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설비가 정리되면서, 영점 에너지 원자로의 재가동도 완료됐다. 그리고 Ω 무기의 양산이 점차 실현되어, 정비 부대의 작업도 모두 끝이 났다. 그렇게 카레니나와 같이 온 일행들도 달 표면 기지를 떠나야 할 때가 됐다.
카레니나는 마지막으로 몇 달 동안 일해온 장소를 지켜봤다. 낯섦부터 익숙함까지, 이곳의 모든 것이 그녀의 기억에 뚜렷하게 남았다.
왜? 이곳에 미련이라도 있는 거야? 연합 쪽에 전근을 신청해 줄까? 중간에서 소개해 줄 수 있는 녀석을 알고 있어.
바보야, 그런 거 아니거든.
과거 황금시대의 과학자들은 이 영점 에너지 원자로를 처음부터 어떻게 설계하고 건설했을까? 카레니나는 상상할 수 없었을 뿐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인간의 모든 꿈과 희망으로 집결된 기계에서 그토록 큰 감동이 느껴지는 건, 어쩌면 기술자만의 감성일 수도 있었다.
언젠가 우리도 이 영점 에너지보다 더 대단한 걸 만들어 낼 거야!
헐, 아직 잘 시간도 아닌데, 벌써 꿈부터 꾸는 거야?
테디베어도 무의식적으로 카레니나가 바라보는 영점 에너지 원자로 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오직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영점 에너지 원자로 같은 걸 설계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러게요... 과거의 과학자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불쑥 더해져 테디베어와 카레니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저씨, 존재감이 참 희박하시네.
하하, 그런 말 자주 듣습니다.
아합은 헛기침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노력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사실 쿠로노 측에서 여러분을 배웅하는 일을 저에게 맡겼거든요. 배웅하는 김에 혹시나 여러분이 [가져가면 안 될 물건], [남기면 안 될 물건]이라도 있는지 확인차로 나온 겁니다.
쳇, 돌려서 말하는 건 능수능란하네.
양측의 협력은 오늘로 끝났다. 상대방이 돌아선 후 갑작스레 최대의 적이 될 수도 있는 판국에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사람은 없다.
저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요. 그린스 님과 기타 인원은 신형 특화 기체 연구 개발이 완료됐을 때, 공중 정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남게 됐고, 어쩔 수 없이 욕먹는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보다시피 우리 대장님은 쓸데없는 말 몇 마디만 남겼어, 너희 쪽 사람들이 계속 감시하고 있었잖아.
그... 그렇죠.
바로 그때, 쿠로노의 연구원이 아합에게 보고서를 건넸다.
원자로의 효율이 하락됐습니다.
연구원은 카레니나를 포함한 정비 부대 인력들이 근처에 있는 걸 눈치채더니 고개를 돌려 아합을 바라봤다.
괜찮습니다. 수송기가 오려면 아직 몇 시간이 더 남았습니다. 그전까지는 협력 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죠?
아합은 간절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는데 솔직히 거절하기 무안할 정도였다.
미안한데 난 지칠 대로 지쳤어. 하지만 영점 에너지 원자로에 열광하는 마니아가 기꺼이 도와줄 거야.
테디베어는 카레니나를 앞으로 밀어냈고 자신은 구석에 기댄 채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삐], 이 자식이 정말... 나한테 이상한 별명 붙이지 마!
그래도 원자로에 무슨 문제 생기면, Ω 무기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일단 나랑 같이 가서 한번 확인하자고.
카레니나 님이라면 분명 도와주실 줄 알았습니다.
테디베어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카레니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를 보낸 후, 왠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왠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