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붉은색 뒤로 가브리엘은 종적을 감추었고, 물고기 네 마리에 의해 공중에 떠있는 하이디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로프에 매달려 말리는 인형처럼 조용히 플랫폼 밑을 응시했다.
승강기 안에 잔해가 점점 놓게 쌓여갔다. 그와 함께 퍼니싱 농도가 올라갔지만 이번 임무를 위해 특수 강화를 한 덕분에 모두의 침식 정도는 한계치 이하에 간신히 머물렀다.
저 녀석, 도망가지 않는다면서!
우선 눈앞의 적부터 해결하자!
모두의 화력 속에 플랫폼으로 뛰어드는 이합 생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
하이디는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무언가를 기도하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뭘 하려는 것 같아.
이런 건 얼마가 와도 전부 소용없어!
...과거로 돌아가자.
승강기가 심하게 흔들렸고 원래 밑에 가라앉아 있던 퍼니싱 바이러스가 적색 전류로 변하면서 주위의 승강기를 따라 하이디의 불완전한 날개 위로 올라탔다.
그 불완전한 날개는 퍼니싱의 영향을 받아 활짝 피었고 찬란한 붉은빛이 되어 하이디를 감쌌다.
직시하기 어려운 이 빛 속에서 그녀는 플랫폼 맨 아래로 착지했다.
붉은 눈이 하이디를 감싼 빛의 공에서 흘러내리면서, 바닥에 쌓인 무수한 잔해가 이 힘의 영향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크롬은 재빨리 그 눈부신 빛의 구슬을 향해 돌진했다. 큰 낫이 적색 전류를 가르며 눈앞의 하이디를 지키려는 이합 생물을 둘로 쪼개면서 칼날 끝으로 빛의 중심을 찔렀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플랫폼 위의 잔해가 새로운 형태를 이루었다.——
핵분열 원충?!
원래 폭파 작업에 쓰이는 이 갑각충은 위력이 크지 않지만, 이런 밀집된 공간에서 대량으로 나타날 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었다.
하이디는 어디로 간 거지?!
플랫폼은 이미 붉은빛을 반짝이는 핵분열 원충으로 뒤덮여 하이디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일단 밑바닥에서 벗어나자!
크롬은 로프를 꺼내 한쪽을 맨 꼭대기로 던져 벽에 걸었다.
대장이 이런 것도 가지고 있었다니!
날 잡아!
내게 맡겨!
카무이는 반즈의 옷깃을 잡아 올라가는 크롬의 발목을 단숨에 잡아당겼다.
셋이 공중으로 이동하는 순간 아래쪽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역시 리더야. 방금은 정말 위험했어.
왜 진작에 로프를 사용하지 않은 거지?
카무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뒤에서 하이디가 나타나 모두에게 엄청나게 많은 퍼니싱으로 응집된 깃털 화살비를 쏘아 내렸다.
크롬에 매달린 둘은 공중에서 회피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쏟아지는 화살에 맞으려는 순간, 크롬은 스스로 로프를 풀었고 셋은 아래로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원래 카무이와 반즈를 명중하려 했던 깃털 화살이 그 위에 있는 크롬에게 곧바로 날아갔다.
번개가 번쩍인 뒤, 대부분의 깃털 화살이 크롬의 번개 속에서 산산조각이 났지만 몇 개는 크롬의 어깨에 명중했다.
……!
리더?!
착지 준비해!
셋은 로프를 타고 지면으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그들은 차례대로 플랫폼 바닥에 착지한 뒤 고개를 들어 위쪽의 하이디를 바라보았다.
로프로 움직일 수 있는 속도는 제한적이어서 표적이 되기 쉬워.
...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면서 핵분열 원충으로 변했어. 설마 너 원래 그런 거였어?
...의태, 위장.
대부분의 자연 생물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야.
하이디는 손을 내밀어 자신의 날개를 쓰다듬었다.
그건 어렸을 때만 이런 일을 할 수 있어. 그러니까...
...과거에 대한 기도가 필요한 건가?
하이디는 보기 드물게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조용히 모두에게 손을 흔들며 물고기에게 물린 상태로 떠올랐다.
너도 도망가려고?
..."그"가 왔어.
소녀의 가녀린 손끝이 위를 가르키자 크고 검은 모습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와 함께 또 다른 낯익은 모습이 나타났다.
당신들이 지금까지 버텼으니, 좀 더 고품격의 환영식으로 맞이해드리겠습니다.
자, 그 분의 조물을 환영해 주시지요.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온 공간에 울려 퍼졌고, 청각 기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왠지 그 거대한 모습이 슬픔과 절망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는 거 같았다.
좋은 기회인 만큼 문제를 하나 내 보도록 하죠.
저게 공중 정원의 구조체를 얼마나 합쳐서 만들었는지 한번 맞춰 보시겠습니까?
——너!
...
리더! 침식체를 처치하듯 쟤도 없애버리자!
차징 팔콘 소대, 공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