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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영점 재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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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점 에너지. 그것은 황금시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궁극적인 환상이었다. 그 누구든 영점 에너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주목했다.

그러나 진공 영점 에너지를 연구하는 과정은 항상 수수께끼 같았다. 대부분의 연구 자료는 영점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확장 응용일 뿐이고 에너지 분야의 여러 전문가도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수없는 실패를 겪은 후, 동력 실험실의 대다수 연구원은 인내심과 용기를 잃게 됐고 무거운 분위기가 곳곳을 가득 채웠다.

그러던 와중에 모두 앞에 서서 대담하고 섬세하게 다양한 계획을 조율하며 Ω 파일에 기록된 아틀란티스 원자로에서 일어난 반응을 복원하려고 하는 사람이 단 한 명 있었다.

가상 입자 검사 수치는 정상인데... 그럼 에너지 출력 환경 유지에 문제가 있다는 건데. 이런 [삐!!!], 그래도 안 되네!

카레니나 님은 참... 기운이 넘쳐 보이십니다.

익숙해지면 그만이야... 매번 내가 힘들어 죽을 것 같을 때, 저 녀석의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났는데.

하지만 생각해 보니 저 녀석처럼 지치지 않는 바보만이 최초의 성공을 목격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

테디베어는 일어나 쭈그려 앉았을 때 더럽힌 옷을 털더니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두 손으로 빠르게 단말기를 조작했다.

야, 거기. 가서 진공실 내압을 테스트하고, 교체할 금속 파이프도 가져와, 방금 내가 부러트렸어...

……

하여튼, 저 녀석은 업무 모드에 들어가기만 하면, 상대가 누구든지 상관하지 않는다니까.

카레니나의 명령을 들은 쿠로노 연구원은 아합을 바라봤다. 아합은 명의상 주임이었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우린 지금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 카레니나 님의 계획에 따르도록 하시죠.

과학의 개발 과정은 신비롭고 고급스럽다는 인식을 줄 수 있지만,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의 80%가 결국 쓸모없는 것들로 되돌아가게 된다. 축하할 만한 성공은 수천수만 번의 반복 테스트를 거쳐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결과일 뿐이다.

카레니나가 어렸을 때, 그의 할아버지 캐논은 여러 가지 황당한 실험을 자주 했었는데 가끔은... 아니, 대부분이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또 아주 가끔은 놀랍게도 폭발을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캐논은 혼신이 시커멓게 그을린 채로 하얀 이빨을 드러내 웃음을 짓고 검은 잿더미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문밖으로 나온 적도 있었다.

어린 카레니나는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 잿더미의 윗부분을 살짝 닦아내자, 눈부시게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보았다.

동작 그만! 아무도 움직이지 마!

사람들이 다시 일을 시작하고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카레니나의 이 갑작스러운 포효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고 다들 무의식적으로 하던 일에서 손을 뗐다.

카레니나는 책상 위에 있는 연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것은 점차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달 표면의 중력이 아무리 지구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연필 한 자루가 이유 없이 떠오를 수는 없었다.

테디베어. 어서 기록해. 바로 이거야!

알았어. 알았다고. 기록하고 있어.

카레니나 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영점 에너지 원자로를 원래 장착했어야 할 엔진에 연결해서, 민감도가 가장 높은 감지기로 만들었어.

달 표면 기지의 영점 에너지 원자로는 원래 공중 정원의 예비 에너지원이었고 은하계 탐색에서 꼭 필요한 중력파 엔진을 구동하는 에너지원이다.

이 엔진은 영점 에너지 전용으로 설계돼서 다른 일반 에너지와는 호환되지 않아. 그래서 원자로와 함께 이곳에 남아 있었던 거야.

그렇기 때문에 소량 영점 에너지를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동할 수 있었던 거고.

카레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디베어에게 마지막 명령을 입력하라고 했다. 또렷한 가동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현장에 있던 인원과 물건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치 진정한 우주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건... 우리가 성공했다는 건가요!?

이런 방식으로 가동된 영점 에너지 엔진의 효율은 정상 가동 이론값의 50%에도 못 미치지만, 원자로가 가동됐다는 사실은 분명해.

현장에 있던 모든 연구원이 환호를 보냈고, 쿠로노 연구원이든 정비 부대 멤버든 막론하고 모두 공중에 뜬 채로 유영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하이파이브 하며 나름의 세리머니를 펼쳤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무중력 상태에서 자유롭게 웃고 있는 사람들은 소속된 진영과 입장을 잠시 내려놓고, 연구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기술의 한계를 돌파한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테디베어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곧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영점 에너지 원자로가 가동 성공된 후, 더 큰 문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날이 왔군. 리스트. 혹시 나한테 뭐 이상한 건 없지? 아니면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게 좋을까?

딱히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요.

리스트가 그렇게 대답했으나 그린스는 질리지도 않는 듯 옷깃과 소매를 정성스레 정리했다.

그린스 님, 대형 Ω 무기가 영점 에너지 공급 단말기와 연결됐습니다.

리틀 카레, 영점 에너지 원자로는 정상인가?

카레니나는 구석에 서서 영점 에너지가 주입된 Ω 무기에서 특유의 푸른빛이 조금씩 나타나는 것을 지켜봤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대기 상태에 불과했다.

흥, 너희들 머리보다는 정상이겠지.

하하하하, 그럼 충분하다는 건데. 그런데 말이야, 전에 너희 측에서 우리 협력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었나?

세계 엔지니어 연합이 중립적인 기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린 쿠로노와는 협력할 생각 없었거든.

세계 엔지니어 연합이 중립 입장이었기 때문에 의회와 쿠로노가 일정한 협력 관계를 이룬 후 카레니나를 협력자로 선택했던 것이다.

우리가 영점 에너지 원자로 재가동에 협력하는 건, 지상 전투를 지원할 수 있는 Ω 무기의 대량 양산을 실현하기 위한 것뿐이야. 그러니까 착각하지 마.

하지만 이합 생물과 침식체도 멍하니 Ω 무기에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야. 절망적인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우리에게 더 결정적인 돌파구가 필요해.

그린스는 쿠로노와 의회가 최근에 합의한 계획서를 카레니나의 단말기로 전송했다.

신형 특화 기체라면... 확실히 Ω 무기의 힘을 최대로 사용할 수 있어. 그리고 원체는 대행자의 데이터로 제작하면 될 거야.

카레니나는 곁눈질로 깊은 수면에 빠진 듯한 루나를 바라봤다. 푸른빛이 비치는 그녀의 여린 얼굴에서 승격 네트워크의 최상위 존재인 대행자의 모습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과거 우리가 루나를 이용하고 본떠서 제작한 원체의 기본 성능은 일반 구조체보다 높았지만, 신형 특화 기체에 필요한 퍼니싱을 체내로 흡수하는 기능을 갖추지 못했어.

이런 [삐], 어쩐지 순순히 원체를 내주면서 개조하라 더니, 결국 실험 데이터를 얻으려고 그랬던 거였네.

마음대로 생각해. 난 그냥 우리가 이 보물 상자에서 보물을 아주 조금만 찾았지만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너에게 알려주는 거야.

그린스가 카레니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시종일관하게 사람을 거스르게 하는 미소를 지었다.

넌 과학자로서 이 보물 상자 안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그린스는 아합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와 연결된 펄스 에너지 공급 장치가 가동되기 시작했고 그녀에게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입했다.

창백한 소녀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천히 눈을 떴다. 현장에 있던 모두가 긴장한 채 손을 무기에 올려두었다. 분명 Ω 무기라는 안전 보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인간들에게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게 했다.

루나

……

그린스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루나의 어떤 반응을 바랐지만 루나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린스

네 이름이 루나였나? 혹시 아직 날 기억해?

루나

……

그린스

그날 난 네가 추악한 침식체에서 지금과 같이 결백하고 흠잡을 데 없는 고급적인 존재로 탄생하는 걸 지켜봤었지. 그날 이후로 난 너와의 재회를 매일 상상했어.

루나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눈빛에 미세한 변화가 따랐다.

네가... 날 침식체로 만든 건가?

당연히 아니지. 네가 침식 당한 건 사고였어. 아니, 필요한 희생이라고나 할까.

당시 구조체 개조 기술은 캐논 박사의 연구 때문에 성공률이 크게 향상됐지만, 여전히 결함이 존재했어.

"필요한 희생".

그래? 너희들은 그걸 "사고"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루나는 승격 네트워크에 연결을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075호 도시에서 있었던 행동 때문에, 승격 네트워크는 그녀를 위협성이 있는 이족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체내에 퍼니싱이 있음에도 루나는 침식체가 되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루나가 아직 실격자로 판정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는데 그것도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너희 인간들은 내게서 뭔가를 얻고 싶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난 일반 구조체와 다를 바 없다. 퍼니싱을 흡수할 수 있는 조금의 힘만 있을 뿐.

루나가 속박된 오른손을 살짝 들어 올리자, 손바닥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번쩍이다가 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모든 병사를 긴장한 상태로 무기를 들게 했다.

어떻게 퍼니싱이 전혀 없을 수가 있지...

루나는 체내에 있는 퍼니싱을 제외하면, 이곳 대기 중의 퍼니싱 농도가 0에 가깝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지금 달에 있으니 너희 같은 승격자가 흡수할 수 있는 퍼니싱은 없다. 만약 도망가려 한다면, 네 뒤에 있는 대형 Ω 무기를 가동해서 너와 퍼니싱을 함께 매장해버릴 거다.

난 도망칠 생각 없어. 루나라는 존재가 사라진 거나 다름없으니 내가 돌아갈 곳은 없거든.

루나는 뒤편에 있는 Ω 무기를 힐끗 보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다시 눈을 감았다.

인간이 벌써 이런 것까지 할 수 있게 된 건가?

하지만 무의미해. 인간의 파멸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니.

075호 도시 이후로 루나는 승격 네트워크를 위반하는 결정을 내렸다. 인간의 적이었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언니를 선택했고, 언니가 믿는 그 인간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족"으로 돼버렸고 머무를 곳이 잃었다.

그러니, 그 사람처럼 추악하게 발버둥 치도록 해. 인간들아...

루나의 마지막 한마디는 냉담했지만 적개심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말투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기대가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