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고 문밖의 홍채 인증이 방문객의 이름을 알렸다. 잠시 후 기계식 밸브가 열리며 힐다가 함교에 들어와 하산과 니콜라 앞에 섰다.
어때, 찾았나?
각 데이터에 따르면 이중합 모체는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 중앙의 40호 여과탑에 존재해. 아니면 예전에 40호 여과탑이 존재했던 곳이라고 말해야겠군.
예전?
응…… 자세한 건 직접 확인해 봐.
힐다는 말을 마친 뒤 보고서를 함교 사무용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보고서 표지의 고위험 표시를 보고 하산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도 이전에 고위험 표시가 찍힌 보고서가 루나와 관련된 보고서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산이 보고서를 펼치자 풀리아 삼림 공원의 영상이 투영되었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지평선으로 이어진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뒤에는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넓은 면적의 숲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긴 했지만 하산이 놀란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풀리아 삼림 공원 중앙에 있는 거대한 나무로 쏠렸다. 자연의 초록색과 퍼니싱을 상징하는 빨간색이 그 나무 위에 덮여 있으며, 비틀어진 나뭇가지가 그 근처를 휘감아 원래 그곳에 있어야 할 40호 여과탑을 대신했다.
감사원은 이를 본 뒤 즉시 영상을 과학 이사회에 보내 분석을 의뢰했어.
분석 결과에 따르면 40호 여과탑 외면에 덮인 것들은 이합 생물이 삼림 공원의 식물을 모방해 자연적으로 진화된 것이며, 얼마 전에 그곳을 점거한 것으로 밝혀졌어.
삼림 공원 내 통신 교란으로 인해 나머지 영상은 도요새 소대 지휘관인 해리조가 직접 찍었고, 삼림 공원에서 벗어난 뒤 업로드한 거야.
도요새 소대는 40호 여과탑의 상황을 다시 전달한 후 신중하게 40호 여과탑을 향해 탐색하며 나아갔다.
처음에는 조사에 큰 차질이 없었지만 소대가 점점 깊이 들어가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각 방향에서 풀리아 삼림 공원으로 들어가는 소대원이 모닥불, 인간 발자국, 청소부의 옷가지를 발견했다.
이건…… 청소부들이 어떻게 미수복 여과탑 근처에서 나타날 수 있지?
아직 모르겠어. 삼림 공원에서 인간이 활동한 흔적을 발견했는데 그중 몇 군데의 흔적은 잘 보존된 걸 보면 청소부가 얼마 전에 그곳에 들어갔고 그 당시에 여과탑이 이중합 모체에 의해 점령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야.
인간 활동 흔적을 따라 계속 전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청소부의 망토를 두른 몇 명의 그림자가 소대 앞에 나타났다.
이곳은 매우 위험하니 제자리에서 가만히 있어주십시오. 저희가 당신들을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도요새 소대의 지휘관이 그림자를 향해 소리쳤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소대의 구조체들이 서로 눈을 맞춘 뒤 무기를 들고 조심스럽게 그림자를 향해 다가갔다.
마침내 구조체가 그림자 앞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인간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인 것을 알게 됐다.
괴물 몸의 망토는 입었다기보단 그들의 썩은빠진 몸에 그냥 아무렇게나 걸려 있었다.
그들은 돌아서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흰 뼈를 으스러뜨려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심장과 같은 붉은 구체가 힘차게 뛰고 있지만,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연약한 골격은 분명히 충격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심장 주위 골격이 부서졌고, 이윽고 그들 자신에게 짓밟혔다. 그 후 구체에서 다시 새로운 골격이 형성되어 구체 주위를 덮으며, 분쇄와 재생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들의 몸 뒤에는 매끄럽고 투명한 ‘관’이 달려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관 내부에 가느다란 혈관이 가득 차 있어서 마치 탯줄 같았다.
탯줄에 묶인 인간형 생물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팔다리를 어설프게 움직이며 귀를 찢는 듯한 울음소리를 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괴물들은 이합 생물이야. 과학 이사회는 일시적으로 ‘인간형 변종’이라고 부르고 있어.
인간형 변종의 출현은 위험한 신호야. 이합 생물이 지구 생태계의 자연적인 진화를 본떠 이미 ‘인간’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지.
이합 생물의 진화 속도가 우리의 예측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어.
고대 유인원이 인간과 유인원으로 분화하는데 수백만 년이 걸린 한편, 이합 생물이 걸린 시간은 그에 비해 한순간에 일어났어.
순식간에 적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했어.
그럼 다음 순간에 적은 무엇으로 진화할까?
……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질문이지만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였다. 이렇게 빠른 변화라면 미래의 적이 어떤 존재가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세 사람의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차가운 영상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상 속 인간형 변종은 망토 에서 썩은 손을 뻗어 앞에 있는 구조체를 가리켰다.
그들의 입이 어설프게 열리고 비틀린 소리를 짜냈다.
……이곳은 매우 위험하니…… 제자리에서 가만히 있어주십시오. 저희가 당신들을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이곳은 매우 위험하니…… 제자리에서 가만히 있어주십시오. 저희가 당신들을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부자연스러운 억양이지만 눈앞의 인간형 변종은 어린아이가 1~2년에 걸쳐 습득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손에 넣고 있는 것이다.
그 찰나, 그들의 망토에서 붉은 입자가 뿜어져 나왔고, 구조체들의 역원 장치에서 귀청이 찢어지는 알람이 울렸다.
눈앞의 너무나 충격적인 광경에 몇몇 병사들이 뒤로 비틀거리며 무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하지만 군인인 이들은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아무리 소름 끼치더라도 그것들이 인류와 적대적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공격!
도요새 소대 지휘관은 즉각 대원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순식간에 맹렬한 총성이 터져 나왔고 빗발치는 총알이 인간형 변종의 몸에 박혔다. 인간형 변종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길로 뛰어들었다. 총알이 그들의 몸을 산산조각 냈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전진했다.
홍수처럼 삼림 공원 사방에서 인간형 변종이 쏟아져 나와 도요새 소대를 덮쳐왔다. 병사들이 하나둘씩 부상을 당하고 소대의 화력도 점차 약해져 갔다.
수적 열세에 직면한 도요새 소대는 어쩔 수 없이 일단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영상은 도요새 소대가 황급히 후퇴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하산은 보고서를 덮고 관자놀이를 꾹꾹 주물렀다.
불행 중 다행은 아직 늦지 않은 것 같아. 인간형 변종은 40호 여과탑 근처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그들의 정보는 이미 지상에 있는 각 소대와 공유한 상태야. 과학 이사회도 영상을 분석하여 인간형 변종의 추가 정보를 얻으려 하고 있어.
중요한 건 우리의 다음 결정이야.
인간형 변종을 해결한 뒤에야 이중합 모체를 직면할 수 있어. 즉 이중합 모체 고위 개체의 샘플을 얻으려면 우린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감사원은 이번 임무에 우주 무기 사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봐.
하지만 우주 무기를 직접 사용한다면 고위 개체 샘플 회수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 샘플이 부족하면 Ω파일의 실현이 최소 40% 지연될 거야.
빠르게 변하는 지상에 있어 그건 너무 긴 시간이야.
맞아. 그렇기 때문에 우주 무기는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해.
Ω파일은 이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거야. 그런 결과라면 위험을 감수하고 시도할 가치가 있어.
집행 부대를 파견해 우선 이중합 모체를 처치하고 샘플을 회수시키도록 하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예상했던 것처럼 그들은 이번 임무에서 빠져선 안 되는 인물들이야.
다른 인원도 뽑아야 하는데 자네는 누가 적임이라고 생각하나?
하산이 니콜라를 바라봤다. 니콜라는 잠시 생각한 뒤 한 이름을 말했다.
한스.
그의 능력이 이번 임무에서 반드시 필요할 거야.
특화 기체를 가진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이중합 모체를 겨냥한 공성차라면 한스는 공성차를 모체 앞에 세워 적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선봉이라 할 수 있지.
삼림 공원에서는 공중 정원과의 통신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지상 부대에 실시간으로 작전 지시를 내릴 수 없어. 그러므로 지상 부대는 전세를 읽는 능력과 임기응변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해.
우주 무기를 사용해 이중합 모체를 파괴할 것인가 아니면 전력을 다해 모체를 처치하고 샘플을 회수할 것인가. 살아남은 청소부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라는 희망을 존속시킬 것인가.
모든 문제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결정에는 업청난 압박이 따를거야. 전장에서 그 부담을 견딜 수 있는 지휘관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한스가 그 중에 한 명이라 할 수 있어.
황금시대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른 그의 전쟁 경험은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많아. 한스는 우리를 대신해 지상에서 최고의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야.
하지만 그의 건강 상태가 너무 안 좋아졌어. 풀리아 삼림 공원에서 살아서 나오기 힘들어 보여.
Ω파일은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고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방금 말하지 않았나?
……
좋아, 하지만 내가 일단 그와 얘기를 해봐야겠어.
세리카, 한스를 함교로 불러줘.
한스가 함교 중앙에 똑바로 서 있었다.
그와 하산의 대화는 불과 몇 분간 이어졌지만 마치 몇 세대를 넘나드는 듯한 느낌을 줬다.
대화의 끝이 보이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은 침묵에 빠졌다.
한스는 자세를 단정히 하고 경례한 뒤 모두의 목을 억누르는 침묵을 먼저 깼다.
책임지고 명령을 완수하겠습니다.
……비록 이 명령이 자네를 희생시킬지라도.
군인의 생명은 인류의 재산입니다.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이 제가 평생 추구했던 소망입니다.
한스의 눈빛은 하산의 질의에 흔들리지 않았다.
알겠다. 공중 정원 소대를 자네에게 일임하겠네. 명단을 정리한 뒤에 니콜라와 힐다에게 공유해 주면 되네.
이번 임무의 핵심인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현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리와 리브는 현재 도요새 소대가 전달한 영상을 통해 과학 이사회와 함께 인간형 변종의 정보를 분석하고 있어. [player name]와 루시아는 정비실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있지. 임무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특수 무기들을 준비했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현재 명령 대기 중인 소대 중에서 다음 세 팀이 더 필요합니다.
이렇게나 빨리? 더 고려해 보지 않아도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병사 개개인의 능력을 아는 것은 장교의 기본 소양입니다.
첫 번째 팀은 해리조가 이끄는 도요새 소대입니다. 이들은 그곳에 들어간 경험이 있어서 공원 내부 상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데다가 해리조 본인도 삼림 공원에 다시 가고 싶다는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해리조는 통신에 대한 조예가 깊어 어쩌면 삼림 공원과 공중 정원의 통신 차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대원 상당수가 부상 중인 점을 고려해 다른 소대에서 해리조가 구조체를 선발해 임시로 소대를 편성할 수 있도록 신청했습니다.
두 번째 팀은 바네사가 이끄는 백로 소대입니다. 뛰어난 전투 능력을 지닌 그녀가 현장에 있다면 더 많은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인간형 변종 데이터가 아직 부족한 지금, 백로 소대의 화력 배치와 전술이라면 적을 압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팀은 시몬이 이끄는 소대인……
시몬의 작전 능력은 아직 부족해. 인간형 변종과 같은 고강도 작전에 적응하기 어려울 거야.
확실히 그의 자질이 걱정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의 마인드 표식은 [player name]에 버금갈 정도로 우수합니다. 모체와 거리가 가까운 상황에서 [player name]이(가) 구조체를 안정시키는 데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최대한 분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알겠다. 집결 명령은 각 소대에 하달하겠네.
……모든 게 순조롭길 바라겠네.
네. 그렇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