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아는 롤랑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근처 지붕으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나서 롤랑은 정원의 녹슨 문 쪽으로 손을 뻗었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의 나사가 흔들려 연한 황색 먼지가 날렸다.
문이 밀리면서 삐걱삐걱 무서운 소리를 냈다. 그 자체의 낡고 고풍스러움이 그것을 바꾸려는 힘에 맞서 싸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문은 그 힘에 굴복하면서 새로 온 방문자에게 길을 양보했다.
……
새 방문객은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롤랑이 앞마당에 들어섰다. 그곳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한 것 같은 공간이었다.
벽 옆에는 도자기 파편이 흩어져 있었고 바로 오늘 아침 팬 듯한 장작이 부서진 화로 옆에 깔끔하게 놓여 있었다.
바닥은 오랜 세월이 지나 금이 가고 표면이 거칠어졌다. 그러나 벽에는 생활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이곳에서 사람이 살았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
롤랑은 조용히 지나가다 낡은 콘크리트 판자가 벽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곳은 아빠와 엄마가 함께 지은 루나와 루시아의 집!"
그때 롤랑은 어떤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의 눈에 어렴풋이 어떤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예전의 그녀는 갓 수확한 감자가 가득 든 바구니를 안고 서투르게 거실에서 부엌으로 걸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예전의 그녀는 아빠가 접은 종이비행기를 들고 훅훅 소리를 지르며 1층에서 2층으로 뛰어 올라 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루나 아가씨는 여기 있었고 여기를 떠났어. 만약 어떤 사정으로 그녀가 여기로 돌아온다면...
가설이 아무리 많아도 루나 아가씨가 현재 행방이 묘연한 현실을 바꿀 수 없었다.
...우선 본론으로 돌아가자.
왜 상대방은 나와 공중 정원의 집행 부대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도대체 의도가 무엇일까...
모든 것에는 답이 있을 거야.
롤랑은 조심스럽게 수납장을 비롯한 폐허 속의 모든 곳을 탐색해 나갔다.
음... 언제까지 날 내버려 둘 거야...
응? 저기는...?
지붕에서 대기하고 있는 라미아는 거리를 방황하는 유령 같은 존재를 발견했다.
유령은 거리를 배회하며 벽을 차기도 했고 가끔 머리로 벽에 뭔가를 뿜었으며 전혀 숨을 기색이 없었다.
... 저게... 뭐지?
라미아는 검은 유령을 주시했다. 그것이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감시했다.
유령이 모퉁이로 사라지자마자 그 방향에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 검은 그림자가 건물 끝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 모습에 라미아는 익숙한 전율을 느꼈다.
'네가 가진 그 물건을 내놔.'
그것은 도시 싱크홀에서 빠져나온 뒤부터 줄곧 그녀를 뒤쫓아온 검은 유령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알고 있는 화서의 비밀 코드라면 이미 거래를 통해 다른 이에게 넘겨버렸다. 즉, 지금 그녀에게는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것을 뜻했다.
잡히면... 죽음뿐이다.
하지만 라미아... 무조건 살아야 해. 살아야지만...
롤랑은 방 안을 한참 동안 배회하였다. 그는 이미 모든 곳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추적을 위한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해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그는 엉망진창이 된 욕실로 들어갔다.
이곳은 대부분 파괴되어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거울만 무사히 남아 있었고 거울에는 균열이 나 있었다.
조금이라도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에서는 루나 아가씨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진실에는 닿지 못했다.
정말 여기서 '루나 아가씨'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왔지?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버렸지?
심지어 찾는 와중에 깊은 지하 수로에서 죽을뻔했잖아?
어쨌든 혼자만으로는 이 곳에서 의미 있는 것은 찾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걸로는 두 세력이 이곳에 모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어쩌면... 이것은 상대의 단순한 실수였는지도 몰라. 어쩌면 공중 정원의 어리석은 임무일 수도 있어.
그렇다면... 나는 지금부터 또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찾아야 할까?
커다란 거울 속에 비친 검고 낯선 자신의 모습에 롤랑은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다.
그렇구나. 지금 깨달았어… 나는 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던 거야?
왜 그래? 이 모습이 그리워?
거울 속 롤랑의 몸 회색 부분이 팽창하기 시작하면서 붉은색 선이 노란색 선으로 대체되었다.
거울에 비친 것은 롤랑의 옛날 모습이었다.
Hermano.
누가 너를 싫어한다고 한 적이 있어?
자신한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지금 여기에 나와서... 뭘 하고 싶은 거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아직 납득이 안 가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
'롤랑', 잘 생각해 봐——넌 누구지?
배우? 기사? 야생개? 승격자? 루나의 충실한 종?
자신을 속이지 마.
너는 너야.
다른 사람도 물건도 아닌——너는 너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너.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나에게 대답할 수 있을 거야—— 네가 누군지?
너의 이상, 인정, 포악함, 교활함.
어쩌면 의지할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고 쫓을 신념이 필요할 수도 있고 삶을 이어갈 임무가 필요할 수도 있어.
...이게 지금 나의 상황과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지?
지금 네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너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걸 너에게 알려주는 거야.
깃발을 잃었기 때문에 방향에 대해 의문이 생긴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너는 너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너.
우리 강아지, 가거라. 그들을 이용해 갉아먹고 갈기갈기 찢어버려라——
남에게 믿음을 주면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거야? 알잖아. 이 잔인한 세계는 그렇지 않아.
깃발이 쓰러졌다고 세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이 세계는 아직 거기에 있어. 깃발이 나타내는 것도 아직 거기에 있어...
네가 납득했든 안 했든 간에 이 말을 잊지 마.
이 세계는 아직 거기에 있어. 깃발이 나타내는 것은 아직 거기에 있어...
롤랑은 거울 앞에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때 문 밖에서 라미아가 고개를 내밀었다.
집행 부대의 그 녀석이 대문까지 왔어!
……!
이렇게 빠를 줄이야. 그럼 "손님"이 도착 전에 확실히 세팅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네.
?
만약 상대방의 의도가 우리랑 집행 부대를 끌어들여 서로 죽이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럼 나는 이목을 현혹시킬만한 걸 좀 준비해야겠어.
——상황을 바꿀 시간이 없다면 최소한 상황을 혼란시켜야겠어.