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이의 마지막 한방에 온실에 몰려든 물고기 형태의 이합 생물은 모두 잔해와 조각으로 변해 버렸다.
이제 너만 남았어!
그는 안쪽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튕겨져 나왔다. 안쪽 어두운 곳에서 한 거대한 모습이 드러났는데, 그는 적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은 듯 여유롭게 모두의 앞으로 걸어갔다.
가브리엘!
또 공중 정원의 오합지졸들이시군요. 당신들이 몇 번이건 발버둥 쳐도 다 헛수고일 뿐입니다.
가브리엘, 자료상에 승격자 리더 루나의 부하로 표기되어 있는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건, 다른 승격자와 루나도 여기에 있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나?
다른 승격자?
가브리엘은 그의 음성 모듈에서 비아냥거리는 냉소를 자아냈다.
그 승격 네트워크를 배신한 겁쟁이들이 이곳에 머물 자격을 잃은 건 이미 오래전의 일입니다.
그들의 행방은 저와 무관합니다.
너는 네 동료가 어디로 갔는지 관심도 없는 거야?
전 겁쟁이와 약자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절 이끌 수 있는 건 오직 절대적인 힘의 보유자와 힘 그 자체 뿐입니다.
그럼 넌 왜 이전 거점 근처에 남아 있으려는 거지?
"그분"을 위해서죠.
가브리엘의 목소리에는 다시 한번 경건함과 공경이 가득했다.
그 분은 그 전투 후에 저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해, 제게 힘의 새로운 정점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 분?
자료에 기록된 그 승격자 롤랑을 말하는 건가?
롤랑...
그 이름을 되새기면서 가브리엘의 말투는 이전처럼 차갑게 돌아왔다.
제가 말한 "그 분"은 또 다른 대행자를 말하는 겁니다.
승격 네트워크를 배신한 롤랑 같은 반역자가 아니죠.
새로운 대행자가 나타나다니...
단지 새로운 대행자만 듣고 놀라는 것을 보니 당신들은 정말 아는게 없으시군요?
...그냥 귀찮은 게 늘어났다고 생각될 뿐이야.
그럼 제가 당신들에게 또 다른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지요.
그 분 말고도 당신들이 모르는 대행자가 이 근처에 있습니다.
여기 총 세 명의 대행자가 있다는 거야?
두 분입니다. 저는 루나 아가씨의 행방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도 이 답 밖에 드릴 수 없겠네요.
그렇게 궁금하시다면 당신들 동료에게 물어보시죠.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추적했다면 그들은 분명 더 잘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공중 정원이 루나를 계속 추적하고 있다?
물론 루나 아가씨가 공중 정원의 눈앞에서 대행자가 된 이후, 인간은 대행자를 손에 얻겠다는 야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가브리엘은 옆으로 돌아 망토에서 지팡이를 뽑은 뒤 최전방에 서 있는 크롬을 가리켰다.
당신들은 이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습니다.
그 분을 귀찮게 하기 전에, 제가 여러분들을 배웅해 드리도록 하죠.
보니까 그를 엄청 숭배하는 것 같네.
가브리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니 적색 전류가 발자국에서 솟구쳐 나와 그의 차가운 기계 몸을 휘감았다.
물론 그 분이 제가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저에게 완전히 새로운 힘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 분이 저에게 부여한 힘을 당신들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수많은 붉은빛이 가브리엘의 손에 응집되었다. 그가 그 빛나는 큐브를 손으로 쥔 순간, 빛이 손아귀에서 터졌다.
그 눈부신 붉은빛 속에서 가브리엘이 전방의 차징 팔콘 소대를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방어해!
온실 주위의 벽은 이 격렬한 충격으로 무수한 돌조각들로 떨어져 나갔고, 사방에는 연기와 먼지가 자욱했다.
차징 팔콘 소대의 셋은 온 힘을 다해 막았지만, 가브리엘의 전력의 일부만 겨우 받아낼 수 있었다. 파일에 기록된 전투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방금 발언을 취소하도록 하죠.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마찬가지로 문제의 근원입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잘 아는 것 같네?
가브리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붉은빛이 다시 그의 손에 모여들었지만 큐브로 응집되기 전에 카무이의 대검에 흩어졌다.
카무이! 함부로 행동하지 마!
리더! 그렇지만——
전원이 함께 공격한다!
알았어!
크롬이 몸을 내밀자 큰 낫이 원호를 그렸고, 반즈는 능숙하게 가브리엘을 둘러싼 둘을 뛰어넘어 위에서 가브리엘의 머리를 직격했다.
붉은빛이 폭발하면서 고농도 퍼니싱이 순식간에 세 명의 역원 장치에 파고들었다. 난잡한 통증이 역원 장치의 연결로 밀려 들어와 뼈를 뚫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의식의 바다 깊은 곳을 휘저었다.
거리를 벌려!
카무이는 뒤로 대검을 휘두르며 방어하는 동시에, 관성을 이용해 자신을 수 미터 떨어진 곳까지 밀어냈다.
크롬은 낫을 들어 올려 추락하는 반즈를 낚아채 카무이가 있는 쪽으로 내던졌다.
나이스 패스!
날아온 반즈를 받은 뒤, 카무이는 크롬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일단 나 좀 내려줄래?
온실의 좁은 공간이 가브리엘의 동작을 방해해 그는 공중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제한적으로 자신의 지팡이를 휘둘러 퍼니싱으로 셋을 공격했다.
띵!
크롬의 낫이 정확하게 가브리엘 자신이 휘두르는 지팡이를 눌러버렸고, 그가 전력으로 무기를 다시 뽑아 올리려는 틈을 타 재빨리 뛰어올라 상대방을 향해 내리쳤다.
가브리엘은 황급히 한 발짝 물러섰다. 그가 망토를 벗자 수많은 붉은빛이 그의 곁을 휘감았고 다시 폭발하려는 것 같았다.
가브리엘 씨, 엄마가... 아직 쉬고 있어요.
엄마?
붉은빛은 소녀의 부드러운 말속에 갑자기 사라졌고, 가브리엘은 무기를 거두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셋을 무시했다.
확실히 이런 좁은 온실에서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도망칠 생각하지 마!
도망? 아닙니다... 전 그저 그 분의 계획을 깨뜨리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이건 대체 무슨 계획이지?
가브리엘은 콧방귀를 뀌며 자세한 내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들도 그분을 만나고 싶은가 보군요. 저와 이곳을 떠나면 당신들에게 죽기 전에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당신들이 굳이 여기에 남겠다면 저도 끝까지 함께 있겠습니다.
이 말을 마친 뒤 가브리엘은 하이디를 데리고 온실 반대편 문을 열고 입구에 서서 그 셋을 주시했다.
좋아. 내가 뒤에 숨어 있는 놈을 보면 끌어당길게!
함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남아서 싸우면 붕괴만 일으켜서 우리에게 좋은 점이 없어.
지금 철수하는 게 좋은 방법일지도 몰라.
우리는 새로운 대행자의 정보를 알게 됐다. 그들이 우리가 쉽게 떠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고, 카무는 이곳에서 발생한 일을 아직 모른다. 그를 그냥 놓고 갈 순 없어.
그럼 따라가자. 카무도 기다리고. 리더!
잠깐... 반즈, 하이디가 말한 "엄마"가 뭐라고 생각하지?
반즈는 잠깐 동안 생각에 잠긴 뒤, 다소 기이한 가능성을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말 그대로 엄마로서의 개체... 이전에 그가 언급한 또 다른 대행자이거나 침식체 그게 아니면 새로운 이합 생물일 수도 있어.
크롬은 걱정했지만 여기서 "엄마"라는 정체에 대한 추측을 해도 소대는 협공의 공격을 당할 위험이 커질 뿐이었다.
그는 뒤에 있는 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온실을 떠날 것을 나타냈다.
가브리엘과 하이디의 발걸음에 따라 셋이 지하 수도의 개활 지대로 내려가니 바로 앞에 승강기가 있었다.
근처가 전부 지하 수도인데 여기에 승강기가 있다고?
우린 방금 지하 수도의 온실에서 나왔어. 지금 승강기가 있는 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야.
아마 이 수도는 애초에 폐수를 배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 거야.
승격자가 평소에 여기 사는 건가?
여기는 075 지하 도시와 연결된 곳일 수도 있어. 전쟁 대비를 위한 군사 시설이기 때문에, 시설이 여러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지.
그동안 관찰해 본 바로는, 여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버려진 것 같다.
크롬은 카무이에게 소리를 낮추라는 표시를 했고, 그 세 명은 발걸음을 조금 늦추면서 앞의 둘과 거리를 뒀다.
추론일 뿐이지만, 우주 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임시로 열어 놓은 버려진 통로 같군.
버려진 이유는 건물의 품질 때문일 가능성이 커.
확실히 지진이 몇 번 더 일어난다면 이 지하 수도는 분명 무너지고 말 거야.
왜 유독 이곳의 건물 구조가 불안정할까?
이 도시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혈청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 침식체를 추방하고 격리하기 위해 이곳을 임시로 구역 확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퍼니싱이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되면서 모두들 그걸 사용하기 전에 서둘러 철수했지.
대화를 나누던 중 가브리엘과 하이디의 모습이 모퉁이 쪽으로 사라지자 셋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분주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크롬은 차징 팔콘 소대의 전용 통신 채널에서 카무의 호출을 들었다.
...너희 ... 어디...
차징 팔콘 소대의 통신 채널은 대부분 안정적이지만, 지하 도시 특유의 신호 차단에 그의 목소리는 끊어지고 뚜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우린 지하 수로의 승강기에 있다. 지금 어디야?
...미궁 ...밑에.
지금... 승강기 타고 올라... 기다려.
그래.
크롬이 통신을 차단하는 순간, 모퉁이에서 사라졌던 하이디가 공중으로 날아오른 것을 발견했다.
불완전한 날개로 그녀가 공중에 불안정하게 뜨고 있었지만, 네 마리의 물고기 형태의 이합 생물이 그녀의 옷고름을 꽉 물고 그녀를 끌고 위로 날아올랐다.
저 가벼운 끈이 이런 용도로도 쓸 수 있다니! 리더, 나도 하나 신청하고 싶어!
나가면 내가 대신 신청해 주지. 하지만 의미는 없을 거다.
그런데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그들에게 이런 도주로가 있을 줄 몰랐는데.
아닙니다. 전 절대 도망치지 않습니다.
당분간은 하이디가 참여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당신들에게 길을 안내해 드리도록 하죠.
따라오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