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도 조사를 거의 다 마쳤지만 쓸모 있는 단서는 없네.
우리가 본 지도는 여기까지예요. 다음은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요?
모두가 속수무책에 빠져있는데 한 당황한 연구원이 시선을 끌었다.
이 사람을 본 적 있나요?
그녀는 사진 한 장을 꺼내 청소부들에게 묻고 다녔다.
너희는 일자리가 있는 상류층이잖아? 사람을 찾고 싶으면 집 지키는 개한테 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
이건 제 개인적인 일이라서 보안 요원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어요.
부, 부디 도와주세요.
그 말을 듣자 구석에 웅크려 있던 청소부가 사진을 받아 슬쩍 흘겨봤다.
아, 이 사람? 정보를 알고 싶다면 성의를 보여야지.
연구원은 황급히 주머니에서 압축 과자를 한 봉지 꺼내 청소부에게 건넸다. 그러자 빠르게 뜯어 허겁지겁 입으로 쑤셔 넣었다.
방금 저쪽으로 갔어.
연구원은 황급히 감사 인사를 전하며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그는 입을 비틀며 비웃었다.
뭐, 본 적은 없지만...
이 청소부와 연구원의 모습을 보니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인 것 같아요.
여기에는 중요 정보에 부합하는 단서가 없어요. 그래도 한 번 시도해볼까요?
연구원의 허상을 따라간 일행은 한 어두운 골목에 이르렀다.
이곳은 아직 조사하지 않은 곳이에요...
입구가 거의 눈에 띄지 않네요. 의도적으로 숨긴 것 같아요.
파오스의 창 시스템에 키워드를 입력하자 방금 그 연구원이 또다시 모두 앞에 나타났다.
그녀를 골목을 따라 한참 뛰다가 한 구조체를 향해 뛰어들었다.
언니!
그 사람이 대충 가리킨 방향에서 찾게 되다니... 수색 범위를 좁혔기 때문일까요?
함께 자란 사람이 어디로 갈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아. 이미 상대의 습관과 사고방식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런가요? 전 그런 경험은 한 번도 없어서...
리브는 형제나 자매가 없어?
오빠와 언니가 있지만 피가 이어진 건 아니에요.
혈연으로 이어졌다면 좀 더 나았을까요...
혈연이요...?
바로 그때 그 연구원에게 안긴 구조체가 고개를 돌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넌...아, 리아드린의 여동생인...어...안젤, 맞지?
어, 사람을 잘못 봤나?
아니, 리아드린이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어디에 있어?! 이렇게 오래됐는데도 아직도 소식이 없어. 위치 정보에 따르면 이 근처라고 해서...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혹시 못 들었어? 이전 전투에서 중상을 입어서 기체를 바꾸고 나서야 겨우 회복됐어. 오늘 아침 나가던데? 아마 전투 임무가 또 있나 봐.
날 기억하겠지?
기억 데이터에 손상은 없는 것 같아. 어젯밤도 나와 인사했거든.
불안하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난 임무가 있으니 이만 가 볼게.
그녀가 손을 흔들고 떠나자 안젤은 한숨을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언니가 많이 걱정되나 보네요. 게다가...연구원인데 자신의 언니가 구조체가 됐으면...
...뭔가 사정이 있겠지.
몸을 일으켜 무릎의 흙을 털어낸 안젤이 근처의 벤치로 가려는 순간 통신이 울렸다.
메시지...언니가 보냈구나.
황급히 메시지를 열자 주변에서 보고 있던 네 사람도 가까이 다가가 스크린에 찍힌 메시지를 확인했다.
안젤, 오랜만이야. 요즘 연락하지 못해서 미안해.
며칠 전에 전장에서 중상을 입었지만 덕분에 구조 캠프에서 날개가 돋은 기계 천사를 만났어. 그는 내게 승격 네트워크라는 힘에 대해 알려줬어.
우리는 같은 연구자였지만, 실험체가 부족해지자 나는 징용되어 더 이상 연구를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지...
그런 나에게 다시 퍼니싱을 연구할 기회가 찾아왔어. 그래서 그의 초대를 받아들였지.
그럼 안녕, 안젤. 다시 살아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그 메시지를 본 안젤은 휘청거리며 뒷걸음치다 또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승격 네트워크?
그녀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언니...언니는 내가 반드시 찾아낼 거야. 반드시!
안젤은 몸을 일으켰다. 여기저기 붙은 먼지를 털어낼 틈도 없이 뒤돌아 돌아온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통신 기록에 있는 누군가의 번호를 눌렀다.
안젤이에요. 리아드린의 위치 검색 권한을 주세요.
안 돼. 안젤, 내가 얼마나 더 말해야 알아 듣겠어? 더 이상 언니를 귀찮게 하지 마. 전투에 방해된다고. 그녀가 구조체가 된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것은 알고 있지만..
네 언니는 너의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한 거야. 지금 일자리를 잃으면 어떻게 되는 것쯤은 너도 잘 알잖아?
후, 그럼 저도 솔직히 말 할게요. 언니가 부대를 이탈했는데,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뭐?! 증거라도 있어?
한 번 연락 해보시든가요.
그래. 잠시 기다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이 다시 울렸다.
...연락이 안 돼. 하... 무슨 일이 일어난 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보낼 테니 함께 가봐.
그래도 널 봐서라도 얌전히 돌아왔으면 좋겠네. 우리에게도 네 언니는 수많은 전공을 세운 소중한 인재야.
통신이 끊긴지 얼마 되지 않아 세 구조체가 차를 타고 달려왔다. 차의 네비게이션 시스템에는 목적지의 좌표가 뚜렷하게 찍혀있었다.
그들은 안젤을 태우고 좌표로 향하는 경로를 따라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여기인 것 같네요. 출발하죠. 지휘관님.
그런데 그녀는 언니를 무사히 찾아냈을까요?
그곳이 정말 승격자의 본진이라면 좋은 결말을 맺지 못했겠지.
양손을 꽉 쥔 리브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혈연이라는 건 정말 복잡한 관계네요. 서로가 성장함에 따라 강하게 연결되면서 이렇게 다른 사람을 심연으로 데리고 가버리기도 하니...
...혈연...
루시아가 그 말을 중얼거린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아직도 루나가 승격자가 된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걸까?
네, 지휘관님.
…네.
전 지금도 이해가 안 돼요. 루나는 왜 승격자가 된 걸까요?
개조에 실패한 후로 처리됐다고 들었는데...그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왜 또 다른 저와 함께 있는 걸까요? 그녀도 저라면...왜 승격자와 함께 있는 걸 선택한 걸까요?
...그게?
다른 일을 겪었다고요...?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따뜻한 환경에서 살았다면...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또 다른 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있다면, 왜 그런 길을 선택하게 됐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루시아가 고개를 들며 손에 닿지 않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구름에 숨어 있는 태양의 희미한 빛이 그녀의 손가락 틈을 통과했다.
그녀의 기억 속의 모든 것이 거짓이고, 제 목적도 이곳에 없다면...
저도... 그 여자처럼 되는 걸까요?
지휘관님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거죠?
제가 정말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지휘관님은 어떡하실 건가요?
그 답을 듣자 그녀는 하늘을 향해 뻗은 손을 가슴 쪽으로 거두면서 슬프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와 그녀는 원래 같은 사람이에요. 그러니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한다 해서 이상한 건 아니겠죠. 정말 절 믿으시나요?
그러니까... 저와 같은 일을 겪었다면 그녀도 지금의 저처럼 그레이 레이븐의 일원이 됐을 거라는 건가요?
그렇다고 답했지만, 루시아의 눈 속에 깃든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망설임, 상실에 대한 공포,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후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는 이별...
이 모든 것이 마치 태양을 숨긴 구름처럼 그녀의 마음을 뒤덮었다.
감사해요. 지휘관님.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눈 속의 걱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미소는 더 짙어졌다.
그녀는 뒤돌아 소대를 이끌고 목표 지점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 발걸음은 평소처럼 꿋꿋했다. 마치 목표를 노린 까마귀처럼 날개를 펼쳐 구름에 뒤덮인 하늘을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