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같은 코어 섬이 동그란 모양의 심연 위에 떠올랐다. 그 변두리에는 바닷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며 장관을 이루며 깊이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넓은 도로는 메인 도시과 여섯 개의 거대한 음색 첨탑을 연결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버려졌음에도 불고하고 여전히 견고했다.
밀려오는 침식체를 처치하고 수송선은 무사히 메인 도시으로 진입했다.
기나긴 세월이 흘렀지만 황금시대의 페인트는 여전히 퇴색되지 않은 상태였고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의 빌딩이 우뚝 솟아있었다. 물론 유리창 안에 있는 조명은 다시 불을 밝힐 수 없다.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음침한 분위기가 점점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메인 도시 주위에 위치한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여섯 개의 첨탑은 마치 이름없는 비석 같았다.
이곳은 인위적으로 개조된 흔적이 가득했고 오직 죽음의 기운만이 가득했다.
시간은 이곳에서 얼어붙고 역사는 이곳에 멈추었다.
이곳은 세상을 잊은 듯 했고 이 세상도 이곳을 잊어버린 듯했다.
배에서 내렸다.
베라는 망설임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하산의 명령을 받은 뒤로 베라의 표정과 말투는 더 퉁명스러워졌다.
내 질문에 베라가 고개를 돌렸다.
하?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은 스스로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신경 쓰려는 거야?
나와 대화하는데 시간을 허비할 바에야 그들이 원하는 자료부터 찾는 게 낫지 않겠어?
젠장…… 이렇게 큰 도시에서 어떻게 그 자식들이 원하는 걸 찾으라는 거야. 곧 다시 가라앉을 것 같은데.
그 자식들 얘기는 왜 꺼내?
베라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웠고 항상 입가에 걸려있는 비웃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넌 모든 걸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그 이면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입이구나?
총사령관이 내게 한 건 약속이 아니라 경고였어.
"배신"하지 말라고 나한테 경고한 거야.
단 몇 마디뿐이었지만 베라의 말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쿠로노와 다르다고 생각해?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리도 네 소대 대원이니 쿠로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대충 들어 알고 있겠지.
난 쿠로노의 일원이었어. 지금 집행 부대로 옮긴 것뿐이지.
내가 왜 총사령관의 직속 부대에 편입되었는지 알아?
총사령관도 한때 쿠로노의 사람이었으니까.
이건 기밀사항도 아니야. 그 시대의 사람들은 전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침묵하는 걸 선택했지. 뭐 굳이 떠벌릴만한 얘기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 지금은 입장과 수단의 차이로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보이겠지만 의회와 쿠로노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네가 지금까지 겪은 일을 생각해 봐. 의회가 정말 깨끗한 곳이라고 생각해?
지금 의회와 쿠로노는 게임을 하고 있는 거야. 너와 난 그들의 장기짝일 뿐이고.
충고하는데 이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지킬지나 고민해. 윗사람들을 맹신하지 말란 말이야.
내가 지금 사용하는 기체는 비요라고 대 구조체 전투에 특화된 기체야. 배신자들을 처단하기 위한 용도로 디자인되었지. 정화 부대 구조체와 달리 이 기체는 시스템에 등록조차 되지 않았어.
총사령관이 왜 이 기체를 이번 작전의 보급으로 제공해 주었을까? 그 의도는 명확해.
——이번 작전에서 의회에서 설정한 가상의 적은 쿠로노의 구조체들이야.
쿠로노의 구조체는 공중 정원의 일원이 아닌가? 우리가 하는 것들이 인간들의 내전들과 본질적으로 뭐가 다르지?
날 이번 작전에 끼워넣은 이유도 결국엔 그레이 레이븐의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기 때문일 거야.
베라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또다시 격렬한 진동이 느껴졌다.
어둠속에 숨어있던 침식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물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