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아는 루나에 대해 생각하면서 계속 나아갔다.
이런 사념에 이끌린 거일지도 모른다. 의식의 바다 심층에서 낮은 소리가 들려오면서 주변의 회로가 모두 봉쇄됐다.
이게 바로 언니가 믿은... 인간이야...
루나...?
눈앞에 루나의 형상이 나타났다. 루시아는 이것이 의식 속에 존재하는 환영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언니…어째서 루나 곁에 있어주지 않는 거야?
이곳에 남으면 더 이상 고통스럽거나 슬픈 일을 겪지 않아도 돼...영원히 나와 함께 있을 수 있어.
이쪽으로 와...언니...전처럼 내 손을 잡아줘...
...후회하고 있었어. 루나를 혼자 보낸 것을...가능하다면 이번에는...
하지만 루시아는 알고 있었다. 이 손을 잡으면 자신은 두 번째 알파가 될 것이다.
안 돼, 루나...
알파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내 기억을 숨기지 않았다면 난 그녀와 같은 길을 갔을 거다.
하지만... 이 길도 바꿀 수 없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건... 언니야...
눈앞의 가냘픈 소녀가 작게 한숨을 내뱉자 주변의 경치가 비틀리면서 흐려졌다. 어느샌가 최초의 분기점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들자 알파가 반대편에 서서 루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나를 봤어?
루시아가 답하지 않자 알파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무기를 꽉 쥔 채 루시아를 향해 돌진했다.
두 사람의 칼날이 붉은색과 푸른색의 기류로 변해 서로 부딪쳤다. 의식의 바다가 격하게 흔들리면서 두 사람의 사고와 기억도 그 흔들림 속에서 심각한 착란을 일으켰다.
의식의 바다가 흔들리다니!?
쯧...
서로의 회상 조각이 회상의 난류속에서 경계를 넘었고 붕괴되어 쏟아지는 유리 조각처럼 그녀들의 앞에 나타났다.
그 순간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억이 루시아의 뇌로 수없이 흘러들어왔다...
...알파!
...한때 희망이었던 것들이었다.
역시 그 일을 공중 정원에 보고해야 된다고 생각해. 상부는 진실을 알아야 해. 그래야만... 그들은 죄를 뒤집어쓰고 희생당한 거뿐이니까.
게다가...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게 좋잖아?
너희는 공중 정원의 구조체지? 무롤과 진을 본 적 있어? 의식 회수를 했다고 들었어.
그런 사람은 들어본 적 없는데... 잠깐, 침식체?!
구조체 병사는 황급히 무기를 들려고 했지만, 알파의 칼끝에 튕겨져 버렸다.
가. 내가 생각을 바꾸기 전에.
...보답받지 못하는 희망이었다.
어째서!
제가 루나 아가씨의 가장 존경스러운 언니를 속일 리가 없잖아요. 믿지 못하겠다면 그 녀석의 의식의 바다를 탐색해보는 건 어때요?
공중 정원에서 그 사건을 완전히 지워버렸나 보네.
게다가 너와 똑같이 생긴 루시아가 새로운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배정되었지.
그들로부터 벗어났는데도 계속 이용당하는 건가? 인간이란 생물은 정말...
이 침식체는...전에 그 구조체 병사인가?
왜 너까지...
그렇구나...너도 배신당했구나.
수없이 많은 실망이 마치 자갈처럼 알파가 나아가는 길을 뒤덮었다.
다시 불타오른 희망은 계속 꺼졌다.
그녀의 절망은 마치 배양 접시 속의 균처럼 계속해서 퍼져나가 모든 것을 침식했다.
이게 바로 "퍼니싱"이 지닌 의의였다... 이런 비열한 감정이 아직 마음속에 있는 한, 인간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적어도..."내"가 또 이용당하게 둘 수는 없다.
또 다른 내가 절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나"는 비열한 인간에게 충성을 바쳤다.
...내 손으로 모든 잘못을 바로잡겠어.
……
너도 봤지?
…응.
의식의 바다가 충돌하면서 회상의 난류가 일어났다. 그 덕분에 루시아는 알파가 분기점 후에 겪은 일들을 볼 수 있었고, 알파도 루시아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서 지난 나날들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루나도 승격 네트워크에 선택된 것은 시작에 불과해.
알파는 괴로운 듯 눈을 감았다. 자신의 과거 때문에 괴로운 것인지, 아니면 자신과 완전히 다른 루시아의 현재를 보게 돼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도 한때 너처럼 그 나약한 거짓말을 믿었어. 하지만 거짓말은 결국 거짓말일 뿐이야. 언젠가는 밝혀지기 마련이거든.
네가 인간에게 배신당해 또다시 비열한 생물들의 무기가 될 바에는 직접 내 손으로 "나 자신"의 실수를 끝내버리겠어...
알파가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불꽃이 발자국에서 치솟으면서 주변의 풍경이 뒤틀리기 시작했다...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