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파 장치를 설치하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뒤 굉음과 연기가 일어나자, 누군가의 그림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구멍으로 뛰어 들어갔다.
누구지?!
쫓아!
폭파물에 의해 터진 구멍으로 달려가 보니,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 크기의 구멍이었다.
크롬은 갈고리의 한쪽 끝을 카무이에게 맡기고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구멍으로 들어갔다.
여기 밑에 숨겨진 구역이 확실히 있을 거야.
크롬은 돌멩이를 주워 어두운 공간에 던졌고, 떨어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면적도 넓다.
비춰지는 빛을 빌려 크롬은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 본 후, 구멍에서 빠져나와 주변 세 명에게 정보를 공유했다.
지하 수로 같아? 예전에 이곳에 탐사 왔을 때, 적조 근처에 수로 입구가 몇 개 있다고 들었어. 그런데 폐기된 파이프라 이미 다 처리됐을 거야.
아래 공간 입구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어. 그리고 퍼니싱 농도가 높지 않아 본류가 아직 이곳에 모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방금 전에 고농도 퍼니싱이 검출된 건 단지 적조가 이곳을 통과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누군가 우리를 이용했어. 상대는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정확한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 같으니, 이 구역에 상당히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내 추측이 맞다면, 이 구역에는 더 깊은 곳이 있고 이전에 우주 무기에 의해 파괴된 핵심 지대와 연결되어 있는 곳이 있을 거다.
그게 아니라면 적조가 어떻게 행방을 감췄는지 설명하기 어려워.
핵심 지대가 적조로 뒤덮여 있는데 연결하는 입구가 그 안에 있었다면, 당시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게 정상이야.
하지만 우주 무기가 내려온 뒤에도 우리는 그런 연결하는 입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은...
설마 누군가에 의해 신속히 은폐된 걸까?
방금 발자국과 아래쪽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적의 거점도 분명 있을 거다.
적조를 제거하기 위해서든 후환을 근절하기 위해서든 반드시 내려갔다 와야 해. 대장!
하지만 이건 너무 뻔해.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초대를 받은 것 같아.
우리 정말 내려갈 거야?
크롬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야광봉을 구멍에 던져 수로 안의 환경을 꼼꼼히 살폈다.
방금 확인한 바와 같이, 안쪽 공간은 매우 넓었고, 주변의 벽은 빛에 비쳐 파손되고 벗겨진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무언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수로 맨 위에서 야광봉의 빛이 닿기 어려운 곳에서 희미하게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에게 절망감을 가져다 주는 붉은 빛깔이 금이 간 파이프에서 흘러나오며 한 방울씩 땅에 떨어졌다.
사방으로 튀기 시작한 붉은 물보라가 얼형광봉을 오염시켰고 빛조차 새빨갛게 물들었다.
아래는 아주 적은 적조가 있고 주위가 습해. 내 추측대로라면 적조가 방금 이곳을 지나갔을 거야.
이대로 추적하면 우리가 임무를 받았을 때 예상한 것보다 훨씬 위험해.
하지만 지금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서 추가 지원을 요청해도, 추가 증원은 기대하기 힘들겠지.
이번에 무사히 공중 정원으로 복귀한 집행 부대가 많지 않다. 대부분 기체 조정을 해야 하고 더 많은 소대들이 아직 임무가 남아 있다.
임무 뿐만 아니라 오늘 아침 리에게 찾아가려고 했는데, 대기실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어.
누가 너를 막아?
한 양복 입은 남자. 전에 본 적도 없고 말투도 진짜 기분 나빠.
...쿠로노
응? 뭐라고?
카무는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무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우린 먼저 이곳 상황을 공중 정원에 보고하고, 구조 시간을 약속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크롬은 재빨리 자신의 단말기를 조작해 간단한 보고를 정리했고, 여기서 발견한 것 외에 예비 구조 카운트다운도 설정했다.
예정 시간에 이른 뒤, 카운트다운을 취소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공중 정원에 구조 요청이 발송된다.
간단한 보고를 공중 정원으로 발송한 뒤 크롬은 손을 흔들며 차례대로 지하 수로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상황을 살펴볼게. 만일 적조가 몰려온다 해도 나는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긴 하지만 너도 조심해야 해.
설교는 쟤한테 양보할게.
카무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재빨리 몸을 숙여 안정적으로 동굴 입구를 통과하더니 아래 자갈 더미 속으로 떨어졌다.
별다른 이상 없어. 너희들도 내려와.
카무의 말에 나머지 3명도 차례대로 지하 수로 진입에 준비했다.
...음.
무슨 일이지?
자꾸 등 뒤의 느낌이 좋지 않아.
크롬은 고개를 숙여 반즈 뒤를 자세히 보니, 등 뒤의 도장에 단추 같은 것이 보였다.
자신의 대원을 잘 알지 못했다면 이런 세부적인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단추'를 가볍게 쥐어 반즈에게서 떼어냈다.
...이건.
단추에 있는 작은 핀홀 카메라의 어두운 심연이 그것을 들고 있는 크롬을 바라보았다.
...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장치를 집어 부수고 반즈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자.
이상은 없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야.
모두가 카무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니, 빛의 끝자락에는 수십 개의 붉은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칫, 내가 가서 저들을 처리할게.
카무가 들고 있던 대검을 치켜들어 그 알 수 없는 위험을 향해 돌진했다.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가 난 뒤 붉은 점이 사라졌다.
전부 조무래기들뿐이야.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쪽에서 더 많은 이합 생물이 쏟아져 나왔다.
카무! 함부로 행동하지 마!
크롬의 만류를 듣기도 전에 카무는 캄캄한 시야 속에서 대검을 아래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금속이 쟁쟁하게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그는 차가운 감탄사를 내뱉으며 순식간에 붉은빛으로 사라졌다.
카무!
세 명이 가장 어두운 곳으로 달려가자 빛이 번쩍이는 물고기 모양의 이합 생물 수십 마리가 무너진 바닥에 매달려 있었다.
갈라진 틈 아래에서 가냘픈 목소리와 카무의 분노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아래쪽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었다니!
...이 정도 깊이에도 다리가 부러지지 않은 거야?
떨어지기 전에 떠 있는 물고기를 잡아서 추락 속도를 늦출 수 있었어.
아래는 전부 적조야. 일단 나를 따라오지 마.
좋아.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아서 너와 합류하도록 하지. 우선 따로 조사를 진행한다.
원래 내가 혼자 조사한다고 했잖아!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멀어져 갔다. 이때, 원래 조용했던 지하 수로 반대편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쪽에 뭐가 있나?
그 셋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야광봉의 빛을 빌려 반대편으로 향했고, 잔해가 된 물고기 모양의 이합 생물 한 마리가 몸부림치던 중 완전히 회복됐다.
방금 누가 여기에 있었던 것 같아.
응. 이 수법으로 봐서는 승격자 같군. 저쪽은 바닥이 무너져 통과할 수 없으니 이쪽으로 가지.
잠입 상태로 30분간 전진하며 탐색했고, 모두가 갈림길과 구불 길을 고민하던 중 크롬이 저 멀리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입구가 하나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뒤에서 둘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야광봉을 끄고 가방 속에 넣어 그곳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 셋이 커튼을 잡아당기니 뒤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거 완전 지하 수도가 아니잖아? 우리가 비밀의 방을 발견한 건가?
쉿, 목소리 낮춰.
카무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데 허름한 정도를 봤을 때, 저건 이 지하 수도에 원래 있던 방일 거야.
여기에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다면, 이곳은 단순한 지하 수도가 아닐거야.
어쩌면 저건 이전의 그 지하 도시와 관련 있을지도…
둘이 생각에 잠긴 사이 공중에 떠 있는 "물고기" 한 마리가 카무이 앞으로 헤엄쳐 왔다.
이합 생물이다!
카무이! 목소리 낮춰——
이합 생물?
모두의 뒤에서 소녀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차갑고 연약하며 공격적이지도 않았다. 만약 이 장소가 아니었다면 조용한 후배의 질문처럼 어떠한 위화감이 없었을 것이다.
거기 누구야?
목소리가 난 쪽을 보니 수많은 물고기 형태의 이합 생물 속에 서 있는 마른 소녀가 보였다. 그녀는 천천히 크롬을 향해 걸어왔다.
안녕. 방문자.
주위의 알록달록한 등불 아래 그녀의 금빛 눈동자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그림자가 쌓여있었다.
내 온실에는 왜 들어오려는 거지?
소녀는 가느다란 왼손을 들었고 무수한 적색 전류가 그녀의 팔을 휘감았다. 그 순간,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이 그들은 앞에 있는 소녀가 누구인지 알았다.
승격자야!
카무이는 망설이지 않고 소녀에게 들고 있던 대검을 휘둘렀지만, 그녀를 명중하기 전 수십 마리의 물고기 형태의 이합 생물이 소녀 앞을 가로막아 견고한 벽을 만들었다.
아니... 난 아직 승격자가 되지 못했어.
카무이가 그녀를 향해 대검을 몇 번이건 휘둘러도 물고기 형태의 이합 생물은 끊임없이 그 둘 사이를 가로막았고, 그녀는 공격을 보지 못한 듯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카무이, 일단 돌아와.
알았어!
그가 신속히 크롬 뒤로 후퇴하자 소녀 앞의 벽도 점차 사라지더니 그녀 곁을 떠돌았다.
이렇게 계속 싸워봐야 소용없다. 상대방을 보니 대화가 가능할 것 같으니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 같다.
왜 내 친구를 해치려는 거야?
소녀는 바닥에 조각난 물고기를 들고 갓난 아이처럼 품에 안았다.
그녀가 위로하듯 품에 안은 잔해를 두드리자 적색 전류가 소녀의 손끝을 따라 잔해의 몸속에 주입되었다. 그리고 그 잔해들이 다시 함께 연결되더니 물고기 형태로 변했다.
모습을 보아하니 너희들도... 공중 정원에서 왔구나?
...너희들도?
그래. 우리는 공중 정원의 집행 부대다. 너는 루나의 부하 승격자인가?
아니. 난 승격자도 아니고 대행자 루나와도 관련이 없어.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소녀는 공격 의도를 드러내지 않았고, 생기 없는 두 눈으로 크롬을 바라보며 의례적인 미소를 지었다.
나는 하이디야. 단지 그분에게 선택되지 않은 예비생일 뿐이지.
그분?
크롬의 질문에 하이디라는 소녀는 한쪽 날개를 살며시 펼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동작은 크롬에게 날개를 가진 다른 기체를 떠올리게 했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위험 경고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네가 말한 그 자는 가브리엘인가?
아니.
그녀는 자신의 날개를 접고 마치 새가 깃털을 다듬 듯 날카로운 날개 끝을 애틋하게 쓰다듬었다.
가브리엘과 달라. 내 날개는 친구의 유품이야.
네 친구? 그 물고기들을 말하는 거야?
반즈의 질문을 듣고 하이디는 눈을 감았다.
아니. 그들과 다르게 그는 내 첫 친구야.
언젠가 친구를 반드시 되살려 이 날개를 돌려줄 거야.
네가 그 물고기들을 복구할 수 있지 않아?
복구해서 얻은 건 빈 껍데기야.
그 분은 내가 가브리엘을 따라 계속 공부하면 친구를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말했어.
무엇이 떠오른 건지 아니면 어떤 명령을 받은 건지 소녀는 갑자기 냉기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녀는 마치 잠에서 깬 듯 고개를 들었다. 그 생기 없는 두 눈이 알록달록한 등불 아래 어둠이 가득 찼다.
너희들이 공중 정원 사람이라면 분명 그분의 행동에 방해가 될 거야.
전투와 방어는 내 임무가 아니지만, 그분에게 알리기 전에 시간을 벌 필요가 있겠어.
소녀의 말이 끝나자 사방에서 대량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하이디의 모습이 점차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조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