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즐거운 토끼 한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매일 밭에서 자란 당근을 먹으며 걱정 없이 살고 있었죠.
어느 날 밤, 그들은 달빛에 물든 당근이 아주 달콤하게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어요.
"수시로 달콤한 당근을 맛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달을 붙잡으면 되겠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지?", "끌어당겨서 붙잡자!", "밧줄로 묶어서 함께 달을 붙잡자!"
달콤한 당근을 먹을 생각에 휩쓸렸던 토끼들은 서로 협력해, 말린 당근 이파리를 꼬고 꼬아서... 아주 긴 밧줄로 만들었어요.
"영차~ 영차~" 마침내 토끼들은 달을 붙잡게 됐고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하늘 높이 떠 있는 밝은 달을 힘껏 당겼어요.
"우린 곧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거야!", "우린 곧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거야!"라고 작은 토끼들은 이렇게도 환호했어요.
그러면 과연 그들은 결국에 끝없이 이어지는 달콤한 당근을 먹었을까요?
흠... 그건 말이죠.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공중 정원으로 돌아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생명의 별 주치의가 한 말에 따르면, 리브가 식암 기체로 변경한 후로부터 지금까지 혼수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리브의 의식 조각을 되찾을 때, 너무 많은 오염이 들어왔던 것 같았다. 리브를 소환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기체를 변경하면서, 의식을 잃게 됐다.
당시, 머리에 그렇게 심한 타박상을 입고도, 깨어날 수 있었던 건 정말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이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생명의 별에 소속된 의사는 차트에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었고, 그 위에 적혀진 다소 긴 기록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아직 당신의 마인드 표식에는 오염이 남아있고, 몸에는 크고 작은 오래된 상처가 아직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허가하기 전까지는 퇴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재활실에 남아서 당분간은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부상이 좀 나아졌다고 혼자 돌아다닐 생각은 하지 마세요. 아시겠죠?
마지막에 불안해하는 의사의 시선 때문에 잠깐 머쓱해졌다. 그때, 바로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사의 조언대로, 수석님은 좀 더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원하시는 일이 있다면, 제게 말해주세요.
시몬은 읽고 있던 책을 덮고는 온화하게 나를 바라봤다. 그 또한 상처투성이였지만, 안색은 괜찮아 보였다.
네, 오늘 검사가 끝난 후, 내일이면 퇴원할 수 있을 겁니다. 사령부에서는 준비되는 대로 우리 블랙 램 소대에 새로운 멤버를 보충해 준다고 했습니다.
시몬의 성격은 다른 군인처럼 강인하지 않아서, 군대에 남아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이토록 혹독한 전투를 치렀다면, 사령부에 전역을 신청했더라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하, 저 같은 걸림돌은 지휘관으로서, 확실히 믿음직스럽지 않은 것 같네요.
시몬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는 책을 만지작거렸고, 이전과는 다른 단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건 파오스 학교에서 쓰던 교재입니다. 솔직히 공부할 땐, 열심히 책을 보는 편이 아니어서, 성적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부터 전술 하나, 상황 하나를 더 공부한다면, 미래에 수석님처럼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네. 감사합니다.
네. 당연하죠!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요? 방금 의사가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잖아요.
난 시몬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온몸에 전달되는 아픔을 참으며, 생명의 별 구조 센터의 복도에서 한 걸음씩 걸었다.
역시 수석님! 매우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게는 들립니다.
그 전투 이후, 루시아와 리는 의식의 바다가 퍼니싱에 침식됐을 정도로 기체가 심하게 파손됐지만, 복원과 테스트를 거쳐 지금은 모두 회복됐다. 현재는 다른 소대와 협조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제일 걱정되는 건 리브였다. 지휘관이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켜 주지 못한 상태에서 신형 특화 기체로 변경해, 의식의 바다에 매우 심각한 피해를 보았고, 현재는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거기에 미지로 가득한 기체가 치료에 어려움을 더했다.
수석님, 모두 도착했습니다.
응급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섰다. 두꺼운 유리창의 안쪽에는 수많은 의료기기에 둘러싸인 리브가 있었다.
리브가 모든 사람을 살렸으니, 분명히 괜찮아질 거로 생각합니다.
리브의 그 각오가 없었다면, 루시아, 리, 전투에 참여했던 모든 인원과 인간들은 재난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지금 숨 쉴 기회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를 구한 리브는 이곳에서 깊은 수면에 빠지게 됐고, 그 외에 모든 사람은 기도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
수석님이 혼수상태에 빠져있을 때도, 우리는 모두 지금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친 리브의 곁에 있다고 해도, 재난은 사라지지 않기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무언가 해야만 했다.
네. 수석님은 오후에 재활치료도 받아야 합니다. 이번에도 놓치면, 그 의사들이 난리를 칠 거 같습니다.
시몬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발걸음을 멈춰 섰다.
수석님은 혹시 정비 부대의 "카레니나"라는 구조체를 아시지 않습니까?
……
……
……?
미안하군. 노르만 광업 그룹의 대표.
레오나르도·노르만입니다. 노르만으로 부르시면 됩니다. 제 성이 아주 유명하니까요.
노르만 광업 그룹은 황금시대에 오랜 시간 동안, 지표면 채굴 사업의 대부분을 장악했고, 공중 정원이 철수한 인간들을 데리고 우주로 나간 뒤, 그룹은 지표면 사업을 모두 포기하고, 목표를 위성인 달로 바꿨다.
달의 풍부한 헬륨-3 매장량 덕분에, 공중 정원은 오랜 시간 동안 일상생활에서 소모하는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거기에, 거래 물품으로서, 지표면의 아딜레 상업 연맹 등과 공중 정원의 필수품을 거래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상에 대한 익숙함이 그룹을 예술 협회의 중요한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게 했다.
노르만 의원. 지금은 매우 중요한 회의 중이니, 이곳에서 이야기를 읊어줄 필요 없네.
아, 다들 너무 진지하셔서, 이야기라도 들려드리면, 분위기가 좀 풀릴까 했습니다.
다른 부서의 의원석에서는 탄식 섞인 비아냥거림을 대놓고 노르만에게 쏟아냈지만, 그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아마 이런 상황에 익숙한 것 같았다.
예전의 노르만 광업 그룹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무엇 때문에 오늘 괴팍하기로 소문난 그룹의 장남을 의회로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니콜라가 한숨을 내쉬자, 하산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꼈다.
그럼, 그 이야기의 끝에는 토끼들이 달을 끌어당겨 왔나?
아, 그거 말입니까? 아무래도 토끼다 보니,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토끼가 달을 묶은 것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노르만은 니콜라의 말을 무시한 채,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당근만 생각하던 토끼들은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렇게 달에 끌려가 공중으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결국 달 표면에 착지할 수밖에 없게 됐고, 토끼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럼, 뭐 어떻습니까? 토끼들은 자연스럽게 달에 있다는 것을 걱정하지 않게 됐고, 자신들이 정말로 달을 잡아당긴 줄 알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결국, 그들도 행복한 토끼들일 뿐이었던 겁니다.
넌 인간이 그 바보 같은 토끼 같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아닙니다. 그건 그냥 오래전에 제 고향에서 떠돌던 동화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토끼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르만은 우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그의 이상한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게 교양 있는 모습이었다.
노르만 의원, 이야기 잘 들었네.
우리 집 여동생들도 제가 재미있게 이야기한다고들 합니다.
하산은 예의상 웃은 뒤, 돌아서서 텅 빈 의회의 로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참지 않겠다던 의원들이 점차 조용해졌다.
고맙군. 노르만 의원. 우리의 경직된 사고를 조금은 풀어준 것 같군. 그럼, 다시 의제로 돌아가지. 인간 역사상 가장 끔찍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것일세.
의회 로비의 투영 스크린에는 이합 생물이 전 세계적인 이변으로 변하면서 발생한 피해가 표시됐다.
신형 특화 기체가 전투에 투입된 뒤, 인간형 생물체와 퍼니싱의 넓은 범위의 침식에 대항할 수 있었고, 모처럼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줬어.
하지만 신형 특화 기체의 개발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가 존재하는 상황이야. 특히 안정화에 관한 연구는, 미래의 우리가 퍼니싱으로부터 지구를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짓게 될 매우 중요한 사항이 될 거야.
니콜라가 하산과 눈을 마주치자, 바로 하산이 주제를 이어받았다.
이번 재난은 지상으로 내려간 집행 부대의 멤버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줬고, 많은 소대를 공중 정원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했네.
그들은 인간의 최전선에서 갑작스러운 재난에 맞서 싸우기를 선택했고, 그들 때문에 우리는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어.
의원들은 침묵했다. 일부는 생사의 아픔을 느끼며, 슬픈 표정을 지었고, 또 다른 일부는 다음 전투가 그들의 모든 것을 재앙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그 속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손을 들고 일어섰다.
(이 사람은 외교원의 멤버인 쿠로노의 그린스 쪽 사람인데.)
하산은 니콜라와 눈빛을 교환하며,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는 그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외교원의 리스트 의원. 발언해 보게나.
리스트라는 이름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든 스크린에 일부 데이터를 입력한 뒤, 모두가 볼 수 있는 투영 스크린에 동기화했다.
군 사령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과거 전투 손실 통계에서 이전 전투의 집행 부대 손실이 유독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상, 현재 전투력으로는 광범위하게 퍼진 지상의 이합 생물 세력을 처치하기는커녕, 퍼니싱에 의해 침식된 보육 구역 대부분의 탈환하는 것과, 끊임없이 진화하는 퍼니싱 이합 생물들의 손에서, 공중 정원의 수호도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리스트는 잠시 멈춰 서서, 회의장을 둘러봤다. 그리고 침묵의 힘이 모두에게 스며들도록 했다.
사령부의 전투 지휘와 집행 부대의 작전 효과에 대해 비난할 뜻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치열한 분투에도 불구하고, 퍼니싱에 대항하는 전투는 여전히 막대한 피해를 본 상황입니다.
그렇습니다. 전투는 우리가 보게 되는 단순 기록된 통계 숫자보다 훨씬 더 잔혹하며, 각 집행 부대의 구조체 대원과 지휘관은 지구 탈환의 사명을 지켰지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적과 마주치게 되자, 허무하게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전사이자, 우리와 같은 지구의 아들로서, 그들도 인간의 미래를 품에 안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구 탈환 전투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넌 수많은 사람이 이 때문에 지급한 대가를 부정하는 건가?
니콜라는 이 남자가 근거 없이 의회 사람들을 선동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면서, 상대방의 눈을 신중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비장의 카드를 분명히 손에 쥐고 있을 것이라는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전 결코 지구를 탈환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우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과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미래 또한 그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로 향하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우리가 전투를 포기하고, 퍼니싱이 계속 지상에서 확장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지상에 남아 있는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이 공중 정원도 온전치 못하게 될 거네. 그 누구도 완전히 진화된 퍼니싱 이합 생물과 침식체가 이 외로운 배를 잠식하지 않아야 한다는 보장은 할 수 없으니까.
공중 정원은 인간이 행성 간 여행의 시작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초광속 우주 이민함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외로운 배가 아닌, 먼 곳으로 항해하는 거대한 배입니다.
니콜라는 이것이 비장의 카드라면, 너무 순진한 것이라며, 웃기 시작했다.
네가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 지금의 공중 정원이 일반 에너지만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원래 탑재하려던 영점 에너지 엔진이 모든 재앙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걸 잊지 않았겠지.
만약...
리스트의 무거운 목소리에 이어, 사냥감의 꼬리를 문 독사처럼, 니콜라의 발언이 바로 이어졌다.
만약 영점 에너지의 실용화가 더 이상 헛된 꿈이 아니라면 어떠시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고, 현장에 있던 모든 의원이 그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발언 질서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리스트에게 "영점 에너지"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다그쳤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군의 비밀 작전 중에, 이젠 비밀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 아틀란티스라는 이름을 가진 영점 에너지 연구 도시에서 파일 하나를 찾아왔습니다.
리스트는 스크린에 표시된 내용을 아틀란티스 인원의 마지막 순간과 바꾼 Ω 파일로 전환했다.
이 파일에는 영점 에너지 원자로를 특정 조건에서 작동시키면, 퍼니싱을 "흡수"할 수 있는 역장이 생성될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이걸로, 우리는 인간형 생물체에 대항할 수 있는 Ω 무기를 탑재한 신형 특화 기체를 제작할 수 있었지.
신형 특화 기체의 제작 계획은 군과 쿠로노의 협력을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네. 하지만, 어쩌면 그 위대한 연구 인원들의 연구 성과에는 또 다른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표시된 내용을 다음 페이지로 전환했다.
연구원들은 실험을 통해, 영점 에너지 원자로가 퍼니싱을 발생시키는 과정을 재현했으며, 소중한 데이터를 축적해, 다음 사람이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안타깝게도 연구자들은 마지막까지 퍼니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찰하지 못했지만, 영점 에너지 원자로가 실행될 때의 파라미터를 Ω 파일과 함께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힐다도 그의 말에 담긴 주요한 의미를 알아챘다.
그 말인즉, 연구원들이 퍼니싱의 폭발 없이, 영점 에너지를 가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건가?
정확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점 에너지 원자로의 노심을 재가동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될 것입니다. 지금 지구로부터 363300km 떨어진 달에서 인간의 미래를 밝히는 마지막 횃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의원들 모두가 말하기 시작했고, 거의 동시에 그리 멀지 않은 달을 바라봤다.
저중력과 우주 환경에서의 영점 에너지 원자로 작동 상황을 시험하기 위해, 공중 정원 제작 시기에 가장 중요한 영점 에너지 원자로, 엔진의 제작 그리고 조립을 달 표면 기지의 동력 실험실에서 진행할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영점 에너지 원자로와 퍼니싱 폭발의 연관성이 알려진 뒤, 달 표면 기지와 그 안에 가장 중요한 영점 에너지 원자로는 반 폐기 상태로 남아 있게 됐다. 그러다, 결국 달 표면에서 채굴 사업을 하는 노르만 광업 그룹에 사용권과 관리 업무가 넘겨지게 됐다.
(이게 이번 회의에 특별히 노르만 그룹의 장남을 초대한 이유였군.)
니콜라의 매서운 눈빛이 느낀 노르만은 앞에 놓인 스크린의 스위치를 만지작거리다,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노르만 그룹의 아낌없는 도움 덕분에, 앞서 말씀드린 아이디어를 검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시험 운행에 성공해, 사람들을 고무시킬 만한 데이터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스크린의 사진이 다시 바뀌면서, 일련의 데이터 자료와 눈부신 푸른빛을 뿜어내는 사진 한 장이 나타났다. 그건 바로 영점 에너지가 생성될 때의 상징적인 광학 반응이었다.
테스트 데이터에 따르면, 달 표면 기지 원자로가 아틀란티스 원자로의 작동 데이터를 시뮬레이션하게 되면, 실제 측정된 영점 에너지 효율은, 정상 작동 이론값의 45.37%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공중 정원 작동과 항행은 충분히 유지됐다는 점과 가장 중요한 부분인, 현장에서 퍼니싱의 폭발 현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즉.
우리는 영점 에너지 엔진을 공중 정원에 다시 탑재하고,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이용해 공중 정원의 이민함 기능을 복구시킨 뒤, 지구를 떠나 별의 바다로 떠날 수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퍼니싱 오염으로 위험해진 지구에 더 이상 집착할 필요 없이, 새로운 여정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절망에 가까운 현 상황에선 매력적인 선택임은 틀림없었다.
그 데이터들이 정말로 믿을 수 있다면 말이지. 노르만 그룹이라고 해도, 소속 연구자들이 영점 에너지나, 이민함 제작에 대한 경험이나, 이해될 만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난 이 보고서의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니콜라가 노르만 그룹의 연구원이라 말했지만, 달 표면에 있는 건, 쿠로노 소속의 과학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저희는 공중 정원과 영점 에너지 원자로에 가장 익숙한 전문가의 협력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영점 에너지의 연구를 원활히 재가동할 수 있었고, 그 사람은 니콜라 사령관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니콜라는 자신이 쿠로노를 이용하는 쪽인 줄 알았지만, 그제야 쿠로노에게 자신이 이용당하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카레니나.
네, 정비 부대에 예속된 카레니나는 공중 정원의 설계 구조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영점 에너지 엔진에 관한 지식은, 수년 전에 후속 연구가 중단되긴 했지만, 카레니나가 이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연구자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일 결정적인 점은, 공중 정원 멤버인 카레니나의 신상에 대해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은하계 탐색 재가동을 이제 하나의 의안으로 발의할 만큼의 설득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떠십니까? 하산 의장님.
하산은 고개를 끄덕이고, 회의장을 둘러봤다.
그럼, 지금부터 리스트 의원의 의안을 표결에 부치도록 하지.
토론의 시간은 별로 없었고, 현장에서는 인간이 영점 에너지 원자로를 재가동할수록, 심각해지는 지상의 전장을 떠나, 미지의 우주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압도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나도 찬성 표를 던지지. 하지만 감사원의 최고 담당자로서, 미리 말해두지. 네가 공모한 이번 프로젝트는 외교원 의원의 직권을 넘어선 행위이므로, 사후에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할 거야.
리스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힐다를 넘어 하산을 바라봤다.
당연히 저는 어떠한 처벌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리스트 의원의 제안은 찬성 98.5%, 반대 0%, 기권 1.5%로 찬성이 최소 통과 기준보다 높으므로, 해당 제안이 통과됐습니다.
그럼 내가 선포하지.
이때, 의회 스크린에 세리카로부터 긴급 통신 요청이 들어왔다. 하산은 몇 초간 머뭇거렸지만, 통신을 받았다.
하산 의장님! 방금 달 표면 기지로부터 긴급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희가 사전에 판단한 결과로는, 지금 바로 처리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발신자가 누구지?
카레니나입니다!
하산은 얼굴을 찡그리며, 리스트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무표정한 얼굴에서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바로 재생해.
세리카가 화면을 연결하자, 의회의 스크린이 상당히 흐릿한 모습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목소리로 카레니나인 것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
침식은, 무조건, 곧 지상과, 닥치게 될, 그래서.
곧, 내가, 영점 에너지 엔진, 파괴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