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원하는 걸 드리죠.
다른 대행자? 진짜 재밌네.
이 답은 롤랑에게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눈앞에 이 금색 가면을 쓴 대행자가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 이 게임을 만든 건 자신과 잡담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었다.
초대하는 방식도 매우 진부했다. ‘이건 무슨 저질 히어로물 속 악역인가?’ 롤랑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 본·네거트라는 남자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만족스럽지 않으신가 보군요.
저를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마 당신 손으로 직접 원하는 것을 얻고 싶겠죠.
그 두 가지가 무슨 차이가 있지?
차이는 없습니다. 혹시 모르죠. 어느 쪽은 재밌을지도.
당신이 교환 조건이 될 만한 충분한 이유를 줄 수 없다면, 당신은 전자야.
"루나 아가씨", 이 정도면 될까요?
유레카. 그리고 롤랑은 생각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이 녀석의 입에서 정보를 끄집어낼 수 있을까?
당신은 지금 어떻게 해야 제 입에서 네가 원하는 걸 끄집어 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겠죠.
당연한 거 아닌가?
당연한 건지 아닌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 것입니다.
그냥 얌전히 가르쳐 주겠니?
그건 당신이 제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에 달려 있습니다.
본·네거트라는 남자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롤랑을 바라봤다.
비록 그의 얼굴에는 ‘당장 대답해 달라’라는 기색은 없었지만 롤랑은 지금 대답하지 않으면, 확실히 여기서 살아서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롤랑은 상대가 정말 자신을 여기에 두고 싶다면 그들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롤랑마저 놀라게 한 그 하이디라는 소녀가 증거였다. 그렇게 승격자의 힘을 쓸 수 있다는 건 롤랑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저는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찬동은 어렵습니다만…도와드릴 수는 있습니다.
찾았다는 말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언젠가 당신이 찾는 걸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일에 네가 적당히 협조해 준다면. 물론 너의 재능을 잘 사용할 것을 약속하지.
그래?
그런데 이것에 대해 내 전 ‘동료’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
그가 지금 자신의 입으로 불만을 말할 수 없으니 내가 전 동료로서 대신 말해 볼게.
어때? ‘본·네거트’ 님?
……
그가 침묵한 건 좋은 징조였다.
만약...
당신은 그 전 동료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다니.
가브리엘?... 취서체 사건 이후 롤랑은 그를 평가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얘기를 꺼낸 건 단지 눈앞의 녀석이 난처해 하는지 보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보잘것없는 녀석이지.
그가 죽었다는 걸 알고 있어. 그저 가치 있게 죽었다고 밖에 말하지 못하겠네.
그도 딱 거기까지였지.
뭐라고요?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으니, 내가 하는 말에서 놀랄 만한 내용은 없을 거야.
그렇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자신의 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싫다면 어떻게 돼지?
본·네거트 님의 말에 거절하겠다는 건가요?
어느새 하이디라는 소녀가 롤랑의 뒤에 서 있었다.
하이디는 핵분열 원충 한 마리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핵분열 원충의 배를 가볍게 만지자 핵분열 원충의 가느다란 촉각이 쉴 새 없이 떨렸다.
너희들은 그에게 '아니오'라고 말을 못 해?
그건 아닙니다.
단지 그들은 나중에 전부 그분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징검다리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미래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다른 사람이 미래를 선택하는 것을 막을 권리가 없습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롤랑.
롤랑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본·네거트를 바라보며 그에게 계속 말하게 했다.
그가 계속해왔던 것처럼.
그의 동기에 신경 쓸 필요 없었고 자신의 진정한 목표를 드러낼 필요도 없었다.
이 본·네거트라는 대행자가 그에게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으니 그도 이전에 했던 일을 다시 한번 해야만 했다.
‘넌 대체 뭘 원하는 거지?’ 롤랑은 본·네거트가 자신에게서 얻고 싶은 것을 말하길 기다렸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당신들이 자신의 미래를 쫓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미래를 등가교환이라는 전제하에 실현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미래’와 ‘당신들의 미래’ 사이에서 당신들은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
수지가 맞는 거래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런가요?
그렇다. 수지가 맞는 거래였다. 무섭도록 수지가 맞는 거래.
여기까지 얘기했지만 눈앞의 남자는 롤랑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욕심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승격자가 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이 녀석은 루나 아가씨처럼 매우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욕망은 공기를 압박할 정도로 강렬했다.
롤랑은 이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롤랑은 본·네거트가 꺼내지 않은 요구 조건에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어쩌면 그게 바로 본·네거트가 롤랑이 느꼈으면 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런 건가? 계속 카드를 숨기는 이유가 나를 두렵게 하기 위해서?
합리적이긴 한데 넌 뭘 원하지?
이런 무서운 녀석을 키우는 걸 보니 큰 자선가처럼 보이지는 않은데.
롤랑은 뒤에 있는 하이디를 향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본·네거트님은 자선가가 아닙니다.
우리의 거래는 평등합니다.
그래서? 그는 너에게 무엇을 요구했지?
전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본·네거트님은 제가 검증할 때 생기는 부산물을 가져갑니다.
아주 합리적인 거래이지요.
맞아요.
서로 칭찬하는 건 그만하지.
난 사제의 깊은 정을 보고 싶은 기분이 아니야.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직설적으로 당신에게 저의 의도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부두에게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제가 하이디를 보내 데리러 가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충분히 보고 왔겠지요.
…………
선택하세요.
그리고 당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걸 받아들이세요.
…………
어떻게 해야 하지?
두려움이나 당혹감이 아닌 상대의 장단에 놀아난 사실이나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다.
앞의 남자가 내민 손은 의심할 여지 없는 기회였다.
하지만 초콜릿 상자가 열렸을 때 빛이 나는지 아니면 구더기가 기어 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운명의 선물이 단지 눈앞에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나는...
뭘까? 선물 뒤에 숨어 있는 게 대체 뭘까?
이건 중요할까? 아니면 중요하지 않을까?
가르쳐줘. hermano(형제), 그러고 보니 한동안 사라져 있었네.
왜 지금까지 너는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니면 이미 나를 포기한 건가?
롤랑은 가상의 신경과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구조체의 몸이라면 느끼지 못할 테지만 그는 땀방울이 목뒤에서 흐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잘 생각해 봐—— 넌 누구지?
배우? 기사? 야생개? 승격자? 루나의 충실한 종?
자신을 속이지 마.
너는 너야.
다른 사람도 물건도 아닌——너는 너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너.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나에게 대답할 수 있을 거야—— 네가 누군지?
너의 이상, 인정, 포악함, 교활함.
어쩌면 의지할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고 쫓을 신념이 필요할 수도 있고 삶을 이어갈 임무가 필요할 수도 있어.
하지만 너는 너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너.
우리 강아지, 가거라. 그들을 이용해 갉아먹고 갈기갈기 찢어버려라——
흥, 그랬군.
원래... 그런 거였나.
네?
이렇게 됐으니 내가 시원하게 값을 부르지.
거부하지 않을 거지?
롤랑은 이제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느끼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늘의 뜻이란 없고 천국과 지옥은 더더욱 없었다.
하늘의 뜻이란 자신의 선택, 자신의 길이라는 말로 자신이 누군가를 죽일 때 손에 묻은 피를 자신이 인정하는 말들이다.
그럼 산타 할아버지가 주신 초콜릿 박스에 뭐가 들어 있는지 한 번 볼까?——
롤랑은 눈앞의 금색 가면을 쓴 남자를 보며 더는 그 압박감이 어떤 나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들, 그것들은 지금부터 모두 그의 화폐, 말, 제물이었다.
그럼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것을——
화폐, 말, 제물은 물론 강하면 강할수록 좋았다.
지금 이 순간 훌륭하고 완벽하며 흠잡을 데 없이 지옥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
‘루나 아가씨’가 돌아왔을 때 어떤 세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힘을 원해. 당신의 힘과 나의 힘 둘 다.
당신의 힘이라면 물론 줄 수 있지만, 제 힘은 무슨 뜻일까요?
알고 있잖아.
익숙하고도 낯선 세상이 주위에서 사라지고 하나의 밧줄이 롤랑과 운명 사이를 갈라 놓았다.
이 선택, 너무 쉬워. 너무.
물론이지. 내가 필요할 때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너한테 있어 손해 볼 것도 없고.
롤랑의 이런 요구를 예상하지 못한 듯 롤랑은 본·네거트의 눈에서 놀라는 눈빛을 봤다.
롤랑의 곁눈질 속에 옆에 있던 하이디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했지만 본·네거트가 먼저 입을 다물라고 손짓했다.
흥미로운 요구네요. 들어준다고 보장은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기대는 해도 좋습니다.
루나 아가씨 최초의 소망은 ‘언니와 함께 살 수 있는 낙원’을 만드는 거였어.
하지만 승격 네트워크가 루나 아가씨를 얽매이고 있는 한 그녀는 그 소원을 영원히 이룰 수 없을 거야.
동의했다고 이해해도 되겠지?
너무, 너무, 너무 쉬웠다. 앞으로의 나날이 더 위험해질 테지만 롤랑은 그것을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운명의 가격?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롤랑의 생각은 이미 명령과 요구의 차원을 넘어서 마침내 ‘결과’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제시한 가격이 자신이 인정한 가치보다 현저히 높을 때 그것은 ‘결과’의 가능성에 비하면 자신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럼 환영합니다.
본·네거트라는 남자는 마치 영원히 눈동자 안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눈빛으로 롤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깨달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롤랑은 미지의 운명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