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로를 따라 깊은 곳을 향해 십 분 정도 걸자 드디어 방공호 입구로 보이는 방에 도착했다.
저건...
루시아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살펴보자 입구에서 내부의 컨베이어까지 침식체가 가득 쌓여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침식체"였던 무언가라고 하는 게 정확했다.
뚜렷하게 형태를 구분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고의로 뭉그러뜨린 것처럼 구분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구분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구조체에 속했다.
말라버린 순환액과 퍼니싱 증식체가 곳곳에 굳어 있는 상태였는데, 여과기로 걸러냈음에도 불구하고 부패와 먼지의 냄새가 맡아지는 것 같았다.
아무렇게나 쌓인 기체 조각들을 보니 "시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곳에 침식체의 잔해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이 식별 번호는... 이곳에는 공중 정원의 구조체도 꽤 있는 것 같아요...
...왜 입구와 가까운 이곳에... 게다가 이 수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렇게 많은 잔해가 있다는 것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루시아는 태도를 뽑아 자세를 잡은 채 일행의 가장 앞으로 나왔다.
주변 500m 내의 에너지 반응을 스캔할게요...
여러 대의 침식체가 감지돼요. 거의 절전 상태이긴 하지만...아, 지휘관님, 조심하세요!
리브가 경고하기도 전에 뒤에서 무언가가 발을 잡아당기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잔해에서는 마치 망가진 풍로 같은 소음이 들려왔다.
손을 들어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쏘자 묵직한 소리가 들려온 후 침식체가 멈췄다. 잔해 속에서 빛나는 붉은빛은 두 번 깜빡이다가 어두워졌다.
어두운 곳에서 숨어 있는 적이 갑작스러운 총기 소리에 놀랄 수도 있어서 일단 침식체의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발을 붙잡고 있는 힘이 약해서 손쉽게 빼낼 수 있었다.
!
루시아의 칼날이 곧바로 침식체의 머리를 정확하게 뚫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침식체는 손을 뻗은 그 자세 그대로 기능을 멈췄다.
...이런.
눈앞의 침식체가 조용해지면서 주변의 잔해 곳곳에서 적색빛이 번쩍이며 기체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는데, 눈앞에서 열몇 대의 침식체가 폐허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버려진 기체뿐만 아니라 방어 시스템까지... 생각보다 더 진부한 수법이군.
지휘관님!
그럼 일단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