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여기까지 오셨군요.
가브리엘...!
루시아가 먼저 나서서 공격했지만, 가브리엘 곁의 인간형 이합 생물이 가볍게 막아내면서 그녀를 날려버렸다.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자세를 취해 착지한 루시아는 그 잠깐의 전투만으로도 본능적으로 이 인간형 이합 생물이 가브리엘보다 더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
이 괴물도... 네가 만들어낸 이합 생물이야?
만들어낸다...?
아뇨. 이것들의 탄생은 퍼니싱의 의지입니다. 전 성장하도록 도와줬을 뿐...
자신의 주인까지 배신해서 말이지.
루나 아가씨의 일은 저도 바란 건 아닙니다.
이중합 코어에서 생명을 발견한 순간부터 승격 네트워크가 제 소망을 이해해 줬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를 위해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준 겁니다.
그때부터 제 계획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루나 아가씨라면 제가 이루어낸 것을 칭찬하고, 저와 함께 승격 네트워크가 준 사명을 완수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대행자의 직책을 완벽히 이행해내는 루나 아가씨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녀가 망설이게 된 것은 모두 알파...그리고 당신들 때문입니다.
루나가 망설이게 된 이유가...우리 때문이라고?
알파가 온 후로... 그리고 당신들과 여러 번 만난 후로... 루나 아가씨는 승격자로서 가져서는 안 되는 쓸모없는 감정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정을 이용해 루나 아가씨를 미끼로 삼아 알파를 유인할 생각이었는데 말입니다. 두 자매를 모두 취서체의 양분으로 삼을까 했는데... 알파는 나타나지 않았죠.
제 계획을 알아차리고 도망친 걸까요? "가족의 정"이라는 것도 결국 그 정도밖에 안 되나 봅니다.
아니면 그녀도 결국 인간이 말하는 "감정"이라는 것이 인간의 뇌에서 생겨난 환상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을지도 모릅니다.
강철의 신체를 지닌 우리는 애초에 그런 쓸모없는 감정 따위 버려야 합니다.
...말해봤자 의미 없습니다.
멀리서 취서체의 포효가 전해지자 지하 공간의 암벽이 진동으로 인해 무너졌다. 암벽이 갈라지면서 떨어져 나온 수많은 돌이 적조로 떨어졌다.
가브리엘은 이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역시 루나 아가씨. 가장 중요한 조각이 맞았습니다... 조금 약해졌지만, 그래도 대행자로서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십니다.
취서체가 그녀의 의식과 존재를 완전히 소화하면 이곳을 뚫고 나가 세상에 그 힘을 보여줄 겁니다. 그럼 다른 승격자도 제가 선택한 모든 것이 옳다는 걸 알게 되고, 우리의 숙원을 위해 알아서 몸을 바칠 겁니다...
이제 마지막 우환인...알파를 처리하러 가야겠습니다. 그녀를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상당히 성가시게 될 것 같군요.
정말 아쉽습니다. 당신들이라면 새로운 세계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니...
그러면 인류의 종말이 다가오기 전에 제물로서 취서체의 양분이 되어주시죠. 마지막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겁니다.
가브리엘이 손을 들자 수많은 이합 생물이 적조에서 솟아올라 그레이 레이븐을 포위했다.
루나 아가씨를 지키십시오. 그들이 다가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새하얀 이합 생물이 날개를 거두고 가브리엘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다시 뒤돌아 취서체의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저 위치는...
벌떼처럼 몰려온 이합 생물이 시야를 차단했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거침없이 중심 구역을 향해 나아갔다.
멀리서 취서체의 포효가 귀가 멀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전원! 전투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