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불타는 황야였다. 알파는 맹렬한 불꽃 속에서 서서히 두 눈을 떴다.
의식이 침입당하고 있어. 의식의 연결 다리에 이런 효과가 있을 줄이야...
두 사람의 의식의 바다는 화서가 세운 연결 다리로 인해 단단히 이어져 있었지만, 알파의 극도의 분노로 인해 의식의 바다가 팽창해갔다. 이대로 가다간 루시아를 집어삼킬 것이다.
분기점이 생기기 전까지는 본래 같은 사람이었다. 이 분기점으로 인해 두 사람이 다른 길을 가게 됐더라 해도 의식의 바다가 본래 같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었다.
우리의 의식의 바다 중에서 같은 부분을 이용해 서로를 연결하는 건 도끼로 제 발등 찍는 꼴이야.
뜨거운 불꽃이 의식의 바다에서 솟구치면서 두 사람이 부딪친 곳이 들끓는 용암으로 변했다.
루시아가 무기를 꽉 쥐며 지금까지의 힘이 되는 기억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부딪치면서 불바다에 작은 눈꽃이 튀어 올라 알파의 새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떨어졌다.
너를 지탱하고 있는 감정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돼?
아니면... 방금의 그 기억에 동요하는 건가?
루시아는 답하지 않았다. 발끝으로 몸을 뒤집어 뛰어오른 후 칼날을 알파의 이마를 향해 뻗었지만, 명중하기 직전에 의식의 바다가 또다시 뒤틀리기 시작하면서 돌로 된 벽이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나 공격을 막았다.
수작 부리지 마...!
돌의 벽이 날카로운 칼날에 닿자 조각나버렸다. 루시아는 또다시 태도를 들었지만, 눈앞에는 어느새 낯익은 구룡 순환 도시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루나를 다시 만난 곳을 기억해?
당연하지!
그럼 다시 한번 물을게, 루시아. 지금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버린 세계를 선택할 거야?
알파는 루시아의 십자 베기 공격을 가볍게 피하면서 상대가 바닥에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칼날을 빠르게 회전해 불꽃이 튀는 만월을 만들어내 공격해왔다.
과거로부터 도망친 "나"는 절대 날 이길 수 없어!
루시아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린 후 환영인 테이블과 의자는 연기가 되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알파는 연기 속에서 조용히 서서 에너지를 칼날에 모은 후 안개 너머의 상대를 향해 전력의 일격을 날렸다.
지금의 넌 후회와 망설임에 짓눌리고 있을 뿐이야.
폐허에 쓰러진 자를 차가운 시선으로 보면서 또다시 그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번은...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안 돼! 난 루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
뭐?!
망가진 테이블과 의자의 환영이 또다시 의식의 바다에서 구성된 구룡의 풍경에 나타나 알파를 향해 날아가자 그녀는 황급히 무기를 뽑아 앞의 공간을 빠르게 베어냈다. 그 테이블과 의자는 알고 있는 것과 똑같은 소리를 내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루시아가 힘을 비축해 베어 오는 칼날이 다시 덮쳐왔다.
이 정도로는 아직 멀었어.
천장에 걸려 있는 등의 촛불이 켜지자 사방은 또다시 불바다에 휩싸였다.
반드시 그녀를 구해낼 방법을 찾아낼 거야. 그러니... 절대 이곳에서 질 수 없어!!!
싸늘한 한기가 루시아의 칼날에 모여들었다. 앞을 향해 가볍게 휘두르자 서리가 응집된 검광이 불바다를 가르며 길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서리를 밟으며 알파를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갔다.
그럼 한 번 시도해 봐.
수호와 증오, 신뢰와 배신, 얼음과 불...
모든 감정을 담은 공격이 공중에서 부딪치며 의식의 바다가 또다시 격하게 흔들렸다...
입으로는 오만한 말들을 쏟아내지만 너무나 혼란스럽고 보잘것 없어 보이네. 이게 바로 지금 너의 모습인 건가?
깨진 얼음이 눈꽃이 되며, 루시아의 의식은 끝없는 심연으로 떨어졌다.
...난... 아직 망설이고 있는 걸까?
자신에게 물어도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다. 기나긴 추락 속에서 알파와 같은 수많은 과거가 눈앞에 나타났다...
루나와 함께 의지하던 기억, 그 "어른"들을 따라 수도원을 떠났을 때의 기억, 구조체가 됐을 때의 기억...
루나... 난 절대로...
떨리는 소리와 함께 기억으로 구성된 모습이 심연의 가장 밑바닥에 조용히 내려왔다.
...언니.
그 새하얀 소녀는 마치 밤하늘의 초승달처럼 칠흑의 심연 속에서 순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눈으로 본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
소녀의 곁에서 적색빛이 서서히 솟아오르자 그녀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무수한 적색빛의 기둥이 밑에서 튀어 오르자 고요한 심연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