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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세계 정부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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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회의장에 맴돌던 고요함은 하산의 발소리에 깨졌다.

그는 맨 꼭대기에 있는 차가운 테이블로 가서 앉아 공중 정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건물을 훑어보았다.

커다란 회의장에는 몇 자리만 의원이 앉아 있을 뿐 다른 의원들은 투영된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넓은 회의장에는 사법부, 행정원, 감사원, 군부 등의 의회 직무에 따른 엠블럼이 엄숙하게 비추고 있었다.

돔과 직결되는 기둥과 그 위에 빽빽하게 새겨진 이름이 의회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으며, 세계 정부는 이 이름들을 토대로 기틀을 다져 오늘에 이르렀다.

회의장 중앙에서 숨을 쉬면 그 오래된 역사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류의 희망을 담은 세계 정부 엠블럼이 이 넓은 회의장의 꼭대기에 나타나며 ‘세계 정부 회의’가 시작을 알렸다.

의제는 하늘색의 데이터 스트림 형태로 좌석 앞에 나타났다.

오랜 시간이 지난 아카디아 프로젝트나 최근 승격자들과의 전면전은 모두 ‘세계 정부 회의’의 의제에서 나왔다.

의원들은 ‘세계 정부 회의’에서 다루어지는 의제가 공중정원과 인류에게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제는 앞으로 공중정원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닻이며, 역사의 홍수 속에서 인류라는 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키가 될 것이다.

그에 비해 ‘세계 정부 상무 회의’는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어 이번 회의에 대부분 인원이 투영 형식으로 참여했다.

천장의 불빛이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하면서 회의장이 어두워졌다.

의회 회의장은 새장에 검은 베일을 씌운 듯 물체의 윤곽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 검푸른 공간은 곧바로 세상과 단절된 외딴 섬처럼 어두운 우주 깊은 곳에 놓여 있다. 곧이어 별빛이 조금씩 떠올랐다.

기둥 사이 스크린에 나타난 데이터는 마치 우주를 채우는 별과 같았고,

그 반짝이는 별들이 바로 ‘대중의 목소리’였다.

세계 정부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업로드했고 개개인의 관점은 게슈탈트의 네트워크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 홍수처럼 쏟아졌다.

게슈탈트는 풀가동해 큰 흐름 중에서 핵심 정보만 추출하여 정리했다. 간결하게 정리된 글이 의회 회의장 스크린에 띄어져 모든 의원이 대중의 목소리를 확실히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하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긴 테이블 앞으로 간 뒤 무수한 빛 아래에서 회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회의 첫 번째 의제입니다. 최근 아딜레 상회가 과거에 체결한 협력 조약을 개정해 헬륨3 자원을 더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92%의 대중은 지금의 인류 전선의 안전을 위해 우리 측의 자원 비축이 충분한 상황에서 동맹의 요구를 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의 대중은 조약은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대로 조약 개정을 한다면 공중 정원의 위엄이 흔들릴 것이며, 앞으로 상대방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딜레 상회 덕분에 아군의 지상 수송, 보육 구역의 물자 교역이 회복됐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흡혈귀 같은 장사치들이 그 점을 내세워 저희에게 조약 개정을 제안한 겁니다. 당신 생각에는 그들밖에 없습니까?

???

감사원은 이 의견들을 종합해볼때 아딜레 상회의 조약 개정 제안을 거절하고 추가 조약 제안으로 바꿔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딜레 상회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협력 파트너가 아닙니다. 조약 내용이 적절하다면 그들과 2차 협상할 여지가 있습니다.

중후한 목소리가 감사원 엠블럼 뒤에서 들려오더니 투영 속 두 의원의 다툼을 끊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회색 머리의 여성으로 그녀는 의회 회의장에 앉아 있던 몇 안 되는 인원 중 하나였다. 단발머리 사이에 섞인 흰머리와 얼굴의 주름살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줬지만, 시간은 그녀의 그 두 눈에 담긴 의연한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은 수많은 폭풍과 인류의 변천사를 목격했고, 그 때문에 그녀의 시야와 사고는 항상 날카로웠다.

이런 예리함을 유지하는 것에 지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시종일관 방심하지 않았다. 감사원의 직책과 감사원 최고 담당자로서의 사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의회의 행위가 인류 집단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보장하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삐였다.

음…… 동맹 관계도 지키면서 공중 정원의 위상도 유지할 수 있겠군요. 그럼 힐다 의원의 방안을 표결에 붙이겠습니다.

하산이 앞에 놓인 녹색 버튼을 누르자 기둥 사이의 스크린에서 퍼센트 게이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체 표결 과정이 몇 초간 이어진 뒤 게슈탈트가 결과를 공개했다.

힐다 감사관의 제안 찬성 97.1%, 반대 0.8%, 기권 2.1%로 찬성이 최소 통과 기준보다 높아 해당 제안이 통과됐습니다.

음, 사법부는 추가 조약의 초안을 작성한 뒤 감사원에 제출하고 외교원은 문제없는지 확인한 뒤 저한테 제출해 서명을 받으세요.

그럼 두 번째 의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니콜라가 작성한 군 확대 제안……

자, 이번 회의의 모든 의제가 끝났습니다. 의원님들 중에 궁금한 사항이 있는 의원님이 계십니까?

회의는 그리 오래 진행되지 않았다. 인류 집단의 앞길에 영향을 미치는 이 대형 ‘기계’는 풀가동 상태로 모든 의제를 가장 효과적이고 대중의 기대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하산이 질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의원의 투영이 깜빡였다.

의장님, 이 질문은 게슈탈트가 대중들로부터 정리한 의제가 아니라 제 개인적인 의문입니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얼마 전 [player name]이(가) 아틀란티스에서 돌아와 진행한 복귀 행사를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할 필요가 있었나요?

그 의원의 질의 중에 의회 회의장 중앙에서 군중의 투영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여들며 환호했고 얼굴에는 즐거운 표정이 가득했다. 투영만 봐도 현장의 흥겨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 행사에 공중 정원의 작은 지역 하나가 3일간 생활할 수 있는 물자를 사용했습니다. 단지 한 명의 군인이 임무를 완수하고 소대와 다시 모인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들은 승격자 라미아를 쓰러뜨리고 아틀란티스의 희망의 불꽃을 공중 정원에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과학의 바통이 이 역사적인 시기에 전달된 겁니다.

많은 대중들이 이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니 물자가 자연스레 늘어날 수밖에 없죠.

게다가 [player name]은(는) 지상에서 여러 성과를 냈습니다. 대중들에게 복귀를 축하받고 영웅 대접을 받는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산은 손을 내밀어 군중의 투영을 가리켰다.

군중은 점차 어두워지며 투영에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모습만 남았다.

하지만 저희는 지금껏 구조체 소대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희망으로 추켜세운 적은 없었습니다.

‘불사신 로이’보다 팀 전체를 통제하는 게 더 어려울 겁니다.

맞아. 우리 모두가 그 점을 알고 있죠.

하지만 오랜 전쟁은 사람들의 연약한 신경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강한 의지, 확실한 희망을 원하게 됐어요.

우리가 희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희망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깊은 갈망에 순응할 뿐입니다.

그냥 한낱 희망일 뿐입니다.

희망에 ‘그냥’이란 건 없습니다.

페르미 의원, 신화 이야기를 읽어본 적 있습니까?

음…… 그게 무슨 관계라도 있나요?

어느 문명의 신화와 상관없이 그들이 묘사한 영웅 서사시는 전부 비슷하다는 걸 아나요?

한 사람의 평온한 삶이 깨지고 온갖 시련 끝에 승리와 함께 돌아와 사람들에게 숭배와 추앙을 받는다.

영웅의 겉옷을 벗으면 그들도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신에 버금가는 위인으로 칭송합니다.

영웅이 대중들에게 희망을 주니까. 희망이 대중들을 매료시키는데 충분하면 그들을 이끌 수 있지요. 하지만 대중들의 희망을 부수는 존재는 적이 됩니다.

그러니 희망을 절대 ‘그냥’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적절히 쓰면 그건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군부의 니콜라가 설명해 주겠습니까?

힐다의 말을 들은 니콜라는 눈앞의 종이 보고서에서 시선을 옮겼다.

그동안 쿠로노가 우리에게 얼마나 간섭했는지 모두가 잘 알고 계셨을 겁니다.

[player name]을(를) 대중들의 시야에 노출시키는 것은 우리와 쿠로노의 줄다리기를 끝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건 그레이 레이븐을 보호하고 쿠로노에 보내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대중들의 관심이라는 최고의 감시 카메라 아래에서 쿠로노는 더 이상 예전처럼 우리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또는 당분간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다시 모인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게 특별한 임무를 준비했습니다. 이걸로 ‘당분간’ 연장할 수 있을 겁니다.

질문을 지켜보던 의원이 침묵에 빠지자 하산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손뼉을 치며 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좌석의 투영들이 하나둘씩 닫혔고 좌석에 앉아 있던 몇 명의 의원들은 짝을 지어 의회 회의장를 나갔다.

곧 회의장에는 하산, 니콜라, 힐다 세 사람만 남았다.

우린 회의에서 굳이 목표를 입 밖으로 꺼낼 필요 없어. 의회에는 쿠로노가 심은 스파이가 있을 테니까.

상관없어. 쿠로노는 이렇게 뻔한 의도를 진작에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러니 우리가 회의에서 숨기지 않고 말해도 상관없어.

더군다나 그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서 당분간 변화를 줄 수 없어.

하……

이렇게 셋이 만나 얘기를 나눈 건 정말 오랜만이군.

사적인 친목은 편파의 계기가 될 수 있어. 난 감사원 최고 책임자로서 절대적 공정성을 위해 이런 사적인 접촉을 줄여야 해.

만약 앞으로 해야 할 얘기가 특별하지 않았다면, 이런 사적인 모임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맞는 말이야.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Ω파일에 관해 감사원과 과학 이사회 모두가 무언가를 알아냈어.

정보의 중요도에 따라서는 대규모 세계 정부 회의를 열어야 할 수도 있어.

결론은 너희 둘의 단말기에 있어. 암호화해서 방금 보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