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봐봐. 이 로봇 몸에 이상한 게 걸려 있는 것 같아.
나나미는 로봇에서 뛰어내려 도로변에 뻣뻣하게 서 있는 '여행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계 몸에 걸려 있는 옷감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포대를 메고 있는 것 같은데...
나나미님, 그런 정체불명의 음식은 먹지 않는 게 좋습니다.
나나미가 열린 가방에서 알 수 없는 물건을 꺼내 입에 넣자, Sniper-PK43은 소리를 내며 저지했다.
쩝쩝... 음, 맛이 좀 이상한데...
먹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확실히 인간의 음식이야! 이곳의 특산품으로 지휘관에게 가져가야겠어.
그 인간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자. 이쪽 방향이야!
침식체는 음식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 이 아이는 어쩌면 음식을 구하기 위해 나왔는데, 도중에 사고를 당해서 돌아가지 못한 걸지도 몰라... 음식이 필요한 다른 인간들이 집에서 이 아이를 기다릴지도 몰라.
전투로 너덜너덜해진 검은 가방을 파워의 무기 위에 걸었고, 나나미는 가방의 지저분한 천에 얼굴을 댔다.
...그리움이야. 나나미는 그리움을 느꼈어.
인간의 형용사를 사용해서 말하자면, 지금 당신의 이런 모습은 무당 같습니다.
됐어! 너 왜 아까부터 자꾸 비꼬는 거야!
저를 제작한 인간은 외로웠기 때문에, 제 성격을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어쨌든, 나나미가 특별 사건의 냄새를 맡았으니, 우리 조사를 시작해 보자!
나나미와 Sniper-PK43의 수색으로, 근처 눈밭에서 몇 가지 단서를 찾았다.
눈을 조금 쓸어내리니, 깊지 않은 곳에서 흩어져 있는 어린이 장난감들과 사탕 종이를 발견했다.
그 흔적을 따라 전진한 나나미는 파워를 조종해 무너진 건물 지붕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둘 앞에 짧고 어두운 계단이 나타났다.
오오...
파워는 따라올 수 없어!
파워를 옆에 멈춰 세운 후, 나나미와 Sniper-PK43은 앞뒤로 좁은 입구로 들어갔고, 계단 끝에는 문 하나가 있었다.
바로 들어가실 겁니까?
나나미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하고는 문을 살짝 두드렸다.
안녕? 나나미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대답이 없으면 나나미는 들어간다.
대답이 없으니 들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문에는 기계식 자물쇠가 하나 있었지만, 약간의 조작만으로 나나미는 쉽게 풀 수 있었다. 그리고 나나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기는 지하에 지어진 육아소처럼 보이는데...
방 안에는 희미한 빛만 있었다. 기초적인 생활 시설과 철제 침대가 여러 개 놓여 있었고, 좁고 어두웠지만 깨끗했다.
조금 전에 누군가가 여기를 청소한 거 같아.
이봐~ 거기~ 누구 없어?
나나미는 이상한 가락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방 안을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도망칠 겁니다.
나나미의 뒤를 따라 들어온 Sniper는 열원 스캐너를 사용하여 넓지 않은 공간을 스캔했고, 구석에서 몇 가지 희미한 열원을 발견했다.
나나미님, 제가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숨바꼭질은~ 나나미가~ 제일 잘한다고~ 아악!!
철제 침대 뒤쪽으로 다가간 나나미가 껑충 뛰어오르며 손으로 가슴을 쳤다.
나나미는 너무 깜짝 놀랐어... 하마터면 새 옷이 찢어질 뻔했잖아!
...바로 당신 앞에 있습니다.
Sniper-PK43이 빠르게 앞으로 다가가니, 철제 침대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는 것은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한 로봇이었다. 그녀는 녹슨 부엌칼을 양손에 쥔 채 바닥에 주저앉아 나나미와 Sniper-PK43을 두려워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Sniper-PK43은 데이터베이스에서 그 로봇에 대한 검색을 빠르게 진행했다. 하지만 그의 데이터베이스 정보는 지금껏 업데이트되지 않은 데다, 인터넷도 연결을 할 수 없어서 그녀가 황금시대에 생산된 육아 도우미 로봇과 비슷한 모델인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후우... 괜찮아. 나나미는 화나지 않았어. 무서워하지 마.
나나미는 상대방을 놀라게 한 것이 걱정된 듯, 몸을 구부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약간 간격을 두고 낯선 로봇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나미의 동작이 정말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 여전히 떨고 있는 눈앞의 로봇은 움켜쥐었던 식칼을 살짝 내려놓았고, 시선은 나나미와 Sniper-PK43의 사이를 끊임없이 움직였다.
다... 당신들은 누구시죠...
나는 나나미야. 내 뒤에 있는 친구는 꼬마 저격수라고 해. 나나미는 지금 인간을 찾고 있어. 혹시 인간을 본 적 있어?
인... 간이요?
마... 맞아요... 우리 아이를... 당신들이 좀 도와줄 수 있나요...?
어, 여기에 아이도 있어? 왜 내가 못 봤지?
Sniper-PK43이 '머리'를 흔들어, 인간의 존재 흔적이 감지되지 않았음을 알려줬다.
'아이'를 언급하자, 눈앞의 로봇 표정이 부드러워지면서 슬퍼졌다.
제가 그를 숨겼어요. 밖은 온도가 너무 낮고, 침식체도 있어서요... 그가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원래 마리아가 그날 그에게 음식을 구해주기 위해 나갔지만... 지금까지 마리아는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게다가 그가 계속 춥다고 저에게 말해서 혼자 둘 수는 없었어요... 제가 꼭 그를 돌봐야만 했거든요...
이거 네 거야?
나나미는 아까 침식체의 몸에서 떼어낸 가방을 들어서 앞에 있는 로봇에게 보여줬다.
네... 맞아요! 이건 마리아가 가져갔던 가방이에요! 마리아는요? 음식은요?
네가 말한 그 마리아라는 동료는 이곳을 이미 떠났어... 하지만! 마리아가 엄청 많이 노력해서 구한 음식들이 여긴 안에 들어있어... 이거 나나미가 돌려줄게.
낯선 로봇의 손에 있던 식칼은 땅에 떨어졌고, 그녀는 덜덜 떨며 그 가방을 받은 뒤 남은 음식들을 확인했다.
앗, 나나미가 실수로 한 입 먹긴 했는데... 그래도 괜찮을 거야!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일어서서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지만, 로봇인 그녀는 흘릴 수 있는 눈물이 없었다.
이건 나나미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그럼 지금 네 아이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어?
네, 아마 낮잠을 자고 있을 거예요... 집에 남은 식량이 얼마 없는데, 당신들이 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았으면 저도 나가서 식량을 찾았어야 했을 거예요.
로봇은 진짜 주부처럼 앞치마에 손을 문지른 뒤, 나나미와 Sniper-PK43을 데리고 방의 구석으로 갔다. 그곳에는 그녀가 천과 나뭇가지로 친 작은 간이 천막이 있었다. 그녀는 누렇게 변한 천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려서 안의 모습을 보여줬다.
안에는 아기 침대와 침대보다 훨씬 커 보이는 두꺼운 카키색 외투를 입은 그림자가 웅크린 채 누워있었다.
……!
Sniper-PK43이 말하기도 전에, 나나미는 얼굴을 덮고 있는 황백색의 천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그러나 둘 앞에 펼쳐진 모습은 그들이 예상했던 장면이 아니었다.
으악...!
천 밑의 인간 시체를 본 나나미는 손을 떨었다. 목도리와 외투가 한쪽으로 미끄러지면서, 남성의 시체가 이상한 자세로 아기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나타났다.
이건...
쉿, 쉿, 아이가 아직 자고 있어요.
이건... 아이가 아니잖아!
나나미는 깜짝 놀라며 인자한 얼굴의 로봇을 돌아봤다.
오랫동안 공격 모드를 취하지 않았던 Sniper-PK43은 순식간에 공격 모드를 가동했고, 그의 총구는 그 낮선 로봇을 겨눴다. 순간, 인간 여성의 얼굴을 한 로봇이 이상하고 끔찍하게 보였다.
당신 무슨 짓을 한 겁니까? 그를 죽인 겁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잘 있잖아요. 생명 신호도 감지되고요...
로봇의 얼굴에는 일그러진 당혹감이 감돌았다. 그녀가 아기 침대 위에 있는 외투를 들춰내니 두꺼운 천 속에는... 죽은 지 오래돼서 움츠러든 차가운 시체의 품속에 어린 새 몇 마리가 조용히 서로를 기대고 누워 있었다.
그의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저한테 춥다고 말해서...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찾아보기도 했어요...
얼마 전이 정확히 며칠 전입니까?
모... 모르겠어요.
눈앞의 '여자'는 이런 질문을 처음 접한 듯, 갈수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정성껏 보호하고 있는 아기 요람을 바라보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제가 이렇게 했다고요...? 그가 찾아왔을 때는 아주 어두운 밤이었어요... 문 두드리는 인간을 본 지가 언제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죠... 큰 부상을 입은 그를 저와 마리아가 줄곧 간호했어요...
나중에, 나중에는 어떻게 됐더라? 저는 아이를 돌보면서, 그도 잘 돌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다음 날 밤, 그가 갑자기 춥다고 말하면서도 몸은 계속 뜨거워지고 있었죠.
어디에서도 약을 찾을 수 없었어요... 저는 그가 졸리다고 말해서, 밤새도록 그를 안아줬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어요.
로봇은 멍하니 자신이 두 손을 바라보았다.
내가 뭘 했죠...? 그가 돌아오길 바랬는데, 왜 그를 잘 돌보지 못했을까요. 그를 잘 돌봤어야 했는데, 그는 아직 어리고 연약했는데.
로봇은 비틀린 통곡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는 게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울음'이 그녀의 프로그램 논리에 담겨 있지 않은 듯, 본능적으로 인간을 모방해 목이 쉬고 귀에 거슬리는 울음소리를 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를 안고 창가에서 얼마나 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끝내 그를 잃었고, 모든 의미도 잃었어요.
그러다, 그의 몸에서 다시 한 번 생명의 징조를 느꼈어요...
그건 눈보라 속에서 갈 곳이 없는 새였을 것이다. 우연히 이 육아소에 들어와 좁은 공간을 맴돌다 지친 새는 모든 힘을 잃고 따뜻한 천 속에 멈춰서 인간의 몸 위에 둥지를 틀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자'는 가슴 앞의 옷을 힘없이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으며, 그 속의 영혼을 치려는 듯 두드렸다.
제가 뭘 한 걸까요... 왜... 이건 대체 무슨 느낌이죠...
...이런 일이 있었군요.
건물에서 떨어진 후, 그의 제작자는 죽지 않고 여기까지 왔었다. 어둡고 좁은 이 육아실이 인간의 마지막 귀결점이 되었다.
……
나나미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았다.
그랬구나...
나나미는 바닥에 주저앉은 로봇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번에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볍게 토닥였다.
……
뒤이어 은발의 소녀는 바닥에 있는 조약돌을 주워서, 벽에 무언가를 한 획 한 획 그려나갔다.
뭐 하시는 겁니까?
나나미는 대답 없이 열심히 벽에 그림을 그렸다. 잠시 후, 벽에는 난해한 기호들로 구성된 도안이 나타났다.
이건 무엇입니까?
여성 로봇도 고개를 들고, 벽에 걸린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기에 인간이 새가 되어, 날아가는 모습을 그린 거야.
나나미는 여성 로봇의 손을 잡았고,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 인간도 네가 걱정되니깐, 새가 돼서라도 널 보러 올 거야... 그러니 자신을 더 이상 여기에 가두지 마.
하지만 저는 뭘 해야 하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아이들을 돌보는 거예요.
아니... 네 마음을 어루만져 봐.
나나미는 여성 로봇의 손을 잡고 그녀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난 여기에서 슬픔을 느꼈어. 네가 괴로움을 느꼈다면, 기쁨, 설렘, 사랑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네가 이 세상에서 그 인간을 따르는 것처럼, 따를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야.
로봇은 나나미의 동작에 따라 소녀를 바라봤다. 실의에 빠진 듯한 눈은 '계시'라도 받은 듯, 물빛이 반짝였다.
너 자신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것을 찾아봐.
고요함 속에서 새들의 울음소리가 지하실에 울려 퍼지자, 여성 로봇이 가볍게 노래 한 구절을 불렀다.
끝없이 변하는 사막 평원을 날아... 분노한 높은 산의 고개를 넘어...
거센 바람과 비를 뚫고, 그대 곁으로 가네...
눈이 어느새 또 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창백한 하늘은 가루가 되어 대지를 향해 정면으로 쏟아냈고, 그렇게 모든 것을 가렸다.
나나미는 그 눈 속에 서 있었다. 로봇의 튼튼한 몸이 나나미를 받쳐 들었지만, 세상의 압박 속에서 해보지 못했던 무력함을 경험했다. 나나미는 귀 기울였지만, 온 세상에서 심장 박동 소리가 더 이상 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바람의 스스슥거리는 소리만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나나미...
어쨌든, 우리는 확실히 그를 찾았습니다.
나나미는 로봇에서 뛰어내린 뒤, 걸어와 손에 든 녹음기를 들어 올렸다. 육아소를 떠나기 전, 그 로봇은 녹음기를 그녀에게 건네주며, 인간이 항상 지니고 다니던 물건임을 알려줬다. 그녀의 두 눈은 Sniper-PK43을 조용히 주시했다.
여기에 분명 어떤 정보들이 있을 거야... 들어볼래?
Sniper-PK43은 조용히 받아들였고, 나나미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어... 여기는 오자키다.
그 속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음, 소대가... 스스슥... 주둔지에... 스스슥... 도착한지 21일이... 지났다. 난 지금 몇 가지 일을 일지에 기록하려 한다.
남성의 목소리는 전류 노이즈가 섞이고 왜곡되어, 메시지가 띄엄띄엄 들렸다.
극한이 확산하여, 지구에 유례없는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다행히 기후와 환경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퍼니싱은... 줄어든 것 같다... 인류는 아직 희망을 찾고 있다.
첫 번째 메시지는 여기서 끝났다. 녹음기 화면에는 남은 시간 12:37:21이 표시되어 있었다.
나나미는 계속해서 재생을 눌렀다.
오늘은 26일째 되는 날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침식체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길 끝에서 멈춰있던... 스스슥... 찾았는데,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Sniper-PK43은 바로 인간의 메시지에 자신이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녹음기에서 재생되고 있는 피곤한 목소리와 자신의 메모리에 저장된 목소리를 연결하려 하자, 알 수 없는 서글픔이 한없이 그를 사로잡았다.
35일.
나는 오늘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봤다. 온도 때문인지 콘크리트에 화학반응 같은 것이 일어났다. 원래... 스스슥... 목적없이 순찰을 돌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머지않아 그 건물의 긴 창문이 깨져서, 아래 인도를 향해 수직으로 떨어졌다.
곧이어 보이지 않는 손에 떠밀린 것처럼, 그 건물은 블록처럼 내 눈앞에서 무너져 내렸고, 난 너무 놀란 나머지 방호복을 입고 달리기 시작했다. 방호복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멀리 도망쳐야만 했다. 거리 곳곳은 광풍이 몰고 온 파편들로 가득 찼지만, 다행히 날 덮치지는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당시 이곳의 사람들은 이 건물을 짓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대자연은 순식간에 그것을 되찾았다. /n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황금시대의 육아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자고 쉬었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행크와 다른 사람에게 가져갈 물자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이곳의 유리창은 모두 망가졌지만, 방에는 여전히 거주자가 있었다. 난 두 개의 둥지를 창턱에서 발견했는데, 새가 날아와 창턱에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들은 음식과 털을 물고와 뼈와 깃털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이 방에는 여전히 생기가 있었다.
짹짹...
새의 울음소리가 녹음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래. 착하지. 나중에 또 너희들 보러 올게. 그때에는 캔 요리하고, 남은 국물을 조금 가지고 올게.
내가 그 육중한 기계를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자비에의 도움 덕분이었다.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그 기계에 인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탑재해 달라고 자비에한테 부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말투가 소나와 닳았다. 하하...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소나가 함께 있다고 생각하자.
나는 그것을 나 대신 우리 주둔지의 가장 동쪽에 배치시켜서, 감시와 동시에 떠돌아다니는 침식체를 제거시킬 계획이다.
행크의 극한증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아무래도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그곳에는 생명의 별이 있어서 그를 돌봐줄 수 있을 것이다.
행크가 철수할 때까지 버티지 못했다. 정말로 너무 슬프다.
자비에도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곳에 남은 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퍼니싱 생물이 이런 기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최전선의 상황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어서, 상부에 신청해 극한의 영향이 가장 큰 구역으로 이동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간 부분에 긴 공백이 있었고, 그중에는 지지직거리는 부분이 섞여 있었다. 나나미는 빨리 감기로 되돌려, 그 알 수 없는 부분들을 다시 들었고, 쉰 목소리로 부르는 몇마디 가사가 띄엄띄엄 들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은 강과 산을 넘어, 한없이 넓은 바다가 스쳐간다.
나무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어두운 숲속을 지나.
입을 다물게 하는 고요한 산골짜기에 날아올라.
그대 곁으로 가네…
……
...얼마 전, 그 선배가 사망했다는 최전선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 전사의 시신은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영원히 지구상에 남게 됐다.
지구에 주둔하면서, 나는 많은 문명의 부서진 조각들을 보았다.
황량한 도시에 새들이 이동하면서, 야수의 흔적이 잇달아 나타났고, 동물들은 이런 환경에 점차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었다. 인간이 남긴 흔적이 지구의 흉터가 됐고, 자연은 이를 복구하고 있었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파오스 수업 당시… 교수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황금시대의 과학자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는 라디오와 TV 방송을 통해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광활한 우주를 향해 한없이 뻗어가다 보면 어느 별의 지혜로운 생물체가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문명입니다.' 와 같은 메시지를 보낼지도 모른다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인류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사회의 과학자는 그 전파들이 2광년이 지나면 영원히 노이즈로 변할 거라고 계산했다. 계산이 정확하다면, 우리의 전파는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신성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1만 년 후, 우리가 이 별에 살면서 찬란한 문명을 창조했다고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강철은 이미 녹슬고, 콘크리트는 부서졌고, 책은 썩어버렸다.
[player name] 선배께서 말씀하셨지. 모든 이야기에 다른 면이 있다고.
'생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유연하다. 내가 더 이상 싸울 수 없어도 희망은 계속 이어지고, 만물은 흥망성쇠 할 것이며, 생명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나는 여기에 속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도 만물의 일부이기에, 내가 사라졌다 해도 생명의 변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 살기에 적절하지 않은 행성이 돼버렸다고 판단을 한 공중 정원은 철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남아서 생명의 연속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늘에는 날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나는 이미 날았다.
남은 시간: 00:00:00.
녹음은 이렇게 끝이 났고, 그 스스슥거리는 전류 소리는 동화의 끝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차가운 설원의 끝자락에 자리한 도시 변두리에서, 자홍색으로 얼어붙은 반원 모양의 차가운 태양이 가라앉고 있었다.
몽롱한 세상 속의 무언가는 나나미를 손쉽게 끌어내렸고,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은 소녀가 만들어낸 그 판타지 스토리를 산산조각 냈다.
[player name]...?
소녀는 메시지에서 단 한 번 등장한 그 이름을 낮게 반복했고, Sniper-PK43은 그녀의 표정을 볼 수도, 감정을 판단할 수도 없었다.
제가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나미님.
우리는 이제 자유로워졌습니다. 인간이 없으면, 우리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녀가 한 말이 정확합니다.
소녀와 함께 길을 걸어온 로봇은 그렇게 말하고, 망설임 없이 돌아서서 떠날 준비를 했다.
어디로 가려는 거야?
나나미는 그를 잡고 싶었고, 두 명의 로봇은 기로에 마주 섰다. 그들 사이에 얼음 협곡이 있는 듯, 맹렬한 눈보라가 그 둘 사이를 지나갔다.
저는 저의 제작자 행방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단 건 이제 저와 관련된 인간은 세상에 없으니, 우리의 협력 관계도 끝나는 겁니다.
나나미를 혼자 두고 가겠다는 거야?
저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계속 근무할 겁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미 떠났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인간이 설정한 명령을 계속 수행하는 것뿐입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혼자가서 하시면 됩니다.
만약, 만약에 진짜라면, 그렇다면...
소녀는 눈을 닦은 뒤 얼굴을 들었다. 소녀의 두 눈을 본 Sniper-PK43은 눈앞의 소녀는 자신의 모든 스토리를 알고 있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나나미는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어.
...당신의 스토리가 좋은 스토리가 되길 바랍니다.
Sniper-PK43은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저 멀리 떨어진 지평선을 향해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