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체가 파도처럼 몰려오자 다리에 부상을 입은 루시아는 힘겹게 버티며 수많은 침식체를 물리쳤지만, 그래도 상황은 심각했다...
더 많은 침식체가 시선의 가장자리로 몰려오며 아슬한 방어선을 넘으려고 했다.
루시아... 그만해... 이 정도까지 침식된 이상 살아남을 수 없어.
헤론...
자신의 표찰을 뜯어내 루시아에게 건넸다.
미안해, 루시아...미안해, 진...무롤...
제발 날 좀 죽여줘. 난 인간의 적이 되고 싶지 않아.
헤론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우리는 이미 인간의 적일지도...
…………
두 사람 모두 입을 닫자 침묵에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후 루시아는 태도를 들어 헤론을 향해 겨누었다.
우리는 인간을 지키는 칼이지만...
그녀는 자신을 조금씩 포위해오는 침식체의 대군을 슬프게 바라봤다.
...적어도 진과 무롤을 구해내야 해!
결심한 루시아는 자신을 포위한 침식체를 뚫고 나가고자 했지만, 적의 수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끈질겨!
여전히 퍼니싱의 고통이 퍼져나갔지만, 그래도 꿋꿋이 주변의 적을 베어냈다... 그렇게 한참 베어내다가 침식체 무리 속에서 두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들은 루시아의 모든 움직임과 약점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루시아 또한 그들이 어떻게 공격해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두 사람의 가슴 쪽에 달린 인식표는 그녀에게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무롤... 진... 역시 너희들이었구나...
태도를 쥐고 있던 루시아의 손에서 힘이 빠지면서 태도가 땅으로 떨어졌다...수많은 침식체를 베어낸 명예로운 붉은 칼날은 진흙투성이가 되어버렸다.
괜찮을 거야... 의식 회수가 있으니까.
지금 바로 퍼니싱에 제어당한 빈 껍데기에서 해방시켜줄게!
대원의 인식표를 주운 루시아는 고개를 돌려 계속해서 다가오는 주변의 침식체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퍼니싱에 침식된 침식체는... 얼마나 많은 일을 겪고 침식체가 된 걸까...
..."그들" 또한 한때 누군가를 믿었을 것이다.
그래. 네가 루시아야? 난 레븐쉬,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야. 침식체에 대항하기 위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최강의 구조체이자 완벽한 무기가 되어주길 바래.
..."그들" 또한 한때 동료와 함께 싸웠을 것이다.
루시아, 망설일 필요 없어. 네가 돌아갈 곳은 그레이 레이븐이야. 우리는 절대 너를 배신하지도 버리지도 않아...
..."그들" 또한 한때 누군가와 약속을 했을 것이다.
침식체가 되기 전에는...우리와 비슷한 존재였겠지...
루시아는 체내에서 순환액이 계속 흘러나가자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어 잔해 옆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인간은... 정말 우리가 지킬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
루시아는 손에 든 인식표를 꽉 쥔 채... 완전한 침묵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