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19 여명의 경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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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과학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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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체 실험실의 희미한 불빛 아래. 아합이 열심히 단말기의 데이터를 조정하고 있었다. 홀로그램이 투영된 화면에는 순백 구조체의 기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합이 신형 특화 기체의 설계 작업을 맡게 된 후, 그는 계속 이 구조체 실험실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아합은 자기 일에 집중하려고 했으나 미세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개를 들고 전방을 확인했고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다시 일에 몰두했다.

후, 괜찮아, 괜찮아. 펜이 바닥에 떨어졌을 뿐이야.

그의 반응에서 실험실 중앙에 있는 소녀, 루나라고 불리는 승격자를 아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승격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미치광이 집단인 쿠로노 내부에서도 루나에 대한 소개는 하나같이 매우 위험한 존재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는 문득 과거 개조했던 다른 백색 구조체가 첫 테스트에서 자신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일이 떠올렸다.

젠장... 이후로는 하얀 것들과 다시는 엮이지 않을 거야.

그는 단말기에 있는 미완성된 백색 구조체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이 기체를 완성하면, 쿠로노를 그만두든지 해야지.

이봐.

으아아악!

연구개발 작업을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뒤에서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아합은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단말기를 던져 버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날아간 단말기가 천천히 땅에 떨어졌고 마치 달의 중력이 지구보다 훨씬 약하다는 것을 다시 깨우치게 했다.

아합은 일단 단말기가 멀쩡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자신에게 인사한 사람이 누군지 돌아볼 겨를이 생겼다. 카레니나였다.

카레니나 님,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카레니나는 아합을 도와 바닥에 떨어진 단말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다 그 위에 표시된 기체가 눈에 띄었다.

이게 바로 신형 특화 기체의 설계 방안인 건가?

네, 예상한 설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대행자로부터 얻은 자료를 통해, 넓은 범위의 퍼니싱을 기체에 흡수할 수 있으며, 체내에 있는 Ω 무기의 효과를 통해 제거할 수 있습니다.

쿠로노 놈들이 분명히 이걸 기밀로 해서 나한테 숨길 줄 알았는데.

바깥 경비들이 진입을 허락했으니 그건 그린스 님이 카레니나 님의 행동을 묵인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긴 하네. 그 아저씨도 이 Ω 무기 가동을 정비하는 데 우리가 필요했을 테니깐 말이지. 그래도 그것을 굳이 작동시킬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루나는 깨어난 이후,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합이 신형 특화 기체에 필요한 기술 데이터를 묻는 것에도 상당히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닙니다. 필요합니다! 카레니나 님. 가능한 한 자세히 검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모든 공포는 미지에서 비롯되며, 눈앞의 순한 소녀가 언제 살인 괴물로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참나... 이렇게 무서웠으면 그때 왜 업무를 수락한 거야?

이 기체를 사용했던 사람이 과거 제 지인이어서, 가능한 한 그녀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두고 싶습니다. 앗! 어쩌면 그녀를 아실 수도 있습니다.

아합이 신형 특화 기체의 테스트 명단으로 호출했다. 그 위에는 첫 번째이자 유일하게 응답한 인원이 있었는데 바로 그레이 레이븐 소대 멤버 리브였다.

리브라고!? 하지만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아직 지상에 있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어떻게...

쿠로노의 계획은 리브와 그녀의 지휘관을 공중 정원으로 돌려보내서, 리브를 위한 마지막 적응 작업을 하는 한편, 가능한 한 그 지휘관을 치료해서 리브가 신형 특화 기체를 교체할 때,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 지휘관이 제때에 깨어나지 못한다면.

카레니나는 과거 파일에서 봤던 내용을 떠올렸다. 신형 특화 기체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키는데 적합도가 높은 지휘관이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럼 신형 특화 기체의 사용 대상은 예측할 수 없는 의식의 바다 증상을 보였다가, 최대 3시간 뒤 사망하게 될 겁니다.

리브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거야?

카레니나의 질문에 아합은 정중하게 고대를 끄덕였다.

하지만 리브는 타인을 위해 그리고 모든 인간을 위해, 이 "필요한 희생"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보다는 울며 도움을 청하는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아합은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탄피를 꺼냈다. 그것은 한때 그의 나약함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합을 지탱해 주는 작은 용기로 변했다.

그래서 저도 최선을 다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합니다. 쿠로노에서 이렇게 떳떳한 일을 할 수 있는 건 정말 드문 경우거든요.

아합은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이고는 단말기를 닫았다. 그리고 "전 데이터 분석부에 자료를 제출하러 가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카레니나를 혼자 남겨둔 채 자리를 떠났다.

이게 "필요한 희생"인 거야?

카레니나는 그 누구도 작정하고 타인을 희생시키려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다만 어쩔 수 없어서... 방법이 없어서...

인간은 단지 가장 힘든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리브가 아니더라도 루시아가 될 수도 있었고, 비앙카,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어쩌면 카레니나 자신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인류 전체의 책임이라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류는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줄곧 약자로 살아온 인류는 희망을 붙잡기 위해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

인간은 항상 그런 식이야. 희생 없이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지.

카레니나는 하마터면 이 실험실에 공포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

카레니나는 말하고 있는 루나를 올려다봤다. 그윽한 푸른빛에 싸인 순백의 소녀는 체형마저 희미해지는 듯했다.

수많은 인간이 선택의 갈림길에 섰고 운명적인 소수를 희생시켰어. 그리고 그나마 절대적인 이성으로 구축한 과학 덕분에 오늘까지 버틴 거겠지.

그럼 너도 과학에 희생된 소수인 건가?

카레니나는 그린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루나가 침식체로 된 것은 그때 당시 구조체 개조 기술에 결함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구조체 개조 이론을 구축한 사람은 바로 카레니나의 할아버지였다.

과학에 희생된 소수? 나에게 그런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어. 그 남자가 말한 것처럼, 단지 불행일 뿐이니까.

어쩌면 지금의 루나에게 있어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불공평한 운명이든, 자업자득이든, 어떻게 됐든 그녀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에게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너는 인류 이성의 정점을 대표하는 과학기술을 손에 넣었잖아, 과연 그게 희생이 필요 없는 희망으로 탄생할 수 있을까?

카레니나는 아주 어릴 적에 굶주림과 죽음으로 얼룩진 빈민가에 살았다. 그도 한때는 착한 아이가 되어 타인과 어울리려 시도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단순한 싸움으로 돌아갔다.

카레니나는 인류가 발전시키는 과학은 자신이 겪는 싸움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것은 일종의 단순한 파괴 저주에 불과하고 자연을 파괴하고, 지구를 파괴하고 결국엔 자신마저 망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카레니나야! 어서 이것 좀 봐. 오늘은 보름달이 떴구나! 지난번 보름달로부터 정확히 29일 12시간...

29일 12시간 43분이거든. 이건 전에 할아버지가 화를 내면서 나더러 기억하라고 했던 거잖아.

그런가? 하하하,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래도 상관없단다. 내가 잊어버린 지식은 카레니나 네가 기억해 주면 되잖아.

맞다. 내가 아직 기억하고 있는 틈을 타서, 저 달과 토끼에 관한 이야기를 네게 해주마. 옛날 옛적에 행복한 토끼 한무리가 있었단다.

할아버지, 내가 오늘 또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랑 싸웠는데, 왜 뭐라고 하지 않는 거야?

카레니나야, 다른 사람이랑 싸우는 게 재밌니?

싸우다가 맞으면 아프지, 그리고 휘둘렀던 주먹도 아파...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못 참겠어! 애들이 나보고 파괴와 주먹질밖에 모른다고... 할아버지도 나도 모두 미치광이라고 놀려댔어...

싱겁기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달을 보렴. 그게 더 재미있을 거야.

그럼, 여기서 질문! 카레니나는 달이 어떻게 형성된 줄 아니?

달? 달은... 원래 저 자리에 존재했던 거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사실은 아주아주 오래전에, 거대한 운석이 "쾅" 하고 지구와 부딪힌 뒤에, 큰 조각을 만들어 냈고, 그 조각이 결국에 달이 됐거든.

카레니나

그러니까 지금 우리 발밑에 있는 땅이 아주 오래전에는 하늘에 떠 있는 달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거야?

캐논

하하하, 그렇지! 파괴가 없었다면, 달의 탄생도 없었겠지. 대단하지 않니? 그러니 파괴 자체가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야.

어디 달뿐만 이겠어? 카레니나, 혹시 알고 있나? 어떤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최초는 죽은 듯이 고요한 기점이었다고 한단다. 한차례의 거대한 폭발이 있어 아름다운 것을 탄생시켰던 거야. 그러니 폭발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파워인 셈이지, 하하 하하!

카레니나

응. 무슨 말인지 알겠어.

캐논

좋아. 그렇다면 다음 질문!

카레니나

할아버지 잠깐만!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과학 발전에는 항상 미지가 따르지. 진공 영점 에너지의 연구처럼 수많은 재앙을 가져올지도 모르고, 너 같은 "필요한 희생"이 수없이 생겼을지도 몰라.

카레니나는 미소를 지으며 루나의 눈빛을 마주했다.

오늘날의 우리는 아직 부족하고 강력하지 않아. 최첨단 기술자들도 여전히 달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미개하고 우습게 보일 수 있단 말이지.

하지만 우리가 매일 쌓아온 지식은 결코 쓸데없는 게 아니거든. 언젠가는 파괴의 힘에서 새로운 희망을 탄생시키는 과학으로 바뀌는 날이 올 거야.

루나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카레니나는 처음으로 루나에게서 인간과 흡사한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든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집착이 언니랑 정말 비슷하네.

루시아도 분명히 지상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을 거야. 쳇, 난 절대 루시아에게 질 수 없어!

전사들의 전투는 조금씩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지만, 기술자들의 전투는 방금 막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