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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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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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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안 돼. 절대 안 돼!

그린스는 손에 든 두꺼운 보고서를 공중에 던지고서 제멋대로 서재에 있는 검은 호두나무 테이블 위에 대자로 누웠다.

루나 데이터에 의존해 만든 모든 모조품은 그냥 껍데기일 뿐이야.

이딴 건 우리를 조금도 발전시킬 수 없어.

그런가요? 하지만 보고서에 있는 각종 데이터는 기존의 어떤 기체보다 우수하다고 나와 있어요.

아. 무. 쓸. 모. 없. 어.

그린스는 나른한 어조로 책상에서 일어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앞에 있는 보고자를 바라봤다.

내가 원하는 건 어떤 강력한 구조체가 아니라.

인간을 승격자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거야.

알겠어? 구조체가 인간의 육체를 개량한 거라면, 승격자는 그 토대 위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거라 볼 수 있지.

그리고 대행자에게는 인간이라는 종족에 얽매인 수백만 년의 족쇄를 좀 더 높은 차원으로 진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 이 별에서, 아니, 이 우주에서도 손에 들 수 있는 카드를 늘릴 수 있는 기회야.

그건 지금의 우리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럴지도.

하지만 루나라는 이 보물 상자가 우리 손에 있는 한, 그걸 여는 방법은 반드시 있을 거야.

아까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이제 그 이름을 숨길 생각조차 없습니까?

너한테는 그럴 필요 없잖아.

너와 나는 보물 상자를 열려는 ‘임시 파트너’니까.

참……

왜, 전혀 설레지 않는 것 같네.

설렐 때가 아니니까요. 의회에 심은 스파이의 보고를 보니 상황이 우리에게 불리해요. 당분간은 그 지휘관을 건드리지도 못할 거예요.

괜찮아. 이런 경험도 보물 상자가 주는 재산 중 하나라고 생각 들지 않아?

이미 보물 상자는 네 손에 들어 왔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움직일 수 없어. 자물쇠 구멍조차 찾을 수 없는 그 초조함과 설렘.

온몸이 벌레에게 잠식당하는 것같고, 불에 타들어가는 느낌. 아아……

그린스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은 그의 얼굴 주름을 따라 미끄러져 가슴을 움켜쥔 두 손에 흘러 그의 짙은 양복을 적셨다.

정말 한심한 감정이야. 그렇지만 모든 기다림은 가치 있다는 걸 알지 않나? 보물 상자를 열면 세상을 뒤엎을 만큼의 부를 얻을 거야.

하지만 보물 상자를 열 가능성이 있는 핵심 인물이 의회의 보호를 받고 있고, 우리는 접촉할 수 없죠.

그런데도 당신은 조금도 그것을 걱정하지 않는 눈치군요.

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난 귀여운 양 떼를 걱정하는 양치기 중의 한 명인데?

뭐, 도살용 칼을 차고 있는 그런 양치기겠죠.

하하, 뭐가 됐든 간에 무작정 양 떼에 들어갔다간 몸에서 노린내만 풍길 거라고.

언젠가 우리의 귀여운 [player name]은(는) 다시 양치기의 품으로 돌아올 거야.

언젠가.

그린스는 자신이 한 말을 곱씹으며 레베카가 아닌 먼 허공을 바라봤다.

그날이 오기 전에 좀 더 우아한 모습으로 기다리시는 게 어떨까요?

하하하, 그럴까?

그린스는 슬금슬금 테이블에서 내려와 스스로 우아하다고 느끼는 동작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몸을 돌려 옆방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그린스는 전과 완전히 똑같은 새 양복으로 갈아입고 칸막이방에서 걸어 나왔다.

같은 디자인의 양복만 샀어요?

옷은 그저 인간의 전통적인 도덕관에 따라 자신에게 더한 족쇄일 뿐이야.

우리가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가 아니라 더 문명화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을 뿐인 거지.

족쇄의 스타일에 신경을 쓰나?

그런 관점은 동의할 수 없군요.

그래, 난 그냥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야.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눈빛, 행동, 몸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데 난 가장 직접적인 언어 방식을 택했을 뿐이야.

그럼 네 생각은 어때?

뭘 말하는 거죠?

의회가 숨긴 ‘물 속의 보물’ 말이야.

아직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누가 하지 않은 ‘덕분에’ 의회가 적지 않은 것을 회수했죠.

이야, 풍년이네.

그린스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리틀 닉 걔네 진짜 너무한데……

어떤 큰 열매를 맺을지 나를 더 기대하게 만드는걸?

열매를 따는 시기는 네 판단에 맡길게. 우리 사교계의 꽃 아가씨.

인원과 수단은 마음대로 써도 좋아.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

……

그린스는 웃으며 문을 밀고 나갔고 레베카는 혼자 서재에 남았다.

레베카가 테이블 위에 두고 간 그린스의 단말기 스크린을 보니 과학 이사회가 의회에 제출한 기밀 일지가 보였다.

참, 아직까지도 이러네.

레베카는 고개를 저으며 테이블 위의 단말기를 가지고 그 화려한 서재를 나갔다.

……

……

하산과 니콜라 두 사람은 10분 전부터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단말기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빠진 부분이 없는지, 또 그중에서 가리키는 듯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 거듭 반복해서 훑어보았다.

보안 등급 문제 때문에 우리가 Ω파일의 전체 연구 과정을 모니터링했는데.

그 과정에서 과학 이사회는 Ω파일에 기록된 실험 방식을 따랐어.

라스트리스가 남긴 연구 데이터와 대조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험을 계속했지.

그리고 결국 아틀란티스의 연구자들이 관측한 현상을 재현할 수 있었어.

그렇다면…… 퍼니싱은 확실히 ‘흡수’될 수 있다고……

하산은 그 말을 내뱉을 때 자신의 목소리에 담긴 떨림을 분명히 느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인류를 지구에서 몰아낸 원흉인 퍼니싱이 제거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오랜 전쟁 끝에 마침내 승리의 희망이 보이며 인류가 정말 지구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과거에 들인 모든 것이 헛되지 않았고 모든 희생은 보답받을 것이다.

아틀란티스가 우리에게 준 희망의 횃불은 이 별에서 퍼니싱을 소멸시키는 맹렬한 불길로 타오를 거야.

후……

니콜라의 얼굴에도 잠시 동안 감동의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더니 과거의 모든 것을 회상했다.

그는 숨을 크게 내쉬며 우렁찬 목소리로 의회에 가득한 진동과 경직을 깨뜨렸다.

방법도 이미 알고 있고 우리의 종점도 명확해.

그럼 여기서 계속 꾸물거릴 이유가 없어.

그래, Ω파일은 인간의 보물이야. 과학 이사회의 물자 분배 우선 등급을 가장 높게 올려. 모든 자원이 우선적으로 거기에 집중될 거야.

퍼니싱을 흡수할 수 있는 존재를 개발한다면 그건 반드시 이 오랜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거야.

하산의 지시가 내려지자 니콜라의 표정은 점차 예전처럼 차가워졌다.

의장, 이렇게 큰 행동은 수면 밑에 숨어 있는 피에 굶주린 상어 떼를 끌어들인다는 것을 잊지 말게.

쿠로노가 우리의 연구 성과를 노리고 있지만, 우리 또한 그들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지키면서 잘 유도하면 우리도 쿠로노가 우리에게 숨기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즉, 다음 수로 우리는……

상대의 계략을 역이용하는 거지.

내용은 대략 그렇다. 자세한 건 너의 단말기로 보내도록 하지.

이런 귀찮은 일에 말려들게 해서 미안해. 쓸데없는 요구가 늘었군.

괜찮습니다. 암호화 코드에서 약간 조정하면 여러분의 목적을 완료할 수 있을 겁니다.

Ω파일의 주소 코드를 1 마이크로초당 1번 변화하게 조정하고 그 안의 기록된 데이터는 분당 1번 암호화되게끔 설정하겠습니다.

모든 암호화 방식이 겹치면 하루가 지날 때마다 파일을 해독하기 위해 1만 번은 시도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쿠로노가 해독을 성공한 순간에 그 안의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가동되어, 쿠로노 네트워크의 데이터가 제가 지정한 칩으로 전송하는 구조입니다.

아시모프의 말은 굉장히 빨랐다.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여러 코드가 그의 앞에 있는 스크린에 떠올랐다. 잠시 후 그는 키보드의 엔터 키를 세게 눌렀다.

여러분이 요구한대로 조치했습니다.

통신 중에도 아시모프는 시종 손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는 Ω파일에 대한 연구가 어떤 일보다 더 중요했다.

하지만 Ω파일의 실용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퍼니싱 샘플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응, 알겠어. 정확하게 알아야만 완벽히 해낼 수 있으니까.

이미 알려진 침식체, 승격자 외에도 이합 생물, 이중합 모체의 데이터도 필요합니다. 취서체 회수는 무리겠지만 지하 수도에서 회수한 이중합 모체의 잔해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하 수도에서 회수한 모체 잔해가 전부 과학 이사회로 넘겨져 더 많은 샘플을 공급하기 어려운 상태야.

샘플이 부족하면 찾으면 그만이야.

힐다는 손에 들고 있던 소형 단말기를 흔들었다.

이건 아시모프가 감사원에 넘긴 단말기야. 지금부터 내가 설명해 줄게.

이 단말기에는 영광 기체의 역원 장치에서 포착한 이상 데이터가 기록되어 있어.

과학 이사회는 조사를 통해 크롬과 ‘모체’의 전투에서 이 비정상적인 퍼니싱 과부하가 일어난 것이라고 밝혀냈지.

전투 중에도 그 ‘모체’는 지하 수도 밖에 위치한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었어. 그 링크 때문에 크롬의 역원 장치가 원래라면 발생할리 없는 과부하를 초래했고.

비슷한 링크 현상은 나방 여왕과 취서체에서도 나타난 적이 있지.

한쪽이 손상되면 다른 쪽에 영향을 미쳤고 손상되면 생존자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위기 신호를 알려줬다. 종족 보존을 위해 자연적으로 진화하는 보호 수단과 같았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합 생물이 이미 높은 지능 등급으로 진화했다는 증거였다.

크롬 역원 장치의 이상 현상이 실제 데이터로 이 가설을 증명했어. 이중합 모체도 마찬가지로 복수의 개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고…… 아니, 오히려 이건 이합 생물의 공통적인 특징일지도 모르겠군.

퍼니싱은 지구의 생태계를 모방해 그들만의 생명 진화의 나무를 만들었어.

그리고 나무의 모든 가지와 나뭇잎은 진화 정도가 다른 동일한 이합 생물 무리일거고.

실제로 집행부대의 지하 수로 작전 기록에서도 언급되었어. 본·네거트가 그곳의 이중합 모체는 ‘실험품’에 불과하다고 했지.

그럼 이중합 모체 중 진정한 ‘완성품’이나 ‘진화의 정도가 가장 높은 개체’가 존재하고, 그 개체가 지상 어딘가에 안전하게 숨어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었다.

……

알겠어. 그 돌연변이를 일으킨 개체와 관련된 데이터를 찾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지.

하산이 손으로 앞을 가르자 의회 중앙에 공중 정원 비행장 풍경이 나타났다.

수많은 집행 부대가 이미 비행장 앞에 집결해 있었다. 그들은 이 담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언제라도 지상으로 진군하거나 손에 쥔 날카로운 칼로 적의 숨통을 끊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의 집행 부대는 안전장치를 풀라는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명령은 의회의 손에 달려있었다.

아시모프는 의회가 Ω파일을 중시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투영에서 시선을 떼려다 투영에 비친 분홍색 머리 구조체를 문득 바라보았다.

그녀는 계단에 서서 비행장에 집결해 있는 구조체를 살펴보면서 손에 든 명단과 대조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있는 감사원 엠블럼을 통해 그녀의 신분과 감사원이 현장에서 책임지고 있는 일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비행장의 화면이 의회 회의장에 비치는 순간 그 분홍색 머리 구조체가 문득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아시모프는 그녀가 카메라가 아닌 수많은 케이블을 넘어 영상이 투영된 의회 혹은 의회보다 더 먼 공간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런 생각에 아시모프는 살짝 당황했다. 그는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확인하려 했을 때, 그 분홍색 머리의 구조체는 이미 자신의 업무를 마치고 비행장을 떠나고 있었다.

……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앞에 있는 단말기를 바라보았다.

할 이야기 끝났다면, 저는 하던 일하러 가겠습니다.

아시모프가 통신을 끊으려 할 때 힐다의 목소리가 그의 행동을 멈추었다.

그 전에 궁금한 점이 있는데 사실대로 답해줬으면 좋겠어.

공중 정원 연구 분야의 리더인 자네의 입장은 다른 연구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니.

과학은 인간의 미래를 돕는 등불이지 무의미한 소모가 아닙니다.

그게 저의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