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19 여명의 경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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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 인간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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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라는 이름의 대행자가 칠흑 같은 꿈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곳은 꿈이 아닌, 루나의 희미해진 의식의 바다 경계일 수도 있었다.

이곳에선 자신의 목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승격 네트워크에서 들리던 잡음까지도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아직 의식도 존재하면서, 살아있다니.

루나는 승격 네트워크에 거부당한 자신이 왜 아직도 대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판단이 정확하다면, 자신은 이미 일반적인 침식체로 열화 됐어야 했다.

인간의 감정으로 비유하자면, "승격 네트워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라, 루나에 대한 처분을 잠시 보류한 것 같았다.

하지만 루나에게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했기에, 승격 네트워크가 왜 고민하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무례한 그놈처럼, 이 적막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

……

언니.

자신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루나는 참지 못하고 기억 속 언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루나는 루시아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려는 게 아니었다. 단지 언니를 다시 한번 만져서, 따뜻함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었다.

……!

환상 속에 언니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끊임없이 입을 여닫았다. 하지만 루시아의 말은 입만 열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결국 어떤 소리도 루나의 귓가에 닿지 못했다.

무언가를 급하게 말하고 싶어 하는 루시아를 보며,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루나는 읽어내려고 애썼다.

"루, 루나."

"일어나."

루나, 어서 일어나!!

루시아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칠흑 같은 꿈이 조수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꿈속 언니의 그림자는 일그러지면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루나를 잡아당겨서, 중앙에 있는 언니에게서 멀어지라고 하는 것 같았다. 루나는 두 손을 뻗어 언니와의 거리를 좁히고 싶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깨어 있는 세상에선, 더 이상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가 없었다. 루나는 방황의 갈림길에 서 있었고, 뒤에 있던 길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루나는 왠지 모를 약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이 꿈에서 내가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 거야. 여기가 내 마지막이라면, 좋을 거 같은데.

루나는 다시 눈을 감아, 무너진 꿈속으로 떠났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땐, 끝없이 창백하고 공허한 현실이 눈앞에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수없이 겪었던 깨어남과는 달리, 그녀를 맞이 한 건, 평소와 같은 고요함과 먼지의 냄새가 아닌, 극심한 고통과 날카로운 경보음이었다.

윽!

익숙한 구조체 실험실에서 피와 살이 분리되는 듯한 아픔을 견디며, 루나는 두 눈을 떴다. 하지만 주위는 무슨 일이 벌어진 듯,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구속 장치의 틈으로, 손목을 힘들게 비튼 루나는 진홍빛의 퍼니싱이 자기 몸에서 꾸준히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것이 인간이 말했던 Ω 무기야.

루나의 뒤에 있는 거대한 Ω 무기에서 무기의 색상은 보이지 않고, 퍼니싱을 끊임없이 흡수하면서 나타나는 특유의 진홍빛이 감돌고 있었다.

루나의 전투 모습을 구성하는 퍼니싱 이중합 코팅이 그 순간, 소진돼 사라져 버렸다. 이제 몸 안에 있는 퍼니싱이 조금씩 녹아서 없어질 차례였다.

대행자의 권리는 잃었지만, 기체는 열화 되지 않은 루나의 몸속에는 여전히 대량의 퍼니싱이 존재했다. 하지만 체내에만 한정된 퍼니싱은 무한한 에너지를 가진 Ω 무기의 침식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루나

이대로 난 죽게 되는 걸까?

루나는 대행자가 된 이후로, 죽음에 이렇게까지 가까워진 적이 없었다. 취서체에 잠식됐을 때도, 죽음이 자신과 이렇게 가깝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승격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든 최강의 무기인가?

차라리 이렇게 된 게 좋을 수도 있었다. 인간의 적으로서, 인간을 죽였기 때문에,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승격자의 숙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가 문밖에서 났고, 이어서 커다란 충격음이 울렸다. 가냘픈 구조체가 실험실 문을 통해 "등장"했고, 이미 조각난 침식체도 옆에 있었다.

너냐?

바닥에서 일어난 카레니나는 몸에 돌려, 토끼처럼 먼지를 털어낸 후에야, 눈앞에 루나가 있는 것이 보였다.

달을 떠났던 거 아닌가? 아니면 이 소란을 만든 게, 네 짓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영점 에너지 원자로와 엔진이 퍼니싱에 침식돼서 폭주해 버렸어. 그래서 기지도 엉망이 돼버렸고.

그렇군.

루나가 힘을 모으려고 하자, 더없이 깨끗한 달에 퍼져 있는 퍼니싱이 흡수되는 게 보였다. 하지만, 루나의 힘으로 모을 수 있는 퍼니싱은 미약해서, Ω 무기가 바로 소멸시켜 버렸다.

난 이게 너와 관련된 건 줄 알고, 이 모든 걸 처리하기 전에 널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을 거 같네.

카레니나가 확인한 루나의 상태는 Ω 무기 때문에, 이미 극도로 약해져 있었다.

확실히 얼마 가지 못해서, 이 몸에 있는 퍼니싱이 소멸할 거야. 그럼 나도 죽게 될 테니, 굳이 너까지 나설 필요 없겠어.

카레니나는 뭔가 망설이는 것처럼, 몇 걸음 왔다 갔다 했다가, 마침내 루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곳 상황을 내가 공중 정원에 보고했어. 이제 곧 구조 수송기가 여기로 오게 될 거야. 하지만, 그전에 영점 에너지 엔진을 파괴해서, 중력파가 입히는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여야 해.

이렇게 되더라도, 과잉된 영점 에너지가 축적된 중력파를 한꺼번에 방출시켜 버릴 수 있어. 우리는 도망칠 수도 있겠지만, 중력파 때문에 분출된 달 표면의 파편들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무서운 재난이 일어나게 될 거야.

깊은 호흡을 한 카레니나가 루나를 바라봤다.

내가 계산해 봤는데, 네가 다시 대행자의 힘을 얻을 수만 있다면, Ω 무기에 맞설 수 있을 만큼 퍼니싱을 흡수할 수 있을 테고, 대량의 영점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럼, 중력파의 파괴력도 감쇄시킬 수 있어.

루나는 엄청 황당한 말을 들은 듯,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카레니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내 힘을 빌리고 싶다는 거야?

이상한 거 같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적이건 아군이건, 가릴 것 없이 빌릴 수 있는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고.

루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언니의 지휘관도 한때는, 이처럼 우둔하게 적의 힘을 빌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

너도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을 거 아냐. 그럼...

그러나 루나는 고개를 저으며, 카레니나의 말을 끊었다.

난 이미 승격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는 자격을 잃어서, 대행자의 힘을 쓸 방법이 전혀 없는 상태야. 그리고 설령 된다고 해도, 살기 위해 너와 협력할 생각은 없어.

루나로서는, 자신의 존재가 이곳에서 사라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이었다. 그러면 루시아와 알파가 더 이상 자신과 엮일 필요 없이,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언 하나 할게. 공중 정원에서 도와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 여기 사람들은 공중 정원한테 이미 버림받았을 거야.

그들에게는 달 표면과 지구의 얼마 안 되는 목숨보다, 미래의 희망인 영점 에너지 엔진을 보호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일 거거든.

쿠로노는 영점 에너지 원자로와 엔진을 공중 정원에 탑재하고, 은하계를 탐색하려고 한다는 걸, 예전에 아합이 무심코 말한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영점 에너지 원자로, 구조체 개조 기술, Ω 무기, 신형 특화 기체 등과 같은 창조물은 인간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만들어진 희망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희망들이 인간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네가 영점 에너지 엔진을 파괴한다면, 넌 모든 인간의 적이 될 거야.

루나는 비아냥거림도, 분노도 없이, 차갑게 진실을 말했다.

너에게 인간의 그 부푼 희망을 파괴할 용기가 정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