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19 여명의 경계 / Story
약 3개월 전, 혹은 정체불명의 인간형 생물체가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에 나타난 지 1주 후였다.
공중 정원에서 내려다본 하늘에는 비행 이합 생물의 위협이 곳곳에 존재했다.
공중 정원은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이 지옥과도 같은 항로를 다시 뚫으려고 했다. 하지만 에이스급 조종사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압도적인 적군의 힘을 상대할 수 없었다.
나사 하나, 통조림 하나라도 지상으로 보낼 수 있다면, 지옥과도 같은 이 상황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수많은 구조 수송기의 조종사들이 뜨거운 피를 품에 안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때 아무렇지 않게 활보했던 푸른 하늘 속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비행 기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됐고, 공중 정원의 기술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새로운 답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삐], 분명히 설계대로라면, 엔진의 출력이 최소한 지금의 150%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왜 지금은 이 정도의 가속 효율밖에 나오지 않는 거야!
과학 이사회가 Ω 무기의 연구 실험을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비행 이합 생물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비행체 엔진 개발 임무가 정비 부대로 넘어갔다.
세계 엔지니어 연합 출신인 카레니나는 에너지 동력 영역에서 연구와 개발에 관한 많은 경험이 있었기에, 적임자임은 틀림없었다.
야, 너 신입이지? 이전의 조립 기록 좀 보여줘 봐.
사실, 저 정비 부대에 배치된 지 2년이 넘었습니다.
그래? 왜 본 적이 없는 것 같지. 됐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빨리 조립 기록 가져와!
사실 이건 부대장이...
볼 필요 없어. 내가 네 설계도에서 "터무니없는" 부품을 몇 개를 규격 부품으로 교체하라고 지시했어. 그래서 출력 효율이 떨어진 거야.
정비 부대 개발 공장 구석에 쌓여 있는 컴퓨터 어레이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곰! 돌! 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목소리가 들리는 구석 쪽으로 카레니나는 포효했다. 개발 공장의 사람들은 놀랐지만, 곧바로 서로 어깨를 으쓱이며, "또 시작이네"라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일하러 돌아갔다.
우리가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상에서 더 죽어가는지, 알고는 이러는 거야?
카레니나는 빽빽한 스크린을 밀어내고는, 뒤에 숨어있던 테디베어라고 불리는 소녀의 귀에서 이어폰을 빼냈다.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 맞지?
너처럼 이 말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우리도 이곳에서 밤낮으로 연구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잘 알고 있어.
그럼, 네가 대답해 봐. 왜 그 부품들을 교체한 거지?
이유는 아주 간단해. 난 아직 죽고 싶지 않거든.
테디베어는 무표정한 얼굴로 코드를 입력한 뒤, 카레니나 앞에 있는 스크린을 가리켰다.
네가 설계한 엔진은 최대 효율로 계속 작동해야 하는데, 조립할 때 조금의 오차라도 있다면, 공중 정원에 네 머릿속에 있는 구멍과 비슷한 크기의 구멍이 생기게 될 거야.
카레니나는 스크린을 테디베어 앞으로 돌려 그 위에 있는 수치를 힘껏 가리켰다.
큰일도 아니네. 그럼, 실수하지 않으면 될 거 아냐!
네가 가공하고 조립한 부품의 정확도가 어떤 수준까지 올라갈지는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이곳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두 번째 카레니나 대장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자동화 공작기계를 설계해서 양산할 시간도 이젠 없어.
사령부가 우리에게 내린 목표는 수송기야. 고속비행에 불꽃 효과가 딸린 값비싼 관이 아니란 말이야.
음.
테디베어의 말은 카레니나가 한동안 반박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리고?!
이 엔진은 원가가 너무 높아.
어?! 원가? 지금 그걸 생각할 상황이야!
제작비는 그렇다 치고,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이 엔진은 현재 우리 수송기 엔진의 3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점이야.
이 수송기는 지상에 가면,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거야? 그리고 공중 정원에는 일상적인 운영 에너지 외에 수송기가 대량으로 왕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많지 않아.
시간이 더 있었다면, 에너지 소비를 최적화할 수 있었을 거야.
우리가 무한한 에너지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나도 마땅한 다른 방법은 없어.
영점 에너지. 인간이 그걸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가능할 거 같은데.
실제로 이 무한한 에너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전쟁의 상황은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쟁의 원흉은 영점 에너지 원자로 가동으로 인한 퍼니싱의 폭발이었다.
카레니나는 고개를 돌려 지구의 상황을 투영한 전술 패널을 봤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한시가 급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으아아아아, 짜증 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고.
그렇게 서둘러 결론 내리지 마. 어쩌면 원하는 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눈앞에 있을지도 모르잖아.
카레니나가 고개를 돌리자, 자신에게 말을 건 남자가 방정맞게 웃고 있는 게 보였다.
거기 아저씨는 누구야! 이곳은 정비 부대의 개발 공장이라고, 일반인은 관람할 수 없어. 다쳐도 책임지지 않을 거야.
참 신경 쓸 것도 많네. 아직 아무것도 개발하지 않은 거 아냐?
너 뭐라고 했어!
카레니나, 뒤에.
카레니나는 테디베어가 가리키는 쪽에서 하산과 니콜라가 그 남자를 따라 들어오는 것을 봤다.
하산 의장. 니콜라 총사령관. 신형 엔진 개발의 진행 상황을 묻고 싶은 거라면,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어.
그게 아니지. 지금 필요한 건 수송기 엔진 같은 낡은 게 아니라,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인 "무기"지.
그의 횡설수설을 무시하면서, 화를 삼킨 카레니나가 하산과 니콜라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소개하지. 이쪽은 그린스. 굳이 말하자면, 군부의...
말문이 막힌 듯한 하산과 니콜라는 눈치를 보며, 목청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어갔다.
자문가라고 할 수 있겠군. 지금 너와 논의해야 할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 때문에 왔네.
너희들은 자리를 좀 비켜주지.
테디베어는 카레니나를 곁눈질로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무슨 말썽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며, 다른 대원들을 데리고 공장을 빠져나갔다.
그럼, 바로 내 요구 조건을 말하도록 하지. 꼬마 아가씨.
내 이름은 카! 레! 니! 나! 야!
알았어. 실례했군. 그럼, 리틀 카레.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아틀란티스라는 지상 연구소에서 가져온 Ω 파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겠지?
그 말을 듣자, 카레니나의 눈빛은 날카로워졌다. 눈앞에 있는 평범한 남자가 왜 현 단계에서 소수에게만 공유된 기밀을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카레니나가 이 파일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하산과 니콜라는 과학 이사회가 이론 검증을 하는데, 협력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최고 등급의 기밀 정보라고 당부까지 했었다.
알고 있나 보군. 하하하, 정말 거짓말에 서툴구나.
[삐!]
니콜라는 그린스가 카레니나에게 한 대 얻어맞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참고 흥분한 카레니나를 간신히 막아 세웠다.
내가 설명하는 게 좋겠군. 과학 이사회의 노력으로 테스트 형 Ω 무기의 연구 개발은 끝났지만, 여기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Ω 무기의 제작에는 반드시 영점 에너지 원자로를 사용해야만 해.
현재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영점 에너지 원자로는 오직 하나밖에 없어.
지상과의 수송을 회복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지상의 사용 가능한 영점 에너지 원자로를 찾아 Ω 무기를 제작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영점 에너지 원자로가 지구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달 표면 기지의 원자로라면, 확실히 가능해.
하지만 그곳은 과거의 재난 때문에, 얼마나 봉쇄됐는지 알 수 없고, 누구도 그곳이 어떻게 변했을지 몰라. 그러므로 영점 에너지 원자로에 관해 전문적으로 연구를 한 기술자가 가서 재가동하는 것이 급선무야.
그래서 우리 정비 부대를 찾은 거구나? 너희들 머리를 정말 잘 굴리네.
그린스는 웃으면서, 쌓인 먼지나 기름에 상관없다는 듯, 아무 공작기계 위에 앉았다.
이건 에너지 영역을 연구하는 모든 학자에게 인간 역사에 이름을 남길 꿈같은 기회야.
카레니나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건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고, 그녀의 할아버지처럼 평생을 따라다니는 악몽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난 그런 거에 관심 없어. 네 거짓말을 잘 들어주는 바보나 가서 찾아봐.
그럼 내가 다른 세뇌, 아니, 말을 바꿔서 설득해 보지. 네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팀을 구해서 영점 에너지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일을 맡길 거야. 정말 그래도 돼?
과학 이사회라 하더라도 풍부한 현장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공중 정원 전체에서 자신보다 적합한 사람은 없다고 카레니나는 확신했다. 이건 그녀의 자신감이며, 자랑이었다.
아저씨, 지금 설득하는 게 아니라 위협하는 거 같은데.
그녀는 오래간만에 침묵했다가, 하산을 바라봤다.
하산 의장. Ω 무기가 정말로 저 뭣 같은 퍼니싱을 물리칠 수 있는 거야?
적어도, 지금까지는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지상에서 퍼니싱이 사방으로 퍼져 지옥으로 변하자, 공중 정원은 인간의 숨통을 틔워주는 희망이 됐다. 침식체가 지상의 방어선을 산산조각 내자, 구조체 스킬은 인간이 반격할 수 있는 희망이 됐다.
그리고 지금, Ω 무기의 연구는 이 지옥에 대항하고, 인간 생존의 희망이 되려고 한다. 정말로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을까?
알겠어. 정비 부대에서 이번 의뢰를 수행하도록 하지. 하지만 2가지 조건이 있어.
첫째, 남은 대원들은 신형 수송기 엔진을 계속 연구하게 해줘. 이 녀석들이 만든 물건은 확실히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야.
둘째는.
카레니나는 잠시 멈췄다가, 자신의 요구를 계속해서 말했다.
테디베어는 며칠이나 있었는지 알 수 없던 공장에서 나왔다. 그리고 잠시 숨이나 돌리려고 했던 그녀는 예상 밖의 사람을 보게 됐다.
오랜만이네~
열정적인 노르만을 못 본 척한 테디베어는 바닥에 앉아서 휴대용 단말기를 열고는, 미완성 코드를 계속 입력해 갔다.
노르만도 웃기만 하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곁으로 가, 일하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여기가 네가 일하는 곳이구나? 어때, 크리스티나, 일은 할 만해?
이름을 들은 테디베어는 눈썹을 찌푸리면서, 손동작을 멈췄다.
크리스티나라는 사람은 여기 없어. 내 이름은 테디베어야, 당신에게 기억력이라는 게 있다면, 내 이름은 들어봤을 텐데. 노르만.
오랫동안 불러왔던 이름이잖아. 오빠인 나도 그렇게 쉽게 호칭을 바꿀 순 없지.
테디베어는 단말기 스크린을 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딴 곳에 있었다.
왜 노르만 가로 돌아가는 걸 선택한 거야?
하하하, 아마도 어마어마한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서일지도 모르지.
그런 건가? 정말 축하해 줘야겠네. 그럼, 오늘 이 구질구질한 곳에 오게 된 것도 가업 때문이겠네.
Bingo~ 그래서 내 여동생이 나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어딜 가든 항상 말하고 다닌다니까.
테디베어는 까칠하게 비웃는 표정을 짓고 다시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휴대용 단말기의 울퉁불퉁한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빅토리아는 잘 지내고 있지?
그럼, 당연하지. 적어도 더러운 일을 하는 너나 나보다 훨씬 낫지.
실수로 옷소매에 기름때가 묻은 테디베어는, 잘 차려입은 노르만을 보고 담담하게 웃었다.
날 볼 때마다 언니랑 놀고 싶다고 그렇게 난리를 친다? 그러면 언니가 일하느라 바빠서 못 오는 거라고, 나중에 시간 날 때, 와서 놀아줄 거라고 말해주고 있어.
와~ 넌 정말 쓰레기구나. 이젠 어린아이한테도 거짓말을 하고.
노르만은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하하하"라고 과장해서 웃었다.
아직 내 질문에는 답해주지 않았잖아, 테디베어. 그래서 일은 즐겁냐고?
테디베어는 다소 의외였다는 듯, 망설였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럭저럭 괜찮아. 그래도 너만큼 즐겁진 않아.
다행이네.
노르만은 예전과는 다른 담담한 미소를 지었고, 미소가 사라지자, 다시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됐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