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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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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 마지막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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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자 마지막 "단체 회의"가 끝난 뒤.

적어도 다른 의견을 말할 줄 알았는데.

라스트리스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행정 부장은 파일을 덮고 연구 팀장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제가 이 말을 들었다면 지금쯤 팀장님의 목을 조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팀장으로 승진하던 그날 밤을 기억하십니까? 제가 팀장님을 억지로 실험실에서 끌어내 각 부서 부장들과 저녁을 함께 했었죠.

언젠가 식사할 때 이 기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제가 물었었죠. 그때 팀장님은 이곳은 영원히 신진대사를 진행하는 거대한 대뇌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긴 하지.

아주 정확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대뇌가 신진대사를 통해 생산한 이산화탄소와 무기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뭐가 중요할까요?

라스트리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그 대뇌의 사고로 얻어낸 결과물이지.

그러니까 영양분은 당신들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하겠습니다.. 해야 할 소임을 끝까지 마치세요.

행정 부장이 다른 동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라스트리스가 차례로 부장들을 바라보았다.

라스트리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당신들이 내 동료라는 사실이 너무 기뻐. 여러분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건 영광이었어.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아틀란티스의 바다에서 다음 산업혁명의 여명을 보고 싶었습니다. 설령 그 여명을 맞이하지 못한다 해도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죽고 싶군요.

베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최대한 늦게 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고통을 느끼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라스트리스는 조망대 창문 앞에 선 채 아무런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해상 도시를 내려다 보았다.

과거에 휘황찬란했던 존재일수록 그 최후가 더 처량하게 느껴기지 마련이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그녀가 아는 이들은 전부 떠났고 남은 건 그녀 혼자뿐이다. 그녀는 마치 광풍속에서 흔들리는 횃불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 횃불마저 꺼지려 하고 있다.

오늘은 날씨가 별로였다. 먹구름이 잔뜩 몰려왔지만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다. 구름 사이에서 아직 미약한 햇살을 느낄 수 있었다.

라스트리스

……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얼굴에 쏟아지는 온도를 느꼈다.

라스트리스

아직도 이 연약함을 버릴 수 없다니……

대뇌란 참…… 이럴 때는 참 짜증 나.

라스트리스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그 누구 앞에서도 연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바로 그들의 깃발이었으니까.

깃발은 상징이자 지표이다. 깃발에게 인간성과 따뜻한 마음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깃발이 해야 할 일은 "전쟁"의 순간 처전선에 서는 것 그리고 모든 걸 정복한 뒤 성위에 꽂히는 것 그것뿐이었다.

깃발이 무너지지 않는 한 사람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깃발이 무너지지 않는 한 사람들은 이상과 신념을 위해 나아간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이끌던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들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영혼까지 전부 불살랐다.

그렇게 깃발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라스트리스

최대한 늦게 당신들과 합류하라고 했었나?

약속을 어겨야 할 것 같아.

한때 전망대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던 장소 중 하나였다.

이곳은 아틀란티스의 정상으로 도시와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제 모든 자리는 텅 비어있다. 인류의 미래를 지키고 있는 건 오직 그녀뿐이었다.

라스트리스는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이제 모든 사명을 다하였고 그녀의 길은 이제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피곤함이 몰려왔다.

남은 건 후대의 사람들에게 맡길 수밖에.

라스트리스는 고개를 돌려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태양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하지만 역시 아쉬움은 남았다.

그녀가 이 도시에 발을 들인 그날 그녀는 언젠가 우주의 끝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라스트리스

이 따뜻한 노을을 보는 마지막 사람이 나라니.

마지막 중얼거림이 노을 사이로 사라졌다.

전망대 문을 연 순간 시간이 멈춘 세상의 재생 버튼을 누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외부에서 유입된 수증기가 퍼져나갔다.

영상속의 여자가 조용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라스트리스의 시체는 부패되지 않고 완벽하게 미이라 형태로 변해 있었다. 영상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기에 그녀임을 알아보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무거운 슬픔이 무섭게 퍼져나가 방 전체에 가득 찼다.

베라는 침묵하며 올라갔고 여자의 앞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녀는 무언가를 인식했다.

여자의 책상 옆에 있는 보급 상자에는 식량이 가득 쌓여있었다.

베라

……

여자의 두 눈이 돌연 휘둥그레졌다.

베라

하…… 하하하하——

그 순간 방에서 나온 라스트리스가 죽을 때까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추측이 가능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과 달리 라스트리스는 아사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점을 인식한 베라는 무거운 감정을 숨기려는 듯 크게 웃었다.

베라

"이 길의 끝에 도착했다"고? 아니 이 길에 끝은 없어.

참 이기적이야. 넌 그저 모든 걸 감당할 용기가 없었던 것뿐이야.

베라

좋아. 그럼 내가 네 모든 걸 빼앗아주지.

베라는 압축 비스킷을 뜯어 입에 집어넣었다.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는 구조체에게 이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였다.

베라는 마치 인수인계를 진행하듯 남은 비스킷을 하나하나씩 그들의 입에 쑤셔넣었다.

순간 라스트리스가 들고 있던 바통이 베라에게 전달되었다.

네가 이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내가 직접 감당해주지.

내가 너희들의 꿈, 미래, 희망을 빼앗을 거야. 너희들이 잃어버린 고통도 전부 내가 감수할 거야…… 내가 너희들의 모든 것 앗아갈 거야.

베라는 일어서더니 라스트리스의 코트 주머니에서 그들이 남긴 "유산"을 꺼냈다.

그리고 베라는 그것을 나에게 건넸다.

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여기 있어. 내가 저 자식을 잡아올 테니까.

이 도시에 이용할 수 있는 게 더 남아있을지도 몰라. 니콜라한테서 침몰을 막지 못했다느니 그런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베라가 결연하게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