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전.
하얀 눈에 뒤덮은 추운 극지에 어부가 자신의 도구를 짊어진 채 무거운 발자국을 남기면서 나아가고 있었다.
그 전방은 항로 연합 멤버들이 공동 사용하는 항구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배 두세 척이 접안해있었고 일부 선원들은 난로처럼 생긴 난방장치 옆에 둘러앉아서 갖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부는 성큼성큼 다가가 자신의 독특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이! 거기! 오늘 출항할 수 있는 거 맞지?
나무에 쌓였던 눈이 큰 소리에 따라 진동하며 떨어졌다. 선원은 그 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확실히 들었다. 그리고 한 선원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가온 어부에게 출항하지 않는다고 손짓했다.
거기, 오늘 출항할 거지?
어부는 그 손짓의 의미를 알아들었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속도로 선원들 앞까지 다가왔다.
……
안 돼. 당분간은 안 돼.
그 말을 대체 몇 번이나 반복하는 거야? 게으름 피우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게으름 피울 생각 없어. 그럴 생각이었으면 여기에 모이지도 않았겠지.
그래? 그럼 출항할 생각도 없으면서 왜 여기에 모인 건데!
어부는 계속해서 큰 소리로 선원들에게 화를 냈다. 어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런 날씨에도 출항하지 않는 건 기가 막힌 상황이었고,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못 본 지 며칠이 지났다.
공중 정원 측에서 우리에게 준 혈청도 있으니, 이 근처의 퍼니싱 농도가 높아져도 상관없지 않나? 잔소리 말고 어서 출항하자.
아이참... 안 된다고. 출항 못 해. 출항 못 한다고 했잖아.
어부에게 계속 시달린 선원이 결국 몸을 일으켜 어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부끼리 왜 정보를 공유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전에도 여러 번 말했다시피 최근 바다에 침식체가...
침식체는 원래부터 있었잖아. 배에 대포를 탑재한 것도 그들을 대항하기 위한 것이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바닷속의 침식체가 날뛰기 시작했고 수량도 폭증했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떠도는 침식체들이 모두 한 곳에 모이기 시작했어.
떠돈다고... 설마 이 근처 무인 구역의 침식체까지?
그래.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들이 모두 바다에 뛰어들어 한 방향으로 가더라고.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바다가 그들의 중계 지점인 건 확실해.
선원의 설명을 들은 어부는 사태 파악이 됐는지, 한쪽에 둔 도구를 다시 등에 짊어졌다.
이... 이곳은 괜찮겠지?
적어도 아직 상륙할 것 같지는 않아. 이곳을 단순히 합류하고 다시 출발하는 지점으로 삼고 있어.
그럼 이 근처의 침식체는 줄어든다는 말인가? 이 "흐름"만 지나가면 더 안전해질 수 있지 않나?
어쩌면...
그럴 리 없어.
사족 보행의 한 여성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손에 장창을 든 그녀 뒤에는 그녀와 비슷하게 생긴 동료가 서 있었는데 오늘은 어부처럼 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앗, 숲을 지키는 자... 설마 이 근처에 침식체가 있는 건 아니겠지?
어부는 눈앞의 이형 구조체를 보며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떠보는듯한 말투로 숲을 지키는 자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알아내고자 했다.
침식체들은 모두 바닷속에 있어. 우린 오늘 다른 일로 찾아온 거야.
무슨 일인데?
숲을 지키는 자도 침식체가 다시 돌아올지 말지 예측할 수 없어, 하지만 그들이 한곳에 모인다는 건 분명 불상사가 일어날 게 뻔하지.
그래서 말인데... 배를 좀 빌려줄 수 있을까?
침식체를 쫓을 생각이야?
그래. 침식체의 뒤를 쫓아서 그들의 목적을 확인해 볼 생각이야... 게다가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어떡하죠? 선장님.
선원이 고개를 돌려 줄곧 침묵을 지키던 사람에게 물었다. 질문을 들은 선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의 배와 숲을 지키는 자들을 번갈아 봤다.
배를 빌려줄 수는 있지만, 대신 조건이 있다.
선장이 거래를 제안하자 다이아나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상대에게 자신의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교환할 만한 자원이 얼마 없어. 가격을 좀 더 깎아주면...
그건 거절하겠어.
선장은 화난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고, 다이아나는 자기도 모르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죄인이라서... 거절하는 건가?
내가 지금 그런 일을 신경 쓸 거라고 생각해? 내 말은 배를 가지고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당신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이곳으로 돌아와야 해. 이게 내 조건이야.
……
경악에서 기쁨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에 불과했다. 다이아나는 선장이 내민 손을 잡았다.
고마워. 숲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거래 성립. 얘들아, 배의 열쇠를 숲을 지키는 자에게 넘겨줘. 그리고 너희 그 냄새 풍기는 옷들도 좀 치워!
잠깐만요, 선장님. 같이 가는 거 아니었나요?
싸울 수 없는 우리가 따라가봤자 짐만 될 뿐이야. 난 주제를 잘 안다고. 됐으니 어서 움직여!
선장의 지휘하에 선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옆에서 넋 놓고 있던 어부도 함께 돕기 시작했다. 이에 숲을 지키는 자들은 감탄을 참지 못했다.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그러니 우린 이 침식체들이 이동하는 이유를 꼭 알아내야만 해.
우리를 지키고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
배가 준비되면 즉시 승선하도록 해. 숲을 지키는 자, 출발하자!
알겠습니다!
로제타, 너도 나와 같은 선택을 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