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먹구름이 갈라지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거대한 회색 물체가 나타났고, 그 위에 그려진 로고가 공중 정원의 소유임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순간, 큰 비행선 위에는 선원이 한 명도 없었고, 허세를 부리는 선장만이 뱃머리에 서서 바람을 맞고 있었다. 결국 비행선은 중력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이 비행선을 혼자서 가동할 수 있을지 몰랐는데, 캐릭터 때문에 배웠던 비행선 조종 지식을 쓸 날이 올 줄이야.
"말션"이였나? 아니면 "서레니티"였나? 아, 오래된 기억에는 항상 편차가 생긴단 말이지.
롤랑은 기억을 더듬어봤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 봐도 주인공으로 뽑히지 않았다는 것만 기억이 났고, 그것은 당연했다. 그때의 롤랑은 천재 아역배우로 불렸지만, 결국 작품에서 유일한 주인공은 될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주인공이 아닐 수 있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진정한 배우는 설령 시나리오와 리허설이 없다 하더라도, 무대에 서면 끝까지 연기를 해야 한다.
오늘 맡은 역할이 구출하러 가는 기사라고 한다면, 발밑에 있는 이 비행선은 아쉬운 대로 준마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음, 기품이 있긴 하네.
롤랑은 품에서 저장 용기를 꺼내 들었고, 용기 속에서는 끊임없이 자세가 바뀌는 살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오늘 내가 받은 시나리오는 동화가 아니라, 공주에게 독 사과를 먹인 뱀에 관한 무서운 이야긴데.
하지만 동화든 무서운 이야기든, 클리셰가 있다면, 지금쯤 제지하려는 추격병이 나타나야 하지 않나?
롤랑의 말에 호응이라도 하는 듯, 비행선의 선체에서 강렬한 진동이 퍼졌고, 뒤따라 방위 시스템의 경보음이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맞아. 그래야지. 위험하게 상승하는 비행선, 갑자기 나타난 흉악한 괴물, 홀로 남은 남자 조연, B급 영화의 팝콘을 부르는 클리셰는 언제나 효과가 있단 말이지.
롤랑은 체인검과 산탄총을 꺼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낙하하는 비행 이합 생물을 향해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학살하는 대상과 학살당하는 대상이 시나리오대로 전개되지 않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