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13 종언복음 / Story
잠입 작전이 술래잡기라면 항상 준비가 덜 된 쪽이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마치 지금의 머레이와 그의 뒤를 쫒는 기습자처럼.
머레이는 뒤편을 향해 방어 데이터 로봇을 투척했다. 이는 그가 모든 준비를 끝냈음을 의미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무기는 가상 수류탄이었다. 하지만 머레이는 수류탄으로 기습자를 처리할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기습자는 그와 5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바짝 붙은 상태였다.
게다가 아직 머레이의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의 단말기는 또 다른 의식의 바다 신호가 좌측에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누가 날 쫓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실력자군.
1분 안에 도망치든가 잡히든가 둘 중 하나인가...
일촉즉발의 순간, 머레이의 앞에 놓여있던 길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변형되기 시작했다.
시멘트 파이프 하나가 머레이 앞으로 떨어지면서 기어들어 갈 만한 틈이 생겼다
머레이는 망설이지 않고 시멘트 파이프 속으로 뛰어들어 알 수 없는 장소를 향해 미끄러져 떨어졌다.
물론 기습자도 머레이를 곱게 보낼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격렬한 폭발로 인해 콘트리트 파이프의 입구와 연결된 부분이 펼쳐지더니 납작하게 눌려져 버렸고 경사진 지면을 따라 미끄러졌다.
목표를 잃은 기습자는 가까스로 그 옆으로 굴러나와 멈춰섰다.
그녀의 옆, 공기 속에서 비늘 모양의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인간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형체가 천천히 나타났다.
어떻게 하지? 아예 지하도 폭파시켜버릴까?
...그건 임무에 포함된 사항이 아니야. 지금은 일단 철수한다.
좋아, 네 말대로 할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곳을 통해 침입상태에서 나가려고 하는 거라면, 거기서 매복해 있으면 돼.
정보부 자료실
땀투성이인 머레이는 손을 땀에 젖은 단자를 벗었다.
쳇...! 다행히 안 늦었네.
머레이는 단자에서 메모리를 뽑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하지만 카메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는 몰래 다른 메모리를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두 장관님이 정보로 싸우시겠다면 지금 이 정보들을 지워야겠습니다. 저한테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시킨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머레이는 단자를 틈새가 있는 쪽으로 차 넣고는 밖으로 나갔다.
머레이한테 주겠다는 물건은 이미 건네줬습니다.
그런데...왜 니콜라 사령관님의 명의를 사용하는 거죠?
괜찮아. 어차피 순순히 인정할 테니까.
두 분...도대체 무슨 계획을 꾸미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군요.
머레이는 추억속의 노래를 부르며 공중 정원의 텅 빈 회랑으로 사라졌다.
비록 중간에 사고가 있긴 했지만 제때에 오긴 했네.
옅은 푸른색의 지구 홀로그램이 복도의 꼭대기에서 반짝이고 있었고, 수많은 작은 빛들이 홀로그램 위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은백색 데이터 칩을 돌리던 머레이는 복도 양측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따로 떨어진 방이 머레이의 시야에 들어왔다. 방문의 정중앙에는 홀로그램으로 문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차징 팔콘, 케르베로스, 백로...
우로보로스, 스왈로우테일...
머레이는 걸으며 눈에 들어오는 소대의 이름을 조용히 되뇌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머레이는 드디어 발걸음을 멈췄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찾았다.
평온한 전주가 끝나고 낮은 여음이 흘러나왔다.
머레이는 손에 든 칩으로 방문을 스캔했다. 짧은 삐빅 소리와 함께 굳게 닫힌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머레이 씨,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
연락관님, 교대할 시간입니다.
네? 전 하산 의장님께 교대 명령을 받지 못했는데요.
당연합니다. 이건 니콜라 사령관님께서 직접 명령하셨거든요.
머레이는 자신의 단말기에 저장되어 있는 암호화 파일을 연락관의 단말기에 보냈다. 파일을 확인한 연락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머레이에게 경례를 한 뒤 방을 나갔다.
낮은 여음이 끝나고 노래가 고조로 흐르려던 순간, 머레이는 흥얼거림을 멈추었다.
고조 부분은 두 사람이 같이 불러야 하는데...
머레이는 낮은 소리로 이 말만을 중얼거렸다. 슬픈 표정은 머레이의 얼굴에서 금방 사라졌고,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데이터 화면 속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연락관 신분을 얻기 위해 내가 가진 카드를 많이 사용했어.
어쩔 수 없지. 오직 연락관만이 그레이 레이븐과 직접 연락할 수 있으니.
이번 임무는 전과 달라. 형의 상황을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
역시 성갑충 소대를 보내고 사령관님과 새로운 거래를 해야 해.
그런데 니콜라 사령관의 허가서는 가격대가 꽤 높네.
하지만 사령관님, 사령관님께서 모든 걸 소화하실 수 있으실까요?
머레이의 얼굴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미소가 나타났고 그의 두 손은 데이터 화면을 빠르게 두드렸다.
그레이 레이븐은 워낙 실력이 뛰어나니까 또 가장 어려운 임무를 맡겠군.
그의 리스크를 줄이려면 일단 저번 거래에서 얻은 쿠로노 무장 장치부터 완성해야겠어.
머레이의 마지막 말과 함께 미세한 검은 광점이 홀로그램 투영에 나타났다.
은밀하고 효율적이고 안전하게...나를 실망시키지 말라고
검은색 광점이 천천히 홀로그램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