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날 괴롭히던 의문이 드디어 해답을 얻었다.
도망친게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대서양에 우뚝 선 대뇌를 지켰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고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모든 연료는 타버렸고 여기에는 불에 탄 잔해조차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의 불씨는 등대의 가장 높은 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베라가 한발 물러섰다.
정말 미쳤어……
베라는 이렇게 중얼거렸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광기에 가까운 미소가 퍼졌다.
하, 이 자식들 정말 단단히 미쳤네. 나처럼 제대로 미쳤어.
네 말이 맞아. 이 미친 자식들은 재앙을 맞이하고도 교훈을 얻지 못했어.
다시 기회를 준다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거야.
그들은 이것을 실험의 실패로만 인식했다.
실험, 실패, 다시 도전 또 다시 실패…… 이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었다.
베라는 눈가에서 흘러나온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니콜라가 왜 그녀를 뽑았는지 떠올렸다.
학살, 생존, 학살 또다시 생존 이것이 바로 그녀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녀는 항상 남아 모든 이들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 반복되는 윤회의 끝에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때 그 남자가 나타나 그녀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이 길은 험난하고 가시덤불 투성이며 고통스럽지만 그 길의 끝에 빛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거였어.
베라는 두 눈을 감더니 그녀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보았다.
내가 전에 너한테 했던 그 질문 기억해?
맞아.
내 대답은 이거야. 난 횃불을 끄지 않을 거야.
난 횃불을 끄지 않을 거야. 어둠의 끝이 무엇인지 보고 싶으니까.
내가 가는 길 위에 폭탄을 묻어둔 사람을 찾아내서 흠씬 때려줄 거야.
——우리가 지금 약탈당하는 쪽이라고 해서 전진할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약탈하고 정복해라. 넘어진다 해도 다시 일어서서 다시 약탈해라.
인류의 역사는 공포와 미지의 존재와 싸우는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의 인류는 짐승을 무서워했고 불꽃을 무서워했으며 신을 무서워했다…… 하지만 인류는 결국 짐승을 내쫓았고 불꽃을 제어하기 시작했으며 과학으로 신이 알려주지 않는 비밀을 밝혀냈다.
누구나 처벌과 죽음을 두러워하지만 그로 인해 멈추거나 포기하는 이는 없었다.
정말 거기서 멈췄다면 인류는 아직도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있을 테고 불과 번개는 신의 분노라고 착각했을 것이며 아직도 나무에서 벌벌 떨며 포식자들의 시선을 피하고 있을 것이다.
뉴톤은 인류를 바닷가에서 조개껍대기를 줍는 아이에 비유했다. 하지만 난 인류가 어둠속에 서 있는 존재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멀리 떨어진 미지의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만 강렬한 호기심으로 횃불을 더 높게 들었고 더 먼 곳을 비추었다.
가장 순수하고 원시적인 용기는 200만 년 동안 진화하면서 우리에게 남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다.
산의 존재 덕분에 정상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이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공포보다 컸다.
설령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인류는 역시 이 길을 택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너도 어지간히 미친 자식이야.
무언가 부숴지는 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끊어버렸다.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두꺼운 유리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걸 발견했다. 물론 유리창 전체를 관통할만큼 큰 균열은 아니었다.
이걸 멈출 방법을 찾아야 해.
그래. 저 자식이 왜 이곳의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권한이 있는 건 확실해.
네가 저걸 통제할 수 없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저 자식은 가능하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라미아를 잡아와서 조종하게 하면——
승격자도 영점 원자로의 자료를 노리고 있는 거라면 저 자식이 갈만한 곳은 그곳뿐이야.
탑 꼭대기.
나와 베라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진동은 계속되었고 바닷물이 아틀란티스를 잠식하기 시작하며 도시 깊은 곳의 기류도 점점 더 강력해졌다. 물에 빠진 인간이 마지막 힘을 쓰는 것 같았다.
거리의 끝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곳은 칠흑같은 어둠과 소름 끼치는 소리뿐이었다.
짧은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누수 경보가 아닌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온 불법 침입 경보였다.
젠장! 왜 우린 저 기지로 건너갈 수 없는 거냐고!
그런데 저 승격자는 왜 마음대로 이곳을 출입할 수 있는 건데. 왜 저 자식의 인식신호는 차단되지 않은 거냐고?!
알아!
한 번, 두 번, 세 번.
기창과 금속이 부딪히며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벽과 수면 사이에 있는 거대한 공간으로 퍼져나가 더 기괴하게 들렸다.
가장 성가신 것은 겨우 문 하나를 돌파해도 더 많은 침입 경보들이 울려 퍼졌고 더 많은 차단문과 난간, 점검 초소가 나타난다는 사실이었다.
관리자는 사라졌지만 로봇들은 여전히 그 직책을 충실히 완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로봇들은 라미아를 아군으로 인식했고 공중 정원의 방문자는 불청객으로 치부했다.
바닷물의 조용히 밀려들어 왔다. 바닷물과의 거리를 벌리면 앞길이 막히고 통로를 겨우 열면 바닷물이 또다시 우리의 뒤를 쫓았다.
라미아가 끌어들인 침식체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 실외에서만 움직이던 침식체들이 바닷물과 함께 실내로 들어왔고 탑으로 향하는 통로까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