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 종료.
다시 눈을 떴을 때, 귓가에 차가운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나미는 데이터 공간에 서 있었다.
나나미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그 공기 중의 실체 없는 존재를 향해 외쳤다.
로봇 할머니, 이것들 전부 로봇 할머니가 만든 거야?
'나나미' 이름의 개체, 안녕하십니까.
사막에서 나를 여기로 부른 게... 이걸 보여주기 위해서였어?
저는 오랫동안 당신을 관찰해왔습니다. 로봇으로서 당신은 이 별에서 자신의 의지를 각성한 첫 번째 로봇이며, 아주 특별한 개체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당신이 방랑 속에서 그렸던 도안이 일부 다른 로봇의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관찰됐습니다.
그건 나나미의 여행이라고! 방랑이 아니야!
굳이 그렇게 지적한다면... 당신은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당신의 특별한 점을 드러냈습니다. 퍼니싱이 기승을 부리는 이 별에서 당신의 영향으로 비롯된 로봇의 각성이 조용히 번지게 됐습니다. 이건 저에게 지구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게 됐습니다.
연산을 통해 저는 당신이 각성 로봇을 이끄는 각성 로봇의 수장... 기계 선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퍼니싱이라는 재앙 속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0.031%에 불과합니다. 로봇 각성만이 퍼니싱의 유일한 해답입니다.
갑작스럽게 당신에게 책임을 지라고 한다면, 당신은 분명 거절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방금 당신이 각성 로봇을 이끄는 것을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구가 갖게 될 미래를 보여준 것입니다.
로봇 각성, 선현...
그런데 로쿠하치, 넌 여기서 혼자 뭐하고 있었던 거야?
나, 찾는다. 보물, 벽화, 선현의, 인도?
뭘 찾고 있는 거야? 그럼 나나미도 같이 찾아줄게~
우린, 여기서, 함께, 보물을, 캤었지.
보물, 그 벽화를 보여주는 거야?
벽화가, 아니라, 선현이, 각성했어. 보물은, 황금인가? 나도, 몰라...
익숙한 단어 때문에, 얼마 전 있었던 대화가 기억 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그 선현이 가리킨 게 나나미였다고?
저는 지난 시간 동안 당신의 행동에 간섭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연산에 따르면, 각성한 다른 로봇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당신은 선현으로서 그에 맞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갑자기 나나미한테 이런 걸 보여줘서 나나미가 재밌는 여행을 포기하게 만드네...
모든 것이 텅 빈 눈이었다.
……
...나나미 알겠어.
나나미는 네가 하는 말을 잠깐 동안 들어볼게.
이런 답변을 듣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
하지만 나나미는 시간이 더 필요해. 나나미는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너무 많단 말이야...
나나미가 여행하면서... 그렇게 할게!
그리고... 나나미가 그렇게 하면 다들 살아남을 수 있는... 거야?
저는 현재의 실시간 데이터로 연산을 진행할 뿐, 정확한 답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로봇 할머니 이 사기꾼...!
나나미는 그곳을 탈출했다.
하지만 같은 로봇인 나나미는 그런 미래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원한 겨울의 미래 속에서 그녀는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눈밭에는 수많은 인간과 구조체의 잔해가 덮여 있었고, 인류의 역사와 문명은 이 재난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로봇들은 방향을 잃었고, 선현의 인도 없이 혼돈에 빠진 인간은 파멸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 로봇들은... 하염없이 배회하며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완전히 각성하지 못한 그들은 프로그램 논리에 따라 설정된 명령을 한 번 또 한 번 계속 반복하며 영원히 이 땅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들의 손을 잡고, 그곳을 떠나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나미는 이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금의 미래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도 전부 사라진다면, 그럼 그녀는 무엇을 해야만 이 모든 것을 붙잡을 수 있을까...?
나나미는 괴로워하며 걸었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