니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이상한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영점 에너지 엔진의 상단 부분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엔진을 감싸고 있는 창백한 껍질에 생긴 틈이 생물의 동공처럼, 카레니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카레니나는 조건 반사로 포문을 열고, "생물"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뭐지!?
중력자 형태로 압축시킨 포탄은 살덩어리처럼 보이는 괴상한 생물에 의해 막혔다. 정확히는 생물체에서 새로 자란 "팔"에 의해 포격이 제지됐다.
팔 하나 외에, 다른 팔과 하반신의 두 다리가 창백한 살덩어리에서 빠르게 자라났고, 이어서 지상과의 연결을 끊고 서서히 일어나, 기괴한 인간형으로 변했다.
크아아!!!!
생물체가 울음소리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자, 광란의 중력파가 퍼지면서, 주위를 폐허로 만들었다.
누군가 말해주진 않았지만, 카레니나는 눈앞의 생물이 인간의 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영점 에너지 엔진에 원거리로 공급되는 에너지를 끊임없이 흡수하며, 진홍빛 퍼니싱을 밖으로 내뿜었다.
이 괴물은 이합 생물!?
창백한 이형이 미친 듯이 자기 신체를 긁자, 상처에서 영점 에너지로 가득 찬 푸른 "혈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푸른빛이 얼마 되지 않아, 진홍빛으로 빠르게 퇴색됐다.
그리고 그 진홍빛의 액체가 주위의 달 토양을 물들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액체를 퍼니싱 적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아아악!
그러나 날카로운 발톱에 긁힌 상처는 금방 유합됐다. 영점 에너지 엔진에서 흡수한 끝이 없는 에너지가 이형의 몸을 무한대로 복원시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에너지들은 무한한 퍼니싱의 근원이 될 것이며, 그럼 얼마 못 가, 달 전체가 진홍빛으로 감싸게 될 것이었다.
영점 에너지 엔진을 파괴해야 해, 너도 이곳에서 사라지게 해주마!
Video: 카레니나 버전 애니메이션
적막한 우주에서 작은 불빛이 샛별처럼, 지구 뒤에서 나타났고, 그 불빛과 함께, 눈 부신 태양이 떠올랐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그 "별"이 일정한 리듬으로 반짝거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건 공중 정원이야!
공중 정원에서 깜빡이는 항해등은 과거에 통신이 끊기면, 공중 정원과 다른 궤도 유닛 간에 서로 정보를 소통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낙후되어서 존재의 의미가 없어졌다.
공중 정원은 다른 궤도 유닛과 소통할 필요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궤도 유닛이 없었다. 공중 정원은 지구라는 집의 유일한 파수꾼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깜빡이는 불빛은 단 한 사람에게만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으며, 그 한 사람은 카레니나였다.
"세계 정부 회의의, 결정은..."
카레니나는 불빛에 담긴 정보를 주의 깊게 읽고 있었다. 모든 인간이 내린 결단이 무엇인지 곧 알게 될 것이다.
"정비 부대, 카레니나의, 현장 판단을, 인가한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카레니나는 눈을 크게 뜨고, 저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희미한 빛을 바라봤다.
"전력으로 영점 에너지 엔진 파괴!"
불빛으로 전달된 것은 간단한 단어들의 조합이었지만, 카레니나가 한없이 큰 용기를 얻기에는 충분했다.
훌쩍거리며 고개를 든 카레니나는 자신도 모르게 흐르던 눈물을 멈춘 뒤, 몸을 돌려 이형 괴물을 향해, 두려움 없는 미소를 지었다.
잘 들어라! 이 망할 퍼니싱 괴물아.
카레니나는 헤비 해머를 들어 올리고, 이형 괴물을 똑바로 가리켰다. 그리고 추진 엔진에서는 화염이 분사되며,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어쩌지? 인간들의 목소리가... 나더러 널 파괴하라고 하는데.
홀로 칠흑 같은 우주에 서서, 끝없이 넓은 세상을 마주한다고 해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카레니나의 뒤에는 모든 인간의 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불멸의 의지는
별빛이자, 횃불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삐!] 그냥 죽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