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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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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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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이 눈을 떴고 그를 맞이하는 건 변함없는 어둠과 표정이 굳어있는 아시모프였다.

아시모프 님, 고생 많으셨어요. 이번 데이터는 어떤가요?

너와 신규 기체의 조화 및 동기화율이 매우 높아, 실험을 통과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어.

하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

아시모프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감았다. 여태 만능에 가까웠던 천재 과학자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 본 건 크롬도 처음이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아시모프는 테이블 위의 머그잔을 잡고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이 신규 기체에는 루시아·아우와 비슷한 기술을 적용했어.

알고 있습니다.

그는 동의서에 서명하고 실험 참여를 신청하기 전, 이 프로젝트의 원리와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아시모프의 표정은 자신의 연구 성과를 설명하는 것이 아닌 대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구룡 순환 도시의 전투에서 중상을 입은 루시아는 아우 기체를 교체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아시모프는 기체를 소개할 때 이 사건을 얘기하면서 루시아는 기체가 불안정해 기억을 잃었다고 말했다. 백업이 남아 있었지만 다시 입력한 기억은 일종의 소외감을 동반했었다고 했다.

그 후 아우 기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루시아의 본래 의식도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최근에 그녀는 기억 속 익숙함을 완전히 되찾은 듯 보였고, 기체를 바꿨을 때 받았던 영향을 이겨내고 있었다.

당초 동의서에도 이와 비슷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지만, 이 실험의 주된 목적은 기체에 의한 부정적 영향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계획서에 언급된 위험 요소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 계획서에 적힌 건 초반에 예측한 내용들뿐이지.

연구가 진행되면서 현재의 기술로는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는 걸 발견했지.

간단히 비유하자면, 마치 큰 돌 하나를 표류병에 담으려는 것과 같지.

네 의식의 바다는 이렇게 "큰 돌"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정되었지만, 실제로 기체를 바꾸면 "표류병"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돼.

애초에 루시아가 조정하지도 않은 기체에 적응할 수 있었던 건, 그 추가 데이터들이...

크흠, 그 데이터들은 원래부터 그녀와 호환이 가능했기 때문이지, 마치 배 그 자체처럼.

특수 데이터인가요?

이건 기밀 사항이라 더 많은 걸 알려줄 순 없어.

하지만 아시모프는 특화 기체의 특별함을 알고 있었다. 그건 단지 "그레이 레이븐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기체뿐만이 아닌...

승격자 알파의 데이터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때 루시아는 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애써 숨긴 질문을 하지 못했다.

"어째서 승격자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거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천재지변을 해결의 희망이자, 또한 어떤 인재를 불러일으키는 근원이었다.

루시아가 기체를 바꾼 뒤 과학 이사회는 줄곧 아우 기체의 각종 데이터를 수집해 왔지.

재조정을 거쳤지만, 새롭게 제작된 특화 기체는 네가 안전하게 가상 연결을 이룰 수 있게 만들었어.

하지만 너밖에 할 수 없어. 특화 역원 장치로 인해 네 의식의 바다 자체가 매우 안정적이잖아.

널 이 프로젝트에 참여시킨 이유이기도 하지.

현재 발생 확률이 가장 높은 리스크는 어떤 거죠?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의식의 바다에서 여러 가지 심각한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던 표류병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것과 같은 흔한 증상들 외에, 넌 더 쉽게 의식의 바다 이탈 증상이 일어날 수 있고... 그리고 의식의 바다 오염으로 발전할 수 있어.

그때가 되면 너는 통제력을 잃게 되기 때문에 그 어떤 행동을 보여도 이상하진 않지.

혹시라도 실감이 나지 않으면 나중에 [player name]에게 물어봐도 좋아.

괜찮습니다. 자료에서 이런 증상을 본 적 있어서 굳이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을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실제로 위험한 건 너뿐만이 아니야. 특화 역원 장치 때문에 너는 차징 팔콘 소대에서 지휘관 역할을 해왔어.

네가 오염되거나 심각한 의식의 바다 이탈이 발생하면, 너와 연결된 대원들도 전부 영향을 받을 거야.

...

그러니 이 기체는 의식의 바다가 오염되는 리스크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사용할 수 없어.

크롬은 시선을 다시 아시모프에게 돌렸다. 그는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자료를 보며 기체 개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건 단지 비연구자인 저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만약 현재 문제의 핵심이, 데이터들이 저의 의식의 바다와 호환되지 않는 거라면 아시모프 님께서 말씀하신 "병"은 "돌"에 의해 깊은 바다로 끌려갈 겁니다.

추가로 장치를 더해 분리한 뒤, "병"과 병행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요?

...

아시모프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갑자기 일어나 실험실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더니 각종 단말기 속에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로제타...

그때, 그녀가 켄타우로스 형태에서 인간 형태로 전환된 상황에 관한 연구 자료...!

단말기가 고속으로 작동됐고, 아시모프는 곧바로 목표물을 찾아냈다. 그는 책상 앞에 놓인 의자를 끌어당겨 스크린 앞에 앉아 일에 몰두했다.

아시모프의 표정이 다시 밝아진 걸 본 크롬은 예의 바르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실험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그래.

아시모프는 고개도 들지 않고 한 마디로 대답했다.

크롬이 실험실 문을 닫는 순간, 실험실 안쪽에서 혼잣말이 들려왔다.

아시모프

앞으로 조금만 더 있으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겠어... 랜드, 앤... 난 너희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게 하지 않을 거야...

문밖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진 뒤, 아시모프는 암호화된 문서를 열었다. 그건 바로 "누군가"로부터 받은 아우 기체에 포함된 "알파 데이터"였다.

이 데이터의 확보 경로와 이를 위해 치른 대가, 그리고 그로 인한 잠재적 위험은 모두 의도적으로 은폐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낱낱이 밝혀진 순간만이, 그 "이상" 속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크롬.

폐쇄 실험실을 나오자 세리카의 통신 알림이 단말기에 나타났다.

다음 수색 구조 임무에 변동 사항이 생겼어요. 임시로 배치된 상황이라 시간이 매우 촉박합니다.

즉시 대원들을 집결시켜서 40분 이내에 수송기에 탑승하세요.

자세한 임무 내용은 단말기에 보내드렸어요. 문제가 있으면 지금 저에게 알려주세요.

크롬은 단말기를 열어 임무 상세 정보를 재빨리 훑어보았다. 새로운 임무는 우주 무기 타격 범위 내 한 구역에 다시 진입해 이상 징후를 찾는 것이었다.

그냥 평범한 정찰 임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지난번 여러분이 이 지역에서 철수한 후, 갑자기 고농도 퍼니싱이 탐지되었어요.

갑자기요?

네. 특정 위치와 농도의 변동이 매우 큽니다.

아마도 일부 지역과 기후로 인한 탐지 오류일 수 있지만,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잠재적인 위험을 고려해 엘리트 소대에게 맡기게 됐어요.

크롬이 정보 목록을 아래로 스크롤했더니, 하단에 회색 작은 글씨로 적힌 “해당 임무를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서 차징 팔콘 소대로 인계”라는 표시가 보였다.

이 임무는 원래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맡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은요?

[player name]이(가) 몸이 안 좋아서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어요.

기억 재생으로 인해 간헐적으로 정신을 잃어서인가요?

네? 네...

세리카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크롬이 왜 이 일을 알고 있는지 깨달았다.

보아하니 반즈가 [player name]의 상태를 알아챘나 보네요, 맞아요, 그 병증이랑 관련 있는 겁니다.

“관련”이라는 두 글자에 의문이 생겼지만, 상대방에게 질문을 제기해도 답을 얻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대원을 소집하도록 하겠습니다.

크롬이 통신을 마무리하고 반즈와 카무이에게 소집 지시를 내리려고 하던 참에, 단말기의 통신 알림이 다시 깜빡였다.

이번 테스트 결과는 잘 받았다.

기체 변경 테스트에 관한 리스크와 그에 따른 보상 문제 때문에, 요한·스미스도 통지를 받았고, 그때 함께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었다.

여전히 리스크가 큰 만큼 신중하길 바란다. 필요하다면 후속 개발 참여를 거절해도 좋아.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미스 님. 당연히 신중하게 대응하겠지만, 리스크를 감수해서 얻을 리턴을 빤히 놓칠 수는 없습니다.

다음 계획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임무가 저에게 인계되어, 대원들을 소집해 목적지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보아하니 이번엔 정말 난처해진 것 같던데.

[player name]의 병증 때문인가요?

내가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병증이라는 걸 핑계로 실은 그 지휘관을 감시한다고 하던데.

[player name]이(가) 감시당하고 있다고요...?

그래, 이건 시작에 불과해. 앞으로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더 성가신 일들을 맞이하게 될 거야.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외에도, 어떤 사람들은 이 소대를 성공의 디딤돌로 삼기 위해 그들이 이전에 저질렀던 규정 위반을 혈안이 되어 찾고 있다.

규정 위반이요? 왜 그걸 찾는 거죠?

그 사람들의 원래 계획에서는 [player name]의 몸 상태만으로 그를 해임시키는 건 충분했지.

하지만 그 지휘관은 굳건했지. 조사 중 어떤 실수도 하지 않아서 그들이 계획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지.

이대로 가다간 승격자 리더와 연결했다는 것과 그녀의 행방을 숨기고 있다는 혐의로 군령 위반으로 몰아가겠지.

몰래 연결해 승격자 리더를 숨겼다고요? 승격자를 연결할 수 있는 지휘관도 없을뿐더러, 저는 [player name]이(가) 적을 숨기지 않았을 거라고 믿습니다.

가설 중 하나일 뿐이다. 소문으로는 적이 소지하고 있는 "화서"가 [player name]이(가) 의식의 바다 오염에 저항할 수 있어 승격자와 연결할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

그 사람들은 이 소식을 접한 뒤, 이를 검증하기 위해 검사 데이터를 들고 게슈탈트에 추론 검증을 요청해 승인을 받았다.

화서가 어떻게 [player name]이(가) 승격자와 연결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걸까요?

075호 지하 도시의 작전 기간 중 둘은 접촉한 적이 있다.

그 지휘관이 임무를 보고할 때 모든 과정을 털어놓았어. 그리고 누군가 이 정보를 흘려보냈지. 하지만 어떤 말을 하지 않았어도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라면 이 모든 건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거야.

그때가 되면 군사 정보 허위 보고로 죄만 더 가중될 뿐이지.

누가 [player name]의 임무 보고를 유출한 거죠?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를 적발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같은 일을 저질렀을 거야.

그들의 인맥은 일찌감치 곳곳에 스며들어 공중 정원의 일부가 되었지. 의장님일지라도 안간힘을 다해 막을 수밖에 없어.

일단 문제가 생기면 처리하기가 어렵다. 상대방이 빈틈없는 이유를 많이 내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이 대체 불가능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야.

마지막에 그 지휘관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아무도 몰라. 그들은 그때 의식을 잃었다고 주장하고 그레이 레이븐의 구조체도 루나가 떠나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했어.

관련 증거는 아직 찾고 있는 중이야. 하지만 이런 경향으로 볼 때, 일부러 증거를 만들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이 있지.

이런 걸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스미스의 일원으로써, 이 정치판에 활약하려면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지.

정보 조각에 추측을 더해 일의 전모를 끼워 맞춘다. 이것도 다음 스미스가 배워야 할 기술이지.

...

크롬은 뭔가 생각하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player name] 님은(는) 어디있죠?

그 지휘관을 만나려고 하는 건가?

네.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해야 하고 불필요한 건 버려야 하지.

이 정보들을 너에게 알려준 건, 너한테 주는 충고나 마찬가지다.

네가 그 지휘관이 보여준 재능에 매우 흥미가 있다는 걸 알고 있네.

이전까지는 네가 우수한 인간과 접촉하는 걸 막지 않았지만, 이번엔 이 소대의 입장이 난처해졌어.

[player name]와(과) 너무 가까이하면 너도 감시를 받게 될 거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멤버를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을거다. 가급적 그들과 거리를 두고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라.

스미스, 제 판단과 처리 방식을 믿어주세요. [player name]을(를) 만나도 그들에게 어떤 약점도 내주지 않을 겁니다.

[player name]이(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

거듭된 신청을 통해 크롬은 결국 "직접 임무 인수인계가 필요하다"라는 이유로 짧은 만남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직원과 병사들의 감시 아래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올라갔다.

눈부실 정도로 환한 하얀 빛이 텅 빈 방을 가득 메웠다. 차갑고 단단한 회의실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지친 듯한 멍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편한 의자가 회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막아 회의를 더 효율 있게 해준다는 농담도 있다.

하지만 이틀 가까이 이런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농담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조용히 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깨끗하고 깔끔해 보이는 보통 방 네 모서리에는 감시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그것도 육안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상태였다.

크롬이 방으로 들어서자 문이 천천히 닫혔다. 방에는 둘 뿐이었지만, 양쪽 모두 시선의 사슬에 묶여있는 듯한 답답함으로 자유롭게 말하지 못했다.

창백하고 지친 사람의 옆모습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쥔 크롬은, 인사도 하기 전에 모서리에 놓인 투영장비를 발견했다.

흐릿한 푸른빛이 낡은 시계를 입체적으로 비추고 있었지만, 시계판에는 눈금과 분침이 없었고 시계추만이 진자의 흔들림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시계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격리 치료 시간표가 표시되어 있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힘든 시간에 시계를 보면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한대로 길어지는 그 고통을.

크롬은 이곳에 오기 전에 조사와 치료의 간격이 낮에 2시간, 밤에 5시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생명의 별에서 일했던 사람이라면 중증 환자에 대한 이런 간병 일정이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단 걸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증 환자"와 "방해 없는 간호"를 말하는 것이지, 이처럼 격리와 치료를 같이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치료 빈도로 제소한다면, 상대방은 규정을 위반한 상항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조항들로 반박할 것이다.

고통은 이러한 규정들 틈에 숨어 있었다.

예를 들어 텅 빈 방에서의 장시간 체류.

휴식을 취할 수 없는 불빛과 차갑고 단단한 의자.

수많은 감시 장치와 문밖을 서성거리는 병사와 직원들.

눈금 없는 시계와 "빈 틈 없는" 격리 치료 간격.

이것들 중 어느 하나를 지적해도 규정을 위반한 것은 없을 것이다.

방이 너무 깨끗하거나 의자가 너무 불편해서 고발 사유로 삼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것을 전부 합쳐 놓으면 살아 있는 생명이 시계추의 흔들림에 조금씩 사라지기에 충분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감옥 같군.)

그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엄중한 감시 속에 입을 열지 못했다.

크롬은 눈앞의 시계를 보며 예전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할 때 우연히 에드가의 단편집 《시계추》의 다운로드 목록에서 [player name]의 이름이 있는 것이 떠올랐다.

([player name] 님(이)가 그 책을 다 읽었을까?)

어찌 됐든 그는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

익숙한 소리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출입문 옆에 크롬이 서 있었다. 그의 하얀 기체 코팅이 방안의 눈부신 불빛을 굴절시켜 마치 이 빛 속에 녹아든 것 같았다.

피로 때문일까, 짧은 인사를 마치고 몽롱한 가운데 크롬의 눈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투쟁심 같은 것을 느껴졌다.

...지금 상태는 좀 어떠십니까?

그를 만나기 전, 오랜 시간 동안 기억 재생과 임무 상세 정보에 관한 대답으로 목이 말라 있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이 답변에는 숨길 수 없는 목이 쉰 소리가 들렸다.

크롬은 침묵 속에 다가와 의자 앞에 서서 그의 몸으로 위쪽의 눈부신 불빛을 살짝 가렸다. 그 덕분에 크롬의 눈이 선명하게 보였다.

괜찮습니다. 전 그냥 임무 내용을 확인하러 온 겁니다.

크롬은 재빨리 두 손을 뻗어 의자를 밀어 넣었다.

지금 많이 피곤해 보이니 일어날 필요 없습니다. 전 그냥 다음 임무 내용을 확인하러 온 겁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우주 무기 타격 범위 내 구역에서 갑자기 퍼니싱 농도가 다시 크게 변했습니다.

검출 오류가 아니라면, 그 구역의 지하에 뭔가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임무에서 어떤 단서 같은 걸 알아낸 게 없었습니까?

크롬은 설명을 들으며 자신의 단말기 노트에 기재하고 지도에도 상세하게 영역을 그렸다.

정보를 제공해 줘서 감사합니다. 그 구역에 확실히 의문점이 있는 것 같으니 탐지 장치를 가지고 가봐야겠네요.

그는 단말기를 접고 고개를 돌려 푸른빛에 투영된 시계추를 바라봤다.

[player name], "시계추"가 언제 멈춰서 떨어지는 줄 아시나요?

그 "시선" 뒤의 어떤 사람도 이게 무슨 말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크롬은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시계추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나를 응시했다.

곧 시계추는 멈추고 떨어질 거에요.

이 말을 하는 동시에 고개를 들어 크롬의 두 눈을 바라보며 그에게 윙크를 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죄송합니다.

내가 전한 암시를 보고 그는 빙그레 웃었다.

암시를 알아들은 그를 보고 나도 살짝 웃었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암시를 알아들은 나를 보고 그는 웃으며 눈을 내렸다.

"그러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가 이 말을 마치자, 옆의 출입문이 새벽 알림처럼 제시간에 올라갔다. 크롬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눈부신 불빛이 다시 시야를 차지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작업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고개를 이쪽으로 끄덕이며 텅 빈 방을 빠져나왔다.

무거운 문이 닫히는 소리 이후 세상은 다시 눈앞의 공백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