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위기를 뛰어넘어 마침내 보안 단말기를 다시 설치했다.
보안 단말기 가동. 연결 생성 중>>>>>>>>......
단말기의 신호를 나타내는 칸이 가득 채워지면서 허상도 점차 선명해졌다.
침식체 수가 예상한 것보다 많아. 대체 여기에 모여서 뭘 하는 거지?
이곳의 잔해를 계속 조사하도록 하죠. 어쩌면 단서가...
리브의 안색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심각해졌다.
10km 밖에서 대량의 퍼니싱이 감지됐어요. 이곳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어요! 이 규모라면...우리도 삼켜지고 말 거예요!
설마 방금 감지한 고농도 구역에서 온 걸까?
방향을 보면...그런 것 같아요.
리브는 말을 이으며 방호복 강화 부품을 빠르게 조합하기 시작했다.
지휘관님, 일단 방호 장비를 강화하세요! 저희의 역원 장치는 이미 강화되었으니 잠깐은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리브의 도움으로 강화 부품을 빠르게 장착하자 마치 질식할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리가 지금 한 보호조치로 이 농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지?
무사히 대피할 때까지 버틸 확률은 41.32%에요. 하지만 이동하는 고농도 퍼니싱에는 항상 더 위험한 것들이 숨어 있어요.
리브가 소형 압축 산소통을 꺼내 방호 장비에 연결했다.
이 소형 산소통으로는 20분밖에 못 버텨요. 빨리 방법을 찾아내야...
최단의 대피 경로를 짤 수 있어?
속도가 우리보다 더 빨라서 최단 경로로 간다고 해도 늦을 거예요.
다른 방법이...적어도 지휘관님이 무사히 대피해야 하는데!
우리의 속도로도 불가능하면 인간이 무사히 도망치는 건 무리야.
감지된 행동 패턴을 살펴보니, 개별로 움직이거나 사방으로 확산하는 게 아니라 마치 터져 나온 홍수처럼 몰려오고 있어요.
우리가 방금 거리에서 본 그 빨간색 액체가 아닐까?
하지만 액체가 아무 도움도 없이 높은 곳으로 흐를 수는 없어. 분명 파악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거다.
지금은 4m 정도에요.
더 높은 건물을 찾아볼게요...남쪽에 버려진 호텔이 있어요. 2층 이상의 바닥이 잘 보존된 상태니 무너질 위험은 없어요. 그리고 전속력으로 이동하면 안전한 높이까지 도달할 수 있어요!
그럼 바로 이동하자!
하지만 그 호텔의 하단이 일부 무너진 상태여서 저층 계단이 아직 멀쩡한 지 모르겠어요.
계단이 없다면 바깥의 벽을 타서라도 올라가야 해.
리브의 예상대로 호텔 밑에 도착한 네 사람은 호텔 내부가 폭발 사고로 인해 1, 2층의 일부 벽과 계단이 모두 무너진 것을 봤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도 당연히 중단된 상태였다.
네 사람은 곧바로 호텔 밖으로 뛰쳐나와 아직 무너지지 않은 벽을 타기 시작했다.
간신히 안전한 높이까지 오른 일행은 호텔 내부에 들어서기도 전에 괴상한 빨간색을 봤다.
...저게 그 고농도 퍼니싱이야?
마치…밀물 같네요.
…………
네 사람은 먼 곳을 바라봤다. 눈이 아플 정도의 빨간 무언가는 마치 홍수처럼 빠른 속도로 몰려와 순식간에 거리 전체를 뒤덮었다.
진흙 같은 빨간 액체가 호텔의 외벽에 부딪혔다. 마치 일행이 딛고 있는 암벽을 기어오르려는 것처럼 큰 물보라를 일으켰는데 그게 네 사람의 등에 튀었다.
조심해!
모두 급히 위를 향해 벽을 탔다. 방호를 완전히 갖춘 상태지만 직접 접촉한 이상 침식 증상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냄새는...
빨간 액체가 일행의 시야에 가득 들어오면서 주변도 괴상한 비린내로 가득 찼다. 그건 마치 피가 썩기 시작하는 냄새 같았다.
일행은 호텔의 외벽에 튀어나온 장식물을 밟아 복도의 창 근처까지 이동해 호텔 내부로 뛰어들었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니 빨간 액체가 1층의 무너진 곳을 통해 흘러 들어와 1층에서 2층까지 가득 채운 게 보였다.
아직 제대로 서지도 못했는데 압축 산소통에서 삐삐거리며 경고음이 울렸다. 계량기를 보니 이미 49.8%에 도달했는데 방금 격하게 움직여서 호흡이 가빠지다 보니 소모량이 많이 늘어난 거였다.
이곳의 퍼니싱 농도는 이미 일반 장비로도 대처할 수 있는 수준으로 돌아왔어요. 아무래도 방금 감지한 치명적인 농도는 이 빨간 액체였나 봐요.
하지만 농도가 또다시 급증할 수도 있으니 역시 잠시 그대로 있는 게 좋겠어요. 일단 침식 증상을 처리하고 최대한 빨리 더 높은 곳으로 대피한 후에 부품을 해제하도록 해요.
나와 리는 역원 장치를 점검할 테니, 리브는 일단 지휘관님을 보살펴줘.
부품을 추가한 방호복은 너무 무거운 데다 이음매가 왼쪽에 있으니 제가 할게요.
하지만 리브는 묵묵히 혈청을 하나 꺼내 방호복의 이음매에서 퍼니싱이 들어가지 않도록 방지한 후에 바늘을 이음매에 꽂은 후 손을 풀어 혈청을 사전에 심어둔 카테터를 따라 체내로 들어가게 했다.
몇 번을 봐도 강화 후의 방호복은 인간에게 너무 무겁다고 생각되네요.
전에 체력이 약한 지휘관님을 본 적 있는데 방호복에 부품을 추가하기만 하면 무거워서 거의 뛰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대원이 업고 가곤 했죠.
혈청을 다 놓자 세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몸을 일으켜 조금 움직였다.
...그런데 지휘관님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뿐더러 우리와 비슷한 속도로 3층까지 올랐죠.
역시 최대한 빨리 위로 대피하죠. 그래야 지휘관님도 부품을 해제할 수 있을 테니까요.
리브가 역원 장치를 점검하면서 걱정한다는 듯 이쪽을 쳐다봤다.
아니. 지금이야말로 이 액체를 조사하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리브, 도와줘.
리는 갈라진 긴 쇠 파이프를 주운 후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하단의 적색 액체에 꽂아 시험 삼아 저었다.
진득거리는 걸 보니 액체라기보다는 진흙에 가깝네요. 아마 우리가 방금 본 그것일 겁니다.
단순하면서도 알기 쉽네요. 역시 지휘관님입니다.
점성 액체에 대량의 부품과 잔해가 섞여 있어. 아무래도 중간에 많은 침식체를 집어삼킨 것 같은데? 설마 낮은 지대에 있는 잔해를 "회수"해버린 건가?
이 냄새...아마 집어삼킨 건 대량의 침식체뿐만이 아닐 거야...
...사람도 있겠지.
루시아는 도중에 말을 끊었지만, 세 사람 모두 이미 무슨 일인지 단숨에 파악했다.
리브는 조금 떨면서 고개를 숙여 하단의 적조를 분석하려는 듯 바라봤다.
…………
왜 그래?
기기 분석에 오류가 생긴 것 같아요...
아뇨. 분석 결과는 모두가 말한 대로에요. 이 적조에는 대량의 침식체 잔해가 섞여 있는 데다 고농도의 퍼니싱이 감지되고 있어요.
하지만 이 퍼니싱은...이상해요.
리브가 어두운 표정으로 분석 단말기를 바라보는데 결과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퍼니싱이 마치 생물화된 것처럼 기생과 증식을 하고 있어요.
분석 기기에 오류가 생긴 거일 수도 있고요...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면?
그 말을 들은 순간 침묵에 휩싸였다. 퍼니싱이 정말 생물화되기 시작한다면 앞으로의 형세는 더더욱 예측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럴 리가 없어요...제 분석 모듈에 오류가 생긴 게 분명해요.
리브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방금 분석한 정보를 정리해 아시모프에게 보냈다.
리는 손에 든 쇠 파이프를 던졌다. 네 사람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계단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서 무너진 벽을 통해 거리를 집어삼킨 적조를 바라봤다.
어째서 공중 정원은 지금까지 이 같은 이상 현상을 감지하지 못했을까?
감시를 피할 방법은 많지 않아. 아주 잘 숨긴 게 아닌 이상 짧은 시간에 퍼졌다는거야.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심각한 건 마찬가지지.
그리고 한 가지 더...이 구역이 공중 정원의 감시를 피한 곳이라면 우리가 이곳을 이렇게 쉽게 알아내도록 화서가 가만히 뒀을 리가 없을 텐데.
그러니까 화서가 의도적으로 이 위치를 흘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그렇다고 생각해. 하지만 화서의 목적은 뭘까?
…………………………
네 사람은 다시 창 밖의 적조를 바라봤다. 대낮의 햇볕이 괴상한 빨간색 바다에 내리쬐자 솟구치는 파도가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적조의 물결이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은 마치 이곳에 탄생한 수많은 태아가 짙은 피 웅덩이 속에서 별 같은 눈을 뜬 것 같은 풍경이었다.
반짝이는 빛은 주홍빛 바다 속에 소리 없이 녹아 들었고, 이곳에 삼켜진 무수한 죽은 자의 잔해가 들끓는 붉은 액체 속에서 소리 없이 끓고 있었다.
생과 사가 모인 적조가 조용히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 네 사람이 적조를 주시하는 것처럼.
그런 괴상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미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
누구세요?
...살려주세요...
그 소리는 마치 바람에 흩어진 바다 안개처럼 주변의 파도 소리에 묻혔다.
하지만 숨을 참고 귀를 기울여도 파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활동 반응을 탐색해 볼게요.
리브는 집중해서 탐색했지만, 그래도 그레이 레이븐 외의 활동 반응은 감지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탐색 되지 않아요...어째서...
네 명이 고민에 빠지자 그 미약한 소리도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건 대체...
그 외침이 적조 속에서 들려온 게 아니라면 아마도...
리가 복도 옆의 계단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모두 3층 복도의 창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니까 그 소리는 호텔의 다른 층에서 들려온 거일 수도 있다는 거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