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저 앞에 있어! 영점 에너지 원자로의 노심!
앞으로 갈수록, 전방의 퍼니싱 농도가 점차 높아졌다. 카레니나의 기체는 끊임없이 의식의 바다가 들끓고 있다는 경고를 보냈다. 특별히 설계된 역원 장치가 있었지만, 지휘관의 연결이 없는 상황에서 제공할 수 있는 보호도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퍼니싱의 농도가 높을수록, 카레니나는 올바르게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삐], 저리 비켜!
카레니나는 헤비 해머를 갈고리 사용하듯 휘둘러 눈앞의 마지막 침식체를 걸어올린 후, 원자로 노심으로 가는 길 위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침식체들을 향해 던져 단체로 쓰러트렸다.
그리고 앞으로 도약하더니 달의 저중력을 이용하여 거대한 해머의 질량과 함께 포탄처럼 변해 열린 틈을 돌파시켜 적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중력 제어 시스템 가동.
기체에 있는 중력 제어 시스템은 카레니나의 몸에 엄청난 압력을 가했다. 그리고 카레니나가 반작용력의 충격을 견디기 위해, 두 발을 땅속으로 박아 넣자, 주변의 침식체가 그대로 바닥에 깔리면서, 이상한 모양으로 찌그러졌다.
헤비 해머 전개, 형태 전환.
카레니나가 들고 있던 무기는 끊임없이 변형하며, 중력 압축포의 형태로 전개됐다. 그리고 포구에 중력자가 지속적으로 모이고 있는 걸 선고하는 것처럼, 엄청난 고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전부 저세상으로 보내주마!!
한계까지 압축된 중력자가 방출되는 순간, 공간이 붕괴되면서 주위의 모든 것이 중력의 폭풍 속에서 조각났다.
폭발에 휘말린 통로 전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완전히 막히게 됐다. 이걸로 당분간은 끊임없이 생성되는 퍼니싱과 침식체를 봉쇄할 수 있게 됐다.
크흠.
카레니나는 폭발의 연기와 함께, 원자로의 노심이 있는 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푸른빛을 뿜어내는 원자로 어레이는 거대한 묘비처럼, 인간의 가장 빛나는 역사가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푸른빛 사이에는 퍼니싱의 불길한 진홍빛이 떠돌고 있었다.
퍼니싱! 예상한 대로, 원자로의 노심 안이 농도가 가장 높아.
한 어레이의 뒤에서 연구원 복장의 한 그림자를 발견한 카레니나는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그 연구원 곁으로 달려갔다.
야, 너 괜찮아?
카레니나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자, 연구원의 몸이 쓰러지면서, 가루가 되는 것을 발견했다. 죽은 지 얼마나 됐는지, 알 수조차 없는 시신이었다.
달에는 박테리아도, 곤충도 없었다. 시신을 이 정도로 부패시킬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퍼니싱뿐이었다.
시신의 품에서 공식과 데이터가 적힌 종이 뭉치가 상당량 떨어졌다. 조심스럽게 그중 한 장을 집어 든 카레니나는 "캐논 박사"라는 익숙한 사인을 발견했다.
할아버지의 이름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지?
종이에 끼어 있던, 가벼운 기계 하나가 떨어져 나와, 꽤 먼 곳까지 천천히 날아갔다.
카레니나는 본능적으로 쫓아가,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것은 상당히 오래된 카세트 녹음기였는데, 황금시대에도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골동품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어레이 뒤에 숨어있던 침식체 여럿이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카레니나를 향해 돌진했다.
주위가 전부 원자로의 어레이였기 때문에, 무기를 사용할 수 없던 카레니나는, 가까운 침식체를 힘껏 걷어차는 것만 할 수 있었다.
쳇, 어떻게 여기까지 침식체가 있는 거야!
그 순간, 카레니나는 이 침식체들은 원래 구조체였고, 퍼니싱의 영향을 받아,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러한 구조체의 원체들은 겉으로 보기엔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의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이 녀석들 전부 최근에 제작된 구조체가 아니라, 양산이 시작되기 전의 초기 실험 기체야.
영점 에너지 원자로는 거대한 타임캡슐처럼, 죽은 연구원, 이전의 실험 기체 그리고 이름만 남긴 천재를 먼 과거에서부터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 영점 에너지 원자로가 다시 열리면서, 시간과 함께, 그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구조체의 개조 실험 성공률은 현재 얼마인가? 시뮬레이션 데이터도 같이 집계해 봐.
캐논 박사는 시큰거리는 미간을 문질렀다. 그는 오랫동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위로할 필요 없네. 20%도 안 되지 않나. 다섯 명이 개조 수술을 받는다면, 한 명만 살아남게 된다는 말 아닌가.
캐논 박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수치들이 박사에게 주는 고통이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모든 개조에 실패한 경우는 기본적으로 "역원 장치"라는 부품에서 비롯됐다. 이 장치는 구조체가 퍼니싱의 침식에 어느 정도 저항하고, 침식체로 전락하지 않도록 보장했다.
캐논 박사는 결심이라도 한 듯, 몸을 휘청거리며 일어나, 실험실의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모두 하는 일을 잠시 멈춰봐.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우리는 아직도 역원 장치의 원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양산은커녕, 수술대와 전장에서 더 많은 사람을 죽게 할 뿐이야. 우리가 자랑하는 과학은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됐어.
하지만 구조체의 전장 투입은 퍼니싱에 대항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므로, 우리는 이 난관을 어떻게든 넘어야 해.
캐논 박사의 목소리는 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오늘의 숙제가 무엇인지 발표하는 것 같았고, 연구원들은 그의 말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가 역원 장치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 천재가 남긴 말 한마디뿐이야. 수많은 연구 기관이 퍼니싱에 침식됐고, 대부분 자료는 퍼니싱이 퍼지는 과정에서 소진되고 말았어.
역원 장치의 원리와 구조를 시작부터 이해할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우린 모두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었어. 기껏해야 그 구조를 복제할 뿐, 처음부터 이 기술의 블랙박스를 완전히 열 방법은 없었어.
캐논 박사는 팬으로 화이트보드에 있는 뿔 모양의 역원 장치에 동그라미를 친 뒤, "퍼니싱"이라는 다른 명사를 향해 화살표를 그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정량의 퍼니싱을 주입해야만, 이 장치를 작동할 수 있다는 거야. 우리는 이 소량의 퍼니싱이 항원과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고 추측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고, 얼마나 많은 퍼니싱을 주입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어.
그동안 적잖은 역원 장치들이 설치 직후, 기체가 퍼니싱 침식을 일으켜서, 침식체가 됐기 때문에 말살할 수밖에 없었다.
지상에서는 퍼니싱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연구 조건이나 안정성에 대해선 어떤 보장도 할 수 없어. 그리고 공중 정원에서는 퍼니싱과 관련된 실험을 할 방법이 없을뿐더러, 퍼니싱을 찾을 수도 없어.
캐논 박사는 고개를 저으며, 화이트보드에 점선을 그려, 위쪽에 있는 작은 원에 연결했다.
우리에게는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가 남았어. 바로 달에 있는 영점 에너지 기지야.
자리에 있던 많은 동료가 의심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믿기 힘든 결정이었다.
없으면, 우리가 퍼니싱을 만들면 되지.
캐논 박사의 발언은 대다수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캐논 박사가 영점 에너지 원자로를 가동해, 그 비극을 한 번 더 재연하려는 건가.
물론, 원자로의 노심 사용률을 엄격히 제어한 뒤, 연구에 사용할 극소량의 퍼니싱만을 제작하는 거지.
하지만, 박사 자신도 실행해 본 적 없는 이 이론은 너무 모험적이었다.
맞아. 그래서 이번의 협력 대상은 공중 정원의 의회로부터 자유로운 단체야. 그리고 그들만이 이번 연구 개발을 지원할 능력이 있어.
이번 연구는 퍼니싱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현장에서는 어떤 로봇도 우리를 보조하지 않게 될 거야. 그래서 종이 한 장, 펜 한 자루, 머리 하나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부야.
우리는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 지혜로운 방법이 없는 이상, 답안을 찾을 때까지, 가장 무식한 방법으로 계속 계산하고, 계속 테스트할 거야!
우리는 실험하는 동안 수많은 연산을 해야 해. 오산의 허용 횟수는 0이며, 오류는 죽음과 같아.
우리가 모든 준비를 다 했더라도, 미지의 퍼니싱과 직면하게 된다면, 우리의 준비는 모두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높아. 그럼, 우리의 생명도 끝나게 돼.
생명이 가장 소중한 거니, 모두 신중하게 생각하길 바란다.
결국 캐논 박사는 달을 의미하는 작은 동그라미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놓고, 한쪽으로 물러나 우리의 선택을 기다렸다.
잠시 후, 캐논 박사와 자주 의견이 어긋났던 연구원이 단상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적는 대신, 지우개를 들고, 캐논 박사의 이름 밖에 있는 동그라미를 지웠다.
정말이지. 영감이 그린 동그라미가 너무 작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름을 어떻게 적을 수 있겠습니까?
펜을 들면서 말한 연구원은 캐논 박사가 그린 동그라미 바깥에 세상을 다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연구원이 동그라미에 이름을 적자, 단상 아래에서는 폭소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구원이 들고 있던 펜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동그라미에 적었다.
마침내 내 손에 펜이 넘어왔고, 단상에 올라 이름을 적으면서, 난 캐논 박사의 얼굴에서 뿌듯하면서도, 미안해하는 표정을 봤다.
캐논 박사는 자신의 학생들이 지식뿐만 아니라, 신념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 표정에서 대부분 연구원이 그 먼 달을 떠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캐논 박사님의 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