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루시아·역면 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루시아·역면 그중 일곱

그림자

!

알파

!

하얀빛.

눈부신 하얀빛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 순간, 의식의 바닷속 모든 것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왕좌

시야 속, 알파의 왼팔이 덮쳐왔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오른손의 칼로 막아냈다.

이어진 것은 알파의 오른손 공격이었다.

동력갑의 출력을 최대로 개방시킨 인간은 온 힘을 다해 오른쪽으로 살짝 몸을 틀어 알파의 오른손 공격을 피한 뒤, 앞으로 돌진했다.

쾅!

인간은 왼쪽 어깨로 알파의 몸을 부딪쳐, 둘 사이의 거리를 조금 벌렸다.

그 후 인간은 빠르게 자세를 가다듬고 칼을 단단히 움켜쥐며, 어디서 공격이 오더라도 가장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이후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발걸음을 안정시켰다. 인간은 결코 쓰러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알파의 다음 공격이 이미 덮쳐왔기 때문이다.

의식의 바다

쾅! 펑!

말로 표현하기 힘든 울림이었다. 그것은 정밀한 금속이 부서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무거운 망치가 대지를 내리치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 하나하나의 소리는 정신 깊숙한 곳까지 박히며 맥박과 공명했다.

그녀들이 휘둘러낸 기류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칼날의 파도가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며 갈라놓았다.

내게 복종해. 난 이 칼날로 그 쓸모없는 족쇄들을 끊어내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 될 거야.

알파, 그 잡음들은 이미 네 영혼을 부식시켰어. 그래서 이렇게 감정적이고, 나약해진 거야!

이 몸의 진정한 주인은, 나야!

고함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림자는 다시 달려들었고, 봉인태도는 알파의 왼쪽에서 기묘한 각도로 파고들었다.

건방지군.

알파는 역수로 검을 쥐며 그림자의 공격을 막아냈다. 맞부딪힌 칼날에서는 불꽃이 튀어나왔다.

그림자의 입가에 차가운 냉소가 스치더니, 속도와 기세가 한층 더 올라갔다. 그녀는 왼손으로 허리 뒤의 단도를 뽑으며, 칼끝을 알파의 얼굴을 향해 겨누었다.

끝이다!

이 일격으로 알파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만 하면, 그림자는 즉시 알파의 의식의 바다를 점령할 수 있을 터였다.

네 최대의 실수는... 전장을 의식의 바다에 둔 거야!

그러나 칼끝은 알파의 눈앞에서 멈췄다. 바로 코앞에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아득히 먼 거리처럼 느껴졌다.

알파

하, 잡았네.

알파는 오른손으로 그림자의 단검을 움켜쥐었고, 손에선 순환액이 흘러나왔다.

?!

펑!

알파가 오른손에 힘을 주자, 단검이 순식간에 무력하게 부러졌다. 곧이어 그녀의 몸에서 불꽃이 치솟아 올랐고, 오드아이에 불빛이 비치며 그녀를 진정한 악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고작 잔영인 주제에...감히 날 똑바로 쳐다 봐?

알파는 왼손으로 칼날을 춤추듯 휘두른 후, 그림자를 향해 비스듬히 내리쳤다.

여기까지 왔다고, 날 이길 수 있을 거란 착각은 하지 마.

순환액이 어두운 붉은 꽃처럼 그림자의 몸에서 터져 나왔고, 그녀는 끝내 힘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 순간, 그림자는 깨달았다. 알파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미쳐 있다는 걸.

하지만 그것은 통제를 잃은 광기가 아닌,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더라도 개의치 않겠다는, 냉철하고 단호한 결의였다. 그 불꽃은 결국 알파 자신마저도 함께 태워버릴 것이었다.

의식의 바다 속의 불꽃은, 알파가 거의 자멸에 가까운 방식으로 의식의 바다를 끓어오르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이곳에 있는 모든 의식에 무차별적인 피해를 입힐 터였다.

그림자는 몸을 돌려 뒤로 물러나며, 이곳에서 벗어나려 했다.

너 미쳤어?!

그러나 알파는 심연의 악귀처럼 그림자를 바짝 뒤쫓아, 다음 순간 그림자의 눈앞에 나타났다.

내 의식의 바다는, 네가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불꽃에 휩싸인 손이 그림자의 목을 틀어쥐었다.

요동치는 불길은 두 존재를 단단히 옭아매며, 미친 듯이 둘의 몸을 핥아댔다.

의식의 바다 전체가 알파의 분노를 품으며 거대한 불바다로 변해버렸다.

불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알파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불길을 뚫고 들려왔다.

네가 의식의 바다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결말은 이미 정해졌어.

여긴... 내가 너를 위해 마련한 무덤이거든.

알파는 그림자를 앞으로 내던진 뒤, 칼을 거두고 힘을 모으며, 발도 자세를 취했다.

순간, 불꽃이 모두 사그라들었고,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의식의 바다 안에 얼음 결정이 맺히기 시작했다.

알파는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단검을 소리 없이 칼집에서 뽑아 들었다.

챙!

그 순간, 온 세상의 빛이 스러졌다. 마치 의식의 바다에서 색깔과 소리라는 개념이 사라진 듯, 세계는 정지된 흑백 무성 영화로 변했다.

하지만 알파와 그녀의 칼날은 예외였다.

다음 순간, 알파는 어느새 그림자의 등 뒤에 서 있었고, 이미 공격을 끝내고 천천히 칼을 거두고 있었다.

그제야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림자의 몸 위로 찬란하면서도, 잔혹한 붉은 꽃들이 한순간 피어났다.

그것은 붉은 단검이 베어낸 흔적이었다.

알파가 단검을 거두자, 뒤에 있던 "그림자"의 몸체가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그녀의 눈앞으로 복잡한 빛과 그림자가 스쳤고, 곧 그것이 "그림자"의 기억임을 알 수 있었다.

레븐쉬의 배신...

공중 정원과의 적대적인 관계...

루나를 잃었고...

온전히 승격 네트워크를 받아들였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칼을 맞대고...

결국 골짜기 속에서 결말로 향했다…

"그림자"는 단 한 번도 인간을 향한 원한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알파는 "그림자"의 본질을 이해했다. 그림자는 헤론과 달리, 알파의 마음속 바람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거짓된 기억을 가진 환상이었을 뿐이다.

퍼니싱은... 혹은 승격 네트워크는 그녀를 계속 넘보고 있었던 것이다.

알파가 안개 지역으로 향한 후, 승격 네트워크는 기회를 포착하여 알파의 삶을 기반으로 또 다른 미러 이미지를 시뮬레이션해냈다.

알파는 눈을 감고 침묵했다. 그녀와 승격 네트워크의 대립은 결코 멈춘 적이 없었다.

왕좌

알파는 왼발로 땅을 박차고, 허리를 축으로 삼아 공중에서 몸을 틀어, 인간을 향해 오른발을 힘껏 내리찍었다.

인간은 반걸음 뒤로 물러서며 칼로 공격을 받아냈으나, 지나치게 강한 타격에 칼을 쥔 팔이 아래로 눌리며 커다란 빈틈이 생기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할 거라 이미 예측한 인간은 그 힘을 빌려 뒤로 물러났다.

치익.

미세한 전류음과 기계가 손상되는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려왔고, 사신의 만종처럼 울려 퍼졌다.

그건 다리 아머 내부 구조가 손상되는 소리였다.

동력갑은 그 치열한 전투를 버텨낸 끝에, 이 최악의 순간에 한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이번에 인간은 예상했던 거리만큼 물러서지 못했다.

착지한 알파는 즉시 자세를 가다듬고, 주저 없이 앞으로 돌진해 갈고리처럼 모은 왼손을 인간의 머리를 향해 뻗어왔다.

붉은색의 손 아머가 인간의 눈에 점점 크게 다가왔고, 마치 혼을 낚아채는 낫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흘러갔지만, 이미 시간이 없었다.

인간의 시야에는 그 손밖에 남지 않았고, 죽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손은 갑자기 느려졌다.

광기가 그녀의 눈에서 사그라들었고, 입가에는 알아채기 어려운 미소가 떠올랐다.

결국 알파의 왼손은 인간의 머리 위에 살며시 내려앉았고, 두어 번 쓰다듬더니 이내 떨어졌다.

...

알파의 태도는 한층 부드러워졌고, 이전의 냉혹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많이 다쳤어?

드디어 긴장을 푼 인간은, 알파가 다가와 몸 상태를 확인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왼손이... 골절됐네. 다친 곳 더 없어?

알파는 잠시 침묵하다가, 칭찬의 말을 건넸다.

잘했어.

알파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선명했으며, 은은한 만족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인간은 이미 그동안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고, 승리는 알파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적이 처치되자 그동안 쌓인 피로가 파도처럼 덮쳐왔다. 인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 주저앉았고, 알파도 곁에 나란히 앉았다.

인간은 조심스레 몸을 기울여 알파에게 기댔고, 알파는 거부하지 않았다.

수고했어.

그쪽도 꽤 하더라고.

말을 마친 알파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수고했어.

조금 놀란 듯한 인간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알파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왜, 더 차갑게 대해주길 원해?

알파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마치 그녀의 말을 증명하듯, 발밑의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하늘은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처럼 떨어져 나가며, 그 뒤로 숨겨져 있던 공허한 어둠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가 무너지고 부서지며, 하얀 안개가 소용돌이치다 다시 사라졌다.

알파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왼손을 칼자루로 뻗었지만,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녀의 눈길은 장검을 쥔 채 미세하게 떨고 있는 인간의 손에 머물렀다.

알파

...

알파

이런 건, 함께 하는 게 더 의미 있지.

알파는 인간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인간도 그 손을 받아들였다.

알파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인간을 바라보며, 함께 칼자루를 잡자는 신호를 보냈다.

인간은 오른손으로 칼자루의 절반을 단단히 잡았고, 알파는 왼손으로 나머지 절반을 감싸 쥐었다.

붉은 검은 높이 들어 올려졌고, 인간과 알파의 의지는 그 순간 서로 얽히며 공명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해도, 둘은 함께 손안의 검을 굳게 잡을 것이다.

알파

준비됐어?

붕괴하는 공간 속에서, 알파의 단호한 목소리가 인간의 귀에 선명히 울려 퍼졌다.

알파 & [player name]

하앗!

낮은 함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고, 장검은 은빛 무지개로 변하며 하늘과 땅을 꿰뚫듯 앞으로 내리쳐졌다.

찌직.

이내 공간이 찢긴 천 조각처럼 갈라지며, 균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균열 너머로, 익숙한 옛 파오스 프리즘 광장의 풍경이 따스한 햇살과 함께 눈앞에 펼쳐졌다.

인간과 알파는 함께 발을 내디뎌 맞은편으로 걸어갔다.

둘의 뒤로 균열이 서서히 닫혀갔다. 이곳에는 더 이상 하얀 안개도, 기괴한 세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몇 구의 침식체 잔해와 전투의 흔적만이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졌었음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멀리서 수송기 엔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고, 알파는 이제 떠날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알파가 뒤돌아 오토바이를 향하려던 순간, 품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미끄러져 나와 인간의 발치에 떨어졌다.

인간이 몸을 굽혀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둘에게 너무나 익숙한, 세 인물이 담긴 사진이었다.

사진 속, 온화한 미소를 띤 여인이 식탁 앞에 앉아 있었고, 머리카락이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고 있었다.

그녀의 왼쪽에는 [player name], 오른쪽에는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알파가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은 식탁을 따스하게 비추었고, 하얀 민들레 씨앗들은 바람을 타고 흩날리며 알파의 어깨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것은 따뜻한 가족사진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진은 돌연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색이 바래기 시작했고, 물에 번진 먹처럼 빠르게 흐려지며 사라져갔다.

알파는 고개를 돌렸고, 그곳엔 사라져가는 사진과 멍하니 서 있는 지휘관이 보였다.

알파의 얼굴에는 놀람도 아쉬움도 없었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한 담담한 표정만이 남아 있었다.

알파

하얀 안개가 만들어낸 환상은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야.

그리고 그냥 사진 한 장일 뿐이잖아.

알파는 앞으로 다가가 지휘관의 손에서 이미 반투명해진 사진을 가져갔다. 그녀는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집어 올리며, 지휘관의 이마에 살며시 가져다 댔다.

툭...

그리고 몸을 앞으로 기울며,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가장 익숙한 감촉을 인간의 이마에 전해주었다.

둘 사이에는 빠르게 사라져가는 얇은 사진 한 장만이 놓여 있었다.

인간은 알파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고, 알파 역시 인간의 미세한 당혹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알파

겁이라곤 없는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이마를 맞대는 게 아프다고 하는 거야?

짧은 접촉 이후, 알파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인간의 이마에는 희미한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사진과 동력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알파

이제, 잊어버리지 않겠지.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고 생각해도 돼.

말을 마친 알파는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몸을 돌려 떠났다.

그녀의 붉은빛이 섞인 흰 머리카락은 바람에 나부꼈고, 민들레 씨앗도 함께 하늘에 흩날렸다. 광장을 가득 채운 민들레는 마치 눈송이처럼 보였다.

알파가 뒤를 돌아보았다.

인간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엄청난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그 무엇도 인간의 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알파는 문득 지금 둘이 서 있는 위치가 예전에 환상 속에서 보았던 장면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파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환상은 결국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둘이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손에는 언제나 같은 검이 쥐어져 있었다.

알파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선명하지만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알파

앞으로 또 어떤 즐거움을 안겨줄지, 기대할게...

내... 사냥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