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마음
궁전 테라스
"수정구슬" 세계
악기 조율과 음향 점검은 끝났고, 간식과 음료도 다 준비됐어요. 무도회장 샹들리에 높이가 너무 낮지 않을까요?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요.
지휘관이 테라스 문을 열자, 은발의 소녀는 생각에 잠긴 채 준비 사항들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있었고, 손끝은 무의식적으로 난간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오델은 제 말보다 지휘관님의 말을 더 잘 듣거든요.
그렇기에 이번 무도회는... 꼭 성공해야 해요.
리브는 조금 쑥스러운 듯 시선을 내리고, 작은 소리로 지휘관에게 진심을 털어놓았다.
해낼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제가 처음으로 안주인이 되어, 어릴 적 마음속에 그렸던 이 드레스를 처음으로 입고 직접 주최하는 성대한 자리에 나서는 거잖아요.
"수정구슬" 속에서 처음 깨어났을 때, 지휘관님이 비단길을 따라 저를 위해 오고 계셨죠. 그때 갑자기 가슴속에서 수많은 새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너무 떨렸어요. 그러다 거울 속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발견했죠.
소녀는 드레스 자락과 리본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지난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리브는 고개를 들어 지휘관의 시선을 마주했다.
사실 저는 코팅이 화려한지 아닌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그저 지휘관님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싶을 뿐이에요.
무도회의 주인은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댄스를 춰야 하잖아요. 사람들은 아끼는 마음이 클수록 어쩔 줄 몰라 한다고들 하죠. 이곳에서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마 첫 발자국을 떼자마자 박자를 놓칠지도 몰라요...
제가 유일하게 손을 잡고 싶은 사람은 지휘관님뿐이에요. 지휘관님을 생각하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아요.
[player name] 님... 저의 댄스 파트너가 되어 주시겠어요?
지휘관은 리브의 앞에 서서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옆으로 돌아서서 팔을 살짝 들어 올려 리브가 잡기 편하도록 둥근 공간을 만들었다.
리브는 화답의 인사를 건넨 뒤, 조금 떨리는 손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지휘관의 팔에 손을 얹었다.
이제, 이 작은 세계를 위해 성대한 시작을 알리러 가요.
궁전 무도회장
"수정구슬" 세계
붉은 마법사의 말대로 부르자,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혼자가 아니라 기괴할 정도로 발소리가 딱딱 맞는 무리의 행렬이었다.
형체 없는 그림자가 무도회장 안으로 떠올랐고, 옷자락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진홍빛이 남았다. 마치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를 그어 내는 듯했다.
붉은 마법사의 뒤로 수많은 백조 요정이 줄을 지어 따라 들어왔다. 요정들의 하얀 깃털은 붉은 오염으로 얼룩져 있었고, 표정은 텅 비어 있었다.
무도회에는 춤이 있어야지. 우리가 그 춤을 선사하지.
붉은 마법사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요정들은 마치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서로를 붙잡고 기괴하고 뻣뻣하게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리를 차올리고 뛰어오르는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완성된 무용극에서 억지로 오려내 이어 붙인 듯 부자연스러웠고, 한 치의 진심도 묻어나지 않았다.
지휘관과 리브가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붉은 마법사가 다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백조 요정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각자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시간의 추격을 뿌리치려는 듯 요정들의 춤사위는 점점 빨라졌다.
요정들의 고통스러운 발걸음 아래로 붉은 문양들이 번져 나가며 무도회장 전체를 휘감았다.
세계는 감옥과도 같고, 생명은 이처럼 춤을 추지. 영원히 멈추지 않은 채, 피할 수 없는 이별을 맞이하며, 끝내 재앙으로 막을 내리리라.
...
더는 무리하지 말고, 이제 그만 멈추세요.
리브의 목소리는 작고 부드러웠지만, 깊은 연못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붉은 마법사가 엮어낸 마법을 단숨에 흩트렸다. 하얀 백조들은 뒤틀린 춤을 멈추고 몸을 떨며 서로를 꼭 껴안았다.
여러분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저 역시 똑같은 진홍빛 속에서 발버둥 쳤으니까요. 생명이 어떻게 찾아오고 또 어떻게 떠나갈지는 우리 스스로 정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디로 향할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 춤을 출지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어요.
멈춘다는 것이 곧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아요. 이별이 끝을 뜻하는 것도 아니죠. 아무리 큰 재앙 속에서도 누군가는 쉴 곳을 마련할 거예요. 사람들이 여전히 미소와 눈물을 나눌 수 있다면, 어둠 속에서 서로 의지한 채 가볍게 몸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춤이니까요.
우리의 무도회, 우리의 세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쉼터이자, 보금자리의 든든한 초석이며, 서로를 지켜주는 낙원이에요.
리브는 지휘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붉은 마법사, 당신이 그 춤으로 절망을 퍼뜨렸던 것처럼...
저와 [player name] 님이 이 춤을 통해 당신에게 우리의 희망을 보여드리겠어요.
지휘관과 리브는 나란히 핏빛의 한복판으로 발을 내디뎠다.
리브는 지휘관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마치 이 수많은 세계 속에 오직 지휘관 한 사람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리브가 살며시 입술을 떼고, 너무나도 익숙한 선율을 조용히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작게 노래를 부른다.)
그것은 과거 수만 리 떨어진 곳에서 생과 사를 넘어 들려오던 노랫소리였다. 이제 리브는 그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의 품에서 부르게 되었다.
가사는 없었다. 수많은 말을 다 담아내기엔 단어가 부족해서, 그 모든 마음을 지휘관과 맞닿은 시선 속에 녹여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위를 바라보고, 회전하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우아한 춤사위 속에 은백색 머리카락이 스치듯 멀어지고, 드레스 자락이 무릎 옆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하얀 새가 새벽과 황혼 사이에 미풍을 타고 노니는 듯했고, 파도가 밤낮으로 해안가에 입을 맞추는 듯했다.
춤이 닿는 곳마다 진홍빛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바닥의 모든 타일이 원래의 색을 되찾고, 모든 요정의 깃털이 다시 순백으로 돌아올 때까지 춤을 추었다. 지휘관과 리브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멈춰 섰다.
지휘관님...
다행이에요... 우리가 해낼 줄 알았어요...
저도 지휘관님을 놓고 싶지 않아요...
지휘관과 리브는 숨을 고른 뒤, 서로의 팔을 붙잡은 채 고개를 들었다. 아쉬운 마음을 억누르며 시선을 거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완전히 정화된 궁전 무도회장에는 오직 한 줄기 진홍빛만이 남아 있었다.
바로 붉은 마법사의 본체였다. 그곳에 멍하니 떠 있었고, 형체의 끝부분은 이미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리브는 지휘관과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과 리브는 함께 붉은 마법사에게 다가갔고, 리브는 손을 뻗어 느리지만 단호하게 그 형체 없는 그림자의 손목을 잡았다.
어째서...
그대의 손길에서 수용의 의지가 느껴지는군... 어째서지?
고통과 화해하고 싶으니까요. 진정으로 상처를 이겨내고, 지휘관님과 오래도록 함께 걸어가고 싶거든요.
영원히 안녕이에요. 만약 영혼이 돌아갈 곳이 있다면, 그 귀로에 제 노랫소리가 함께하기를 빌게요.
붉은 옷자락이 부서지며 흩날렸고, 거대한 형체는 조금씩 투명해지며 맑은 바람을 일으켰다.
우리의 고통은 너무나 무거웠다. 그 진홍빛에서 벗어날 수 없을 만큼...
그대들이 이곳을 짓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들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행복이 담긴 노랫소리를...
바람은 그곳에 있던 모든 생명체의 옷자락을 스치고 천천히 위로 솟아올랐으며, 마침내 금은화 샹들리에의 금빛 속으로 사라졌다.
고맙다.
지휘관과 리브는 붉은 마법사의 마지막 나직한 속삭임을 들었다.
커다란 흐느낌 소리가 정적을 깼다.
으앙... 으아앙... 다, 다들 돌아왔어요...
흑조 집사는 무도회장 뒷문에서 비틀거리며 달려와 백조 요정들에게 안겼다. 흑백의 날개가 서로 뒤섞여 펄럭이며 서로를 꽉 껴안았다.
지휘관과 리브가 감동하고 있을 때,
그 깃털 뭉치들이 "와아" 하고 달려와 지휘관과 리브의 다리를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하도 울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이제 그만 울까요? 눈이 퉁퉁 붓겠어요.
한바탕 진땀을 빼며 요정들을 달랜 뒤, 요정들이 오델에게 새 단장을 한 궁전 인테리어를 묻기 시작한 틈을 타 리브가 잽싸게 지휘관에게 눈짓하며 숨소리만으로 속삭였다.
저를 따라오세요.
오프닝 댄스도 끝났으니, 이제 무도회의 주인공들이 둘만의 시간을 가질 차례네요.
그건 일단 비밀이에요...
은발의 소녀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부끄러운 듯 자신의 옷소매를 만지작거리면서도 지휘관의 말을 반박하지는 않았다.
아... 그,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지휘관님을 납치해 갈 거거든요.
백조들이 알아채기 전에, 지휘관은 리브를 따라 옆 복도로 조용히 빠져나갔다.
리브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자, 그제야 지휘관은 이곳이 특별한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다리는 당시 지휘관이 두 팔을 벌려 하늘에서 가뿐히 뛰어내리던 리브를 받아냈던 곳이었다.
밤의 어둠 속에서 성 위쪽 궁전의 불빛이 다리 옆의 꽃과 잎사귀 사이로 스며들어 리브의 눈동자 속에 별처럼 흩어졌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죠. 수정구슬이 성공적으로 구축되는 순간, 우리도 알게 될 거라고요.
목표를 이루었으니, 이 꿈도 제 소임을 다한 거겠죠. 그래서 조금 전까지도 속으로 계속 되뇌었어요. 붉은 마법사가 정화되는 순간이 곧 우리가 떠나야 할 때라 하더라도, 절대 미련은 갖지 말기로요.
그렇다면, 마음속에서 몇 년 동안 준비해 온 말들을 이 가장 특별한 장소에서 지휘관님께 전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리브는 경건한 마음으로 다가와, 지휘관과 손바닥을 맞대고 깍지를 끼며 손을 잡았다.
마음 밖의 세계에는 지휘관님과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있지만... 이 마음속 세계에는 오직 우리의 사랑만이 남아 있어요.
만약 이곳의 신이 우리라면, 저는 우리 자신에게 반드시 이루어질 서약을 할 거예요.
리브는 맞잡은 손을 둘의 가슴 사이에 대었다.
저 리브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요. 언제 어디서든 저의 지식과 힘, 저의 신념과 생명을 지휘관님과 함께 나누겠어요.
제게 남은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그건 지휘관님과 함께 행복을 향해 걸어가는 거예요.
소녀의 입술 사이로, 기쁨에 겨워 울먹이는 듯한 가냘픈 소리가 흘러나왔다.
입술이 맞닿은 순간, 마치 봄날 밤 나뭇가지 끝에 갓 피어난 꽃망울에 입을 맞추는 듯했다.
다음 순간, 리브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녀의 회색 깃털 위로 꽃잎들이 흩날렸고, 그것은 리브가 서약을 할 때의 그 다정함, 진실함, 그리고 결연함과 같았다.
꽃 그림자가 살랑거리고 맑은 물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등불이 어렴풋한 이곳에서 사랑으로 자라난 세계가 창조자들에게 축복을 건넸다.
리브를 품에 안았을 때, 지휘관은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한 또 다른 "영원"의 의미를 깨달은 것 같았다.
지휘관은 "영원"이란 곧 자신의 마음이 리브에게 이끌리는 깊이를 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layer name] 님... [player name] 님을 깊이 사랑해요.
리브를 품에 안은 순간, 리브는 마치 둥지로 돌아온 지친 새처럼 자신의 모든 감정과 여린 마음을 지휘관의 목덜미에 온전히 기대왔다.
꽃 그림자가 살랑거리고 맑은 물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등불이 어렴풋한 이곳에서 사랑으로 자라난 세계가 창조자들에게 축복을 건넸다.
마음이 공명하는 가운데, 지휘관은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한 또 다른 "영원"의 의미를 깨달은 듯했다.
"영원"이란 곧 지휘관의 마음이 리브에게 이끌리는 깊이를 뜻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리브의 휴게실
공중 정원
며칠 후
은발의 소녀는 정교한 상자 하나를 품에 안은 채 지휘관 곁에 앉아 있었고, 시선은 자꾸만 옆쪽을 힐끔거렸다. 그곳에도 엇비슷한 크기의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기념 선물"을 주자는 생각은 "수정구슬"에서 깨어난 지휘관과 리브가 동시에 떠올린 것이었고, 마침내 오늘 그 선물을 공개하기로 했다.
지휘관님, 공평하게 우리 동시에 열어봐요.
리브는 두 손으로 상자를 건네고, 지휘관이 준비한 선물 상자를 받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지휘관과 리브는 동시에 상자 뚜껑을 열었다.
지휘관 앞의 상자 속에는 정교한 종이 조각 무드 등이 들어 있었는데, 둘이 서로의 진심을 확인했던 궁전과 호수가 새겨져 있었다.
나무 받침대 위에 놓인 종이 조각 무드 등을 손으로 돌리자 겹겹이 쌓인 실루엣이 회전하며 눈꽃이 꽃잎으로 변하고 다시 꽃잎이 눈꽃으로 변하는 절묘한 연출이 펼쳐졌다.
너무 아름다워요...
은발의 소녀는 지휘관이 준 선물을 두 손으로 소중히 받쳐 들고, 눈동자 속에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진짜 풍경이 담긴 수정구슬이었다. 절반은 겨울, 절반은 봄 풍경이었고, 앙증맞은 흑조가 하얀 백조 무리를 이끌고 호수 위를 날고 있었다. 그리고 호숫가 다리 위에는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둘의 미니어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리브는 손가락으로 둘의 미니어처 근처를 맴돌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날 밤, 꽃이 만발한 다리 위에서 느꼈던 지휘관의 온기가 그리운 듯, 리브는 다시 지휘관의 품을 파고들었다.
저도 찬성이에요.
잠시 후, 소녀는 고개를 들고 눈을 반짝이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새길 문구는... 제가 정해도 될까요? 방금 아주 근사한 문장이 떠올랐거든요.
리브는 단말기를 가져가 글 한 줄을 적어 내려갔다.
"우리가 아직 함께 개척하지 못한 모든 세계를 위하여."
리브는 지휘관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편안하고 평온한 자세를 취했다.
저희 다음번에는, 함께 어떤 세계를 열어가게 될까요?
지휘관은 뜸을 들이며 말을 멈췄고, 리브가 알아채고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분명 또다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만의 신비로운 여정이 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