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침식체들을 모두 처치한 뒤 우리는 획득한 데이터에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
이건...전에 언니를 찾고 있던 그 사람이네요. 시간 표식을 보면 통화를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인 것 같아요...
지금 언니를 찾았는지 모르겠네요...기록을 재생해 볼까요?
급박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낡은 지프차 한 대가 폐허 앞에 멈춰섰다. 안젤이라는 이름의 연구원과 세 명의 구조체가 차에서 뛰어내렸다.
이제 더 이상 길이 없어. 걸어갈 수밖에 없겠어. 하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네 사람의 몸에서 각기 다른 침식 상태가 나타났다.
여긴 퍼니싱 농도가 너무 높아. 더 앞으로 가면 위험할 거야. 리아드린이 정말 여기 있는 거 맞아?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언니는 분명 여기 있을 거야. 어렸을 때 숨바꼭질을 하면 언니는 항상 날 찾아냈지. 우리는 텔레파시로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어.
그녀는 혈청을 꺼내 자신의 팔에 주사하더니 망설임없이 앞으로 달려갔다.
안젤.
여성 구조체가 폐허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더니 안젤과 마주했다.
언니! 드디어 찾았네.
내가 널 찾은 거지. 아까 그 구조체 말이 맞아. 지금 돌아가야 해.
맞아. 난 돌아가야 해. 그리고 그건 언니도 마찬가지야.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야. 안젤,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난 그냥 언니와 함께하고 싶은 것뿐이야!
함께라...
안젤, 난 구조체로서 싸우면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봤어.
지금 이대로라면 난 언젠가 널 떠나야 해.
가브리엘이라는 천사가 말해준 방법대로 해야 더 이상 퍼니싱한테 위협받지 않을 수 있어.
정말이야?
정말 그렇게 편리한 방법이 있다면 왜 퍼니싱과 싸워야 하는 건데?
……
그래, 모든 "지름길"엔 리스크가 있지. 하지만 다른 사람처럼 싸우다 죽을 바에 차라리 이런 리스크에 도전할 거야. 난 싸우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게 아니야. 난 너와 연구를 하고 싶어.
언니...심하게 다치더니 생각이 달라졌나봐?
…………
사실 항상 언니한테 사과하고 싶었어...내가 연구원으로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려고 언니는 자신의 미래를 포기했잖아.
공중 합체의 적응력이 좋은 건 나 뿐이었으니까. 네 탓이 아니야.
하지만! 하지만...만약 나도 이 자리를 포기했다면 우린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었어!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애초에 나와 함께 연구하러 떠나겠다고 했던 것도 그 선택이 더 안전했기 때문이잖아.
구조체가 된 뒤로 일에 집중을 못하겠어. 이러다간 곧 잘릴지도 몰라.
지금 직업을 잃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마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리고 "만약" 같은 건 없어. 난 이미 이런 모습이니까.
내가 걱정할까 봐 다친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거야?
갑자기 폐허 속 그림자가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리아드린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싶었다.
안젤, 얼른 가.
왜? 절대 언니 혼자 남겨두고 가지 않을 거야. 날 보낼 거면 같이 가!
우린 어려서부터 함께였잖아. 이제 이 세상에 남은 가족은 언니 뿐이야!
여긴 너무 위험해. 얼른 가. 저 사람들과 함께 떠나라고!
안 돼! 언니...어려서부터 말 는 아이였지만 이번만은...
안젤의 목소리가 떨려왔고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총을 내던지고 리아드린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거야...언니!
리아드린은 자신의 팔목을 잡은 안젤을 밀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어...?
그녀의 손은 여전히 리아드린을 잡고 있었지만 그녀의 몸은 천천히 넘어졌다.
안젤!!!
다른 세 구조체는 이 장면을 보고 빠르게 무기를 꺼내 가브리엘을 공격했지만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재료가 도착한 것 같군요.
뭐라고?!
제가 잘못 본 게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도움이 조금 필요할 뿐입니다.
언니...
안젤은 극식한 고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녀는 손목에 난 상처를 힘껏 누르고 소매로 눈에 튄 피를 닦았다.
눈을 떠보니 시뻘건 퍼니싱들이 가브리엘의 손에서 용솟음치더니 적색 전류로 변해 리아드린의 몸을 휘감았다. 그 색깔은 동공의 선혈처럼 붉었다.
으아아아악!
이 모든 걸 제대로 지켜보십시오.
가브리엘은 폐허 더미 위의 석판을 투척했다. 석판은 운동 능력이라곤 거의 없는 연구원을 명중했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안젤은 발버둥치며 이미 눌려버린 손을 리아드린 향해 뻗었다.
...언니...난 그냥...언니와 함께하고 싶은 것뿐이야.
언니가 곁에 없으면...난...
미처 마치지 못한 말은 바람 속에 흩어지고 리아드린을 향해 뻗은 손은 먼지 속으로 추락했다.
안젤——!
좋습니다. 당신은 분명 우리의 동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으아아아아악!!!!
리아드린의 울음소리가 폐허 속에서 메아리쳤다. 하지만 슬픔 섞인 비명에 그 누구도 위로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움직이는 물체들은 그 소리를 조금 자극적인 바람소리로 생각할 뿐이었다.
그녀는 퍼니싱의 침식 속에서 무기를 들었고 과거 그녀가 천사라고 불렀던 승격자를 향해 회심의 공격을 날렸다.
그 뒤로 리아드린의 허상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