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한 진동과 함께 거대한 승강기가 드디어 최하층에 멈췄다.
모두가 화서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화서는 곧바로 승강기를 벗어나 버렸다.
경계를 늦추지 말고 계속 쫓아가자.
알겠어요!
네 사람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수십 미터 나아가자 한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알파!
화서의 투영이 알파의 곁으로 이동한 후 사라졌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일행을 이곳까지 데려온 게 바로 알파의 명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건...
네. 신호 출처의 위치에 따르면... 화서의 비밀 코드가 분명해요.
너희가 무엇을 위해 왔든 여기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거야.
화서,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도록 해.
알파의 말이 끝나자마자 리브와 리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바닥에 짓눌렸다.
기체가... 제어를 잃었어요!
화서... 기체의 제어 기능을 공격하다니... 그런 것까지 할 수 있을 줄이야...
파오스의 창은 무기이자 약점이기도 하지.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은 너희들을 제어하는 것 정도는 화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해.
알파! 그들을 놔줘!
루시아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또다시 태도를 뽑아 자신과 똑같이 생긴 그녀를 향해 태도를 휘둘렀다.
두 사람의 칼날이 부딪치는 순간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로 비슷한 자세와 기술로 싸우니 승패를 가리기 어려웠다.
현재 사용 가능한 연산력에 따르면 억제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613초입니다.
충분해. 하지만 저쪽에 있는 인간을 잊으면 안 돼.
알파는 루시아의 공격에 대응하면서 화서에게 명령했다.
파오스의 창 시스템을 통해 지휘관의 링크에 침입 중입니다.
역제어가 가동되었습니다.
지휘관님!
양손이 제어를 잃은 것처럼 목을 졸라오자 질식으로 인해 뇌에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끝없는 혼돈에 빠진 사고가 대뇌에 쏟아지면서 뒤죽박죽한 정보와 무질서한 논리가 순식간에 의식 전체를 뒤덮었다.
파오스의 창 권한에 침입합니다.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을 주변 침식체의 오염된 의식의 바다에 강제 투입합니다... 곧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미쳐버릴 겁니다.
이제 널 도와줄 사람은 없어. 루시아.
지휘관님을 놔줘!! 내 동료들을 놔줘!!
루시아의 분노가 서리가 되어 칼날에 모였다. 분사기의 힘을 빌려 뛰어올라 겨울의 바람 같은 검광이 공중에서 알파를 덮쳤다. 주로 공격에 능한 알파는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확실히 전과는 달라졌네. 하지만 그 정도밖에 안 돼?
알파는 루시아의 공격이 멈춘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준비하고 있던 것처럼 손에 든 붉은 칼날로 상대를 찔렀다.
결국 기만에서 태어난 힘일 뿐이야. 허울 좋은 이유를 내세워 끊임없이 칼을 휘두르게 하는 힘이지...
결국 사라질 운명인 신뢰를 품고 얼마나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언젠가... 넌 또다시 인간과 "그레이 레이븐"에 배신당할 거야.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게 되겠지.
알파의 말에 루시아는 순간 흔들렸다. 비웃는 것처럼 웃은 그녀가 다시 태도를 들어 루시아를 공격했다.
하지만 알파의 바람 칼날은 그녀의 잔영만 스쳐 지나가면서 옆에 오랫동안 버려져 있는 유리 상자를 깨뜨렸다.
네 말이 맞아. 우리는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이니깐. 지금의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만나지 않았으면 분명 나도 너와 같은 길을 걸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의 난 너와는 달라! 난 다른 길을 택했어!
결의에 찬 루시아의 표정은 알파에게「잘못된 길」을 선택한 자신을 조롱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또 다른 자신이,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
분노한 알파는 칼자루를 꽉 쥐며 번개 같은 기세로 앞으로 돌격했다. 분노에 내맡긴 파도같은 공격은 이제 육안으로 잡기도 어려웠다
넌... 아무것도 모르면서...
루시아는 급히 피했지만 그래도 쏟아지는 검광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부상을 입고 말았다.
루시아... 어서! 지휘관님이...
화서에 억제를 당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리브는 온 힘을 짜내 외쳤다. 그리고 발버둥 치는 인간을 향해 주사기를 던졌다.
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키며 알파를 향해 총을 쏴 그녀의 붉은 검광을 끊어 루시아가 물러날 수 있는 틈을 만들었다.
지금이야!!
루시아는 알파가 리의 총알을 피하는 순간 뛰어올라 곧 질식할 것 같은 지휘관의 곁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지휘관님, 죄송합니다!
루시아는 목을 조르는 양손을 꽉 잡아 벗겨낸 후 바닥에 꽉 눌렀다.
순간 공기와 손목에서 전해지는 통증이 가슴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의식이 몸속에서 뒤섞이면서 들끓어 올랐다.
일단 숨을 쉬세요!
알파는 루시아가 통제할 수 없는 지휘관의 두 손을 방호복의 벨트로 꽉 묶는 모습을 코웃음 치며 바라봤다.
정말 어리석구나. 네가 한 모든 것은 무의미해. 너의 그 위선은 고통만 늘릴 뿐이야...
루시아는 비웃는 알파의 말을 무시하고 리브가 방금 던진 주사기를 들어 황급히 방호복의 주사 입구에 찔러 넣은 후에야 그 위에 적힌 설명을 알아차렸다.
단시간 혼합 진정제...
알파는 비웃으며 태도를 뽑아 루시아를 공격했다.
끼익!!!
싸늘한 서리의 칼날과 붉은 검광이 부딪치면서 불꽃을 튕겨냈다. 두 사람은 각자 추구하는 것과 분노를 품은 채 또다시 부딪쳤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식의 통증에 몽롱하여 더 이상 시간의 흐름도 인지할 수 없었다.
마치 어두운 새장에 갇힌 것 같기도...침식체의 바다 속에 던져진 것 같기도 했다.
싸우는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의식을 찢기는 듯한 아픔도, 윤곽째로 희미해져 가는 것 같다…
거의 기절하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뚜렷이 들려왔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어두운 시야 속에서 "그것"은 마치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처럼 오색찬란한 빛이 유리 위에서 역동 쳤다. 강렬한 기억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시 살아났다.
지휘관 [player name]님이 경도의 위장 환영을 정확하게 인지하셨습니다. 오염된 의식의 바다에서 4분 32초 동안 의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구조체와 연결하고 정신 오염에 저항하는 뛰어난 자질을 지니셨습니다.
결과에 따라 지휘관 [player name]님은 승격자와 연결이 가능하다고 추측합니다. 그러므로 화서는 제안합니다...
루시아의 의식의 바다를 빌려 그녀와 근원이 같은 알파에 침입하시길 바랍니다.
알파의 의식의 바다에 진입하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다른 멤버를 위해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루시아라는 개체에는 그 어떤 영향도 주지 않습니다.
화서는 1급 권한자의 명령을 위반할 수 없습니다. 금지하지 않은 일만 가능합니다.
루시아의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켜 승격자 알파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루시아와 알파에게 동일한 권한을 부여해 심층 의식의 바다에 방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같은 권한을 부여해야만 근원이 같은 의식의 바다를 지닌 두 사람이 동기화할 수 있습니다.
화서는 승격자 알파에게 파괴되지 않습니다.
지휘관 [player name]님은 잔여 정보를 확인할 권한이 없습니다.
협의를 성공시키기 위해 화서는 지휘관 [player name]님에게 유용한 정보를 정확히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행동 시뮬레이션에 따라 연산한 결과, 이에 협력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하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모든 멤버가 희생될 겁니다.
지휘관 [player name]님, 그 판단은 환경과 지원군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목표와의 협의를 달성했습니다. 화서는 지휘관 [player name]님이 최대한 의식을 뚜렷하게 유지하기를 권장합니다.
의식 속에서 불합리한 제안에 항의했지만, 화서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대량의 정보가 미친 듯이 온몸에게 흘러 들어오자, 필사적으로 의식을 유지했다. 하지만 화서의 요구 수준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화서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더 뚜렷한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방의 멀지 않은 곳에 깨진 유리가 마치 희망의 마지막 조각처럼 어두운 불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깨진 유리로 뒤덮인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자 피에 섞인 고통이 혼돈에 빠진 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냈다.
불안정한 의식 속에서 하산이 마지막으로 분부한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맞아.
루시아의 기체에 알파의 데이터가 있으니 완전한 기억을 되찾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니콜라가 염려되는 점이 있다 하면서 그녀의 기억을 일부 봉인했다. 그래야 앞으로의 전투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해결법은 잠시뿐이다. 오래 끌수록 루시아는 더 혼란스러워하고 의심을 품게 되겠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의 인연이 그녀가 그 선을 넘지 않도록 잡아줄 거라고 믿는다.
네 단말기에 권한 비밀 코드를 하나 전송했어. 파오스의 창 시스템의 힘을 빌려 루시아의 깊은 의식의 바다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알파의 봉인된 기억은 그녀의 깊은 의식의 바다에 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너도 잘 알겠지.
그리고 그것을 언제 사용할지는 네가 정하도록.
지금의 루시아는 그 선을 넘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왜 여유가 있을 때 주지 않냐고 묻는 거라면... 그건 지금까지 수많은 망설임과 의심에 발목이 잡혀 목숨을 잃게 된 사람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거든. 이런 일은 타이밍을 가리지 않지.
기억이 단절되기 전에도 저는 지휘관님, 리브, 그리고 리가 없는 옛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멤버였어요.
그때도 제 옆에 루나가 없었지만, 전 지금처럼 확고한 의지로 공중 정원, 인류, 그리고 전우를 지키기 위해 싸웠어요.
하지만 그 단절된 기억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또 다른 저는 다른 길로 벗어나 버렸죠.
그래서... 약속할 수가 없어요. 게다가 모든 기억을 되찾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싫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머문 나날들은 루시아가 성장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처음의 그 아무것도 없는 차가운 나에서...
너 혼자야?
아...
저...
저 혼자에요.
우연이네. 나도 혼자야. 네 이름은?
루시아...
점점 더 강해지고...
통각을 차단했으니 임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어요!
그리고 따뜻해지고...
제가 가장 지키고 싶은 보물은 바로 그 약속이니까요. 그러니 전 더 이상 저 자신을 병기로 삼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예리함을 잃어버리지는 않을 거예요. 지키고 싶은 걸 위해서라도 계속 싸워나가야 하니까요. "칼집"속의 날카로운 칼처럼요.
간신히 몸을 일으켜 무거운 머리를 들어 올리자 여전히 분노하며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그런데 루시아는 알파의 공격에 밀려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알파가 전력을 다해 칼을 휘두르는 순간 그녀를 향해 날아온 총알이 그 공격을 막아냈다. 알파는 황급히 뒷걸음치며 총을 쏜 인간을 분노하는 눈으로 노려봤다.
그 지경이 됐는데도 일어날 줄이야...
마인드 표식을 최고 안정성 기준으로 설정해도 이 인간은 이미 의식을 잃었어야 합니다. 오차 현상을 분석할 수 없습니다. 오차 분석을 위한 시간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화서는 알파라는 개체에 더 먼저 처리해야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는 현재 심층 의식의 바다 방문 권한을 양도 중입니다... 양도 목표는...루시아입니다.
심층 의식의 바다 방문 권한을 양도한다고?
알파는 교전 중에 권한을 양도하는 것이나 루시아에게 과거를 떠올리는 권리를 주는 것 모두 멸망을 자초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인간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것 같네...지금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player name].
간신히 일어섰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의식과 고통이 몸속에서 깨어나는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지휘관님!!
시각과 모든 감각이 비틀렸음에도 불구하고 루시아가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휘관 식별 중...식별명: [player name]
>>>>>>>>경고: 심층 의식의 바다 방문 권한을 양도합니다. 확인 바랍니다...
>>>>>>>>경고: 위험 평가가 끝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위험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최종 확인 바랍니다...
>>>>>>>>실행합니다. 프로토콜 업데이트 중...
>>>>>>>>업데이트 완료
>>>>>>>>액세스 권한 변경 성공. 권한 태그가 초기화됩니다. 현재 태그: 구조체 의식(LUCIA)
네...그레이 레이븐 소대를...지휘관님을 믿어요...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그레이 레이븐 소대이 유지된다면, 무엇을 알아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모르니까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거야.
알파가 몸을 숙여 루시아에게 다가가 곧바로 그녀의 목을 찌르려고 했지만, 루시아는 앞으로 다가가 치명적인 공격을 검신으로 막아냈다. 두 사람의 태도가 호각을 이루며 불꽃이 격렬하게 튀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어도 내게는 지금이 있어! 그레이 레이븐과 함께한 모든 나날이 내 의식의 바다에 있으니 후회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니 난 무지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아!
알파와 루시아는 수많은 공격을 주고받아 상처투성이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려워하지 않았다. 각자의 무기를 꽉 쥔 채 호흡하며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
의식의 바다 연결 다리가 생성되었습니다. 공명까지 5, 4, 3, 2...
너희들?!
>>>>>>>>[목록 방문——] 의식의 바다 다리 연결 중...
>>>>>>>>권한 인증 성공... 의식의 바다 매칭 일치... 연결 준비
>>>>>>>>연결 성공...연결자: 구조체 의식(LUCIA)
알파...아니, 또 다른 나...
널 이해하고 넘어보겠어. 어떤 과거를 가졌든 난 나야. 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루시아야...!
>>>>>>>>의식 잠복... 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