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비교적 안전한 구역에 도착해 마침내 무거운 부품과 거의 다 떨어진 산소통을 벗을 수 있었다.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층을 살펴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살펴보지 않은 곳은 무너진 잔해에 막혀 열리지 않는 방뿐이었다.
이 방들에서도 활동 반응이 감지되지 않아요.
활동 반응이 없다고?
네. 그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어떻게 됐을지...
지금은 브리이타와 연결되지 않는 데다 적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야...
눈앞의 무너진 잔해는 부자연스럽게 쌓여 있었다. 대량의 가구로 입구를 막았지만 폭발로 인해 조각이 된 것 같아 보였다.
일단 이것들을 치우자.
제대로 된 도구가 없었지만 그래도 임시로 삽을 만들어 내 복도의 잔해를 치웠다.
문을 차례대로 열었지만 거의 비슷한 저장실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방은 바닥에 쌓여있는 사물함 외에도 오래된 생활용품이 흩어져 있었는데 벽 구석에 버려져 있는 작업복 몇 개는 너무 오래돼서 곰팡이가 피었다.
직원이 제복을 갈아입기 쉽도록 가장 깊은 곳에는 고분자화 융합물 병풍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자리에 꿋꿋이 선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리는 바닥에 어질러진 것들을 넘어 그 병풍을 열었다.
……!?
나머지 세 사람은 리의 표정이 확 달라지자 황급히 곁으로 다가갔다.
병풍 뒤에는 구조체 한 명과 지휘관 제복을 입은 인간이 한 명 쓰러져 있었다.
공중 정원의 구조체 소대에요. 왜 여기 있는 거죠?
네. 이 지휘관은...사망한 지 일주일 이상 된 것 같아요.
전에 다른 소대의 대장으로부터 들었는데 한 구조체 소대가 이곳에 임무를 수행하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요.
그게 그들일까요? 혹시 다른 대원도 있는 게 아닐까요...?
가능합니다. 하지만 보안 단말기로부터 너무 떨어진 상태여서 신호가 너무 약합니다. 여기에 하나 설치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럼 리, 부탁할게요.
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한 짐에서 예비용 보안 단말기를 꺼냈다.
아직요. 이곳은 신호 파동이 심하니 더 기다려봐요.
리브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리가 작은 단말기를 조작하는 걸 묵묵히 지켜봤다.
보안 단말기가 설치되었습니다.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 구역을 선택해주세요.
죽기 전 마지막 하루의 데이터만 수집해줘.
목표 데이터 수집 중 [>>>>>>>>] 완료
데이터에 따라 영상 구축 중 [>>>>>>>>>>>>>>>>>>>] 완료
파오스의 창 시스템 영향을 받자 방에 두 구조체와 한 인간 지휘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지친 듯 벽에 기댄 채 각자의 단말기 스크린을 앞에 펼쳤다.
아무래도 그 한 사람은 마지막을 함께하지 않았나 봐요.
코코에게 위치 정보를 보내서 이곳에서 합류하자고 해.
좌표를 보내지 않아도 찾을 수 있을 테니 그냥 운동 좀 더하라 하죠.
무슨 그런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목소리...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요.
나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 어디서 들어봤지?
지휘관 차림의 사람은 싸우는 두 사람을 무시하고 홀로 자료를 정리했는데 이미 그런 대화에 익숙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를 정리하고 코코가 돌아오면 바로 돌아갈 준비를 하자.
차가운 남성 구조체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인 후 스크린 상의 어질러진 자료를 차례대로 열었다.
전에 로라와 함께 근처에서 발견한 그...피같이 적색 액체에서 퍼니싱이 생물화하고 있는 증거를 찾았습니다.
이전에 이 일을 조사하러 파견된 소대는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인데...이미 녹아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퍼니싱 생물화라니...
또 하나의 소대가 사라졌다니...
녹아버리다니?
갑자기 쏟아져 나온 정보에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테이블 앞에 있는 세 사람처럼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처음 그 액체의 샘플을 채집하고 며칠이 지나자 기존의 크기보다도 세 배나 커지더군요. 그리고 지금 지하에서 솟아 나온 액체는 블럭을 다 뒤덮을 정도죠.
솟아올랐다고? 그럼 나중에는 조석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다시 지하로 돌아가나?
그보다는 분수가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며칠 전까지 지하의 샘물 정도였는데 지금 이 규모는 조석에 가깝습니다.
조석이 빠져나가는 시간은 전보다 더 오래 걸릴 거고, 그로 인해 지면에 더 큰 틈새가 생겨나겠지만, 그래도 지하로 다시 돌아갈 겁니다.
반드시 공중 정원에 이 소식을 알려야 합니다. 퍼니싱 생물화는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게다가 아직도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잖아요?
그 홍조는 원래 지하에 숨겨져 있었던 거죠?
그래서 공중 정원에서 감지하지 못했나 보네요.
전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조사해낸 그가 무사히 돌아왔었다면...
전송돼서 다행이에요. 그때는 제 검측 기기에 문제라도 생긴 줄 알았어요...
언제나 리브를 의지하고 있어. 그러니 좀 더 자신감을 가져봐.
하지만 전에 파견된 소대의 소식이 끊겼으니 다음에 이곳으로 파견된 소대는 분명 그들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졌을 거야.
그런 소대조차도 희생된 거라면...
이 구역은 신호가 너무 불안정해. 공중 정원으로 귀환한 후에 다시 보고하는 게 좋겠어. 팽창 방식은 알아냈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 잔해를 용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로라라고 불린 남성 구조체는 손을 들어 턱을 만지면서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것처럼 하품했다.
용해라...
맞아요.
그가 "맞아요"라고 말한 순간 눈앞의 허상이 로딩이 계속해서 끊긴 영상처럼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신호가 차단됐어. 서둘러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야 해.
허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테이블 앞의 두 사람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문 앞에 흐릿한 검은 그림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세 사람을 베어냈다.
코코! 너!!
놀라서 눈이 커진 그는 눈앞의 검은 그림자를 노려보면서 힘없이 쓰러졌다.
지휘관을 잃은 두 구조체가 검은 그림자에게 밀리면서 결국 전투에서 패배했다.
설마 그 코코라는 구조체가 모두를 배신한 건가?
이 소대는 아무래도 단결심이 부족한 것 같아.
아뇨. 전 왠지 이 기록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방금 로딩 중에 지연된 걸 말하는 거야?
네. 하지만...더 많은 단서가 있어야 이를 증명할 수 있겠죠.
더 조사해볼까요? 지휘관님?
네. 그럼 더 찾아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