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니싱이 가득한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크롬은 어느새 까맣게 탄 폐허 사이로 걸어 들어가게 됐다.
발자국의 흔적이 점점 사라졌지만, 크롬은 근처에서 본 적 없는 이합 생물을 발견했다.
전에 보았던 것들 보다 훨씬 전의 지구에 생물인 전갈에 가까웠다.
그들을 관찰하던 중 전갈 외형의 이합 생물이 크롬을 발견하고 공격했다.
간단한 전투 끝에 그것들은 귀를 찌르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크롬의 낫 아래 산산조각이 났다.
주변에 더 이상 다른 적이 없는지 확인한 뒤, 크롬은 보호 장갑을 끼고 간단한 샘플 채취와 분석을 진행했다.
기존 자료에 기록된 적이 없는 이합 생물인 걸 보니,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류 같군.
... 어쩌면 최근에 나타난 타입일 수도 있고.
어찌 됐든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지자, 크롬은 주저 없이 통신을 열고 아시모프의 이름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차징 팔콘 소대의 대장 크롬입니다. 제가 기록에 없는 이합 생물을 발견했습니다.
일단 나한테 보내줘.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는데 지금 가능할까요?
무슨 부탁이지?
이런 이합 생물은 최근에서야 나온 건지 알고 싶습니다.
...
죄송합니다. 지금 다른 볼일이 있으시다면, 나중에 다시 문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는 않아, 그냥 네가 보내온 데이터를 훑어보고 있었을 뿐이야...
이 이합 생물은...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또 진화했군.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적조의 산물이라는 거야.
아시모프가 이 말을 꺼냈을 때, 크롬은 자신이 결론에서 얻고 싶었던 단서를 깨달았다.
근처에 적조가 남아 있어 이합 생물이 이곳에 돌아다니는 것 같네요.
그쪽은 계속 정찰을 이어갈 생각인가?
네. 협조 감사합니다. 샘플이 더 있으면 연락드리죠.
아니, 돌아온 뒤에 나에게 건네줘.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흩어진 지 두어 시간이 지났다.
다들 각자 맡은 구역에 크롬이 가져온 탐지 장치를 설치했지만, 이 구역의 퍼니싱 농도는 해양 급류와도 같아서 측정만으로는 단서를 찾기 어려웠다.
지질학적으로 무언가를 알아내고 싶었지만, 방금 그 이합 생물을 제외하고는 알아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우주 무기의 영향이나, 건설 당시 누군가에 의해 흔적이 뒤섞인 것일 수도 있다.
적조가 지하로 돌아왔다고 의심되어 2시간 동안 정찰했지만 입구라고 할 만한 것은 찾지 못했고, 또 이 구역 주변 지하 도시로 깊숙이 진입한 집행 부대도 추가 구역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더 단순하고 난폭한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핵분열 원충과 비슷한 폭파 장치를 들고 다녔다.
하지만 고농도 퍼니싱의 방향으로 봤을 때, 장치로 지표면에서 가장 가까운 고농도 구역을 탐지 가능한 거리는 35M였다.
위치를 잘못 찾아 폭파 장치를 전부 사용한다면, 다시 돌아가거나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반드시 폭파 위치를 한 번 더 확인해 봐야 돼.
농도가 바뀔 가능성이 많다.
단지 오염된 지하수맥이라면 진짜 적조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바쁜 시기에 섣부른 신청은 남한테 폐를 끼치는 것이니 계속 조사해 봐야겠다.
크롬이 생각하고 있을 때, 카무이가 통신을 보냈다.
대장! 여기 새로 발견한 게 있어!
응. 지금 바로 가도록 하지.
즉시 카무이 곁으로 달려간 크롬은 반즈가 그의 발 밑에 웅크리고 앉아 탐지 장치 안의 높은 수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음... 이 구역의 수치는 전부 이렇네.
그리고 거리적으로 보면 고농도 구역의 위치가 지표면에서 멀지 않아... 적어도 이전에 측정한 것보다 가까워.
계획을 실행할 시기는 지금이었다. 크롬은 그 자리에서 모두에게 설명하면서 주변 탐지 장치에서 보내온 데이터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때, 방금 나타난 경보의 수치가 다시 정상 범위로 내려갔다.
앗, 사라졌어?
...음, 무슨 일이지?
적조가 지하를 통과해서 빠져나간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어.
폭파 장치를 사용해서 입구 한 개를 열어보자.
어디에 설치하는 게 좋을까?
반즈는 단말기에서 탐지한 고농도의 여러 지점을 가리키며 하품을 했다.
예비 폭파물로 말하면 우리에게 네 번의 기회가 있다. 일단 이 세 곳으로 정하자.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서 예비로 조금 남겨둬야 해.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 힘이 닿는 범위 내에 틈을 벌리면 폭발 정도를 높일 수 있을 거야.
그래! 이건 나한테 맡겨!
카무이는 손에 든 대검을 두 손으로 받쳐 들어 힘차게 지정된 지점의 지표면을 연달아 내리쳤다. 갈라진 틈에는 알파벳 A의 모양이 희미하게 형성됐다.
...이 모양... 혹시 요즘 《보물 찾기》 게임해?
카무이는 이 게임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듯 반즈에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음... 아닌가 보네.
반즈는 폭파 장치를 조합하며 카무이에게 답했다.
저게 뭐지?
카무이는 대지를 향해 자신의 대검을 계속 휘둘렀다.
VR 게임실에서 유행했던 샌드박스 게임이야. 내용은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똑같아.
사람들은 그걸로 몸을 단련하고 건강을 증진시키지... 이 게임의 운동량이 엄청 크거든.
그런데 사실 유행하게 된 이유는 그게 황금 교환권을 캐낼 수 있기 때문이야.
듣기로는 누가 금 10톤을 받고 무인도를 사들인 사람도 있었다고 해.
정말? 임무 끝나면 나도 해봐야겠다!
그런데 이제 보상이 없어.
그건 원래 정부가 인간의 몸을 튼튼히 하고 건강을 위해 개발한 게임이기 때문에 보상도 그들이 준비한 거였어.
보상이 없으니 게임에 대한 관심도가 줄어서, 그 게임과 관련된 기록도 덩달아 없어졌어.
정말 아쉽네. 그런데 반즈 넌 언제 이렇게 게임에 대해 잘 알게 된 거야?
오래전에... 침대에 누워 재활하지 않으려는 아이 환자를 달래기 위해 찾아봤어. 너도 하고 싶으면 나중에 빌려줄 수 있어.
좋지! 이거 온라인으로도 할 수 있어? 반즈도 같이 하자!
아니... 난 그냥 쉬게 해줘.
반즈는 조합을 완료한 폭파 장치를 손에서 놓고 긴 하품을 했다.
어? 혹시 네가 말한 그 재활하지 않으려는 환자가 너 아니야?
...
...?
카무이의 기다림 속에 반즈가 잠시 침묵하더니 그렇게 선 채로 잠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카무는 왜 아직도 안 온 걸까?
걷는 속도가 빠르니 돌아오는 것도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어.
이때, 카무는 모두의 시야의 나타났지만 일정 거리를 두며 다가오지 않았다.
이번 방호복은 전부 강화됐어. 와도 괜찮아!
...됐어. 난 멀리 있는 게 익숙해.
그런 거 바꾸면 되잖아, 이리 와도 된대!
하지만 이후에 방호복이 강화되지 않은 임무가 있을 거야.
그때 또 습관을 들여야 하잖아. 번거롭게.
카무는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서서 더 이상 카무이를 대꾸하지 않았다.
바로 이때 크롬의 단말기에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암호화 메시지가 도착했다.
"루나 소식은 있어?"
누가 이런 소식을 보냈지?
크롬은 이 메시지가 남길 수 있는 단서를 자세히 살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발신자를 추적할 수 없고, 계속 시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려 지금은 적조를 찾는 임무가 우선이다.
비록 추적할 순 없지만, 리더는 이미 어느 정도 추측을 했겠지.
...
[player name]의 현재 상황을 생각하고 크롬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루나를 찾고 있는 누군가가 발신했을 거라고 추측했지만, 이런 식으로 메세지를 분석하는 건 너무나 어리석었다.
아마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겠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 그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어?
...
떠나기 전 아버지로부터 소식을 접해 들었어.
[player name]이(가)... 이전 이곳에서 군기를 어겼다는 것 외에 승격자를 숨겨줬다는 의혹에 대해서 추궁당하고 있다.
승격자를 숨겼다고? 그럴 리가?
... 역시 격리 치료는 그냥 핑계였던 걸까?
이 일을 알고 있나?
이것이 요즘 네가 한가한 시간에도 쉬지 않는 이유였나?
난 그냥 치료를 돕고 싶었을 뿐이야. [player name]한테 진 빚이 있으니까.
하지만 금방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아직 이 사건의 전모를 알지 못해.
만약 그들이 알았다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검사하는 데에는 동의하더라도 [player name]이(가) 고발당하지 않도록 했을 거야.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player name]과(와) 가장 가까운 루시아도 마지막에 의식을 잃었기 때문에 [player name]이(가) 결백하다는 증거는 없다.
목표의 행방을 찾은 사람이 없는 한, 이들은 장기간 감시당하고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할 수도 없어.
참, 오늘 아침에 하산 아저씨의 표정도 어두웠어.
... 그 밖에도 이상한 점이 있어.
계속 추궁하려는 카무이를 보자, 크롬은 손을 뻗어 대원들의 대화를 중단했다.
이곳은 이런 대화를 나눌 만한 장소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임무를 우선적으로 수행하고, 나머지는 공중 정원으로 돌아간 후에 얘기하도록 하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